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 ~ ?] 사학자, 교육가. 평북 정주에서 태어나 일본 와세다 대학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1918년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중앙고등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었다. 3·1 운동에 중앙고보 교장이었던
송진우와 함께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으로 참가하였으나 복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 뒤 중앙 고등 보통 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8·15 광복 후에는 경성 대학(지금의 서울 대학교) 예과 부장을 지냈다. 그 후 1946년에는 고려 대학교의 초대 총장이 되었는데, 6·25 전쟁 때 공산군에게 납치당하였다.
•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태평양 전쟁 지원을 위한 친일 글을 다수 남겨 2008년에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교육/학술 부문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1940년의 창씨개명 권고에는 거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