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6(효종 7)∼1719(숙종 4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효숙(孝叔). 사평(司評) 문도(文道)의 아들로, 영조의 국구(國舅)이다.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1704년에 그의 딸이 뒷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延礽君)과 결혼하여 사릉참봉(思陵參奉)에 임명되었으며, 그뒤 신천군수(信川郡守)를 역임하였다. 영조 즉위년에 우의정에 추증되고 달성부원군(達城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러나 후손 중에 벼슬하는 자가 없어서 집안이 무척 궁색하게 되었다. 이에 조정대신들이 영조에게 건의하여 그 아들인 인수(仁修)로 하여금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제수하여 가계를 꾸리도록 하였다. 시호는 효희(孝禧)이다.
참고문헌
肅宗實錄, 英祖實錄, 東國文獻備考, 陶庵集(李縡). 〈張弼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