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성종 18년(1488년) 1월에 제주도에 파견되었다가 아버지의 상을 치르기 위해 배를 타고 나주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13일을 표류한 끝에 중국의 강남 지역에 닿았고, 그곳에서 북경을 거쳐 6월 14일에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섯 달 동안의 여정을 《표해록》이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이 일기는 16세기에 한국과 일본에서 널리 출판되었다.
현대 역사가들 또한 그의 기록을 활용하는데, 이것은 그의 여행 일기가 15세기 중국 문화를 외부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유일한 기록이며 중국의 도시들과 지방 마다 드러나는 차이점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의 기록에 드러난 입장과 태도는 15세기 조선 지식인의 유교적 관점을 드러내며, 그는 중국 문화가 조선의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에 양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중국의 도시, 사람, 관습, 요리, 대운하를 통한 상업적 교류에 대한 그의 설명은 15세기에 중국인의 일상 생활과 중국 북부 지역과 남부 지역 간의 차이에 대한 통찰을 제공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