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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5.03.04. 15:06 (2025.03.04. 14:35)

청해진 장도 원목렬, 비자나무 확인...사시사철 푸르고 잘 자라며 약효 많아

 
전남 나주 덕룡산 불회사를 처음 방문한 친구는 불회사의 비자(榧子)나무 숲이 정말 아름다워 놀랐다고 말했다. 불회사 계곡에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등산객은 불회사 석장승을 보고 편백숲을 지나 절에 도착하여 부처님께 참배하고는 덕룡산 정상으로 걸어간다.
청해진 장도 원목렬, 비자나무 확인...사시사철 푸르고 잘 자라며 약효 많아
나주 불회사 비자나무숲
 
 
전남 나주 덕룡산 불회사를 처음 방문한 친구는 불회사의 비자(榧子)나무 숲이 정말 아름다워 놀랐다고 말했다. 불회사 계곡에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등산객은 불회사 석장승을 보고 편백숲을 지나 절에 도착하여 부처님께 참배하고는 덕룡산 정상으로 걸어간다.
 
정상에서는 다시 이정표 있는 곳으로 왔던 길로 돌아 나와 무명봉 길을 택해 깃대봉과 산내 암자 일봉암(日封庵)을 방문하고 급경사 길을 걸어 동백숲이 우거진 도로 쪽으로 내려온다.
 
 
▲ 불회사 숲길(사진;궁인창)
 
 
지난 연말에 스웨덴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2011년에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을 발표했다. 이 소설에는 언어와 한글 구조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숲을 간결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다. 필자는 고결한 비자나무 숲에서 어린이들이 한글 ‘숲’ 놀이하듯이 입을 쑥 앞으로 내밀어 흉내를 따라 했다.
 
“그후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 적기 시작했다. 목적도, 맥락도 없이 그저 인상 깊다고 느낀 낱말들이었는데,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 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은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ㅜ-v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다음으로 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 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산림청은 전국 산림자산에 대한 기초 실태조사를 통해 우리나라에 가치가 있는 숲과 자연물 유형자산이 2,000여 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2014년 4월 ‘홍릉숲’을 1호로 지정하기 시작하여 매년 ‘국가산림문화자산’를 선정하고 있다.
 
전라남도는 2016년 나주 불회사 16,000그루의 비자나무와 차나무 숲을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되었다. ‘비로다’는 비로나무 아래에서 그 이슬을 머금고 자란 찻잎으로 만들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성(茶聖)이라 일컫는 초의선사는 덕룡산에 출가하여 차를 달였다. 정부는 2027년까지 300개의 산림자산을 지정할 계획이다.
 
 
▲ 불회사 국가산림문화자산(사진;궁인창)
 
 
비자나무는 난대성 상록침엽교목으로 사시사철 푸르고 키가 크게 자라고 약효가 많아 전라도와 제주도의 사찰에서 많이 심었다. 나무가 크면 키가 20m에 이른다. 박상진 교수는 비자나무에 관한 문헌 기록 《고려사》을 조사한 결과 고려 11대 임금 문종 7년(1053)에 탐라국에서 비자를 바쳤다는 기록이 최초라고 주장한다.
 
실제 유물로는 전남 완도 청해진 장도 유적 말뚝에 박아 넣은 나무가 비자나무임을 확인했다. 원종 2년(1271)에 원나라에 귀화한 부원배(附元輩) 이추(李樞)가 고려에 와서 원나라 궁전을 짓겠다고 금, 칠, 비자나무를 요구하고 비자 50근을 채취하여 보내 달라고 했다. 1272에는 큰 나무를 요구해 실어 가고 1273년에는 울릉도 나무를 요구해 울릉도작목사가 되었다. 북송 때 학자 서긍(徐兢, 1091년~1153년)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도 고려 토산품 비자가 상세하게 적혀있다.
 
 
▲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출처:국립중앙도서관)
 
 
화가이며 서예에 뛰어난 서긍은 푸젠성 화주(和州) 역양(歷陽) 출신으로 자(字)는 명숙(明叔), 호는 자신거사(自信居士)이다. 그는 정화 4년(1114)에 장사랑에 임명되었다.
 
북송 휘종(재위: 1100~1125)의 명을 받아 고려 17대 임금 인종이 즉위한 다음 해 국신소 사절단(國信所使節團)의 소제할인선예물관(所提轄人船禮物官)에 선발되어 고려에 갈 준비를 하였으나 고려 16대 국왕인 예종(睿宗)의 급작스런 서거로 정사 노윤적(路允迪)과 부사 부묵경(傅墨卿)을 대표로 하는 조문사절단에 소속하여 제전(祭奠)과 조위(弔慰)의 임무를 함께 맡았다.
 
 
▲ 닝보 고려청(사진;궁인창)
 
 
조문 사절단은 특별히 건조한 관선 신주(神舟) 2척에 올라 북송 수도 변경(汴京, 開封)을 선화 5년(1123) 음력 3월 14일 출발해 2달 만에 5월 19일에 전당강 하구인 명주(明州) 정해현(定海縣)에 있는 포구에 도착해 고려에 갈 객주 배 6척을 구해 선단을 구성하였다.
 
사절단 배에는 정사와 부사, 사무를 관장하는 도활관(都轄官)과 제활관(諸轄官), 뱃사람 등 650명이 넘는 인원이 탔다. 정사가 탄 큰 배는 보조 인력이 타는 객주(客舟) 배보다 3배나 큰 전장이 93m가 넘는 선박으로 선원이 160명이나 되었다. 객주의 배는 약 30m의 200톤급 중형 선박으로 선원이 60명이었다.
 
조문사절단은 초보산 항구를 출발하여 주산군도를 지나 고려 흑산도에 이르고 군산도에 도착한 후 해미 마도를 거쳐 자연도(紫燕島, 永宗島)를 지나 강화도 염하에 진입하여 황산도 동쪽 수로(水路)인 급수문(急水門)을 지나 예성강(禮城港) 벽란도에 도착했다.
 
 
▲ 서긍의 항해길(출처:푸른역사)
 
 
사신 일행이 고려에 올 때는 주로 남풍을 이용하고, 영파(明州)로 돌아갈 때는 북풍을 이용해 1123년 음력 7월 13일 고려 개경(開京)을 출발했다. 7월 24일 군산도(선유도)에 이르고 14일간 기상이 안 좋아 배가 나가지 못하고 쉬고 있다가 다시 출항하였으나 곧 바다 날씨가 사나워져 2일 만에 항구로 돌아왔다. 8월 16일 다시 출항하여 8월 20일 흑산도를 지났는데 강풍이 세차게 불어 둘째 배의 보조키가 부러지고 正拖(정타)도 부러졌다. 북송 사절단은 어려운 항해 끝에 42일 만인 음력 8월 27일에 명주 정해현 포구에 도착했다.
 
서긍은 한 달간 고려 개경에 머물면서 상인들과 대화하고 각종 문헌과 자료를 구했다. 그는 뛰어난 관찰력과 기억력이 뛰어나 고려에서 보고 들은 것을 40권에 담아 1124년(宣和 6년) 8월 6일에 완성하여 황제에게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를 올렸다. 처음에 만든 책에는 글과 그림이 있어 도경(圖經)이라 하였으나 1126년 정강지변(靖康之變) 때 원본 책이 소실되었다.
 
1167년 서긍의 조카인 서천(徐蕆)이 남아 있던 부본을 가지고 다시 책을 간행하여 현재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 책이 잘 보관되어 있다. 이 책은 고려 사회상과 정치, 복식, 예술, 해도(海島), 토산품 등을 수록하여 고려 연구에 정말 귀중한 보고(寶庫)이며 나침반이 항해에 사용되었다고 기록한 최초 문헌이다.
 
필자는 2019년 11월 19일 아침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중국 닝보시 호텔을 나서 지하철을 1시간 타고 청수포(淸水浦)를 지나 풍완(楓园)에서 내려 40분간 초보산(招寶山, 92m)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다가 35분 정도 타고 초보산관광특구에 도착했다. 이곳을 찾은 목적은 고려왕조의 사신과 북송의 사신들이 출입한 항구를 보기 위해서였다.
 
 
▲ 150년전 진해(鎭海) 성벽(출처:天下老照片)
 
 
이곳은 해안 방어를 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적인 조건을 가진 곳으로 북송은 고려 사신이 도착하면 반갑게 맞이하기 위해 원풍 원년(1078)에 진해(鎭海) 항제정(航濟亭)을 건립했다. 전단강 하구인 용강과 항주만이 만나는 초보산 포구(浦口) 유지(遺址)를 돌아보니, 포구는 1,000년 전의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초보산이란 이름은 ‘귀한 보물과 재화가 바다에서 물밀듯이 밀려 들어온다.’라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인근에 있는 깊은 갱도가 있는 닝보갱박물관(宁波坑博物馆)과 항공박물관을 2시간 정도 구경하며 일본, 영국, 프랑스 군대와 치열하게 맞서 싸운 중국 인민의 고단한 세월을 감상했다.
 
 
▲ 중국 닝보 초보산관광특구 宁波坑博物馆(사진;궁인창)
 
 
북송 8대 황제 휘종(1082~1135)은 고려를 포함하여 주변국과 원만하게 지내려고 외교적인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여진을 통일한 금(金)나라 태조(太祖) 아골타(1068~1123)가 요를 멸망시킨 후 1127년 송의 수도 변경을 함락시키고 휘종을 포로로 끌고 가서 헤이룽장성 하얼빈 북부에 있는 태백산 오국성(五國城, 坐井观天遗址)에 머물게 하였다.
 
휘종은 끌려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135년에 생을 마감했다. 휘종은 북송의 황제 중 가장 많은 자녀를 두어 왕자가 31명, 공주가 34명이었다.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에는 1167년에 발간된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 40권이 잘 보관되어 있다.
 
조선왕조 때 발간한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비자나무에 대한 기록이 있다. 특히 깊은 사찰에서 생산된 비자는 왕실에서 제사용품으로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비자는 민중에서 배가 아플 때 먹는 구충제와 변비 치료제로 널리 활용되었다.
 
 
▲ 제주 비자림(사진:궁인창, 2018년 12월 20일 촬영)
 
 
현재 국내에 비자나무로 유명한 곳은 백양사 비자나무 숲, 고흥 금탐사 비자나무, 진도 병영면 상만리 비자나무, 강진 삼인리 비자나무,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 사천 성내리 비자나무, 제주 평대리 비자나무 숲(비자림), 화순 개천사 비자나무 숲, 장흥 보림사,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에 비자나무가 있다.
 
 
▲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출처:해남군)
 
 
해남 녹우단 비자나무 숲은 해남윤씨 중시조인 윤효정의 사당 뒷산에 위치한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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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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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