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3 ~ 1542] 조선 중기의 학자. 자는 공서, 괴산 출신.
연산군 9년(1503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한 후 참교, 한학 교수, 동지중추부사 등의 벼슬에 올랐다.
중국어에 능통하였고, 외교 문서에 사용하는 특이한 문체인 ‘이문(吏文)’을 잘 썼다.
그가 지은 《
훈몽자회(訓蒙字會)》 속에서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이름을 처음으로 정하고, 순서와 받침 등을 정리함으로써 국어학의 발달에 중요한 발판이 되게 했다.
당대에서 가장 뛰어난 중국어 학자로 사신들을 맞을 때 중요한 역을 맡았다. 그러나 중인(中人) 출신이었기 때문에 살아있을 때는 크게 우대 받지 못하였다. 그가 중인출신이라 때로는 당시 양반들의 비난을 받았으나 그 때마다
중종과 좌의정
남곤(南袞) 등의 변호로 고비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