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7년(1세) 경북 경주(경남 창원,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
868년(12세) 관비(官費)로 당나라 서경(장안)으로 건너가 국자감(國子監)에서 유학.
874년(18세) 당나라 빈공과(賓貢科)에 장원으로 급제.
876년(20세)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선주(宣州) 관할 율수현위가 돼 관계(官界)에 진출.
880년(24세) 고병(高騈)의 추천으로 관역순관(館驛巡官)이 됨.
881년(25세) 황소의 난이 일자 고변의 종사관(從事官)이 돼 격황소서(檄黃巢書)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를 지음.
883년(27세) 《계원필경(桂苑筆耕)》 20권을 펴냄.
885년(29세) 당나라 생활을 접고 귀국. 헌강왕으로부터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에 임명 (외교문서 등 작성).
886년(30세) 전북 정읍 칠보면 일대 태수 임명.
887년(31세)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명 완성.
894년(38세) 천령군(현 함양) 태수 부임. - 진성여왕에게 개혁안인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를 올림.
896년(40세) 여러 지역 유람하다 - 합포현 별서(현 창원 마산합포구)에 머묾.
898년(42세) 가족을 이끌고 가야산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
909년(53세)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묘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