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S 여러분! 반갑습니다.    [로그인]
키워드 :
지식놀이터 :: 김정희(金正喜)
김정희
자 료 실
지식지도
원문/전문
시민 참여 콘텐츠
관련 동영상
2023년 12월
2023년 12월 30일
궁인창의 독서여행
궁인창의 독서여행
2023년 12월 28일
궁인창의 독서여행
김정희 쓴 춘서첩 보고 스승 자처
궁인창의 독서여행
2023년 12월 26일
궁인창의 독서여행
2023년 5월
2023년 5월 8일
문화재·역사·전
2020년 7월
2020년 7월 1일
고재완의 여행을 떠나요
2019년 10월
2019년 10월 10일
제주특별자치도 보도자료
2019년 10월 2일
제주특별자치도 보도자료
2019년 8월
2019년 8월 23일
제주특별자치도 보도자료
2019년 7월
2019년 7월 12일
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강의
2018년 12월
2018년 12월 12일
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강의
2018년 11월
2018년 11월 27일
김영환 교수의 사마천 사기 강의
2015년 9월
2015년 9월 3일
문화재·역사·전
about 김정희


내서재
추천 : 0
김정희(金正喜) 박제가(朴齊家)
최근 3개월 조회수 : 2 (5 등급)
【문화】
(게재일: 2023.12.28. (최종: 2023.12.28. 11:00)) 
◈ 김정희 쓴 춘서첩 보고 스승 자처
추사와 박제가 - 1
채제공을 따라 연경을 다녀와 신문물에 크게 눈을 뜬 박제가(1750~1805)는 42살 때인 1791년 입춘 무렵에 스승 채제공을 모시고 통의동 김노영의 집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대문에 글을 붙이는 총기가 있는 소년을 보았다. 영의정 번암 채제공과 박제가는 어린 김정희가 쓴 글씨 춘서첩(春書帖)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추사와 박제가-1
 
 
채제공을 따라 연경을 다녀와 신문물에 크게 눈을 뜬 박제가(1750~1805)는 42살 때인 1791년 입춘 무렵에 스승 채제공을 모시고 통의동 김노영의 집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대문에 글을 붙이는 총기가 있는 소년을 보았다. 영의정 번암 채제공과 박제가는 어린 김정희가 쓴 글씨 춘서첩(春書帖)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박제가는 김노영(養父)에게 “소년을 제가 가르쳐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추사가 열 살이 되었을 무렵 박제가는 부여 현감으로 갔다가 파직되어 한양으로 돌아온다. 이후 46세의 스승 박제가는 10살의 제자와 해와 달처럼 많은 시간을 지혜를 나누고 지식을 공유하는 교학상장을 하며 지낸다.
 
박제가는 1790년에 연경에 갔을 때 화가 나빙(1733~1799)을 만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우정을 쌓았다. 나빙은 양주팔괴의 한 사람으로 호는 양봉(兩峯)이다. 금농(金農)의 제자인 나빙은 스승의 사후 작품을 모아 책을 펴냈다. 나빙의 가족은 모두 화가로 명성이 높았다. 나빙이 연경에서 만나 박제가에게 준 그림은 현재 과천 추사박물관에서 볼 수가 있다. 추사는 어려서부터 한학 및 금석문에 관심이 많았다. 추사는 24살 때인 1809년 10월 28일 친부 김노경 동지사(冬至使) 겸 사은부사(謝恩副使)를 따라 연경(燕京)에 갔다가 5개월을 머물면서 견문을 넓혀나갔다. 추사는 연경에 도착하여 스승 박제가가 연경에서 만나 뵌 적이 있는 조강(祖江)를 수소문해 인사를 드렸다. 조강은 박제가의 제자인 김정희를 따듯하게 맞이하고 학자 서송(徐松)을 소개했다. 또한, 서송은 청의 대학자인 완원(阮元, 1764~1849)과 옹방강을 소개했다.
 
 
추사 초상화(허련(許憐) 작, 37×26cm)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추사는 연경으로 가기 전부터 청나라 문사들과의 교류를 간절히 생각했다. 추사가 지은 시를 통해 연경에서의 기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槪然起別想 四海結知己
如得契心人 可以爲一死
日下多名士 艶羨不自己。
 
갑자기 가슴 벅찬 생각이 일어나네요
드넓은 세상에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싶네요
만약 그런 진정한 벗을 만나게 된다면
가히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늘 아래에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여
부럽고 또 부럽습니다. (궁인창 번역)
 
 
추사는 서송의 안내로 완원이 머무는 자택을 찾았다. 완원은 당대 최고의 고증실학의 대가로, 호가 운대(芸臺)이다. 47세의 완원은 친구 박제가의 제자를 만나 아주 기쁘게 생각하며 ‘눈보다 희다’는 용단설송(龍團勝雪)이란 귀한 차를 대접한다. 이 차는 푸젠성에서 생산되는 38개 차의 하나로 송나라 때 최고의 차로 인정받았다. 추사는 완원과 차를 마시며 금석문을 감상하면서 오랜 대화를 하였다. 추사는 조선에 와서도 끊임없이 서신을 교환하며, 연경에서 차를 마시던 때를 추억하며 ‘승설도인(勝雪道人)’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1810년 1월(순조 10년)에 옹방강(1733~1818)을 만나 고증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옹방강은 조선에서 온 젊은 추사의 문장과 학식을 두루 살펴보고 “經術文章海東第一”이라고 말했다. 추사는 옹수곤(翁樹崐, 1786~1815) 섭지선(葉志詵, 1779~1863), 주학년, 이정원 등 많은 학자를 만났다. 연경을 다녀온 추사 김정희는 30세에 정약용의 아들 정학연의 소개로 수락산 학림암에서 초의선사를 만나 금란지교(金蘭之交)를 맺었다. 31살 때에는 560m인 북한산 비봉에 올라 진흥왕순수비를 고증하였다.
 
 
『金石過眼錄』 (사진: 서울대 규장각)
 
 
불교와도 인연이 깊어 1818년 〈가야산 해인사 중건 상량문〉을 짓고 써주었다. 초의선사는 추사가 제주도 대정현에 9년간 유배되었을 때 손수 법제(法製)한 녹차를 허련(許憐)을 통해 세 차례나 보내고, 5차례나 배를 타고 추사를 만나러 갔다. 초의선사는 42년간이나 친교를 맺었던 친구 추사가 과천에서 10월 10일 유명을 달리하자, 추사 영전에 〈阮堂金公祭文〉을 지어 올리고 해남 대흥사 일지암에 돌아와 친구를 그리워하다 1866년 8월 2일(음력) 법랍 66세, 향년 81세로 열반하였다.
 
추사는 많은 책을 저술했지만. 자신의 책들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태워 버렸다. 금석학 저술로는 진흥왕순수비를 고증한 서울대 규장각에서 보관중인 『金石過眼錄』 과 2007년 박철상 박사가 발굴된 『海東碑攷』가 남아 있다. (계속)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생활문화아카데미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 커뮤니티 (참여∙의견)
내메모
페이스북 공유하기 트위터 공유하기
심화항목(D)
▣ 참조정보
백과 참조
조선 실학
 
부 : 김노경
 
스승 : 박제가
제자 : 허련, 조희룡
목록 참조
 
외부 참조
 
©2021 General Libraries 최종 수정일: 2021년 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