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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의 독립운동가 김규식,김순애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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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보훈처(國家報勳處) 김규식(金奎植) # 김순애
최근 3개월 조회수 : 0 (0 등급)
(게재일: 2019.04.30. (최종: 2019.11.05. 18:31)) 
◈ 2019년 5월의 독립운동가 김규식,김순애 선생 선정
○ 김규식 선생은 1881년 1월 아버지 김지성(金智性)과 어머니 경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97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아노크 대학(Roanoke College)에서 수학하고,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은 후 1904년 귀국하였다.【공훈관리과 - 이영자 (044-202-5771)】
□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김규식(1881.1.29 ~1950.12.10.) 선생과 김순애 선생(1889.5.12~1976.5.17) 부부를 2019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고 밝혔다.
 
○ 김규식 선생은 1881년 1월 아버지 김지성(金智性)과 어머니 경주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897년 미국 유학을 떠나 로아노크 대학(Roanoke College)에서 수학하고, 프린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를 받은 후 1904년 귀국하였다.
 
○ 1906년 대한자강회 회원으로 여러 강연을 통한 구국운동을 전개했으며 1913년 11월에 중국 상하이로 망명, 신규식과 함께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고 한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 1919년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파견되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총장 자격으로 5월 12일에 한국독립에 관한 청원서와 한국독립 항고서(抗告書)를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하였고 ??한국독립과 평화??라는 책자를 비롯해 다수의 독립운동 홍보문서를 작성하고 각국 대표들 및 언론인들에게 배포해 한국인의 독립의 열망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렸다.
 
○ 1921년 임시정부 내에 독립운동 노선으로 갈등이 야기되자, 잠시 임시정부를 떠났다가 1923년 1월 국민대표회의에서 국민위원과 외무위원을 맡았다.
 
○ 1933년 1월 미국을 방문해 한국대일전선통일동맹운동을 전개하고 수천달러를 모금해 돌아왔으며, 1935년 7월 조선민족혁명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사천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힘썼다.
 
○ 1942년 10월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보선되었고 1944년 부주석에 취임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독립당을 대표하는 김구 주석과 민족혁명당을 대표하는 김규식 부주석 체제의 양대 정당을 중심으로 독립운동 세력이 연대와 협력을 이루어가며 조국 광복을 이루어내었다.
 
○ 선생은 1950년 북한군에 납치되어 그 해 12월 10일 평안북도 만포진 부근 별오동에서 70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 김순애 선생은 1889년 5월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서 출생하였으며 1909년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19년 김규식 선생과 결혼했다.
 
○ 선생은 1919년 7월 이화숙(李華淑)·이선실(李善實)·강천복(姜千福)·박인선(朴仁善)·오의순(吳義順) 등과 함께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와 지원’을 목적으로 상해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 임시정부가 자금난으로 곤경을 겪게 되자, 1926년 7월 임시정부경제후원회(臨時政府經濟後援會)에 참여하여 임시정부의 재정 지원 활동을 하였다. 또한 간호원양성소를 설립, 다수의 간호원을 양성 배출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독립전쟁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 1930년 8월 상해에서 김윤경(金允經)·박영봉(朴英峰)·연충효(延忠孝) 등과 함께 한인여자청년동맹(韓人女子靑年同盟)을 결성하여 한국독립당과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측면 지원하였다.
 
○ 1943년 2월 23일 충칭의 각계 각파 부인 50여명과 한국애국부인회 재건대회를 개최하고 조직을 재출범시켰으며 주석으로 추대되었다.
 
○ 선생은 1945년 11월 환국하였으며 1946년부터 1962년까지 모교인 정신여자중·고등학교 재단 이사장과 이사 등으로 활약하면서 여성교육에 공헌하였다. 선생은 1976년 5월 17일 87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 정부에서는 두분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김규식 선생에게는 198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김순애 선생에게는 1977년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첨부 :
190430 2019년 5월의 독립운동가 보도자료(김규식,김순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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