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과 한국의 문화교류 4 - 한국문학 소설 번역가들
스웨덴은 한국처럼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가 없고 TV 토론 프로그램이 많아 사람들은 TV 대신 책을 읽는다. 한강은 아주 조용한 작가이다. 한강 소설가의 시와 소설은 간결하고 시적이라 읽으면 눈물이 날 정도로 서럽다. 작가는 1993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시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5년에는 단편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발표하며 산문에 데뷔한 후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작가의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는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작품이다.
▲ 『The Vegetarian』 Han Kang’s novel
한강 작가의 작품 해외 판권은 영국 RCW에서 가지고 있다. RCW는 2017년부터 시작하여 현재 47개 언어로 한강 작가의 책을 번역해 출판하고 있다. 출판사는 한글 원작을 해당 국가 언어로 바로 번역하는 것을 중요한 원칙으로 정했다.
현재 조지아어와 스페인 북부의 소수 언어인 바스크어를 쓰는 스페인 출판사와도 미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좋은 번역가를 찾았다. 영국 RCW 국제 부분 책임자 ‘로랑스 랄뤼요’는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직 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문판을 중역하면 출판사는 편하지만, 한강 작가의 아름다운 한글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작가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데보라 스미스(사진:RCW)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36)는 영국 중부 소도시 동커스터에서 1987년에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2009년 영문학을 전공하고 소아스 한국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2010년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중급 실력이 되었다. 처음에 한글 공부가 매우 힘들었지만, 점차 한글 매력에 빠져 런던대학교의 한국문학 전공 ‘그레이스 고’ 교수에게 한국학 석박사 과정을 지도받았다.
그녀는 한국어 대화가 능숙하지는 못하지만, 한글을 배우며 영문 번역할 때는 아주 세련되고 깔끔한 영문으로 처리했다. 번역가는 영국 독자에게 한국 문화를 그대로 전하고자 “소주, 만화, 선생님 등의 단어를 그대로 번역했다.”라고 말했다.
2013년은 한국과 영국이 수교한 지 130주년이 되는 해로 양국에서 많은 교류 행사를 하였다. 스미스는 우연히 한강 작가가 쓴 『채식주의자』을 읽고는 작품에 푹 빠져 영문 번역을 시작했다. 그러나 번역이 힘들어 참으로 긴 고통과 좌절을 겪었다. 그녀는 문학적 감수성이 있어 한글 문장을 읽어내는 분석력이 아주 뛰어났다.
새로운 문체와 변화를 시도하고 맛깔스러운 영어 문장으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20페이지 번역하여 『The Vegetarian』이란 제목으로 영국 출판사 Granta Books에 보내 출판 의향을 물었다. 번역가는 책을 출간한 후에도 출판사, 평론가, 독자와 꾸준히 소통했다.
2015년에 『채식주의자』가 번역상을 받으면서 한강의 소설 작품이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2016년에 영국 맨부커상 국제부문상, 2018년에 스페인 산쿠레멘테 문학상을 받았다.
▲ 2017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공동수상(사진:RCW)
영국의 맨부커상은 스웨덴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코르상과 함께 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인정받는다. 『희랍어 시간』은 2011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2017년 프랑스 메디치상 외국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흰』은 한강 작가가 2016년에 발표한 장편소설로 2018년 영역본이 맨부커상 국제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강 작가는 소설을 강력한 시적 산문으로 표현하여 독자들은 책을 잡으면 곧 빠져들어 숨도 못 쉬고 끝까지 책을 읽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소설은 2022년 프랑스에 거주하는 최경란(61) 번역가와 피에르 비지우 두 사람이 원문에 가깝게 프랑스어로 번역해 8월에 그라세 출판사에서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당시 13,000부가 판매되었다.
▲ 『불가능한 작별(Impossibles Adieux)』
한강 작가는 2023년 11월 9일 파리를 방문해 프랑스 4대 문학상의 하나인 ‘올해의 프랑스 메디치 외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프랑스는 메디치상, 페미나상, 콩코르상, 르노도상 같은 유명한 문학상이 있다.
▲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2023.11.14.) 수상 기자간담회
한강 작가는 메디치상 시상식의 소박함을 말했다. “특별한 것도, 의식도, 연설도 없었다. 단지 그냥 식당에 가서 사진을 찍고 술 한 잔을 마셨어요, 분위기는 자유롭고 편안했고 정말 즐거웠어요.”라고 목동 방송 회관 기자 회견장에서 말했다.
2024년 3월 『작별하지 않는다』 스웨덴 출간을 기념해 작가 한강이 스웨덴 ‘우메오 국제문학축제’ 대담 행사에 참석했는데 1천 명이 운집해 저자 사인에만 1시간 넘게 걸렸다.
한강의 소설 두 편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을 스웨덴 언어로 공동 번역한 사람이 있다. 안데르스 칼손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한국학 교수와 박옥경 부부 번역가이다. 두 사람은 한강 작가의 5.18 광주를 증언한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스웨덴 언어로 번역했다.
2023년에는 『채식주의자』를 바탕으로 만든 연극이 스웨덴 왕립극장 대형 무대에 올랐다. 이런 스웨덴의 문학계 동정을 전 세계 문학평론가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 스웨덴어 번역가 박옥경 & 칼손 교수(사진:SBS)
스톡홀름대에서 한국사를 전공하고 있던 칼손 교수와 같은 대학에서 경영학, 서양미술사를 전공한 박옥경 번역가는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국 책이 거의 없는 것을 알고는 1990년대부터 공동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이 올림픽과 월드컵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0년대 들어서 출판사에서 먼저 번역을 의뢰하거나 출판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요청해 오는 일이 점점 늘었다. 스웨덴은 2019년에 주요 문학잡지가 한국 작가 특집을 기획하고, 한국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도 관심을 보였다.
한강 작가는 2019년 9월 스웨덴의 예테보리에서 열린 국제 도서전에 참가하여 독자들을 만났다. 그가 연사로 나선 ‘사회 역사적 트라우마’ 세미나는 연일 많은 사람이 북적거렸다. 한강 작가의 책을 읽는 독자가 작가에게 질문하면 솔직하게 그녀의 마음을 드러냈다. 한강 작가는 소설 쓰는 과정을 두고 “쓰다 말고 잠깐 골목을 걸을 때, 어항 밖으로 한눈을 뜬 것처럼 아슴아슴 눈동자가 시릴 때가 있다.”라고 아주 쉽게 설명했다.
▲ 한강 장편소설 번역본(사진:Makhdoom Bilawal Library Islamkot).
일본에서 한강 작가의 소설을 출간한 쿠온출판사 김승복(53) 대표는 전북 영광에서 태어나 대학에 진학해 문예 창작과를 졸업했다. 소설가를 꿈꿨던 소녀는 일본에 유학한 후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 광고 회사에 다니며 광고 기획을 하였다. 이후 독립하여 한국의 재미있는 솔루션을 웹상으로 공급하는 일을 했다.
2007년에 미국 리먼 쇼크로 광고 시장이 위축되자 광고업을 접고 지속할 수 있는 업종인 출판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일본 출판 시장에 바로 뛰어들지 않고 3년간 관망하면서 일본 에이전시 업무를 하였다.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인 쿠온은 2011년에 한강 소설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한국문학 시리즈’를 발간하며 K-BOOK 진흥회를 설립하며 책 디자인과 장정에 더욱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일본어로 읽고 싶은 책 50선 가이드북을 제작해 출판사를 상대로 설명회를 개최하고 문예 전문지 ‘스바루’나 잡지에 한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했다.
작가 초청 토크 이벤트를 자주 개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책이 한 권씩 출간되고 일본 독자들과 함께 한국의 광주, 제주도, 진주 등을 방문했다.
▲ 쿠온출판사 김승복 대표(사진:쿠온출판사)
김승복(53) 대표는 2016년 『토지』 1권과 2권을 출간하기 시작하여 8년 만에 소설 『토지』 20권을 완간했다. 2024년 10월에 ‘시미지 치사코’ 번역가 등 독자 30명과 함께 통영 미륵도 박경리(본명 박금이, 1926~2008) 선생의 묘소를 방문하여 『토지』 일본어판을 헌정했다.
▲ 『토지』 일본어판 완간(사진:mbc)
박경리 선생의 이름 ‘경리’는 『등신불』로 유명한 김동리(金東里, 1913~1995) 선생님이 지어준 필명이다. 박경리 선생은 통영 세병관 가까이에 있는 서문 고개 문화동에서 태어나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하는 데 온 힘을 다 쏟아부어 25년 걸렸다.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박경리기념관은 2002년 월드컵 경기장과 리츠칼튼 호텔을 설계한 건축가 류춘수(1946~ )의 작품으로 2010년 미륵도 섬에 건립됐다. 박경리 동상에 세워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라는 글씨가 참으로 인상적이다.
▲ 통영 미륵도 박경리기념관(사진:토지문화재단)
한·러 문화외교 사업으로 2013년 11월 서울 중국 소공동 롯데호텔 앞 푸시킨 플라자에 러시아 제국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1799~1837) 동상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른 화답으로 1724년에 개교한 러시아 국립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 본관 뒤 동양학부 건물 옆에 2018년 6월 20일 박경리 선생 동상이 건립됐다. 2026년 5월에는 통영에서 박경리 선생 탄신 100주년을 기리는 문학 대축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김승복 대표는 3년간의 구상 끝에 2015년 7월 한국 책 3,000종을 파는 서점 ‘책거리’를 도쿄 책방 거리 진보쵸에 열고 1년에 100회 이상 이벤트를 개최했다. 필자가 1994년에 180여 개의 책방과 250개의 출판사가 모여있는 도쿄 진보쵸 고서점거리를 방문했을 때 받은 충격은 실로 엄청났다. 책방 직원들이 양복 정장을 입고 옛날 책을 정성스럽게 보관하고 판매하는데 우리나라 중고 책방과는 개념이 전혀 달랐다.
김승복 대표는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2018년부터 ‘번역 콩쿠르’를 개최하여 성과를 냈다. 초기에는 일본인 220명이 응모했고 이제는 매년 130여 명의 일본어 번역가가 응모하며 우수작으로 선정된 번역 작품은 바로 출간해 번역가 등용문이 되었다.
2019년부터 시작한 K-BOOK 페스티벌은 2023년에는 ‘나라를 넘어, 언어를 넘어, 침묵의 시간을 넘어 모이다’라는 주제로 한국 5개, 일본 35개 출판사가 참여하여 큰 성과를 냈다.
▲ 2023년 일본 K-BOOK 페스티벌(사진:쿠온출판사).
쿠온출판사는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 구효서의 『나가사키 파파』,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인생』, 김영희, 김연수의 고독을 다룬 『세계의 끝 여자친구』, 편혜영의 홍콩 사스 전염병 괴담을 적은 『아오이 가든』, 은희경의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김훈의 『화장』, 최은영의 『쇼코의 미소』, 정세랑의 성장소설 『이만큼 가까이』가 『언더,썬더, 텐더』란 제목으로 번역하여 출판했다.
또한 황석영의 『황혼』, 시인 김혜순, 신경숙의 『달에 듣고 싶은 이야기』, 최인훈의 『광장』, 박경리의 『토지』 20권, 정지용, 백수린의 『조용한 사건』, 박성원의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윤후명의 『하얀 배』 등의 소설과 신경림의 시선집 『낙타를 타고』를 번역가 요시카와 나기가 번역하여 책을 펴냈다.
▲ 정세랑의 『언더,썬더, 텐더』
한강의 작품은 전 세계 28개 언어권에서 80종 넘는 단행본으로 독자와 만나고 있다. 프랑스는 2011년 ‘한국 여성문학 단편선’, 2014년 단독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이후 여러 작품이 소개되었다.
2025년 3월엔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Soirs rangés dans mon tiroir)가 프랑스어로 출간(최미경·장 노엘 주테 공역) 된다. 한강 작가는 자기가 쓴 작품 중에서 2010년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한 장편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를 좋아한다고 말해 영국 RCW는 나라별 번역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일본 서점에서는 한국의 장편소설과 김수현 작가의 에세이(산문, essay)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등 여러 한국 작가의 책들이 서가에 꽂혀 있지 않고 진열대 최전선에 당당하게 작가의 이름을 내고 전면 표지를 드러낸 채 전시되어 있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어 학습을 많이 하며 적극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는 구독자가 점점 늘고 있다.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작가 김수현(사진:충북일보)
한강은 어려서부터 노래를 무척 좋아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지만 학원에 가지 못하고 십 원짜리 종이 건반을 책상에 붙여놓고 리코더를 불었다. 한강은 이때부터 길을 걸으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한강 작가가 2007년 만들어 부른 노래 “안녕이라 말해 본 사람 / 모든 걸 버려 본 사람 / 위로받지 못한 사람 / 당신은 그런 사람 / 그러나 살아야 할 시간 / 살아야 할 시간 /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 /모든 걸 버렸다 해도 / 위안 받지 못한다 해도/ 당신은 지금 여기 / 이제는 살아야 할 시간 / 살아야 할 시간 /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 누가 내 손을 잡아주오 / 이제 일어나 걸을 시간 / 이제 내 손을 잡고 가요/ 음흠 음흠흠 흠흠 음흠..” “햇빛이면 돼” “나무는” 노래를 들으며 글을 완성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