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57] 발해의 제11대 왕(재위:831~857). 발해 제10대 왕
선왕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대신덕(大新德)이다. 연호는 함화(咸和)를 사용하였다. 시호는 미상이다.
부(府), 주(州)의 확정과 중앙집권적인 행정 제도의 확립에 노력해 동시에 군사 기구를 발전시켜 모병제에 의한 상비군을 편성했다. 《당서》에는 발해의 군제로서 좌우신책군(左右神策軍)·좌우삼군(左右三軍)·일백이십사(一百二十司)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당과의 적극적인 문화 교류에 따라 당의 제도가 발해에 널리 전해져 일부 유학생이 과거에 급제 하는 등 발해의 학문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즉위 후 여러 사신과 학생을 당나라에 파견하였다. 왕자 대명준(大明俊)을 832년과 836년, 837년 세차례에 걸쳐 수십인과 함께 당나라에 파견하였으며 왕자 대선성(大先晟) 대연광(大延廣) 대입악(大立萼) 등도 833년, 839년, 846년에 각각 당에 파견하였다.
이때 학생 해초경(解楚卿), 조효명(趙孝明), 유보준(劉寶俊), 이거정(李居正), 주승조(朱承朝), 고수해(高壽海) 등도 당나라에 유학하였고 당나라에서는 장건장(張建章)이 서적을 가지고 발해에 들어오는 등 발해와 당나라 양국 간 문화적 교류는 활발히 전개되었다.
한편 일본과도 빈번한 내왕이 있어 선왕 때 이어 왕문구(王文矩)가 계속 파견되었고 하복연(賀福延) 등도 파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