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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 부도 및 선각왕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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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懶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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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일: 2016.06.24. (최종: 2019.11.21. 19:07)) 
◈ 나옹선사 부도 및 선각왕사비
어제의 무학대사에 이어 무학데사의 스승인 오늘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로 유명한 나옹선사에 알아봅니다.
어제의 무학대사에 이어 무학데사의 스승인 오늘은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네"로 유명한 나옹선사에 알아봅니다.
 
 
 
 
\na-;▼나옹선사(懶翁禪師,1320~1376) 개요
나옹의 성은 아(牙)씨, 속명은 원혜(元惠), 휘는 혜근(慧勤)이다. 나옹과 강월헌(江月軒)은 호이고, 시호는 선각(先覺)이다. 1340년(충혜왕 1) 출가한 뒤 회암사에서 수도하며 깨달음을 얻고, 1346년(충목왕 3)부터 원의 법원사(法源寺)에서 지공에게 수학했다. 이후 15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려로 돌아와 주요 사찰의 주지를 역임하고 회암사의 주지가 되어 중창 불사를 단행했다. 나옹은 전통적인 간화선(看話禪)을 바탕으로 임제종(臨濟宗)의 선풍(禪風)을 도입해 고려 말 침체된 불교계를 일신시키려고 노력했다.
 
\na-;▼문경 대승사 묘적암 (1803년) 나옹화상 영정
 
 
▼지공선사 부도에서 올라가는 계단
 
 
\na-;▼나옹선사 부도 및 석등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50호.
 
②보물 제387호.
③높이 3.06m, 너비 1.6m.
④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비의 형식은 당비(唐碑)의 형식을 닮은 복고풍의 것으로 개석이 없다.
⑤그런데 1997년 보호각이 불에 타면서 비신이 파손되어 보존 처리가 이루어졌고, 경기도 박물관을 거쳐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비신을 보관하고 있다.
⑥비가 있었던 원래의 자리에는 비 받침돌인 귀부가 남아 있으며, 원형을 본떠서 만든 비가 세워져 있다.
⑦이수(螭首)를 별도로 만들지 않고 비신 상부에 쌍룡을 깊게 조각하고 그 중앙에 제액을 만들어 ‘禪覺王師之碑(선각왕사지비)’ 6자를 새겼다. 자경은 2∼2.4㎝, 전액의 자경은 11.2㎝이다. 비문은 이색(李穡)이 짓고, 권중화(權仲和)가 예서로 쓰고 전액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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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공민왕때의 승려.
 
가사 서왕가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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