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헌강왕(재위 875년 ~ 886년) 때의 사람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처용랑 망해사(處容郞望海寺)에 실려 전한다.
879년 왕이 행차하여 울산
개운포(開雲浦 : 현재 울산화학공단과 온산화학공단 사이 외황강 하구 지역)에 이르렀을 때, 이상한 생김새와 괴이한 의복을 입은 용왕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처용이라는 자가 왕 앞에 나타나 노래하고 춤추며,왕을 따라 서라벌까지 왔다. 처용은 급간이라는 벼슬을 받고 달밤이면 나가 춤추고 노래하다가, 마침내는 그 행방을 감추어 버렸다. 《악부(樂府)》에 그의 춤이 “처용무”(處容舞) 또는 “상염무”(想髥舞)라고 전해지고 있다. 1505년 조선 연산군 때는 내관 김처선이 처형당한 것을 연유로, 공문서를 비롯한 모든 문서에서 “처(處)”자 사용을 엄금하여 이때는 처용을 풍두(豊頭)라고 하였다.
처용은 한국 민간 전승과 무속 신앙에서 신의 하나로 숭배된다.
전설에 따르면, 처용이 외부에 출타중인 사이 역신(疫神: 질병을 전파하는 신)이 처용의 아내와 동침하였다. 처용은 이를 발견하였으나 분노하지 않고 향가인 〈처용가〉를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다 한다. 그의 인품에 감격한 역신은 처용이 있는 곳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는 약조를 하고 사라진다고 한다.
고려시대 이후 새해 초나 질병이 돌 때 문 앞에 처용의 얼굴을 한 그림을 그려서 붙이면 질병이 전파되지 않는다는 믿음이 존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