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선 성종 때의 함경도 영흥의 기생. 그의 작품 3수가 《
해동가요》에 수록되어 있다.
저 설 데 역력(歷歷)히 모르는 무부(武夫)를 어이 좇으리.
전언(前言)은 희지이(戱之耳)라 내 말씀 허물 마오.
두어라 규규무부(赳赳武夫)를 아니 좇고 어이리.
제(齊)도 대국(大國)이요 초(楚)도 역대국(亦大國)이라.
두어라 하사비군(何事非君)가 사제사초(事齊事楚)하리라.
• 기록에 의하면 성종이 어느 잔치에서 소춘풍에게 예전의 노래가 아닌 새로운 것으로 노래를 짓게 하여 먼저 문사(文士)를 칭찬하는 노래를 짓자 무관들이 다 노여워하였다. 이에 국왕이 노래로 노여움을 풀도록 명하여 다시 노래를 지으니 이번에는 문사들이 불쾌하게 여기자 국왕이 다시 노래로 양편의 노여움을 풀도록 하자 즉시 세 번째 노래를 지어 부르니 문무(文武)가 다 즐거워하였다. 이런 사실들은 차천로(車天輅 ; 1566~1615)의 ‘오산설림초고(五山說林草藁)에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