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5 ~ 1463] 조선 전기에, 호조판서, 우찬성,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중윤(仲胤), 호는 풍애(楓厓). 이당(李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집(李集)이다. 아버지는 참의
이지직(李之直)이며, 어머니는 이원보(李元普)의 딸이다.
1411년(태종 1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 검열에 발탁되었다. 그 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1429년(세종 11) 천추사(千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형조좌랑·예조좌랑·집의·판군자감사·예조참의·경상도관찰사·형조참의·대사헌·한성부윤 등을 역임하였다. 1453년(단종 1)에는 한성부윤으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형조참판을 거쳐, 1454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잡게 되자 호조판서에 승진되고, 1455년 세조의 즉위와 함께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봉하여졌다. 이어서 판중추부사로서 판호조사를 겸임하고 우찬성을 거쳐 1459년(세조 5) 우의정에 오른 뒤 곧 치사(致仕)하였다. 시호는 충희(忠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