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선 전기의 승려.
성은 최씨(崔氏). 호는 묘각(妙覺). 전라남도 고랑주(古朗州) 출신. 이인(異人)이 어머니에게 구슬을 남기고 가는 꿈을 꾸고 낳았다고 한다.
13세에 월출산 도갑사(道岬寺)로 출가하여 계(戒)를 받았다. 처음에는 교학(敎學)에 뜻을 두고 불경을 강(講)하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속리산
법주사(法住寺)에서
신미(信眉)를 만나 함께 대장경(大藏經)을 읽고 율(律)을 익혔다.
그러나 교학과 계율을 공부하는 것이 아무리 훌륭한 인물화를 그려도 생명력이 없는 것과 같음을 깨닫고 참선(參禪)에 뜻을 두게 되었다.
처음에는 구곡(龜谷)의 지도를 받았고, 뒤에 정심(正心)의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 당시에는 억불정책으로 불법(佛法)을 배우는 자는 매우 드물었는데, 선종판사(禪宗判事)가 되어 황폐한 불교를 부흥시키고 종문(宗門)을 정돈하였다.
1457년(세조 3)에
도갑사로 돌아와서 황폐화된 절을 중수하고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 3구(軀)를 조성하였으며 학승(學僧)들을 모아 지도하였다.
1458년에는 왕명으로 경차관(敬差官) 윤찬(尹贊)·정은(鄭珢)을 도와 해인사대장경 50부를 인출하였다. 그 뒤
신미와 함께 선도(禪道)를 홍포하고자 완산(晥山)과 몽산(蒙山) 등의 법어(法語)를 해석하고 한글로 번역하였다.
세조는 그를 왕사로 책봉하고 묘각(妙覺)이라는 호를 내리면서 가사(袈裟)·유리(瑠璃)·구슬·불자(拂子) 등을 하사하였다. 입적한 때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당시 나이 63세, 법랍(法臘) 51세이었다. 부도는 현재
도갑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