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동해왕 이사부 항로 탐사(17) - 미국 영사 조지 클래이튼 포크와 독도 지도-1
조지 클래이튼 포크(George Clayton Foulk, 1856~1893)는 185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마리에타에서 태어나 1876년 미국 메릴랜드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군 장교로 임관했다.
포트 소위는 탁월한 외국어 습득 능력이 있어 여러 차례 극동아시아로 가는 군함에 승선해 독학으로 여러 나라의 언어를 배웠다. 아시아 분함대 소속 앨럿 호를 타고 뉴욕에서 출항하여 대서양과 지중해, 수에즈 운하, 인도양을 거쳐 일본에 도착하여 6년간 근무했다. 그는 1882년 6월 귀국할 때 동료 두 명과 함께 조선을 방문하여 부산과 원산을 구경하고 러시아와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귀국했다.
▲ 조지 클래이튼 포크(사진:위키백과)
중국은 일본과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을 가지고 외교를 펼쳤다. 이 정책에 따라 조선은 1882년 양력 5월 22일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미국은 외교사절 특명 전권대사로 루시어스 푸트를 파견했다.
조선은 답례차 외교사절단 보빙사(報聘使)를 미국에 보내려고 외국을 잘 아는 사람으로 보빙사 전권대신에 민영익, 부대신에 영의정을 지낸 홍순목의 아들 홍영식, 종사관에 서광범이 선정되고 수행원으로는 일본어에 능통한 유길준과 변수, 중국어 통역자 고영철, 현응택, 호위장 최경석을 뽑았다.
보빙사는 1883년 7월 15일 한성부를 출발해 제물포에서 미국의 군함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한 뒤 요코하마로 건너갔다.
▲ 앞줄 첫 번째 로웰과 보빙사(사진:고려대박물관)
주일 미국 공사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여 일본에서 활동하는 명문가 청년 퍼스벌 로런스 로웰(Percival Lawrence Lowell, 1855~1916)을 민영익에게 추천하여 미국 안내 임무를 맡긴다.
로웰은 서기관으로 임명되고 개인 통역사 미야오카 쓰네지와 통역사 중국인 우리탕(吾禮堂, 1843~1912)을 사절단에 보강했다. 우리탕은 프랑스에 7년간 유학하고 스페인에서 청국 서기관으로 근무했다. 1883년 묄렌도르프의 초청으로 인천 해관에서 근무하다 보빙사의 일원이 되었다. 보빙사 사절단 11명은 태평양을 건널 때 여객선 아라빅(Arabic) 호에 승선했다.
▲ 조선 보빙사 사절단 이동 경로(사진:국가유산진흥원)
보빙사 일행은 1883년 9월 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 새크라멘토, 시카고, 워싱턴을 거쳐 9월 18일 뉴욕 5번가의 피프스 애비뉴 호텔에서 채스터 아더(Chester A. Arthur) 미국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조선의 개국 연호가 적힌 국서를 봉정한 후 절을 했다.
▲ 채스터 아더(Chester A. Arthur) 미국 대통령(사진:위키백과)
고종 황제가 미국 대통령에게 국서를 보낸 것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당시에 조선말과 영어를 능통하게 통역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 일본어로 의사를 표명하면 일본어 통역관이 다시 영어로 옮기는 이중 통역을 하였다.
보빙사 사절단은 미 연방정부의 기관과 조폐국, 특허청, 육군사관학교, 해군조선소, 방직공장, 철공소, 우체국, 전신국, 산업박람회장, 병원, 소방서, 제당 공장 등을 방문해 견학했다.
▲ 미국에 도착한 보빙사 사절단(사진:조지 클래이튼 포크)
홍영식은 조선에 돌아와 고종에게 보빙사가 뉴욕에 2개월간 머무는 기간 동안 로웰이 성실하게 국서의 번역과 통역, 보좌, 산업 시찰 업무를 보좌하였다고 보고하자 고종은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일본에 있는 로웰을 조선으로 초청했다.
로웰은 1883년 12월 20일부터 1884년 3월 18일까지 조선에 머물며 윤치호와 함께 조선을 유람하고 후한 대접을 받았다. 이때 노월(魯越)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는 1884년 3월 10일 고종의 사진을 최초로 촬영하여 5개월 후인 8월 27일 윤치호에게 건네 왕에게 전달하였다.
로웰은 미국 보스턴으로 귀국한 후 1886년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Choson, the Land of Morning Calm)』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책에는 25장의 사진과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을 412쪽에 담아 백과사전식으로 소개했다.
▲ 로웰 著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사진:위키백과)
월리엄 그리피스(1843~1928)는 대학 시절에 미국에 유학 온 후쿠이번 출신 무사에게 영어를 가르친 것이 인연이 되어 27살이던 1870년에 일본 후쿠이번 마쓰다이라 요시나가(松平慶永) 번주의 초청으로 일본에 건너와 봉급을 받고 집과 말을 받았다.
그리피스는 도쿄로 건너가 카이세키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며 4년간 머물면서 일본을 이해하려고 조선의 자료들을 수집하며 공부했다. 그는 1882년 『은자의 나라, 조선(Corea, the Hermit Nation)』을 출간했다. 그는 1884년 2월 27일 빅토리아 호텔에서 보빙사 일행 민영익, 서광범, 변수를 만나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로웰은 수학자, 작가, 사업가로 성공하여 애리조나주 플래그스태프에 로웰 천문대를 세웠다. 그는 화성을 관측하며 화성 표면에 인공 수로가 있다가 주장하였다. 로웰이 키운 제자들은 명왕성을 발견하여 로웰에게 증정하고자 이름을 플루토(Pluto)와 천문기호 PL을 로웰의 이름에서 따와 명명했다.
▲ 퍼스벌 로런스 로웰(사진:열화당)
(제18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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