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출신지 미상. 활동상은 알려지지 않으나 통일신라 말기∼고려 초기에 활동하였던 듯하다. 김척명(金陟明)은 원광(圓光)의 전기를 찬술하였다고 전한다. 일연(一然)은 《
삼국유사(三國遺事)》권4, 의해(義解)5, 원광서학(圓光西學)조와 보양이목(寶壤梨木)조에서 원광에 대한 전기가 중국과 우리나라에 유통되었지만, 향인(鄕人) 김척명이 윤색하여 원래 없었던 보양의 작갑(鵲岬)·이목(璃目)과 운문(雲門)의 사적을 원광의 사적과 합하여 하나의 전기로 삼았고, 이것이 《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에도 그대로 계승되었다고 지적하였다.
《수이전》의 찬자에 대해서는 김척명 이외에
최치원(崔致遠),
박인량(朴寅亮), 작자미상, 개작보완, 이본(異本) 등 여러 견해가 있다. 원광서학조의 「신라수이전」은 아마도 개작(改作)되기 이전의 「고본(古本)수이전」을 가리키므로, 김척명은 「신본(新本)수이전」의 찬자로 보인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 「고본수이전」과 「신본수이전」두 본이 존재하였고, 이들은 내용상 차이가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