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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인창의 독서여행궁인창의 지식창고 2025.03.13. 19:22 (2025.03.13. 19:21)

바닷가에 100여 일본 병사들의 시신, 수습해 倭德山, 야산 묻고 넋 달래줘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 세상은 우연의 연속이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높이 25m, 둘레 6m의 우람한 비자나무를 만났다. 2021년 7월 22일 범선 코리아나호는 대천해수욕장에서 개최하는 머드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여수 소호요트경기장에서 승객 20여 명을 태우고 새벽 4시 30분에 출항했다.
바닷가에 100여 일본 병사들의 시신, 수습해 倭德山, 야산 묻고 넋 달래줘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
 
 
세상은 우연의 연속이다.
 
전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전남 진도군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수령 600년으로 추정되는 높이 25m, 둘레 6m의 우람한 비자나무를 만났다. 2021년 7월 22일 범선 코리아나호는 대천해수욕장에서 개최하는 머드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여수 소호요트경기장에서 승객 20여 명을 태우고 새벽 4시 30분에 출항했다. 새벽에 배가 출항하면 여명이라 가시거리가 짧아 고생하지만, 오후에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정박지를 선정하는 데 유리하다.
 
배의 항해 목적지는 전남 신안군 도초도(都草島) 해상으로 저녁 7시경 앵커를 내려 정박한다. 배는 백야도 등대를 지나 고흥군 봉래면 나로우주센터 발사대 해상을 지났다. 경관이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섬들을 즐기며 항해를 계속하는데 앞에서 바람이 많이 불어 배의 속도가 나지 않고 배가 많이 흔들렸다. 배를 처음 탄 사람 가운데 멀미 증세때문에 힘들어했다. 오후 2시경에 선박 엔진의 청수 온도가 갑자기 상승해 항해사는 RPM을 조금 낮게 조정했다. 기관장이 가장 가까운 항구로 들어가 검사했으면 좋겠다고 선장에게 보고했다.
 
 
▲ 진도항(사진;궁인창)
 
 
선장은 필자에게 입항이 가능한 항구를 알아보라고 지시해 해양경찰에 전화하여 진도항 입항과 정박지를 요청했다. 해양경찰은 진도항에 선박 시설이 아직 완성되지 않아 마땅한 곳이 없으니 진도항 밖 해상에 앵커를 내리라고 통보했다. 선장은 항구 밖에 앵커링을 원했으나 필자가 항구에 있는 화물선을 발견하고 “부두에 정박한 화물선 선장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떨까요?”라고 선장에게 말하고 화물선에 도움을 청했다. 화물선의 선원은 우리 배가 내일 아침 일찍 출항한다는 말에 바로 승낙해 오후 4시경 화물선 옆에 배를 안전하게 접안하고 계류용 로프로 여러 줄 단단히 고정했다.
 
 
▲ 세월호 추모 등대(사진:궁인창)
 
 
기관장은 엔진을 점검하고 선원들은 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선원 알렉세이는 잠수복을 입고 물속에 잠수하여 스크루에 낀 그물 등 이물질을 모두 제거했다. 필자는 친구에게 작업을 마치면 구경하러 밖에 외출하자고 제안했다. 친구는 배에 남아 기관장을 돕겠다고 말했다.
 
김진극은 20대 젊은 시절에 외국 상선을 타고 지구를 여러 번 돌았던 항해사 출신이다. 필자는 코리아나호가 항구에 도착하면 사진 기록을 위해 부두에 올라와 범선을 촬영한다. 화물선에 기어올라 통로를 유격 훈련받는 것처럼 통과하고 부두에 올라섰다. 범선 타고 팽목항에 자주 입항했지만, 세월호 참사의 아픈 흔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국민해양안전관’ 건설공사로 자재를 가뜩 실은 화물차가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입항 중인 여객선이 신호음을 내고 입항해 아내와 배를 보러 갔다.
 
 
▲ 연안여객선(사진:궁인창)
 
 
연안여객선을 바라보고 세월호 7주기 추모 깃발이 걸려있는 빨간색 등대로 걸어갔다. 남쪽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는 데 착잡한 마음이 일어나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왔다. 학생들의 희생을 추모하며 등대 주변을 계속 서성이며 돌아다녔다.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길’에는 세월호 추모 리본이 바람에 흔들렸다. 천 개의 바람 노래 가사가 타일로 제작되어 있었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의 노래를 틀어 바다에 전했다. 하늘나라 우체통을 오래 바라보았다.
 
 
▲ 하늘나라 우체통(사진:궁인창)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엔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 줄게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당신을 지켜 줄게요.
나의 사진 앞에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 천 개의 바람이 되어(사진:궁인창)
 
 
진도는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이다. 고려 때는 땅이 비옥하고 물산이 풍부해 옥주(沃州)라 불렀다. 고려 무신정권은 원나라에 대항하여 40년간 지속해 싸웠지만, 고려 정부는 원종 11년(1270)에 개성으로 환도를 공표했다. 이때 몽골군에 끝까지 항쟁하던 무신 배중손(裵仲孫)장군과 노영희는 6월 3일 1,000척의 배에 백성을 태워 8월에 진도로 도착하여 용장성(龍藏城)에 새로운 고려 정권을 세웠다. 진도에 거점을 잡은 삼별초 군대가 막강한 세력을 드러내자 이에 놀란 원나라와 고려는 대책을 강구한다.
 
1271년 5월 고려의 김방경과 원나라 혼도가 이끄는 연합군은 진도 삼별초군를 공략한다. 전투에서 삼별초 군대는 전력이 딸려 붕괴하기 시작하자, 병사를 지휘하던 장군 김통정은 거점을 제주로 옮긴다. 몽골군은 전쟁에서 살아남은 1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 이국만리까지 끌고 갔다. 역사에 있어서 전쟁의 희생양은 항상 착한 백성들 차지였다.
 
임진왜란(朝日戰爭) 명량해전이 끝난 후 이순신 함대는 정비차 군산 선유도까지 멀리 후퇴했다. 이때를 틈타 일본 수군은 진도에 상륙해 보복을 감행하며 양민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울돌목에서 15리 거리에 있는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에는 정유재란 순절자 묘역이 있다.
 
순절 묘역에는 정유재란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조응량(曺應亮), 박헌(朴軒, 병조참판 추증), 김성진(金聲振), 김홍립(金弘立), 조명신 묘를 비롯한 총 232기 무덤이 있다. 유연 묘는 16개, 무연 묘 200여 기는 북쪽 울돌목을 바라보고 있다. 2001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6호로 지정되었다.
 
 
▲ 진도 정유재란 순절자 묘역(사진: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명량해전이 끝나고 울돌목에서 10km나 떨어진 진도군 고군면 내동마을 바닷가에 100여 구의 시신이 떠밀려왔다. 바닷가 주민들은 매우 놀랐지만, 일본 병사들의 시신을 수습해 왜덕산(倭德山, 150m) 양지바른 야산에 묻어주었다.
 
바닷가 내동마을 주민들은 400여 년을 한결같이 묘역을 돌보며 병사들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매년 한식과 추석이 다가오면 마을에 사는 노인들이 일본 수군 묘역을 찾아가 소주와 오징어를 차려놓고 병사들의 넋을 달래주었다.
 
왜덕산은 적군에게 덕을 베풀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진도 기자가 왜덕산에 얽힌 슬픈 사연을 듣고 마을 노인을 찾아가 취재해 보도했다. 이 소식은 일본에 전해졌다,
 
명량해전 당시 일본군의 적장이었던 구루시마 미치후사(來島道總, 1561~1597) 장군의 후손들은 진도 명량대첩 축제에 참석한 후 왜덕산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426년 동안 조상의 무덤을 보호해 준 진도 군민과 내동마을 주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 >>+ 진도 왜덕산(倭德山) 묘역(사진:한겨레)
 
 
일본 적장은 후쿠시마 마사노리의 제5번대 소속으로 충청도에 진격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수군이 매우 뛰어난 활약상을 보이자,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부대를 수군으로 개편했다. 적장은 해전의 천재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일본 세토 내해에 있는 무라카미(村上) 수군 장수의 딸로 무라카미 수군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고 병사들은 매우 용감했다. 적장은 명랑해협 전투에서 조선 수군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제독과 맞서 싸우다 죽은 이요국(伊予国, 시코쿠 에히메현) 다이묘(大名)이다.
 
명량해전은 전투가 치열하여 조선 수군도 전사자가 발생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거북선 건조에 참여하고, 이순신이 위급상황을 맞이할 때마다 나타나 도움을 주고, 해상 전투에서 항상 선봉에 나서 성룡(成龍), 위룡(爲龍), 이룡(而龍), 화룡(化龍) 4형제를 데리고 돌진했던 무신 마하수(馬河秀, 1538~1597)가 왜적이 쏜 탄환에 전사(戰死)해 애석(哀惜)해했다. 조정에서는 마하수를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경기도 충현사(忠顯祠) 배향하였다.
 
 
▲ 조선의 영웅 마하수 (사진:궁인창)
 
 
진도문화원은 2022년 9월 23일 제1회 진도 왜덕산 심포에스타 국제학술대회 ‘하나의 전쟁, 두 개의 무덤‘이란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되어 진도 왜덕산과 교토의 귀무덤을 조명하였다. 왜덕산 위령제 행사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를 비롯하여 100여 명의 일본인이 참석했다.
 
추모사를 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은 한때 여러분들에게 큰 고난을 안겨주었다. 우리의 죄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더는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계속 사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본 청소년들이 화해와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진도 지역 수학여행을 다녀갔다.
 
 
▲ 제1회 진도 왜덕산 심포에스타 국제학술대회(출처:뉴스진도)
 
 
날이 너무 더워 음료수를 사러 마트에 들어갔는데 일행들이 있었다. 서정매 선생이 아이스크림을 건네면서 “가까운 사찰에 구경 가요?”라고 말해 “이곳은 택시가 없어 진도읍에서 택시가 오려면 오래 걸린다.”라고 말했다. 서 선생은 구암사(鳩巖寺) 절에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주지 스님이 계셔서 곧 오신다고 하였다. 20분쯤 지나니 진짜 승용차가 나타났다. 우리 일행은 주지와 인사를 하였다. 승용차가 사찰로 향할 때 “일몰 시간이 되어가니 세방낙조를 보고 가면 어떨까요?”라고 말했다. 일행이 “세방낙조를 구경하지 못했다.”라고 말해 서쪽으로 차 방향을 돌렸다.
 
 
▲ 세방낙조(사진;궁인창)
 
 
진도 최고의 명소인 가학리 세방낙조전망대 앞에는 잠두도, 솔섬, 곡섬, 각홀도, 불도, 주지도, 양덕도, 혈도, 광대도, 장도, 가사도, 성남도, 외병도, 상조도, 하조도, 마도 등 많은 섬이 보인다. 바다로 들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정중하게 배웅하였다. 세방낙조를 구경하고 여귀산(女貴山 458.4m) 동쪽의 해발 150m에 있는 임회면 상만리 구암사로 향했다.
 
 
▲ 서해 낙조(사진;궁인창)
 
 
구암사는 예전 상만사지(上萬寺址)에 있던 절터 근처에 세워진 절로 1930년대 동네 부녀회장이 고려 절터에 있던 미륵불에게 치성드린 뒤 아들을 낳아 작은 절을 지어 미륵을 모셨다. 미륵부처님의 영험한 소식을 들은 섬 주민들이 절을 찾고 인근 어장의 선주들이 배의 안전을 기원하는 용왕제를 지내고 비구니 스님을 모셔왔다.
 
구암사 주차장에서 내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데 “또다시 그리운 그곳 돌아보니 구암사”는 팻말이 보였다. 구암사 이름이 독특하여 스님에게 절의 유래를 물으니, 스님은 “사찰 이름은 절터에 있는 비둘기 바위 이름을 따서 구암사(鳩巖寺)로 지었다.”고 알려주었다.
 
 
▲ 구암사 마애불상(사진;궁인창)
 
 
구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수덕사 말사로 경내가 아주 정갈했다. 극락보전 앞에는 통일신라시대 석탑 양식을 따른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 제10호(지정일 1972.1.29.) 상만리(上萬里) 오층 석탑(높이 3.8m )이 세워져 있고, 법당 안에는 1950년대 농민들이 밭에서 일하다 발견한 작은 마애불상이 있었다.
 
문화유산청 김란기, 강찬석 문화재전문위원이 진도 답사에 나섰다가 발견하고 고려시대 석상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연꽃 좌대가 있었으나 나중에 떨어져 나갔다. 구암사는 공양주가 없이 승려 혼자 밭을 일구고, 음식을 만들고, 도량을 관리했다. 일을 많이 한 흔적이 손에 보였다.
 
법당에 들려 참배하고 나오니 차와 다과를 내주어 담소하였다. 대화하다가 필자가 다음 날 아침 새벽 5시에 배가 서해 어업 전진기지인 어청도로 출항하기 때문에 서둘러 귀가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인사를 드렸다. 아내와 일행은 절에 우란분절 천도 등을 신청했다.
 
주지는 마당에서 달을 보며 날씨가 맑은 날에는 구암사에서 바다 위에 추자도, 제주도 한라산이 보인다고 말했다. 구암사에서 주차장으로 걸어 내려오니 100m 정도 떨어진 길가에 비자나무가 보였다. 1962년 12월 3일에 천연기념물 제111호로 지정된 수령이 600년이 넘은 비자나무는 어두운 밤에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웅장했다.
 
 
▲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사진:국가유산청)
 
 
주지는 사찰 인근에 국립남도국악원, 송곡저수지, 귀성성당, 아리랑마을 관광지, 나절로미술관, 굴포항이 있어 관광객이 구암사를 많이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저녁 9시가 되니 세상이 칠흑같이 어두워 하늘에 별이 또렷하게 빛났다. 승용차를 타고 진도항 주차장에 도착해 감사 인사를 드렸다.
 
부두에서 배를 보니 사방이 깜깜해 내려갈 곳이 보이지 않았다. 진입할 곳이 없었다. 배로 가는 길이 미로처럼 험난했다. 부두 옹벽을 타고 간신히 내려와 화물선에 들어왔는데 통로에 장해물이 많았다. 바닥은 기름으로 미끄러웠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하여 유격 훈련하듯 범선 코리아나 호에 승선했다. 세상은 정말 우연의 연속이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작성】 궁 인창 (생활문화아카데미)
▣ 참조 지식지도
▣ 다큐먼트
▣ 참조 정보 (쪽별)
◈ 소유
◈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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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