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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國樂) 김소희(金素姬) # 유일무일 # 이매방 # 한뫼국악예술단
최근 3개월 조회수 : 2 (5 등급)
【문화】
(게재일: 2023.10.19. (최종: 2023.11.03. 22:47)) 
◈ 과천 K-전통춤의 향연 (1)
한뫼국악예술단 창단 25주년 기념 공연 <유일무일(唯一舞逸>을 2023년 10월 14일(토) 오후 5시 과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 보았다. 과천시는 장수왕 때 율목군(栗木郡)이었고, 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757) 율진(栗津), 고려왕조 태조 23년(940)에 과주(果州)로 불리었다.
한뫼국악예술단 창단 25주년 기념 공연 <유일무일(唯一舞逸>을 2023년 10월 14일(토) 오후 5시 과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 보았다. 과천시는 장수왕 때 율목군(栗木郡)이었고, 신라 제35대 경덕왕 16년(757) 율진(栗津), 고려왕조 태조 23년(940)에 과주(果州)로 불리었다. 조선왕조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는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수릉(壽陵, 살아있을 때 미리 정하는 릉) 자리로 과주를 원했다.
 
1395년 3월 4일 수릉을 정하려고 신하들과 함께 과주를 방문하고, 돌아갈 때 두모포(豆毛浦, 서울 옥수동) 선상(船上)에서 정도전이 “하늘이 성덕(聖德)을 도와 나라를 세웠으매, 신들이 후한 은총을 입고 항상 천만세 향수(享壽)하기를 바라고 있사온데 오늘날 능 자리를 물색하오니, 신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하며 흐느껴 눈물을 흘렸다. 이에 태조 임금은 “편안한 날에 미리 정하려고 하는 것인데 어찌하여 우는가?”말하였다.
 
조선왕조 태종 13년(1413)에 각 고을에 이름을 정비할 때 주(州)가 붙은 고을 가운데 도호부(都護府: 인구가 1000호 이상) 이하는 산(山) 또는 천(川)을 붙이는 관례에 따라 과천(果川)이 되었다. 별호(別號)는 부림(富林)이고 진산(鎭山)은 관악(冠岳)이다.
 
 
유일무일(唯一舞逸) 공연
 
 
옛 고전을 보면 춤이 두 종류가 있다. 성균관 문묘일무(文廟佾舞)는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구분한다. 일무(逸舞)의 형식으로 천자(天子)는 팔일(八佾) 즉 64명이 8열로 줄지어 서서 춤을 추고, 제후는 六佾(36명), 대부는 四佾(16명), 사(士, 선비)는 二佾(4명)의 형식을 갖추었다. 이것은 예(禮)의 본질적 특성 가운데 질서를 세우는 예자위이(禮者爲異)가 춤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문무(文舞)는 춤을 출 때 오른손에 꿩 깃털 3개를 나무줄기에 꽂고, 왼손에는 피리 1개를 들고 춤을 추었다. 무무(武舞)는 왼손에 방패를 잡고 오른손에 창을 잡고 춤을 추었다. 이런 춤 동작에는 공격과 파괴, 경계를 상징하는 동작이 구성되어 있다. 조선은 천자의 나라가 아니어서 과거에는 팔일무(八佾舞)를 춤추지 못했다.
 
그러나 1897년(광무 1) 조선왕조 고종(高宗)께서 국호를 조선(朝鮮)에서 대한(大韓)으로 바꾸고, 왕의 지위를 황제(皇帝)로 올렸다. 궁궐 앞에 환구단(圜丘壇)을 세우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 이후부터 공자를 모시는 성균관 석전대제(釋尊大祭)에서는 팔일무(八佾舞)를 연행하게 되었다. 성균관의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4聖, 10哲, 宋朝 6賢 등 21위(位)를 봉안하고, 동무(東廡)·서무(西廡)에는 한국 명현(明賢) 18위位와 중국 유현(儒賢) 94위 총 112위를 봉안하고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올렸다.
 
<유일무일(唯一舞逸> 공연의 첫 무대는 <태평성대>인데 프로그램에 출연진 사진이 없어 조금 궁금했다. 어둠 속에서 공연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동작이 조금 어색해서 나는 순간적으로 연세가 많은 어머니들이라고 생각했다. 이는 놀랍게도 과천 시민 중에서 춤을 배운 어머니들이 무대에 직접 출연한 것이다. 그런데 춤을 얼마나 많이 연습했는지 실력이 대단했다. 이어서 <입춤>을 추었는데 정말 춤이 좋았다. <태평성대>와 <입춤>은 춤 동작이 생각보다 발놀림이 어려운데 정말 잘 추어 큰 감동을 받았다.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이 반복되기 때문에 어머니들은 무릎도 안 좋은데 연습하시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놀랍도록 춤을 잘 춰 공연이 끝나 들어갈 때 관객으로부터 정말 큰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태평성대(출연:김춘자, 함영호, 한덕순), 입춤(출연:김경화, 김영숙, 박효진, 김현정, 백은진)바로 이어진 무대에서 춤꾼 오은명 단장이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이매방류 승무를 추었다. 무대에 선 오은명 명인은 검은색 가사 장삼을 입고 엎드려 있었다. 이제껏 많은 승무 공연을 보았지만 오은명 〈승무〉는 기교보다는 선(線)이 굵고 독특한 멋이 있었다. 말로 형형(熒熒) 할 수 없는 필생에 기록될 춤을 추었다. 명인은 <승무>를 장중하고 무게가 있게 잘 춰, 필자는 춤을 추는 명인이 우봉 이매방(1925~2015) 스승님께 춤을 바친다고 생각했다.
 
 
우봉 이매방 (사진: 불교신문)
 
 
오은명 명인은 60년 동안 한길을 걸었다. 한평생을 춤을 추며 살았다. 그동안 얼마나 즐겁고 또한 고단했을까? 필자는 1976년에 이매방의 <승무>를 본 적이 있다. 당시 이매방 선생은 무대에서 춤을 출 때 입을 옷을 직접 지었다. 바느질하며 제자의 무대복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직접 만든 한복을 입고 무대에서 춤을 추셨다. 제자들에게 춤을 출 때는 항상 고운 선(線)과 자태를 강조하여 말씀하셨다. 이매방의 제자인 오은명의 춤 동작과 진정성이 깃들인 장중함이 깃든 무대를 보면서 오은명 〈승무〉가 눈에 확 들어왔다.
 
우봉 이매방 명인과의 인연은 1976년 필자가 22살 대학생 때 명창 만정(晩汀) 김소희(金素姬, 1917~1995) 선생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비가 많이 오는 여름날 정상경 선배와 함께 김소희 선생님을 뵈러 종로 3가를 지나 창덕궁을 바라보고,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 집을 찾느라 문패를 두리번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골목에 할머니 한 분이 하늘색 치마를 입은 채 쭈그리고 앉아서 혼자 하수구를 고치고 있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판소리 명창 선생님의 자택을 찾는데 지번이 다 똑같고 해서 한 번 여쭈어봅니다.” 하고 공손하게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어쩐 일로 나를 찾으시오?” 하시면서 바로 일어나 한옥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라고 하였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선생님께서는 다과를 내주시며 자리에 마주 앉았다.
 
 
만정(晩汀) 김소희(金素姬)
 
 
필자는 가지고 간 계획서를 선생님께 올리고 찾아온 목적을 설명했다. “동국대 가을 종교제 행사에 전교생에게 우리 판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명창 김소희 선생님은 “나는 이미 무대에 많이 올랐다. 대신 우리 제자들을 데려가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러고는 무대에 설 사람을 한 명씩 알려주고, 제자의 개성을 말씀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어 받아 적고, 말씀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소희 선생님은 판소리에 제자 신영희, 안숙선. 고수에 김명환, 승무에는 동생인 이매방 선생을 추천했다. 명창 김소희 선생님은 문 바깥까지 나와 배웅을 하면서 돈화문의 판소리연구소에 가서 동생인 이매방을 당장 만나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후 우봉 이매방 선생님을 자주 찾아뵙고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0월 동국대 종교제 행사에는 판소리 신영희, 안숙선. 고수 김명환, 승무 이매방, 살풀이 임이조, 전통 승무 청량사 동희 스님 등 많은 국악인을 초청하여 동국대 대강당에서 성황리에 마쳤다.
 
우봉 이매방 선생은 15살인 1941년 목포에서 처음 승무를 추었다. 우봉 선생은 중국에 있을 때 메이란팡(梅蘭芳, 1894~1961)의 경극(京劇) 공연을 보고 매료되어 본명 이규태를 사용하지 않고 매방을 자신의 예명(藝名)으로 쓰기 시작하고, 메이란팡 제자에게 춤 수업을 받았다. 우봉은 무대 복장, 손가락 동작, 발 디듬 하나에도 멋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우봉은 승무의 일인자로 선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우봉 선생은 한국을 대표하여 외국 공연에도 자주 해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 훈장을 받았다. 2016년 1월에 하늘이 내린 춤꾼 《이매방 평전》이 출간되었다.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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