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진전(불영사) - <동지와 불교설화>- 팥죽 묻어있는 나한상에 얽힌 이야기
불교에서는 동지팥죽에 얽힌 설화가 있다. 갑오년(1892) 동지 날에 있었던 일이다. 경북울진 불영사 공양주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팥죽을 쑤려고 부엌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살펴보니 불씨는 꺼지고 재만 남아 있었다.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야 하는데 절 안에 남은 불씨는 없고, 언제 불을 지펴 죽을 쑬 지 공양주 스님은 앞이 캄캄하기만 했다.
스스로 자책을 하던 스님은 불씨를 얻기 위해 아랫마을 휘씨 댁으로 갔다. “아궁이에 불씨가 꺼져 불씨를 얻으러 왔다”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스님에게 휘씨 댁 노인이 말했다. “새벽에 웬 어린아이가 절에 불씨가 꺼져 부처님께 팥죽공양을 못 올리게 되었으니 불씨를 달라고 찾아왔습니다. 불씨를 얻으러 온 아이가 하도 추워하기에, 팥죽 한 그릇 주었더니 다 먹고 돌아가던데요. 아니 아무리 불씨가 없어도 그렇지 춥고 어두운 새벽에 불씨를 얻어오라고 어린아이를 보내면 되겠습니까.”
공양주스님은 노인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며 급히 절로 돌아갔다. 절에 도착해 공양간에 들어가니 아궁이에 장작불이 활활 타고 있던 것이다. 공양주 스님은 자신도 모르게 “나한성중”을 외치며 팥죽을 쑤었다. 공양주 스님은 팥죽공양을 올리기 위해 나한전으로 갔다. 여러 나한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중의 한 나한상의 입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동지가 되면 팥죽을 쒀 올리고 기도를 하고 있다.
나한이란 “번뇌-속박에서 벗어난 아라한” 16나한-500나한 신앙은 중생제도 믿음 반영한 것
아라한은 범어 아라하트(arahat)의 음역으로 보통 줄여 ‘나한’이라고 한다. 아라한을 한자(漢字)로 응공(應供)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양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존경 받을 만한 사람을 의미한다.
부파불교 당시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 즉 부처님을 가리키는 명칭이 바로 아라한이었다. 후에 부처님과 아라한이 구별돼, 부처님의 제자가 도달하는 최고 깨달음의 경지를 의미하게 됐다. 넓은 의미에서는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뜻한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온갖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중생의 몸에서 부처의 몸으로 향상된 것이니, 아라한이라 하면 바로 부처의 경지를 이룬 사람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통상 16나한과 500나한을 자주 말한다. 16나한은 부처의 경지에 오른 16명의 나한들을 말하는 것이고, 500나한 역시 부처의 경지에 오른 수행자를 말한다. 〈입대승론〉 〈법화경〉 〈사분율〉 등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이들 16나한과 500나한은 실재했던 인물들이다.
16나한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교화를 받고 아라한과를 증득한 열여섯 명의 부처님 제자를 일컫는다. 그런데 이들은 부처의 경지에 오른 수행의 결실을 맺었지만, 제각기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집단으로 숭배되는 특별한 점이 있다. 그들이 깨달음을 완성하고도 중생계에 머물며 중생을 제도한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 〈입대승론〉에는 ‘부처님이 열반하실 때 16나한에게 부처님 입적 후 교단을 보호하고 지킬 것을 부촉하셨다’는 내용이 있는데, 여기의 16나한이 바로 부처님 수제자들이며, 삼계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수행력과 지혜를 갖추고 있는 인물들이다.
16나한이 신앙의 대상인 것처럼 500나한도 중요한 신앙의 대상이다. 500나한 역시 실재했던 부처님의 상수제자들임을 경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아함경〉에는 부처님께서 500나한들을 위해 코살라국 사위성에서 설법하신 것을 전하고 있으며, 매월 16일에 부처님께서 친히 법을 설하셨다는 기록도 전한다. 500명의 제자들이 부처님에게 수기를 받는 장면 역시 〈법화경〉 ‘오백제자 수기품’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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