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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교오고무 # 오은명 # 오은명류 답교오고무 # 한국무용 # 한뫼국악예술단
최근 3개월 조회수 : 2 (5 등급)
【문화】
(게재일: 2023.10.23. (최종: 2023.11.03. 22:59)) 
◈ 후배 양성 위해 저작권 포기한 오은명 명무(名舞)
한뫼국악예술단 창립 25주년 공연의 피날레 〈오은명류 답교오고무〉는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다섯 개의 북을 놓고 신나게 두드리는 오교무는 경기 웃다리 농악 가락의 일부인 육채, 칠채를 도입하고 삼채, 이채의 풍물가락과 무등가락을 이용하여 만든 창작 작품이다.
한뫼국악예술단 창립 25주년 공연의 피날레 〈오은명류 답교오고무〉는 이날 공연의 백미였다. 다섯 개의 북을 놓고 신나게 두드리는 오교무는 경기 웃다리 농악 가락의 일부인 육채, 칠채를 도입하고 삼채, 이채의 풍물가락과 무등가락을 이용하여 만든 창작 작품이다.
 
〈오은명류 답교오고무〉는 오은명과 제자들이 25년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춤 동작을 연습하고 무대에 올린 독창적인 전통 창작 춤이다. 이 작품은 과거에 명무로 이름을 드날렸던 임춘앵, 이매방를 뛰어넘는 새로운 창작 춤이다. 스승과 제자가 선생은 함께 25년 춤을 추는 것은 대단한 인연과 열정의 산물이다. 오은명 단장은 현대에 맞는 장단과 몸짓을 추혜경, 박무영, 안주현, 서지영 춤꾼과 개발해 춤을 추는 많은 후배들에게 마음껏 〈오은명류 답교오고무〉를 추라고 제안했다. 자라나는 후배들을 위하여 춤 저작권을 포기했다.
 
 
오은명류 답교오고무
 
 
고무(舞鼓)는 북을 치며 추는 우리나라 고유의 궁중무용인 정재(呈才)이다. 정재란 궁중에서 여령(女伶)이나 무동(舞童)이, 지방 관아에서 기녀들이 공연했던 악가무의 종합예술을 말한다.
 
고무는 일찍 고려왕조 때 만들어져 승전무(勝戰舞) 의례무용으로 연행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기생들이 궁중무 〈무고(舞鼓)〉를 변형시켜 사고무(四鼓舞)를 추었다. 사고무는 5명이 출연하여 1명은 박을 치고 북 4개를 무대 중앙에 사각으로 모아서 세워놓고 사방색의 궁중무 의상을 입은 4명의 춤꾼이 양쪽에서 나누어 등장하여 창사를 하고 북을 치며 춤을 추었다.
 
1916년 다동기생조합의 하규일이 창작하고 초연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1920년대 대동권번, 한성권번에서도 사고무를 추었는데 1930년대 말에 사라졌다. 이것은 궁중무의 기본 구성에 민속무인 승무의 북 치는 대목을 섞어 구성한 작품으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무대 규모에 따라 궁중무가 근대역사에서 세속화한 것이다.
 
이번 공연은 과천문화재단의 ‘아티스트 in 과천’ 지원 사업으로 개최되었다. 이날 전체 무대에 오른 명무(名舞)들은 모두 오랜 세월을 오은명 단장과 전통춤 보급을 위해 묵묵히 함께 걸어온 소중한 분들이다. 공연에 아내와 선배 부부가 함께 참여하였는데 공연을 보고 나와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공연에서 본 춤 내용을 즐겁게 대화하며 굉장히 즐거워했다. 모두 공연이 너무나 즐겁고 신명이 났다고 말해 정말 행복했다.
 
오은명 단장은 공연을 마치고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에게 “이번 공연이 모든 사람에게 신명과 위로를 주고, 예술인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필자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출연진들의 공연을 찾아보고 감상했다. 오은명 단장은 1988년 과천에 처음 이사와 살기 시작하면서 줄곧 청소년들에게 우리 전통춤을 가르쳤다. 8살 때부터 춤을 춘 오은명 명인은 "춤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고, 사람의 순수한 마음을 몸으로 표현하는 아름다운 언어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뫼국악예술단을 창단하고 정성을 다하여 육성했다. 한뫼국악예술단의 창단 이후 25년간의 발자취와 주요 공연을 살펴보았다.
 
오은명 단장은 과천에서 생을 마감한 추사 김정희를 추모하기 위하여 국악 가무악극을 창작하여 2016년 〈붓 천자루 벼루 열 개〉를 무대에 올렸다. 〈붓 천자루 벼루 열 개〉는 추사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추사는 어렸을 때 글씨를 잘 써 박제가가 스승을 자처한 적이 있었다. 추사는 24살 때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에 갔다가 고증학과 새로운 문물에 눈을 뜨고 금석문에 몰두했다.
 
31살 때에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순수비를 찾아내고 68자를 판독했다. 54살 때 조선시대 당쟁에 휘말려 8년 3개월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돌아와 부친의 산소가 있는 과천과 봉은사에 머물며 선승처럼 산다. 추사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 평생 70년 동안 벼루 10개를 갈아 구멍을 내고 붓을 많이 써 추사체를 남겼다. 추사체의 글씨는 중국에도 알려졌다. 봉은사에는 판전이라 글씨가 남아있고, 초의선사와 교류했던 대흥사 동편 요사채 백설당(白雪堂)에 무량수각(無量壽閣) 글씨가 남아있다.
 
 
붓 천자루 벼루 열 개 (2016)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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