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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시조(時調)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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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時調)
고려 말부터 발달된 우리 나라 고유의 정형시 . 보통 초장(初章), 중장(中章), 종장(終章)의 3장으로 이루어지며, 그 기본 가락은 3ㆍ4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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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의견 12
시조사* (1.236.***.***)   
2021-01-27 22:44:25
【시조】바람도 쉬어 넘는 고개, 구름이라도 쉬어 넘는 고개
산진이 수진이 해동청 보라매라도 다 쉬어 넘는 고봉高峰 장성령長城嶺 고개
그 너머 임이 왔다 하면 나는 아니 한 번도 쉬어 넘으리라.
-작자 미상
시조사* (1.236.***.***)
2021-01-27 22:44:44
임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로서 사랑하는 임을 그리는 마음이 가식 없이 진솔하게 나타나 있다. <청구영언(靑丘永言)>과 <악학습령(樂學拾零)> 등에 전한다.
시조사* (106.240.***.***)   
2021-01-21 15:01:17
【시조】매화(梅花) 옛 등걸에 봄절(節)이 돌아오니
옛 피던 가지에 피염즉도 하다마는
춘설(春雪)이 난분분(亂紛紛하니 필동말동 하여라
- 매화(梅花)
시조사* (106.240.***.***)
2021-01-21 15:01:43
매화(梅花)[년대미상] 평양 명기라고만 전할 따름이다. 청구영언에 시조 8수(2수는 불확실)가 전한다.
시조사* (106.240.***.***)   
2021-01-21 14:59:45
【시조】솔이 솔이라 하니 무슨 솔만 여기는다
천심절벽(千尋絶壁)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내 긔로다
길 아래 초동(樵童)의 접낫이야 걸어 볼 줄 있으랴
- 송이(松伊)
시조사* (106.240.***.***)
2021-01-21 15:00:15
송이(松伊)[연대미상] - 기녀라고만 전할 뿐, 아무런 행적을 알 수 없다.
관리* (127.127.*.*)   
2021-01-20 15:20:04
【시조】압록강 해진 후에 어여쁜 우리 임이
연운 만리(燕雲萬里)를 어디라고 가니는고
봄풀이 프르고 프르거든 즉시 돌아오소서
-장현
관리* (127.127.*.*)
2021-01-20 15:21:30
장현(張炫, 1613~ ?)은 조선 인조-숙종때의 역관으로서 첩자와 교섭자로도 활약했다.
병자호란 때의 통역관으로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이 인질로 심양으로 끌려 갈 적에 따라 간 바 있었고, 후일에 지사 벼슬을 지냈다고 전한다.
위 노래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염려하여 지는 노래이다.
희빈 장씨의 아버지 장형의 사촌형이다.
본관은 인동. 자는 공명(公明)이다.
갑술환국이 발생한 후 장희재의 친족이라는 죄목으로 노론의 탄핵을 받아 유배되었다.
이후 그의 행적은 명확히 알려지지 않지만 배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관리* (127.127.*.*)
2021-01-20 15:20:30
이 시조는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심양으로 볼모가 되어 갈 때 통역관으로 따라간 작가가 두 왕자의 신변을 염려하여 지은 것이다.
관리* (127.127.*.*)   
2021-01-20 15:05:48
【시조】일 심어 느즛 피니 군자(君子)의 덕(德)이로다.
풍상(風霜)에 아니 지니 열사(烈士)의 절(節)이로다.
지금(至今)에 도연명(陶淵明) 없으니 알 이 적어 하노라.
-성여완
관리* (127.127.*.*)
2021-01-20 15:07:00
성여완(成汝完 1309~1397)
號는 이헌(怡軒) 본관은 창녕으로 고려 공민왕 때 호부상서(戶部尙書).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가 등극하자 포천의 왕방산으로 들어갔으며
이때 고려의 멸망을 보고 세상을 등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것은 새 왕조 이씨조선에 벼슬하지 않겠다는 절의의 표현이었으며
결국 이들은 불에 타 죽임을 당하였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란 말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태조가 회유책으로 그에게 검교문하시중 창녕부원군에 봉하였으나 거절하였다고 한다
관리* (127.127.*.*)
2021-01-20 15:06:17
이 시조는 국화를 제재로 하여 군자의 덕과 열사의 節을 찬양한 시조다.
이는 곧 고려의 멸망을 보며 작가 자신의 변함없는 지조를 다짐한 것이다.
이 시조는 도연명(陶淵明)의 음주(飮酒)라는 시에서 도연명(陶淵明)을 연상하며 인용한 것 같다.
관리* (127.127.*.*)   
2021-01-20 15:01:39
【시조】공명(功名)도 잊었노라 부귀(富貴)도 잊었노라
세상 번우(煩憂)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내 몸을 내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김광욱
관리* (127.127.*.*)
2021-01-20 15:02:44
김광욱(金光煜 1579-1656)
충절을 세워 청사(靑史)를 빛낸 김상용·김상헌 형제의 재종질이다.
선조 39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이조판서를 거쳐 벼슬이 우참찬에 이르렀다.
용모와 행동이 옥같이 맑고 단정하여 고아(高雅)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교우가 깊지 못하였다.
광해군대에 권신 정인홍이 성리학의 태두(太斗)이던 이언적·이황을 헐뜯으며 그는 단신으로 정인홍을 논척한 바 있었다.
시조 17수가 율리유곡 (栗里遺曲)이란 이름으로 <진본 청구영언>에 전하는데 도연명을 사모한 나머지, 부귀공명을 모두 물리치고 강호에 파묻혀 유유자적으로 여생을 즐기던 산림학파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관리* (127.127.*.*)   
2021-01-20 14:53:34
【시조】꿈에 뵈는 님이 신의(信義) 업다 하것마난
탐탐(貪貪)이 그리올 졔 꿈 아니면 어이 보리
져 님아 꿈이라 말고 자로자로 뵈시쇼
-명옥(明玉)
관리* (127.127.*.*)
2021-01-20 14:54:16
명옥(明玉) : 연대 미상이나, 이름이 알려진 화성(華城)의 기생이다.
관리* (127.127.*.*)   
2021-01-20 14:48:35
【시조】공명(功名)을 즐겨마라 영욕(榮辱)이 반이로다
부귀(富貴)를 탐(貪)치 마라 위기(危機)를 밟느니라
우리는 일신(一身)이 한가(閑暇)하니 두릴 일이 없세라
-김삼현
관리* (127.127.*.*)
2021-01-20 14:49:20
김삼현[金三賢 : 조선 숙종대]
생몰년 미상. 조선 후기의 가인(歌人). 시조 작가 주의식(朱義植)의 사위이다.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의 벼슬을 지냈다. 장인과 함께 벼슬을 물러나서 산수를 벗삼아 자연을 즐겼다. 그의 노래는 향락적이며 허무를 개탄하였는데 작품으로는 시조 6수가 전하고 있다.
관리* (127.127.*.*)   
2021-01-20 14:46:38
【시조】풍파(風波)에 놀란 사공(沙工) 배를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九折羊腸)이 물도곤 어려왜라
이후(以後)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
-장만
관리* (127.127.*.*)
2021-01-20 14:47:07
장만(張晩 1566-1631)
광해군 때의 사람으로 병조판서·형조판서를 지냈으며 인조반정 후에 팔도도원수(八道都元帥)가 되었고, 이괄의 난을 평정하였다.
관리* (127.127.*.*)   
2021-01-20 14:39:39
【시조】술을 취(醉)케 먹고 두렷이 앉았으니
억만 시름이 가노라 하직(下直)한다
아해야 잔 가득 부어라 시름 천송하리라
-정태화
관리* (127.127.*.*)
2021-01-20 14:43:32
정태화[鄭太和:1602-1673]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동래이다. 자는 유춘(跛春), 호는 양파(陽坡).
1624년에는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벼슬살이를 시작하였다.
1638년, 충청도관찰사(충청도관찰사(충청감사))가 되고 당상관에도 오르고 그 이후 승정원의 동부승지, 우부승지로 조정에 들어오고
이조참의, 예조참의, 공조참의, 형조참의, 호조참의, 병조참의,
이조참판, 예조참판, 공조참판, 형조참판, 호조참판, 병조참판,
한성부우윤, 한성부좌윤, 대사간, 도승지 등을 두루 지내고
1644년부터 이조판서, 예조판서, 공조판서, 형조판서, 호조판서, 병조판서, 대사헌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1649년, 효종이 즉위하자 그는 우의정이 되었다. 그 뒤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 뒤 곧 좌의정에 승진되었지만 어머니의 죽음으로 취임하지 않고 향리에 머물렀다. 1651년, 상복을 벗고 다시 영의정으로 조정에 나아갔다. 1652년, 중추부판사와 좌의정을 역임하고 효종·숙종 대에 여섯 차례나 영의정의 중책을 맡고 72세로 죽었다.
저서로 〈양파유고 陽坡遺稿〉·〈양파년기 陽坡年紀〉가 있다. 현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익헌(翼憲), 뒤에 충익(忠翼)으로 바뀌었다.
관리* (127.127.*.*)   
2021-01-20 14:38:15
【시조】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일어보니
작은아들 글읽고 며늘아기 베짜는데
어린 손자는 꽃놀이한다
마초아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고 하더라
-오경화
관리* (127.127.*.*)
2021-01-20 14:38:45
오경화(吳擎華)
연대 미상. 자는 자형(子衡), 호는 경수. 시조3수가 전하나 신원은 미상이다.
관리* (127.127.*.*)   
2021-01-20 14:22:16
【시조】녹초청강상(綠草晴江上)에 구레 버슨 말이 되야
때때로 머리 드러 북향(北向)하여 우는 뜻은
석양(夕陽)이 재너머 가매 님자 그려 우노라.
-서익 (徐益)
관리* (127.127.*.*)
2021-01-20 14:23:29
서익 徐益 (1542~158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 또는 만죽헌(萬竹軒). 1569년(선조 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병조·이조좌랑, 교리, 사인(舍人)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서천군수·안동부사·의주목사 등을 지냈다. 충청남도 은진(恩津)의 갈산서원(葛山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만죽헌집 萬竹軒集≫
관리* (127.127.*.*)
2021-01-20 14:22:57
이 작품은 벼슬을 내놓고 고향에 내려가 있을 때 중종(中宗)이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립고 슬픈 심정을 읊은 시조이다.
군신유의(君臣有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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