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 ~ 1906]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우국지사다. 자는 순명(舜命)이고 호는 복암(復菴)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홍성 출신이다.
1878년(고종15) 왜국과 화친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 1889년 문과에 급제하여 수찬이 되고, 이듬해 교리, 정언을 거쳐 지평이 되었다. 1891년 수찬 겸 수학교수, 1893년 교리, 중학교수, 장령을 거쳐, 이듬해 응교, 사복시정, 집의, 사간, 승지가 되었고, 동학농민 봉기가 일어나자 폐정개혁 상소를 올렸다. 갑오경장이 이루어지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1895년 민비시해사건이 일어나고
단발령이 시행되자
김복한(金福漢)과 함께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홍성목사 이승우(李勝宇)의 배신으로 김복한과 함께 체포되었다. 1896년 고종의 특사로 풀려나, 1904년 토왜격문(討倭檄文)을 돌렸고, 안주군수, 중추원 의관을 사양하였다.
1905년 김복한과 함께 을사조약의 파기를 요구하는 상소를 올리고, 1906년 국권피탈에 통분하여 자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