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광무 2년)에 창간된 국한문 혼용의 일간 신문.
개화파 지식인인
장지연,
남궁억,
나수연 등이 대한 황성 신문(매주 2회 발간)의 판권을 넘겨받아 이름을 고쳐 일간 신문으로 내놓았다.
신문에는 애국적·계몽적인 글을 실어 중류 이상의 지식인 독자를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 1905년에
을사조약이 맺어지자 사장 장지연의 ‘
시일야 방성 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라는 논설을 실어 국민의 울분을 대변하였고, 장지연이 구금되자 신문도 정간 처분을 받았다가 몇 개월 만에 복간되었다.
특히 이 신문은 고종 황제로부터 재정의 지원을 받았으며, 1910년 일제의 국권 침탈 이후 ‘
한성 신문’으로 이름을 고쳐 발행하다가 그 해 9월 14일에 폐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