【사회】ㅇ 인천광역시(시장 박남춘)는 1939년 일제강점기 조병창부터 광복이후 주한미군기지로 사용된 인천 캠프마켓이 인천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80여년의 긴 장벽을 깨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밝혔다.
【도시균형계획국 부대이전개발과 - 유승현 (032-440-4662)】
【행정】오산시(시장 곽상욱)는 10월 8일 오산지역 청년(35세 미만)에게 영어·직장·위생·안전·마케팅 등의 직무교육을 통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청년일자리 창출을 주목적으로 (협)주한미군 복지지원협회와 『주한미군 취업연계형 취업교육 공동프로젝트』란 MOU를 전격 체결했다.
【오산시 】 2019.10.08
우리 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처음 주한 미군이 우리 나라에 진주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9월 8일이었는데 이후 지금까지 계속해서 주둔하고 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인 일본과 이탈리아· 독일이 점령하였던 지역에 연합군이 주둔하여 전쟁당사국 군인들의 무장을 해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우리 나라에는 위도 38°를 기준으로 위도 38° 이북에는 소련이 일본군의 무장을 해제를 위해 주둔하였고, 위도 38° 이남에서는 미군이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위해 주둔하였다. 그러나 이들 주한 미군과 주한 소련군은 일본 의 무장 해제를 끝내고 나서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계속해서 주둔하여 결국 한반도를 남과 북으로 갈라 놓은 원인이 되었다. 주한 미군은 1945년에 처음 우리 나라에 발을 들여 놓은 후 군정을 실시하였다. 우리 나라는 일본 으로부터 광복이 되면서 곧바로 독립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였으며 주한 미군이 군인 정부를 만들어 우리 나라를 위임통치하였다. 주한 미군의 군정은 1945년부터 1948년까지 계속되었다. 1948년에 유엔의 결의에 따라서 남한은 총선거를 하여 독립 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남한에 독립 정부가 수립됨에 따라서 주한 미군은 군사 고문단 5백여 명만을 남겨 놓고 철수하였다. 그러나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서 미군은 유엔군 의 일원으로 다시 우리 나라에 주둔하게 되었다. 당시 유엔군은 거의 미군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 때 많은 수의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였다. 미군을 비롯하여 유엔군은 북한군과 맞서 싸워서 지금의 휴전선 이북까지 북한군을 몰아 내는 데 성공하였다. 한국 전쟁은 1953년에 전쟁 당사자들이 모여서 휴전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끝이 났다. 그러나 전쟁은 끝이 났어도 주한 미군은 한반도에서 완전히 철수하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1953년 10월 1일 미군측과 한미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조약에 근거하여 미군은 한반도에 상주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공산군의 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한반도 에 많은 미군 군사 기지를 건설하였다. 이후 한국군과 미군의 작전 지휘권 이외에 다양한 군사 정책 등을 협의·조정하기 위한 협의체로 한미 연례 안보 협의 회의를 1968년에 결성하였다. 이 기구에 의해서 한국군과 미군의 지휘자들은 해마다 모여서 각종 군사 정책을 협의, 수립해 나가고 있다. 한미 연례 안보 협의 회의는 영어 약자로 SCM이라고 부른다. 1978년에는 주한 미군과 한국군 사이에 다시 한미 연합 사령부가 창설되었다. 한미 연합 사령부는 전시와 평시의 군사 작전 통제권을 수행하는데 따른 한국군과 미군의 권한을 협의·결정하는 군사 기구이다. 한국군의 군사 작전 통제권은 한국 전쟁 이후 계속 주한 미군이 가지고 있다가 1978년에 한미 연합 사령부가 창설됨에 따라서 한미 협의하에 작전 통제권을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후 1994년 12월에 한국군에 환수되었다. 그러나 위기 상황이 생겼을 때나 중요한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등 상황 변화가 생기면 주한 미군은 한국군으로부터 작전 통제권을 위임받을 수 있다. 특히, 한반도에 전쟁 이 다시 일어나는 국가 위기 상황이 닥치면 주한 미군은 다시 작전통제권을 인수받게 되어있다. 이 때 군사 작전 통제권은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위임된다. 현재 우리 나라에 있는 미8군과 미7 공군을 통합해서 지휘하는 주한 미군 최고 지휘관은 주한 미군 사령관이다. 주한 미군 사령관은 그 휘하에 미군 병력 3만 6천명을 가지고 있으며 화력으로 F-16 전투기 80여 대, A-10 지상 공격기 21대, 아파치 헬기 48대, 공격용 헬리콥터 75대, 전차 140대, 미사일 40기 등이 있다.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이러한 미군의 공격용 무기를 동원하는 것 외에도 미국에서 대량의 무기와 병력이 지원된다. 또한, 60일 이내에 군병력 40여 만 명, 항공기 1,600여 대, 함정 200여 척이 지원된다. 한국군과 미군은 긴밀한 협조 하에 면밀히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하여 전쟁의 위기를 파악하고 있다. 한반도에 전쟁 이 일어날 위험이 생기면 데프콘(DEFCON)이라는 경계 태세를 발한다. 데프콘은 위험 상황 정도에 따라서 1호·2호·3호 등으로 발표한다. 한국군과 주한 미군은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1980년대 후반들어서 한반도의 안보 상황 이 안정을 찾아가면서 주한 미군의 체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무역, 재정 적자가 심화되기 시작하면서 해외 미군 기지에 대한 감축안이 미국 의회에 정식으로 입안되었다. 해외 미군 기지 감축안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넌워너 수정안이었다. 이 법안이 미국 의회에 정식으로 채택됨에 따라서 주한 미군을 대폭 감축하게 되었고 미군이 부담하던 방위비도 상당 부분 한국군이 떠맡게 되었다. 이에 따라서 미군이 경계하고 있던 판문점 내 비무장 지역 의 일부를 한국군이 경계하게 되었으며, 한미 연합 야전 사령부가 해체되었다. 또한, 유엔군 사령부 군사 정전 위원회 수석 대표 직책을 미군으로부터 한국군이 넘겨 받았다. 넌워너 수정안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주한 미군이 감축되었고 한국군의 방위비 분담률도 높아졌으나 1990년대 들어서 북한의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넌워너 수정안의 실행이 유보되고 있는 상태이다. 현재 주한 미군과 관련해서 가장 첨예하게 한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바로 주한 미군 지위 협정이다. 영어 약자로 SOFA라 불리는 주한 미군 지위 협정은 한국 내 미군 기지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미군과 그 관계자의 법적인 처리 문제를 다룬 한미 간 협정이었는데, 이 SOFA는 미군 관계자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하고 있어서 미군에 대한 한국민들의 불만을 가중시키고 있는 매우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불평등한 한미 관계의 상징처럼 인식되어 오던 SOFA는 1991년에 개정되었는데, 우리 나라의 요구가 대폭 수용된 차원에서 개정이 이루어졌다. 또한, 1990년대 이후 들어서면서 대북 방위의 주도적인 역할은 한국군이 맡고 미군은 지원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역할이 전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