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3년 도쿠가와 이에쓰나(德川家綱)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이루어진 사행. 계미신사(癸未信使), 계미신행(癸未信行). 계미통신사(癸未通信使).
1643년(인조 21)에 도쿠가와 이에미쓰(德川家光)의 아들 도쿠가와 이에쓰나(德川家綱)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이루어진 사행이다.
정사
윤순지(尹順之), 부사
조경(趙絅), 종사관
신유(申濡), 제술관 박안기(朴安期), 역관 홍희남 ‧ 이장행, 사자관 김의신(金義信), 화원
김명국(金明國) ‧ 이기룡(李起龍), 의원 이득길(李得吉) 등이 파견되었으며, 1643년 2월 20일 한양을 떠나, 4월 10일에 부산에서 출항하였다가 되돌아 온 후 24일에 재차 출항하여 1643년 10월 29일에 조선에 돌아왔다.
이번 사행은 조선의 입장에서 일본과 우호를 맺고 청에 대한 견제의 기회를 얻고자 하였고, 일본의 입장에서는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의 체제가 강화되는 시기에 조선으로부터 축하 사절을 받아 국제적인 인정을 받게 되는 기회를 얻고자 하였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1636년ㆍ1643년ㆍ1655년에 행해진 3차례 통신사 노정의 종착지는 에도가 아닌, 도쿠가와 이에쓰나의 원당(願堂)이 있던 닛코산(日光山)까지였으며, 일본의 강청(强請)에 의한 닛코산 유람과 치제(致祭)가 행해졌는데, 우여곡절 끝에 닛코산 유람이 이루어진 1636년 병자사행과 달리 이번 사행에서는 양국의 합의 하에 ‘강정절목’에 포함되고 도쿠가와 이에쓰나에 대한 ‘치제’로 발전하였다.
한편, 이번 사행을 통해 조선은 일본에 역법(曆法)을 전수하였으며, 1636년 병자사행 때 인삼을 밀매하다 적발되었던 화원 김명국은 일본 측의 초청으로 사행원이 되어 가노 단유(狩野探幽)와 교류하는 등 일본의 화단에 영향을 끼쳤다.
본 사행에 대한 기록으로, 조경의 『동사록(東槎錄)』, 신유의 『해사록(海槎錄)』, 저자 미상의 『계미동사일기(癸未東槎日記)』 등이 전한다.
【인용】조선시대 대일외교 용어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