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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척화비(斥和碑)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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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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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斥和碑)
조선 고종 때 서양인들을 배척하기 위해 세운 비. 대원군이 두 차례의 양요를 겪은 뒤 국민들에게 서양 세력의 침입을 경고하기 위하여 전국의 주요한 곳에 세웠는데, 임오군란 뒤 서구 열강과 수교하게 되면서 없앴다.
▣ 지식지도
◈ 요약정보
척화비 (斥和碑) 척화비 전문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강화를 맺는 것이요, 강화를 맺는 것은 곧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다.
◈ 지식지도
척화비 (斥和碑) 대원군 1882년 흥선 대원군 조선 고종 남연군 이구 명성 황후 여흥부 대부인 민씨 흥인군 흥친왕 임오군란 병인 양요 신미양요 제물포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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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 (3) 백과
▣ 백과사전
조선 고종 때 서양인들을 배척하기 위해 세운 비. 대원군이 두 차례의 양요를 겪은 뒤 국민들에게 서양 세력의 침입을 경고하기 위하여 전국의 주요한 곳에 세웠는데, 임오군란 뒤 서구 열강과 수교하게 되면서 없앴다.
 
화강석에 한문으로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서양 오랑캐가 쳐들어오는데, 싸우지 않으면 강화를 맺는 것이요, 강화를 맺는 것은 곧 나라를 팔아먹는 일이다.
 
라 적었다.
 
당시 서울에 세웠던 것이 지금은 경복궁으로 옮겨져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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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클레르 드 륀 펜션 제주시 애월읍, M 010-6693-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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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