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371강 강의자료 요약 (2024.12.19)
2024년 12월 19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唐詩 300首
1) 당시 제목: “영상봉구별자우별”
2) 당시 중국어 발음
十 | 年 | 曾 | 一 | 別 | shí | nián | céng | yī | bié | 征 | 路 | 此 | 相 | 逢 | zhēng | lù | cǐ | xiāng | féng | 馬 | 首 | 向 | 何 | 處 | mǎ | shǒu | xiàng | hé | chù | 夕 | 陽 | 千 | 萬 | 峰 | xī | yán | qiān | wàn | fēng |
3) 작자 : 권덕여(權德輿) 759년 ~ 818년 (GEMINI 참조) (1) 당나라 헌종 때의 시인이자 문학가입니다. (2) 자(字)는 재지(載之)이고, 天水略陽(今甘肅省秦安縣) 사람입니다. (3) 진사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한림학사(翰林學士)와 중서사인(中書舍人) 등을 역임했습니다. (4) 뛰어난 문장력으로 이름을 떨쳤으며, 특히 시에 능했습니다. 그의 시는 섬세한 묘사와 풍부한 감성으로 유명합니다. (5)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童蒙集》, 《權載之文集》, 「옥대시(玉臺詩)」, 「장문원(長門怨)」 등이 있습니다.
* 首魁 (나쁜 뜻) 魁首(좋은 뜻) ~ 최고라는 뜻
* 利他 自利 1) 利他自己의 강조형 2) 습관적 사용
* 修身 內 ~ 修心 (소극적) 外 ~ 形象 (品行) 修己 ~ 수신하여 외부까지 확대시킴 (修己治人/修己安人)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25강(2023.10.5.) 강의 교안
* 《史記》〈周本紀〉 注釋
1. 多 - 甲骨文, 원래는 수량이 많다. 《說文解字. 《說文解字注》 1) 많다 2) 남다, 잉여, 3) 무겁다, 4) 좋다, 5) 크다, 6) 칭찬하다, 7) 중시하다,
8) 단지, 다만, 불과, 《論語》〈子張〉「叔孫武叔毁仲尼。子貢曰. 無以爲也!仲尼不可毁也。他人之賢者,丘陵也,猶可逾也;仲尼,日月也,無得而逾焉。人雖欲自絶,其何傷于日月乎? 多見其不知量也」 숙손무숙이 공자를 비평하니, 자공이 말하기를 “그렇게 하지 마라. 공자는 훼손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의 어짊은 그저 언덕이다 가히 뛰어 넘을 수 있다. 공자는 日月이다. 초월할 수 없다. 사람이 비록 스스로 (해와 달을)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해와 달을 어찌 손상시킬 수 있겠는가? 단지(多)그 능력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걸 나타내 버린다.
산(刪) ~ 깎아내고 덜어내다 정(定) ~ 정했다 찬(贊) ~ 보조하다 서(序) ~ 주역이 앞부분 經이고 뒷부분이 傳인데 傳은 經을 설명한 부분이다. 역전을 공자가 지음 수(修) ~ 춘추를 수정했다 교(敎) ~ 가르치었다.
*著 ~ 창작 짜깁기가 20% 미만 編 ~ 짜깁기 譯 ~ 번역 編譯 ~ 짜깁기 +번역 編著 ~ 편집하여 저술함 監修 ~ 책의 저술이나 편찬 따위를 지도하고 감독함. 交信著者 ~ 학술지 편집자와 연락을 취하며 질문을 주고받거나 논문 수정에 참여하는 저자.
《左傳》襄公十四年「吾令實過,悔之何及,多遺秦禽」 내 명령이 확실히 잘 못되었다. 후해해도 어찌 미치겠느냐? 단지 진나라의 포로로 남겨두게 되었다.
9) 대부분, 《西門豹治鄴》「以故多持女遠逃亡」 그런 까닭에 여자들을 데리고 멀리 도망갔다.
* 鄴 ~ ”업성”이다.
10) 더해서 추가로, 《儒林外史》第十一回, 「但贅進門十多日,香房里满架都是文章,公孫却全不在意」 그러나 데릴사위가 집안으로 들어 온지 십여 일, 젊은 여성 내실에 글들이 곳곳에 걸려있다. (满架) 그러나 데릴사위 举 公孙은 전부 신경 쓰지 않았다.
* 췌(贅) ~ 데릴사위, 췌서(贅壻)
《解学士诗》,东坡、小妹诗话之类,倒把与伴读的侍女采苹、双红们看;闲暇也教他诌几句诗,以为笑话。此番招赘进蘧公孙来,门户又相称,才貌又相当,真个是“才子佳人,一双两好”;料想公孙举业已成,不日就是个少年进士。但赘进门来十多日,香房里满架都是文章,公孙却全不在意。小姐心里道:“这些自然都是他烂熟于胸中的了。”
11) 성씨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26강(2023.10.12.) 강의 교안
*《論語》〈八佾〉 3-25. 子謂《韶》 盡美矣,又盡善也, 謂《武》.盡美矣未盡善也。
공자가 순 임금 때 음악인 韶에 대하여 논평하기를 당시 민중의 뜻에 잘 맞는구나. 또 어진 사람에게 하늘의 이치에 따라 순양 했구나. 또 주나라 무왕 때 음악 무에 대하여 이르기를 무왕이 商나라 형편없는 紂王을 放伐했으니 끝내 주는 구나, 그러나 훌륭하지는 않다. 군주를 시해했기 때문이다.
(注釋) 1) 謂 - 평론, 논평하다(comment) 2) 韶 - 舜 시대의 음악 곡명 9韶 = 韶舞= 9招= 蕭韶 ~ 9장까지 있었음= 9成이라고 함 《尚書·益稷》:「簫韶九成,鳳凰來儀。擊石拊石,百獸率舞」,意指高雅的藝術可以與神靈相通,為吉祥的預兆
3) 美 - 음악 소리가 아름답다. 美 = 附合於民衆之意(美란 민중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
4) 善 - 음악의 내용이 아름답다. 즉 진정한 仁者의 음악. 善 = 放伐天下昏君(善이란 천하의 개판 임금을 무력으로 토벌하는 것이다.)
참고로 《論語》〈八佾〉「人而不仁如禮何,人而不仁如樂何」 (사람이 만약 인애의 마음이 없다면 예절이 어찌 쓸모가 있겠는가? 사람이 만약 인애의 마음이 없다면 先王이 만든 雅樂이 어찌 쓸모가 있겠는가?
또 《禮記》〈儒行「禮節者仁之貌也, 歌樂者仁之和也」 예가 있는 자는 仁이 겉으로 드러난다. 음악이라는 것은 어진 사람이 갖고 있는 온화함이다. 즉 仁愛는 인간 본성, 도덕규범으로 本, 質, 內在하는 것이다 禮와 樂은 제도문명, 用, 文, 仁愛의 겉으로 드러난 표현일 뿐이다.
* 本性(心) ~ 仁(惻隱之心)義(羞惡之心) 禮(辭讓之心)智(是非之心) 1) 內 ~ 仁 ~ 本, 質, 氣質 ~ 野(순박) 2) 外 ~ 禮 ~ 末, 文(꾸미는 것) 史(허식) 樂 ~ 和
* 性相近 習相遠 ~ 敎育 必要(狀況判斷) -> 刑罰
5)무-周 武王 시대의 음악 곡명 * 무(武) = 大武~ 주나라 무왕 때 음악
* 國家興亡 (混亂, 昏亂)匹夫有責
黃石公, 《素書》〈遵義〉「近色遠賢者昏, 女謁公行者亂」 여색을 가까이 하고 현자를 멀리하는 것이 혼(昏)이고, 여자가 알랑대는 것을 공적으로 행하면 난(亂)이다.
顧炎武, 《日知錄》〈正始〉「保天下者, 匹夫之賤, 與有責焉耳矣」 천하를 보유하는 데에는 일반 사람들의 하찮은 거라도 이에 대하여 더불어 책임이 있다.
** 顧炎武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중원을 지배하던 혼동의 시기에 활동하던 실사구시의 사상가였다. 당시 명나라는 사회 곳곳이 방탕과 부패로 곪아 터졌고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대외적 감각도, 백성을 통치할 정치력도 없는 무지몽매한 인물이었다. 재위 당시 농민 반란인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 북경을 점령당하자 목을 매어 자결함으로써 명을 자멸시킨 주인공이다. 명이 망하고 만주족의 청나라가 지배하자 귀족과 사대부들 사이에서 잠시 반청운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명나라 부흥 운동은 망명정권 안에서도 감투싸움과 파벌싸움이 그칠 줄 모를 정도로 한심했다. 고염무도 의군(義軍)에 참여하여 부흥운동을 일으켰으나 대패하고 그의 생모는 사지가 잘리는 죽음을 당했다. 고향에서 고염무를 길렀던 양어머니는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지 말고 절대로 청나라를 섬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단식 자살한다. 그때의 유명한 사자성어가 바로 견지모훈(堅持母訓:어머니의 말씀을 굳게 지키다)이다. 세상이 뜻대로 따라주지 않자 45세에 유랑길에 나서는데 허베이, 산시, 산둥 등지를 찾아 지인들과 학문을 논하고 풍속과 역사, 경제, 병농 등에 독서와 연구로 많은 저서를 남긴다. 고염무는 매일 읽어야 할 목표를 정하고 다 읽은 후에는 읽은 책을 다시 베껴 쓰도록 했으며 스스로 이같은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했다. 평생 동안 수많은 책을 읽어 ‘동서고금 제일의 독서가’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 권 읽을 때마다 독서일기를 썼는데 무려 30년 동안 이어졌다. 훗날 이를 정리하여 8권으로 된 일지록(日知錄: 날마다 깨닫는 지식의 기록)을 완성했다. 수필 형식의 일지록은 정치, 경제, 문학, 철학, 천문, 법률 등 모든 영역을 총망라하고 있는데 중국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저술로 손꼽힌다. 중국에서는 지금도 ‘고염무처럼 독서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뜻으로 고염무가 남긴 ‘독서만권 행만리로(讀書萬卷 行萬里路: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 길을 다녀라)’라는 문장을 자주 사용한다. 고염무는 고통받는 민중의 삶을 직접 목격하며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사구시(實事求是: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 학문을 주창하게 된다. 당시 관리와 귀족들은 청나라의 점령과 악행에 초점을 맞추고 분기탱천하는데 몰두했지만 일부 식자층 사이에서는 명나라의 멸망에 대해 보다 본질적 문제점을 찾기 위해 인문학적 성찰을 하기 시작했다. 그 화두의 대표적인 8글자가 바로 고염무의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었다. ‘천하가 망하고 흥하는데 미천한 필부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중국 사회 자각운동의 시작이었다.
顾炎武(1613-1682年)
《論語》〈雍也〉「子游爲武城宰 。 子曰 女得人焉爾乎」 자유가 무성의 현령이 되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너가 여기서 인재를 얻었구나.
《孟子》〈梁惠王上〉「梁惠王曰. 寡人之于國也, 盡心焉耳矣」 내가 국가에 대해서 진심 몸과 마음을 다 했을 뿐이다.
★해결책은 商湯桑林求雨-6事自責에서 배워야 함.
《呂氏春秋》〈順民〉「余一人有罪,無及萬夫, 萬夫有罪,在余一人」 군주 1인이 죄가 있으면 그것이 백성에게 이르면 안된다. 백성이 죄가 있으면 임금인 나에게 책임이 있다.
* 임금 ~ 余 = 孤 = 朕(황제의 專稱) = 不穀
《淮南子》〈主術訓〉 1. 政不節歟 (믿음을 잃고)? 정치를 할 때 믿음이 없었는지? 2. 民失職歟 (백성이 일자리 없고)? 백성이 일자리가 없는지? 3. 宮室崇歟 (궁실에 불필요한 비용)? 궁전을 불필요하게 화려하게 했는지? 4. 女謁盛歟 (여인이 정치간여)? 여인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는지? 5. 苞苴行歟 (뇌물 횡행)? 뇌물이 성행하는지? 6. 讒夫昌歟 (아첨꾼이 흥성)?」 아첨하는 자가 창궐하지 않았는지?
** 은(殷)나라에 7년간 큰 가뭄이 들자 태사(太史)가 탕왕(湯王)에게 하늘에 인신공희(人身供犧,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침)를 할 것을 건의했다. 탕왕은 “하늘에 빌려는 대상이 백성인데 어찌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내가 희생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스스로 목욕재계한 뒤 흰 띠를 몸에 두르고 상림(桑林)의 들에 나아가 하늘에 여섯 가지 일을 자책하며 기도하였다. “정치가 알맞게 조절되지 않았습니까? 백성들이 직업을 잃고 있습니까? 어찌하여 이렇게 비가 내리지 않음이 극심합니까? 궁실이 화려합니까?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심합니까? 어찌하여 이렇게 비가 내리지 않음이 극심합니까? 뇌물이 성행합니까? 아첨하는 사람이 들끓습니까? 어찌하여 이렇게 비가 내리지 않음이 극심합니까?”(湯旱而禱曰, 政不節歟. 民失職歟. 何以不雨至斯極也. 宮室崇歟. 女謁盛歟. 何以不雨至斯極也. 苞苴行歟. 讒夫昌歟. 何以不雨至斯極也.) 기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하늘에서 큰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순자(荀子) 〈대략(大略)〉》에 나오는데, 탕왕이 여섯 가지 일을 들어 자신을 반성하고 자책한 데서 ‘육사자책’이 유래했다. 정치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업하는 사람도 항상 ‘육사자책’을 하며 자기 자신을 채찍질하면 나라도 잘되고 기업도 잘될 것이다.
[출처] 육사자책 六事自責|작성자 새오늘
** 官吏登用 1) 六藝 - 書禮樂射御數 2) 十三經 3) 資治通鑑 4) 史記 5) 面接 (1) 身 (2) 言 (3) 書 (4) 判斷力
(2024.12.19 강의 요약자: 주정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