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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조선의 마지막 왕이라고 알려진 인물. 태어난 시기와 사망한 시기를 알 수 없다. 준왕에 대한 기록은 《제왕운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하다.
기자라는 인물은 우리 나라의 역사 중에서 고조선이란 초대 국가를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조선은 기자가 세웠다고 해서 기자 조선이라고도 불린다.
준왕은 기자의 40대손으로써 기자 조선의 왕이 된 인물이다. 중국 진나라의 진시황이 장성을 쌓을 당시 고조선의 왕이었던
부왕의 아들이다. 그런데 준왕이 기자 조선의 왕이 된지 얼마 안되어서 중국 대륙은 내란이 일어나서 연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들어섰다. 이 때 연나라 사람인 위만은 연나라 중에서도 기자 조선의 북쪽에 해당하는 지역에 살고 있다가 중국에 새로운 한나라가 들어서자 자신을 추종하던 무리들을 이끌고 기자 조선으로 망명할 것을 요청하였다. 위만은 1,00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기자 조선으로 망명하였다. 이 때 기자 조선의 준왕은 위만을 받아들여서 그를 박사라는 관직을 주고 기자 조선의 서쪽 100리의 땅을 주어서 변방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위만은 기자 조선의 서쪽 변방에서 서서히 세력을 쌓아가기 시작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준왕은 위만의 반란에 대항하지 못하고 패배하게 되었다. 결국 준왕은 자신의 측근 몇 명만을 이끌고 위만에게 쫓겨서 배를 타고 남하하였다. 준왕은 배를 타고 남하하여 한반도의 남쪽 지역에 닿았는데 이 지역은 정확하게 어디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제왕운기》 《고려사》 등의 역사서에는 준왕이 남하하여 닿은 지역을 지금의 전라 북도 익산 근처인 것으로 지목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1,000여 년이나 계속되어 왔던 기자 조선은 준왕을 마지막으로 멸망하게 된 것이다.
남쪽에 도착한 준왕은 스스로 한왕이라고 지칭하며, 다시 진국을 건설하여 세력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세력이 너무나 약해져 있었기 때문에
진국은 기자 조선과 같은 큰 힘을 가진 강국이 되지는 못하였다.
한반도의 남쪽에는
삼한이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진국은 이 삼한 중의 하나였던
마한에게 정복당하여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