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통일 신라 말기의 문인. 본관은 경주이다.
신라 시대에 왕족 다음 가는 신분인 6 두품 출신으로, 890년(진성 여왕 4) 중국 당나라에 건너가 국학에서 3년간 공부하였다. 893년 당나라에서 외국 사람에게 보게 하던 과거인 빈공과 에 급제하여 관직에 있다가 우리 나라로 돌아왔다.
경주 최씨는 신라 말기에 6 두품 출신 가운데에서 새로운 지식 계급으로 등장한 가문 가운데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가문 이었다. 최승우는, 경주 최씨로서 명문의 《토황소격문》으로 이름을 떨친
최치원(857~?),
최언위(868~944)와 더불어 '신라 말기의 3최'라고 불렸다.
그 당시 경주 최씨들은 대부분 고려의 태조인 왕건 밑에서 글을 짓거나 글씨를 쓰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최승우는 900년(통일 신라 효공왕 4) 완산(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운 견훤(?~936)에게로 가 그를 대신하여 고려의 태조에게 보내는 글을 지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
927년에 지은 「대견훤기고려왕서」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삼국사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문선》 따위에 실려 있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최승우가 지은 《호본집》(5권)은 오늘날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