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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놀이터 :: 한양도성(漢陽都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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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漢陽都城)
최근 3개월 조회수 : 1 (5 등급)
(게재일: 2017.04.14. (최종: 2019.11.21. 19:07)) 
◈ 한양도성 순성(巡城)
따뜻한 봄볕에 한양도성(서울 성곽)을 순성(巡城) 하면서 꽃향기를 맡고 역사를 느끼며 건강도 지키면 어떨까요?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의 수도인 한양(漢陽)은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京城)으로 이름을 바뀌었다가 현재는 서울이지요. 한양도성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헐고 철거, 파괴되어 도시화되면서 없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동대문 주변, 남대문 주변, 특히 돈의문(서대문)은 없어졌습니다.
따뜻한 봄볕에 한양도성(서울 성곽)을 순성(巡城) 하면서 꽃향기를 맡고 역사를 느끼며 건강도 지키면 어떨까요? 1392년에 태조 이성계가 세운 조선의 수도인 한양(漢陽)은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京城)으로 이름을 바뀌었다가 현재는 서울이지요. 한양도성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많이 헐고 철거, 파괴되어 도시화되면서 없어진 부분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동대문 주변, 남대문 주변, 특히 돈의문(서대문)은 없어졌습니다.
 
 
 
외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만든 한양 도성을 돌아보고자 봄의 절정기에는 방문객이 많습니다. 2016년 한양 도성을 찾은 사람이 1,023만명으로 평일 평균 2.4만명, 주말은 3.7만명이 찾았답니다.
 
서울 성곽(城郭)이란 명칭은 서울(한양)을 둘러싼 내4산[낙산(125m,타락산, 동쪽), 남산(262m,목멱산, 남쪽), 인왕산(338m,서쪽), 백악산(342m, 북악산, 북쪽)]이 4대문(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숙정문)과 4소문(혜화문, 광희문, 소의문, 창의문)으로 연결되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인기 비결은 빼어난 경관과 구간마다 산재한 스토리와 문화재 등 역사적 가치가 높아 탐방객이 많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야심 차게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했지만, 아쉽게도 등재 기준을 미달하여 한양 도성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무산되었습니다. 철저히 보완, 준비하여 약속한 2020년 등재하시기 바랍니다!
 
\na-;▼한양도성은 4개(산, 대문, 소문)로 연결됩니다.
 
 
※ 외4산 : 용마산, 관악산, 덕양산(행주산성), 북한산(삼각산)
 
▣한양 도성 걷기
 
 
 
\na-;▼구간별 거리와 걷기 소요시간
​해설사와 동행하시면 더욱 알찹니다.
 
\na-;▼창의문(자하문, 북소문)
 
 
\na-;▼복원한 남산 구간
 
 
 
 
 
 
 
 
 
 
 
 
 
 
▶순방 안내
☞ 방어용 시설이라 급경사 구간이 있어 걷기에 편한 신발(운동화,등산화), 배낭, 생수와 간식 준비.
☞ 백악 구간은 신분증 지참(10시 ~ 17시 또는 18시) 및 사진 촬영 금지 구간 유의
☞ 백악 구간은 월요일 휴무
☞ 읽고 가면 더 재미있는 순성 스토리
서울 KYC 도성 길라잡이 (해설: 매주 일요일 1시 30분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숭례문 출발)
 
▣ 한양 도성 개요
 
▶조선시대 순성
한양도성을 도는 순성은 조선시대에 유행했는데 유본예(1777~1842)가 쓴 한경지략엔 "봄과 여름철 성 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 경치를 구경한다. 그러자면 하루해가 걸린다"고 소개돼 있지요. 과거를 앞둔 유생들도 급제를 기원하며 성곽을 따라 걸었습니다.
 
▶성곽 축성
 
총 길이 18.627㎞의 한양도성은 514년간(1396~1910년) 도성 역할을 했습니다. 태조 이성계가 1392년 8월 한양으로 도읍을 옮길 것을 명한 뒤 1394년에 한양에 행차했지만 성곽은 커녕 궁궐조차 채 지어지지 않아 일행은 들판에서 유숙했으며 1395년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1396년(태조 5) 완성된 한양도성은 내4산(북악, 낙산, 남산, 인왕산) 능선을 연결해서 만든 방어용 시설로 세종과 숙종 때 개축되고 영조, 정조, 순조, 고종 연간에도 고쳐졌습니다.
 
태조 때 메주 정도 크기의 자연석이 후반기 숙종(1704) 때 더 커졌는데 이는 화포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하려고 한 것입니다.
 
 
 
한양도성 공사 기록에 의하면 처음 도성 조성한 1396년(태조 5) 1/9 ~ 2/28(49일간)에 평안, 함경, 강원, 경상, 전라 일대 백성 11.8만명이 동원하여 평지는 토성, 산지는 산성으로 만들었습니다.
 
1422년(세종 4) 정비 땐 훨씬 많은 32.2만명이 투입됐고 공사 도중 872명이 사망했지요. 백성들의 피와 땀이 모아 축성하였으며 부실공사를 막으려 성곽 돌에 구간별로 누가, 언제 축조했는지 등의 기록을 남겨 이미 공사실명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한양 도성은 병자호란 이후 청과 조약(신축, 개축 및 보수 금지)에 따라 제대로 유지, 보수하지 못했으나 숙종 때 개축하였습니다.
 
\na-;▼대동여지도(김정호)의 한양 도성의 중요 포인트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 조선 신궁 건립, 전차 부설과 무분별한 도시화 속에서 도로, 건물에 밀려 헐리고, 철거 및 파괴되었습니다.
 
▣ 세계문화유산 등재 무산
2000년 이후 역사적 관점의 복원 논의가 이뤄지고 2012년부터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보존 계획이 수립돼 보존 작업이 진행됐습니다다. 특히 서울시는 한양도성도감을 통해 지난 5년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였습니다.
 
2016년 11월 수도 경계의 지속적 관리 전통 설명 미흡, 지형과 조화를 이루는 도시구조물에 대한 유형적 특징 불분명 등을 문제 삼아 신청서 보완을 요구받았고. 2017년 2월에도 설명이 부적합하고 탁월함이나 역사적 중요성이 부족하다고 재차 지적했지만 보완이 미흡했습니다.
 
올해 7월 개최되는 제41차 세계유산위원회(폴란드, 7/2~12)에서 등재되는 것을 목표로 추진해오던 한양도성이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ICOMOS)로부터 등재불가(Not to inscribe) 심사 결과를 받게 됨에 따라 올해는 등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어, 등재 신청을 철회하였습니다.
 
진정성과 완전성, 보존 관리 계획 등은 충분한 요건을 갖추었으나, 세계유산인 타 도시성벽과의 비교연구에서 한양도성이 갖는 탁월성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는 등 세계유산 등재 기준에 따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전체적으로 충족하지 못했다는 결과입니다.
 
165개국이 1,052건을 세계유산에 올렸는데 중국 49개, 프랑스 39개, 영국 29개, 미국 21개, 일본 18개 등인데 한국은 12개입니다.
 
철회했다가 재신청해 등재에 성공한 사례가 있는데 러시아 레나필라스 자연공원,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로 향하는 관문 제다, 프랑스 쇼베-퐁다르크 동굴이 그런 경우입니다. 따라서 면밀히 보완, 준비해 등재를 다시 추진하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na-;출처: 매경,문화재청, 민족문화대백과,C3
 
한양도성 구간별 스토리 및 정보
 
 
 
 
 
 
★ 광희문에서 숭례문 구간 (1 편, 2편, 3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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