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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무(名舞)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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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보도자료
about 태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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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선영류 태평무 # 경기수건춤 # 과천무동답교놀이 # 양승미 # 오은명 # 원미자 # 이미숙 # 진쇠춤 # 진주교방굿거리춤 # 태평무 # 한국무용 # 한뫼국악예술단 # 한성준 # 홍진희
최근 3개월 조회수 : 4 (5 등급)
【문화】
(게재일: 2023.10.21. (최종: 2023.11.03. 22:52)) 
◈ 한국의 명무(名舞) 소개
한뫼국악예술단 단장의 오은명 춤꾼은 1988년 전주대사습 무용 부문에서 장원을 했다. 현재 한국 전통춤의 명무이자 경기도 과천무동답교놀이 상쇄 예능보유자이다.
한뫼국악예술단 단장의 오은명 춤꾼은 1988년 전주대사습 무용 부문에서 장원을 했다. 현재 한국 전통춤의 명무이자 경기도 과천무동답교놀이 상쇄 예능보유자이다.
 
 
경기도 과천무동답교놀이 상쇄 –오은명 예능보유자
 
 
오은명 단장은 1997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국악협회 과천시지부장을 맡아 국악의 대중화와 전통예술 보급에 노력했다. 추사 선생의 사후 150주년을 기념하여 2014년 10월 8일 <추사> 공연과 <과천 나무꾼 놀이> 등 많은 창작 공연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오은명 단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보훈무용예술협회 예술대상을 수상했다.
 
 
추사-날이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명무(名舞)들이 춤을 추는 전통춤 공연에서는 무대 전환을 위한 짧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 순간에 사회자인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 김승국 원장님이 등장하여 <유일무일(唯一舞逸)> 프로그램에 대하여 친절한 해설을 하였다. 또한 귀빈으로 참석한 신계용 과천시장과 경기도의회 김현석 의원과 과천을 문화도시로 바꾸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최종수 성균관장, 이정달 과천문화원장을 소개하고 퇴장했다.
 
<경기수건춤>은 굿거리장단을 반주로 맨손으로 춤을 추다가 엎드린 동작에서 천천히 왼 소매에서 작은 수건을 꺼내 들고 일어나 춤을 추는데 얼굴 표정이 아름답고 경쾌한 국악 가락에 손동작이 섬세하며, 치마를 들치며 아장아장 걷는 발걸음이 단아하여 어깨춤이 들썩이는 매력이 있는 신나는 춤이다. 특히 절제미와 단아하고 깔끔한 춤사위가 이어져 흥이 났다.
 
 
이미숙 "경기수건춤"
 
 
의정부시 무용단의 <경기수건춤>은 조선왕조 양주관아 관기들의 기본 학습 춤으로 故 한성준(韓成俊, 1875~1942) 선생이 무대화하고, 강선영 명인이 계승해 이미숙 춤꾼으로 이어진 오래된 역사성과 원형적 요소를 담보하고 있는 춤으로 한국 고전 무용의 가간 기본적인 춤사위를 담고 있다. 이 춤은 2020년 2월 10일에 의정부시 향토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다.
 
춤을 오래 보고 싶은데 멋진 춤이 금방 끝났다. <경기수건춤> 공연이 더 보고 싶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미숙 보유자의 유튜브 동영상과 무대에 출연한 서울시립단원 김지은 선생이 2023년 6월 3일 한국문화재단에서 춘 〈경기수건춤〉을 다시 보았다. (출연:이미숙 예능보유자, 박수진, 고은이, 김지은, 박채원, 이희준)
 
홍진희(국가무형문화재 강선영류 태평무 이수자) 무용가가 춘 <태평무>는 故 한성준 선생이 경기지역 무무(巫舞)를 재구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 고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예능보유자인 김천흥(金天興), 한영숙, 강선영 등 여러 사람이 고증하였다. 태평무 춤의 내용은 왕과 왕비가 나라의 태평성대를 축원하는 춤이라고 한다.
 
한성준 선생은 뛰어난 춤꾼이자 명고수로 춤, 북, 줄타기, 땅재주, 장단을 잘해 조선왕조 말기 대원군과 고종 앞에서 춤을 춰 '참봉'이란 관직을 받았다. 참봉은 비록 종9품의 벼슬로 말단직의 품관이지만 양반 신분을 유지할 수 있고, 족보에 기재되며, 비석에 직함을 새길 수 있다. 그는 평양 관찰사 생일날 '부벽루 놀음'에 참가하여 기생들과 춤을 추어 비단 70필을 받은 적이 있지만 항상 살림이 빈한(貧寒)했다. 한성준은 17세에 결혼했으나 아내가 그해 돌림병으로 죽자 바로 수덕사로 입산하여 염불도 배우고 춤과 장단을 연마하며 아픈 세월을 두들겼다.
 
 
한국무용의 아버지 한성준
 
 
일제 강점기 시절 최승희(崔承喜, 1911~1969)가 한성준을 찾아와 14일간 조선 춤 40여 가지를 배웠다. 한성준은 조선의 춤과 민족혼을 최승희에게 불어넣어 주고, 성심껏 춤을 가르쳐 최승희는 훗날 세계적인 무용수로 성장했다. 최승희는 미국 3개월 순화공연과 뉴욕, 독일, 파리, 중남미의 7개국 브라질, 페루, 에콰도르, 멕시코 등 전 세계를 돌며 150회 공연을 이어갔다. 최승희의 보살춤, 장고춤, 검무, 초립동 등 여러 작품을 본 사람 중에는 피카소, 채플린, 마티스 등 명사가 많았다. 그들은 모두 조선 춤에 매료가 되었다.
 
김재원 초대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1936년 2월 6일 2,000석이 넘는 벨기에 브뤼셀 '팔레 데 보자르'극장에서 조선인 최승희 춤 공연을 보았다고 회고했다.
 
 
홍진희 (강선영류 태평무 이수자) "태평무"
 
 
한성준은 1930년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여 제자를 양성하고, 우리나라 춤 100여 개를 예술적으로 집대성한 인물이다. 한성준은 손녀 한영숙과 제자 강선영에게 태평무를 영구적으로 보존할 것을 부탁했다. 유언으로 "내가 죽으면 수의를 입히지 말고 태평무 의상을 입혀 달라."고 말했다. 한성준은 1998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이달의 문화 인물로 선정되어 국립국악원 예약당에서 기념공연과 학술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홍진희(강선영류 태평무 이수자) 명인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문화학교에서 교수로 있으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태평무는 무당이 왕비를 대역하여 국가의 풍년과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춤으로 경기도당굿의 터버림 장단에 맞추어 발디딤과 손놀림이 신명으로 이끄는 춤이다. 태평무 이수자는 광명시 평생학습원의 주부들이 주축이 된 춤꾼 아줌마들의 구름무용단을 10년간 지도했다. 태평무 춤에서 내관으로 나와 옷을 정중하게 받아 가는 역을 한 이유담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예술원 무용과 예술전문사에 재학 중인 학생이다. (출연:홍진희, 이유담)
 
양승미 명무의 <진쇠춤>은 꽹과리, 징, 장구, 북 등의 악기로 구성된 농악놀이의 형식 중 꽹과리(진쇠)라는 악기를 독립적으로 끄집어내어 발놀림, 팔놀림과 너울사위, 저정거리기 등을 춤사위로 접목해 느림과 빠름을 굿거리 동살풀이 휘모리장단에 맞춰 흥겹게 신명 나는 춤이다. 무대에 나선 명무의 복장이 아름답고 화려해 눈이 행복했다. 그런데 정제된 춤사위가 더 일품이었다.
 
양승미 명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무대에 나타나 황동 빛이 빛나는 꽹과리를 치면서 정갈한 무복을 입고 넓은 무대를 돌아다닐 때 지하 1층에서 보았던 과천스케이트장의 소녀 선수들의 빠르고 현란한 몸동작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 춤의 춤사위는 색조와 선이 어우러져 보고만 있어도 즐거웠다. 꽹과리채의 형형색색의 술이 조명을 받아 너무나 고았다.
 
 
양승미 "진쇠춤"
 
 
‘진 쇠’라는 말은 쇠 중에서도 가장 소리가 잘 나는 쇠, 즉 '참 쇠'를 뜻한다. 구전에 의하면 나라에 큰 경사가 있거나, 풍년이 들면 임금님이 궁궐에 원님들을 초대하여 향연을 베풀고 만조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님들이 쇠를 들고 신나게 춤을 추어 유래되었다가 전해온다. 이것이 훗날 경기도도당굿에 들어가고, 재인청 광대들에 의해서 민속춤으로 남게 되었다. 재인청은 조선시대 1784년에 설치되어 1920년까지 130년을 존속하며 예인(藝人)을 양성한 교육기관이다.
 
우리 춤의 매력이 화려함과 고운 선에 있다고 하는 데 양승미 명무의 <진쇠춤>춤은 박력까지 보태 생동감이 흘러넘쳤다. 건강미가 철철 넘치는 신명이 넘치는 만족스러운 춤을 오랜만에 만났다. (출연:양승미, 이영훈, 강윤정)
 
원미자(경남무형문화재 제21호 진주교방굿거리춤 이수자) 명무가 무대에서 선보인 춤은 고려왕조 문종(文宗, 재위기간 1046~1083) 때부터 지금까지 천년 세월을 내려온 전통 민속무로 1997년 경남 무형문화재 제21호 지정되었다. 이 춤은 진주검무 예능 보유자인 故 김수악(1926~2009) 선생이 대가였다. 김수악의 구음(口音)은 "헛간의 도리깨도 춤을 추게 한다."고 할 정도로 구성지고 예술성이 높다고 평가를 받았다. 김수악은 1967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진주검무>의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김수악 선생은 1955년에 진주민속예술학원을 설립하여 일찍부터 후진 양성에 헌신했다.
 
원미자(한양대 공연예술 교수) 선생은 〈진주교방굿거리춤〉를 배우려고 김수악 선생님을 쫓아다녀 마침내 이수자가 되었다. 이 춤은 전통춤의 한과 흥, 멋, 태와 정중동을 고루 갖춘 환상적인 무대로 차분하고 섬세하고 애절한 느낌을 주며 춤을 보면 저절로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가게 되는 매력이 넘치는 신명 나는 춤이다.
 
 
원미자 "진주교방굿거리춤"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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