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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역사·전고재완의 지식창고 2024.12.02. 11:35 (2024.12.02. 11:29)

과거시험의 부정행위 수법들

 
조선시대 관리들의 등용문(登龍門)인 과거시험에는 상상 이상으로 부정과 비리가 많았는데, 특히 왕과 권력층에 의한 특혜와 권력형 부정행위가 만연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과거의 폐단이 날로 갈수록 심해져 까막눈이어도 뒤를 봐줄 사람이 있다면 장원(壯元)을 차지하는 일이 심해졌으며, 특히 세도정치 때는 과거제도의 폐해가 더 심해졌다.
조선시대 관리들의 등용문(登龍門)인 과거시험에는 상상 이상으로 부정과 비리가 많았는데, 특히 왕과 권력층에 의한 특혜와 권력형 부정행위가 만연했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과거의 폐단이 날로 갈수록 심해져 까막눈이어도 뒤를 봐줄 사람이 있다면 장원(壯元)을 차지하는 일이 심해졌으며, 특히 세도정치 때는 과거제도의 폐해가 더 심해졌다.
 
과거시험장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나름의 방안이 있긴 했다. 답안지의 규격화, 시험지에 대한 감독관의 번호 부여와 날인, 가계(家系)를 감추기 위해 해당 부분을 가리는 봉미(封彌), 채점관과 수험자 사이에 글씨를 통한 부정이 없도록 글씨체를 바꾸는 역서(易書), 감독관의 시험장 감독 등이다. 부정행위가 적발되면 유배(流配), 정거(停擧, 응시자격 박탈) 등의 벌을 받았지만 역시 소용이 없었다.
 
 
▣ 부정행위 수법
 
① 콧속에 컨닝 종이를 숨기는 의영고(義盈庫), 붓 대롱에 작은 종이를 말아 숨기는 협서(挾書), 답안지를 땅에 떨어뜨려 보여주는 낙지(落紙), 눈을 굴려 남의 답안지를 베끼는 고반(顧盼), 옆 사람에게 물어보는 설화(說話)
 
② 책을 가지고 들어가거나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는 경우(협책挾冊 · 수종隨從)
 
③ 다른 사람이 대신 답안지를 작성하는 경우(차작借作 · 대술代述)
 
④ 답안지 부본을 작성하는 역서(易書)
 
⑤ 감독관과 짜고 특정인의 시험지를 알아보게 하거나 시제를 미리 알려 주는 혁제공행(赫蹄公行)
 
 
⑥시험장에 마음대로 드나드는 입문유린(入門蹂躪)
 
 
⑦ 답안지를 바꿔치는 정권분답(呈券分遝)
 
⑧ 시험장 밖에서 답안을 작성해서 가져오는 외장서입(外場書入)
 
 
▣ 부정행위 사례(조선왕조실록)
 
① 현득리(玄得利)가 1465년(세조 11) 문과 회시(會試, 2차)에서 조카인 생원 유양춘(柳陽春)의 답안지를 몰래 바꿔 현득리는 합격하고, 유양춘은 낙방하는 일이 벌어졌다. 송사가 벌어진 끝에, 현득리의 합격은 취소되고 유양춘은 응시 자격을 박탈당했다.
 
② 신숙주의 4남 신정(申瀞)은 1466년 과거에서 소과에 장원급제한 양수사(楊守泗)의 답안을 베낀 사실이 적발되어 시험관인 신숙주가 불합격 처리를 하려는데 세조가 합격으로 인정해 주었다. 1488년에는 신정의 아들이 생원 최세보(崔世寶)에게 생원시 대리응시를 부탁하려다가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일찍이 최세보가 신정의 집 여종과 간통한 일이 있는데 신정의 아들이 “생원시에 합격하게 해주면 여종을 주겠다”고 회유했다는 것이다. 반면 신정의 조카인 신종호(申從濩)는 조선시대 처음으로 진사시와 문과, (문신들을 대상으로 한) 문과중시(文科重試)에서 모두 장원급제하는 기염을 토했다.
 
③ 1486년 임사홍의 아들(임희재), 정인지의 손자(정승충)와 구수영(성종의 인척)의 아들(구숭경)이 모두 어린 나이에 진사시 초시에 합격하여 대리응시를 했다는 소문이 돌자, 성종은 이들에게 다시 시험을 보게 하였다.
 
④ 중종 때 조광조 일파인 김식은 과거시험의 채점관으로 들어가 ‘밀봉은 군자를 의심하는 법’이라며 밀봉을 해제하고 채점하여 사림파를 모두 급제시켜 물의를 빚었다.
 
⑤ 정사룡은 1552년 시험관으로 과거를 주관하면서 명종의 인척인 이량에게 미리 시험 주제를 알려줘 장원급제하게 하여 물의를 빚었다. 그러고도, 정사룡은 1554년 대제학으로 과거를 주관하면서 시험문제를 왕의 인척인 신사헌에게 누설한 게 적발되어 파직되고 신사헌의 급제도 취소되었다. 또한 이량은 1563년 시험관으로 아들 이정빈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하여 장원급제하도록 하여 물의를 빚었다.
 
⑥ 조선 중기의 문장가 차천로는 문과와 문과중시에 모두 장원급제한 인물인데, 1586년 친구를 위해 글을 대신 지어주어 장원급제시킨 게 발각되어 유배되었다.
 
⑦ 허균은 1610년 시험관으로 전시(殿試, 3차)를 주관하면서 조카와 사위를 합격시켰다는 이유로 구금되었다가 전라도 함열로 유배되었다.
 
⑧ 1610년(광해군 2)의 별시문과는 대북파의 영수인 이이첨이 고시관이었는데 사위 박자흥 등 친인척이 대부분 급제하여 ‘사돈방’이라는 조롱이 있었다. 1616년 성균관 유생 윤선도가 이에 대하여 상소하였다가 도리어 유배를 당하였다. 1621년에는 이이첨이 시험관으로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주어 아들, 사위, 조카 등이 급제하였다. 또 서얼 출신인 이재영은 과거 때마다 이이첨의 아들 이대엽 등을 대신하여 글을 써주었다가 인조반정 후 곤장을 맞고 죽었다.
 
⑨ 1699년(숙종 25)에는 ‘기묘과옥(己卯科獄)’ 사건이 있었다. 문과에서 응시생이 시험관과 짜고 시험지를 바꿔치기하거나, 시험관이 채점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등 대규모 시험 부정이 드러나 시험관인 예조판서 오도일 등 수십 명이 유배되었다.
 
⑩ 1705년(숙종 31)에는 대나무 통 속에 노끈을 넣어 과장(科場)에서 시험문제를 노끈에 매달아 보내고, 밖에 있는 사람이 이 답안지를 작성해 노끈에 묶어 보낸 것입니다. 당국이 조사를 했으나, 범인은 잡을 수 없었다.
 
⑪ 1712년(숙종 38)에는 ‘임진과옥(壬辰科獄)’ 사건이 있었다. 문과에서 응시자들에게 답안지에 ‘龍’, ‘鶯’ 자를 써 식별이 되도록 하여 합격시키는 등 대규모 부정행위가 드러나, 과거를 주재한 좌의정 김창집이 파면되고, 여러 명의 시험관이 처형되었다
 
⑫ 이석표(李錫杓)는 1737년(영조 13) 상소에서 “봉산군수 조윤성(曹允成)과 20년간 함께 수학하였는데, 시험장에서 시각이 촉박하여 서로 베끼거나 바꾸어 썼는데, 특히 조윤성에게서 도움받은 것이 조금 더 많았는데도 신은 장원을 하고 조윤성은 낙방을 하였으니 수치스럽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영조는 이를 불문에 부쳤다.
 
 
⑬ 1818년 (순조 18) 성균관 학자 이형하(李瀅夏)가 상소문을 올려 지적한 과거팔폐(科擧八弊·과거시험의 8가지 폐단)의 내용은 시험 문제를 미리 유출시키는 혁제공행(赫蹄公行), 매수한 사람을 시험장 포졸로 바꾸는 이졸환면출입(吏卒換面出入), 답안지를 아무렇게나 써내도 조작으로 합격하는 자축자의환롱(字軸恣意幻弄), 차술차작(借述借作)은 남의 답안을 베끼는 것이고, 수종협책(隨從挾冊)은 시험장에 책을 몰래 가져가는 일이고, 입문유린(入門蹂躪)은 대리시험이고, 정권분답(呈卷粉遝)은 답안지 바꿔치기이고, 외장서입(外場書入)은 시험장 밖에서 답안지를 던져주는 것이다.
 
 
▼ 단원 김홍도의 공원춘효도(貢院春曉圖,봄날 새벽의 과거시험장)
 
"봄날 새벽 과거시험장,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치르는 열기가 무르익어, 어떤 이는 붓을 멈추고 골똘히 생각하며, 어떤 이는 책을 펴서 살펴보며, 어떤 이는 종이를 펼쳐 붓을 휘두르며, 어떤 이는 서로 만나 얘기하며, 어떤 이는 행담(책가방)에 기대어 피곤하여 졸고 있는데, 등촉은 휘황하고 사람들은 왁자지껄하다."
 
 
 
출처 : 법률신문,국가유산청,구글, 조선왕조실록, 민족문화대백과,네이버,안산시,한국 고전 종합DB,역사저널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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