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횡단의 중요 통로...제1 미국 남극탐험대 발견한 빙하 지질학자 플랭크 레버렛 명명 남극 레버렛 빙하
▲ 김영미 탐험가(사진:노스페이스)
탐험가 김영미는 영하 30도 강추위 속에서도 목적지인 레버렛 빙하(Leverett Glacier)를 향해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그녀는 1,141km가 넘는 광활한 설원을 49일 3시간 동안 걸어서 지난 2024년 12월 27일 오후 6시 44분에 남극 횡단의 반환점인 남위 90° 남극점(남위 90°, 날씨 영하 25도, 표고 2,835m)에 도달해 보급품 식량 25kg을 처음 지원받았다. 탐험가가 끌고 가는 썰매는 장비가 40kg이고 식량이 60kg이다.
이런 극지 도전은 탐험가 개인의 용기도 중요하지만, 첨단 소재로 만든 노스페이스의 고산 등반과 극지 탐험을 위해 특별 제작된 초경량 히말라야 파카(PARKA) 제품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노스페이스의 끝없는 개발 정신과 한계를 넘어 도전하는 탐험가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그녀는 4~5일 간격으로 소식을 전한다. 현재 미국 남극점 기지까지 물자를 수송하는 보급 차량의 흔적과 깃발을 따라 걷고 있으며 쉴 때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12번째 남극 편지를 보내왔다.
▲ 남극에서 사용하는 장갑(사진:김영미 페이스북)
“출국 75일 차, 안녕하세요. 김영미입니다.
남극에서 오랜만에 소식 전합니다. 남극점 이후로 처음 음성 메일을 남기네요.
오늘 87도를 넘어서 5km 정도 더 지나왔습니다. 허큘레스 인렛에서부터 남극점까지 50일 동안 아무도 만나지 못했었잖아요. 남극점에서 23kg 정도 보급을 받고 레버렛 빙하를 향해 내려가고 있습니다.
남극점까지 가는 길은 직접 나침반이랑 GPS를 보면서 갔지만,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요. 조금 더 루트를 찾는 게 수월한 그런 상황인데 이 루트를 선택할 때, 과연 이게 최선일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끝에 약 200km 정도 빙하와 크레바스 지대가 있어요.
그래서 제 썰매 안에는 아이스엑스랑 20m의 구조용 로프랑 크레바스 탈출 장비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크레바스에 빠져서 스스로 탈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가 않죠. 그래서 가장 최선의 루트라는 것은, 가장 안전하게 집으로, 친구와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을 했고, 그래서 이 루트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매일 운행 거리를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남극점까지 가는 것 자체가 혼자 눈을 다지면서 50일 안에 가는 것이 미션이었고, 그게 1차 관문이라고 여겼는데, 그때 체력 소모가 좀 많이 컸던 것 같아요.
운행 초반 한 열흘 동안 음식에 문제가 좀 있어서 설사하면서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좀 안정적인 길이지만 남극점 갈 때보다 더 긴 시간과 긴 거리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 탐험가 김영미(사진:김영미 페이스북)
남극점 이후로 지금 하루 평균 30km씩 운행을 하고 있는데요, 600km를 20일 안에 많이 가야 하니까요. 남극점까지도 많이 지쳤었는데 남극점을 지나서도 계속 새롭게 매일 걷고 있는 제 다리가 좀 신기하게 느껴지기는 하네요.
남극점을 지나서 계속 높은 고도에 있다가 오늘에서야 2,500m대로 내려왔습니다. 일주일 넘게 2,800m 이상에 있었어요. 특히, 87도에서 88도 사이 구간이 너무 춥더라고요. 그래서 88도 도착했을 때 음성 메일 남기려고 하다가, 갑자기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일찍 쉬느라고 사진만 보내고 소식을 전하지를 못했어요.
남극점까지만 가는 여정보다 지금 레버렛 빙하로 향하는 이 길이 2,000m 이상에서 지내야 하는 구간이 많아 이번에 지난번 남극점 원정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노스페이스 기술개발팀과 용품팀에서 장갑이나 바지 등을 굉장히 많이 이제 업그레이드해 주고 남극에 맞춰서 새로운 장비들을 많이 개발해 주셨어요. 그래서 동상 없이 여기까지 아직은 잘 걷고 있습니다. 그때 이런 얘기를 해주시더라고요. “기쁘고 좋은 마음으로 옷을 만들어야 이 기운이 다 옷에 들어갑니다.”
아침마다 그 따뜻한 마음의 온기를 챙겨 입으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남은 여정이 지나온 여정에 비해 짧죠. 200km를 좀 넘게 가면 되는데, 하지만 여전히 굉장히 멀게 느껴지고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매일 힘내서 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몸 상태는요. 지금 누워서 배에 이렇게 손을 올리면 갈비뼈가 만져져요. 살이 많이 빠졌어요. 그래서 갈비뼈로 기타 연주를 하면서 노래라도 한 곡하고 갈까? 이러다가 저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어 곯아떨어지기도 합니다. 식사 잘하고 있고 지금 살이 좀 많이 빠져있는 상태인데, 그래도 여전히 잘 걷고 있습니다. 86도에서 또 소식 전하겠습니다. 모두 안녕!
2025.01.08.
김영미 드림”
탐험가가 걸어가고 있는 레버렛 빙하(85°38′S 147°35′W)는 길이 약 50해리(90km), 폭 3~4해리(6~7km)로 남극 횡단 산맥인 퀸 모드 산맥을 거쳐 로스 빙붕의 남쪽 끝까지 흐른다.
▲ 남극 레버렛 빙하(Leverett Glacier)
이 코스는 맥머도 기지에서 아문센-스콧 남극점 기지까지 이어지는 남극 횡단(SPoT)의 중요한 통로로 전에는 모든 연료 및 기타 보급품을 스키를 장착한 록히드 LC-130 헤라클레스 항공기를 통해 맥머도 기지에서 아문센-스콧 남극기지까지 운반되었는데, 상당한 비용이 들어 2005년에 개조된 농업 트랙터를 이용해 통로를 개척했다.
레버렛 빙하는 1929년 12월 극지탐험가이며 지질학자인 로렌스 맥킨리 굴드(Laurence McKinley Gould, 1896~1995)가 리처드 에블린 버드(Richard Evelyn Byrd, 1888~1957)의 남극 탐험대 지질학 팀의 수석 과학자로 활동하면서 처음 발견하였다.
리처드 에블린 버드는 미국의 해군 장교이며 비행가로 항공편으로 북극과 남극에 도착했다고 주장하는 탐험가다. 그는 미 해군 십자훈장을 수상했고, 남극에서 가장 큰 휴화산인 시들리(Mount Sidley) 산을 최초로 발견했다. 굴드는 1945년부터 1962년까지 칼턴 대학(Carleton College)의 총장을 역임하고 1964년에 미국과학진흥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 남극 시들리(Mount Sidley, 4,181m) 휴화산(사진:SummitPost)
레버렛 빙하는 왓슨 절벽(Watson Escarpment)에서 북쪽으로 배수되어 캘리포니아 고원( California Plateau) 서쪽의 극지방 고원에 형성되어 있다. 스탠퍼드 고원(Stanford Plateau)은 동쪽에 있고, 서쪽의 비즐리 산과 동쪽의 맥린 피크 사이의 왓슨 절벽을 통해 북쪽으로 흐르다가 태플리 산맥(Tapley Mountains)과 해롤드 버드 산맥(Harold Byrd Mountains) 사이를 남북 방향으로 흐른다.
▲ 남극 누나탁(Nunatak)(사진:David Attenborough Fandom)
레버렛 빙하는 프라이스 피크, 마운트 웹스터, 조지 누나탁(nunatak), 마시 리지, 켈리 누나탁을 지나 북서쪽으로 흐른다.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로스 빙붕으로 흘러 서쪽의 레이놀즈 누나탁과 동쪽의 프리도비치 산 사이로 들어간다.
레버렛 빙하는 스콧 빙하 (Scott Glacier)의 동쪽에서 끝나는데, 산 정상이 피라미드처럼 생긴 누나탁은 빙원이나 빙하로 완전하게 둘러싸인 암봉을 가리키는 이누이트 누나탁(Inuit nunataq) 말에서 유래되었다.
▲ 레브렛 빙하를 걷는 사람(사진:Encyclopedia Westarctica)
레버렛 빙하 이름은 미시간 대학교의 저명한 지질학자인 프랭크 레버렛(Frank Leverett, 1859~ 1943)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프랭크 레버렛은 1663년 링컨셔주 보스턴에서 이주한 가정의 후손으로 1859년 3월 10일 아이오와주 덴마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덴마크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1878년에 공립학교에서 1년 동안 과학 강좌를 가르쳤고, 이후 3년 동안 아카데미에서 자연과학 강사로 활동하며 지질학에 관심을 가졌다.
▲ 프랭크 레버렛(Frank Leverett)(사진:위키피디어)
그는 콜로라도 칼리지와 아이오와 주립 농업 및 기계 예술 대학에 진학하여 광물학과 분석을 공부하였다. 1885년에 이학 학사 학위를 받고 위스콘신주 매디슨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하며 미국 지질조사국에서 현장 조사를 담당했다. 1890년까지 조교로 일하다가 1901년에 지질학자가 되었다. 1년에 평균 200일을 매일 20~30마일 걸었다.
그는 미국 중서부 지역의 빙하를 연구하는 동안 10마일 이상을 기록했다. 1909년부터 1929년까지 미시간 대학교에서 빙하 지질학 강사로 일했으며, 1930년에 명예 과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레버렛은 홍적세 빙하화에 관한 권위자 중 한 명으로 혼자 45,000페이지의 과학 논문을 쓰고 180편 이상의 보고서와 논문을 저술했다.
미국 지질학회와 미국과학진흥협회의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8년에 미국 지질학회의 부회장이 되었다. 레버렛이 사망하기 2주 전에는 조각가 칼튼 W. 안젤(Carleton W. Angel, 1887~1962)이 레버렛의 흉상을 세웠다.
1891년 미국 제1차 남극 탐험대는 그들이 발견한 빙하를 위대한 지질학자 레버렛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현재 남극의 레버렛 빙하, 그린란드의 레버렛 빙하, 워싱턴의 레버렛 호수 및 높이가 30m에 달하는 나무 같은 식물 시길라리아(Sigilaria) 레브렛티는 프랭크 레버렛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 《미쳐버린 배》(사진:글항아리)
남극 탐험가의 글을 쓰면서 송파도서관에 남극 자료를 조사하러 갔다가 걸작 《미쳐버린 배》를 찾아냈다. 이 책은 저자 줄리언 생크턴(Julian Sancton)이 남극 항해에서 돌아온 ‘벨지카’호 선원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추적한 놀랍고 이상한 남극 과학탐사 논픽션이다.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유럽사를 전공하고, 잡지 〈디파처스〉의 선임 편집자로 있으면서 문화와 여행에 대한 글을 많이 썼다. 나중에 원작을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오늘은 일부만 말한다.
1897년 8월 16일 벨기에 안트베르펜 항구에서 31살의 ‘아드리앵 드 제를라슈 드 고메리’ 해군 장교가 다국적 선원 19명을 규합하여 증기기관 범선을 타고 남극을 향했을 때 벨기에 사람들은 정말 마음이 뿌듯해 벨기에 만세를 크게 외쳤다. 당시 벨기에는 네덜란드에서 독립한 지 67년에 불과해 선원도 별로 없고 제대로 된 배도 없어 그린란드에 건너가 배를 구해 ‘벨지카’호로 명명했다.
해군 장교 아드리앵 선장이 지휘하는 이 배에 노르웨이 출신 24살 청년 아문센이 편지를 보내 자기를 남극 탐험 대원으로 뽑아달라고 간청해 선장은 탐험에 합류시켰다. 《미쳐버린 배》에는 젊은 시절 아문센의 활약이 담겨있다. 1911년 12월 14일 아문센의 남극점 탐험으로 노르웨이는 나라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남극 탐험 초기에 탐험가와 과학자는 한 국가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사람들은 극지방 탐험의 결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였다.
▲ 장보고 과학기지(사진:극지연구소)
탐험가 김영미가 레버렛 빙하를 지나 도착하는 곳에 로스해가 있고 한국의 장보고 과학기지가 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