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성의 유일한 사찰인 안국사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려 충렬왕 3년인 1277년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지며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광해군 때 사고를 증축하여 이듬해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고 승병을 두어 지키게 했는데 이때 안국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 백과사전
적상산성의 유일한 사찰인 안국사는 금산사의 말사이다. 고려 충렬왕 3년인 1277년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지며 1592년 임진왜란과 1597년 정유재란 때 승병들의 거처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광해군 때 사고를 증축하여 이듬해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선원록을 보관하고 승병을 두어 지키게 했는데 이때 안국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위치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1050
사고 : 역사 기록을 보관한 창고. 역대 왕의 실록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 문헌, 서적, 기록을 보관해 두는 곳. 사고는 한양의 춘추관을 비롯해 충주, 성주, 전주의 4곳이 있었는데,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고 전주의 사고만이 유일하게 보존되었음.
【문화】오늘은 순천군(順川郡) 금인면(金人面)에 있는 안국사(安國寺)를 찾으려고 평양(平壤)을 떠난다. 기차로 순천(順川)에 가는 아침 기차를 타고 북으로 달리기 한 시간쯤하여 금인역(金人驛)에 내렸다. 너무 일러서 그런지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문밖을 쓸고 있는 노인들만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봉린산(鳳麟山)에 안국사(安國寺)가 있으려니 하고 서쪽에 높이 솟은 봉린산(鳳麟山)을 바라보니 그 앞에 백족산(百足山)과 소사산(蘇射山)이 눈길을 막는다.
【문화】오늘은 순천군(順川郡) 금인면(金人面)에 있는 안국사(安國寺)를 찾으려고 평양(平壤)을 떠난다. 기차로 순천(順川)에 가는 아침 기차를 타고 북으로 달리기 한 시간쯤하여 금인역(金人驛)에 내렸다. 너무 일러서 그런지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고, 문밖을 쓸고 있는 노인들만이 여기저기에 보인다. 봉린산(鳳麟山)에 안국사(安國寺)가 있으려니 하고 서쪽에 높이 솟은 봉린산(鳳麟山)을 바라보니 그 앞에 백족산(百足山)과 소사산(蘇射山)이 눈길을 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