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9 ~ 1547] 조선의 문신이다. 자는 미수(眉叟), 호는 규암(圭菴)이며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송기수의 사촌 형이며,
송응개의 당숙이고,
성제원의 처남이고,
송시열의 종증조부이다.
1522년(중종 17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1526년 수찬이 되었다. 1528년 사간원 정언, 이듬해 사헌부지평, 1531년 홍문관교리를 거쳐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고 탄핵하여 그의 미움을 사 사천으로 유배되었다. 이후 4년만에 복귀하여 예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이듬해에는 병조참판에 올랐으며 1541년에는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547년 이기,
윤원형의 모함을 받아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선조 대에 이르러 신원을 회복시키고 적몰된 가산을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