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4 ~ 1535]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자용(子容)이다. 기묘명현에 책록되었다.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청송부원군(靑松府院君)
심회(沈澮)의 증손으로, 영의정에 증직된 심순문(沈順門)의 차남이고, 명종 때, 영의정을 지낸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심연원(沈連源)의 동생이며, 동지돈녕부사 심봉원(沈逢源), 명종 때, 좌의정을 지낸 심통원(沈通源)의 형이다. 또한, 중종 때, 이조참판을 지낸 윤희인(尹希仁)의 사위이다.
1517년 별시문과(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고, 1519년 홍문관 수찬 겸 경연관 검토관을 거쳐, 홍문관 부수찬(副修撰)으로 숙직하던 중,
기묘사화(己卯士禍)가 일어나자,
조광조(趙光祖)의 당이라 하여, 제1착으로 투옥된 후, 유배되었다. 얼마 후, 풀려나, 이조좌랑을 거쳐, 1522년 성균관 직강을 지냈으며, 중국어에 능통하여, 1528년 명나라에 가는 성절사(聖節使)를 수행했다. 이후, 호군(護軍)·승문원 판교(判校)를 거쳐, 1534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였다. 1535년 통례원 좌통례(左通禮)에 이르렀다. 영조 때, 기묘명현(己卯名賢)에 책록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