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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역사·전고재완의 지식창고 2024.11.03. 11:15 (2024.11.03. 10:34)

조선의 교육기관(서원.書院)

 
조선 시대 교육기관 중 서당(書堂), 학당(學堂), 향교(鄕校)에 이어 서원(書院)에 대해 알아봅니다.
조선 시대 교육기관 중 서당(書堂), 학당(學堂), 향교(鄕校)에 이어 서원(書院)에 대해 알아봅니다.
 
서원은 국가가 세운 향교와 달리 조선 중기에 선현 제향과 교육을 위해 지방에 세워진 사립(私立) 교육기관이다.
 
 
▼ 서원 발자취
 
① 조선 건국 초기부터 모든 사람들을 유학 이념으로 바꾸고자 하여, 전국에 설립된 향교가 그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렇지만 관학을 육성하여 인재를 양성하기보다 과거를 통해 인재를 뽑아 쓰는 것에 중점을 둔 국가의 교육정책의 향교는 16세기를 지나면서 점차 교육 기능을 상실하고 문묘의 향사를 하는 관학으로 그 면모 만을 유지했다. 그래서 선현 제향(先賢祭享)과 교육을 위해 지방에 생긴 사립 교육기관이 서원이다.
 
② 1542년(중종 37) 경상도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관내 순흥(順興. 현재 영주) 백운동(白雲洞)의 안향(安珦. 1243∼1306) 옛집(舊家)에 사우(祠宇)를 세워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경적(經籍)을 구입하여 유생들을 모아 가르치니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 書院. 1550년 소수서원紹修書院으로 편액을 하사 받음)이다.
 
☞ 소수(紹修)란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이다.
 
 
 
③ 서원은 교육 기회의 확대로 이어져 명종 때에 29개, 선조 때 124개로 크게 확대되었고, 숙종 때에는 전국적으로 약 890개의 서원이 존재할 정도로 급속히 팽창하였다.
 
④ 1864년 설립 초기와 달리 붕당의 근거지로 변질되는 등 많은 민폐를 야기한 전국의 서원에 대해 서원철폐령에 따라 전국에 47개만 남았다.
 
▷ 경기(京畿. 13)의 개성(開城) 숭양 서원(崇陽書院), 용인(龍仁) 심곡 서원(深谷書院), 파주(坡州) 파산 서원(坡山書院), 여주(驪州) 강한사(江漢祠), 강화(江華) 충렬사(忠烈祠), 광주(廣州) 현절사(顯節祠), 김포(金浦) 우저 서원(牛渚書院), 포천(抱川) 용연 서원(龍淵書院), 과천(果川) 사충 서원(四忠書院), 양성(陽城) 덕봉 서원(德峰書院), 과천(果川) 노강 서원(鷺江書院), 고양(高陽) 기공사(紀功祠)
▷ 충청도(忠淸道. 5)의 연산(連山) 돈암 서원(遯巖書院), 홍산(鴻山) 창렬사(彰烈祠), 청주(淸州) 표충사(表忠祠), 노성(魯城) 노강 서원(魯岡書院), 충주(忠州) 충렬사(忠烈祠)
▷ 전라도(全羅道. 3)의 태인(泰仁) 무성 서원(武城書院), 광주(光州) 포충사(褒忠祠), 장성(長城) 필암 서원(筆巖書院)
▷ 경상도(慶尙道. 14)의 경주(慶州) 서악 서원(西嶽書院), 선산(善山) 금오 서원(金烏書院), 함양(咸陽) 남계 서원(藍溪書院), 예안(禮安) 도산 서원(陶山書院), 상주(尙州) 옥동 서원(玉洞書院), 안동(安東) 병산 서원(屛山書院), 순흥(順興) 소수 서원(紹修書院), 현풍(玄風) 도동 서원(道東書院), 경주 옥산 서원(玉山書院), 상주(尙州) 흥암 서원(興巖書院), 동래(東萊) 충렬사(忠烈祠), 진주(晉州) 창렬사(彰烈祠), 고성(固城) 충렬사(忠烈祠), 거창(居昌) 포충사(褒忠祠)
▷ 강원도(江原道. 3)의 영월(寧越) 창절 서원(彰節書院), 철원(鐵原) 포충사(褒忠祠), 금화(金化) 충렬 서원(忠烈書院)
▷ 황해도(黃海道. 3)의 해주(海州) 청성묘(淸聖廟), 배천(白川) 문회 서원(文會書院), 장연(長淵) 봉양 서원(鳳陽書院)
▷ 함경도(咸鏡道. 1)의 북청(北靑) 노덕 서원(老德書院)
▷ 평안도(平安道. 5)의 영유(永柔) 삼충사(三忠祠), 안주(安州) 충민사(忠愍祠), 영변(寧邊) 수충사(酬忠祠), 평양(平壤) 무열사(武烈祠), 정주(定州) 표절사(表節祠)이다.
 
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
 
 
 
▼ 서원 재원 조달
 
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이 만들어질 당시 필요한 재원은 전적으로 개인의 사재(私財)에 의존하였으나 사액서원(賜額書院. 임금의 편액을 하사받은 사립학교)으로 지정되면서 토지와 노비, 서적 등을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하사받았다. 그러나 중앙 정부 차원의 국가의 직접적인 지원은 형식적이거나 상징적인 경우가 많았고, 실질적인 지원은 대개 지방 관청의 관찰사에 의해 이루어졌다.
 
② 서원의 경제적 기반은 서원전(書院田, 토지 3결)과 노비(사액 때 노비 각 1명)를 근간으로 하고, 그 외에 관청이 지원하거나 개인들이 기부, 매득(買得), 이속의 방법 등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였다
 
 
▼ 규정
 
서원은 자체 운영을 위해 독자적인 규칙인 원규(院規)를 만들어 운영하였다. 특히 퇴계 이황이 지은 최초의 서원규약인 "【원문】이산서원 원규"는 이후 조선 서원 운영의 기본적인 지침으로 활용되었다. 원규의 제정에 관한 강제적인 규정은 없지만, 학생의 입학, 학습, 평가 및 원임의 선출, 벌칙 조항 등에 관한 사항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 서원 구성 및 운영
 
① 서원을 대표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을 통상 원임(院任,원장)이라고 한다. 재정적 지원 외에 교과 내용이나 서원 운영 등에는 국가에서 간섭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서원의 운영을 위해 자체적으로 원임을 선출하였다. 원임의 구성은 지역과 설립 시기, 규모에 따라 달랐다.
 
② 원임과는 별도로 교육을 담당하는 직임이 따로 있었는데, 강장(講長), 직강(直講), 직월(直月), 훈장(訓長)이라고 불렀다.
 
③ 학생 수는 대략 10~20명 사이로 사액서원은 20명으로 정했다.
 
 
▼ 교재 및 교육 과정
 
① 주세붕의 백운동 서원 설립 동기를 보면 풍기 출신의 유현(儒賢)인 안향(安珦)을 모심으로써 풍기의 교화를 꾀하고, 겸하여 학문을 진흥시키는 데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백운동서원을 사액서원으로 이끈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2~1571)도 이익을 도모하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한 학문 연마의 장수처(藏修處)로 서원을 규정하고 있다.
 
☞ 장수(藏修)는 체득한 지식을 스스로 수련하여 실천함으로써 덕성을 함양한다는 의미이다.
 
② 경학 중심의 교육 과정으로 『소학』과 『가례家禮』를 입문으로 하고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강독의 근본으로 삼았다. 또한 역사서와 제자백가서 및 문집류도 강독의 내용으로 편성되었고, 제술 역시 교육 과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였다.
 
 
③ 서원의 유생은 스스로 학습해야 하며, 한 달에 1회 개최하는 강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유생들은 학습과정에서 생긴 의문점을 질문했고, 상호 토론을 통해 학습의 효과를 높였다.
 
 
▼ 서원 배치(전학후묘와 성균관과 같은 전묘후학의 2형태)
 
 

★소수서원(안향) https://blog.naver.com/jawkoh/221654688989
★옥산 서원(이언적) https://blog.naver.com/jawkoh/221736833574
★도산서원(이황) https://blog.naver.com/jawkoh/221736834112
★필암서원(김인후) https://blog.naver.com/jawkoh/221736834608
★도동서원(김굉필) https://blog.naver.com/jawkoh/221736835175
★병산서원(류성룡) https://blog.naver.com/jawkoh/221736835668
★무성서원(최치원) https://blog.naver.com/jawkoh/221736836083
★돈암서원(김장생) https://blog.naver.com/jawkoh/221736836496
★남계서원(정여창) https://blog.naver.com/jawkoh/221736832802
출처 : 우리 역사 넷. 민족문화 대백과. 조선왕조실록,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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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