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고인돌 대부분, 인도 태평양 해안지역 분포돼 세계문화유산 등재 화순 고인돌 유적공원
기원전 10세기경 청동기시대 유적인 전남 화순 고인돌을 보려고 친구들과 고인돌 유적공원을 방문했다. 고인돌은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大薪里) 일대에 있는데, 1995년에 목포대박물관 조사팀이 처음 발견하여 1998년 9월 17일 사적 제410호로 지정되고 2000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반도에는 약 4만여 기 이상의 고인돌이 있다. 이 고인돌은 지석묘(支石墓), 독바우, 바우배기, 거북바위, 칠성바위 등으로 불린다. 고인돌은 순수한 자생설과 외부 전파설이 있다. 화순 고인돌은 화산암 계통의 응회암으로 바둑판식(기반식, 남방식)과 개석식으로 나뉘며 곤지산(坤芝山)과 만지산(万芝山) 남쪽 산기슭, 보검재(188.5m) 계곡을 따라 5km 주변에 596기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보검재는 효산리와 대신리를 잇는 길로 바닥에 자갈이 많아 사람들의 왕래가 없어 고인돌 유적이 잘 보존될 수 있었다.
▲ 화순고인돌공원 핑매바위(사진:궁인창)
화순 고인돌 유적공원의 핑매바위는 길이 7.3m, 높이 4m, 무게 280톤이 넘는다. 이는 부족장의 권력과 부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핑매는 ‘돌을 던진다.’라는 뜻이다. 탐방로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관청바위 고인돌지구, 달바위 고인돌지구가 나타난다.
감태바위 고인돌군에는 140기의 고인돌이 있고 인근 야산에 채석장 흔적을 볼 수 있다. 영산강과 나주 지역에는 약 2만 개의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 남방고인돌은 지하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얹는 구조로 고인돌의 전체 외형이 지상에서 드러나지 않으며 벼농사와 관련이 있어 농경지 주변에서 쉽게 고인돌을 볼 수 있다.
▲ 화순고인돌공원(사진:궁인창)
중앙대 송화섭 교수는 전라도의 남방 고인돌 중 ‘고창식 고인돌’을 해양문화적 시각에서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 교수는 20년 넘게 부안 죽막동(竹幕洞) 제사 유적지를 연구하고 논문을 발표하였는데, 중국 보타낙가산 남해관음(白衣觀音)이 사단항로를 따라 부안 죽막동 해변굴로 건너와 개양(開洋)할미로 화신(化身)하였다고 보았다.
▲ 개양(開洋)할미(사진:디지털부안문화대전)
개양할미는 기암절벽 수성동에서 사는데 몸이 크고 굽이 있는 나막신을 싣고 바다를 자유롭게 걸어 다녔다. 할미는 바다의 풍랑을 잠재우고, 조기를 잡으러 먼바다에 나간 칠산어장의 어부들을 항상 보호했다. 바다는 어머니의 품처럼 평온하지만, 일기가 나빠지면 파도가 크게 높아지고 폭풍이 불어오면 어부들이 조업하다 풍랑으로 곤경에 빠졌다. 이런 상황을 바라본 개양할미는 바다로 나가 어부를 구해주었다.
어부들은 개양할미를 여신으로 받들어 모시고 제사를 지내어 두려움 없이 바다로 향했다. 지금은 개양할미가 살던 천연기념물 후박나무 숲이 파괴되었다. 관광객을 위한 산책길을 만들고 서양 꽃을 심으면서 아름다운 조릿대 숲을 모조리 베어 버려 개양할미는 오래 머물던 평온한 집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 인도네시아 숨바섬 탁자식 고인돌(사진:송화섭)
송화섭 교수는 세계지도에서 고인돌 분포 지역은 모두 바닷가나 해안 지역으로 인도 태평양의 바닷길을 따라 인도네시아 숨바 섬에서 중국 남부 윈저우시 지역과 일본 남부 규수를 거쳐 한반도로 올라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창 고인돌이 인도네시아 고인돌 방식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현재 고창 고인돌은 고인돌박물관 인근 죽림리와 도산리 일대 447개만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고 인근에 1,500여 기는 등재가 되지 않았는데 빨리 지정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 중국 원저우시 瑞安棋盘山石棚墓(사진:위키피디아)
송 교수는 환태평양에서 환류하는 해양 기류에 따라 쿠로시오 해류가 인도네시아 지방의 고인돌 문화를 다른 지역으로 전파했다고 주장한다. 현재 중국 저장성(浙江省) 원저우(溫州) 지역의 루이안(瑞安) 치판산(琪盤山), 핑양(平陽) 룽산터우(龙山头及), 창난(蒼南) 퉁차오(桐桥) 지역에 분포된 고인돌은 모두 13기로 기원전 17세기 유물이다. 원저우 해안 지역 고인돌 유적 발굴은 1993년에 시작하여 상주(商周)시대 출토물이 대량 발굴되었다. 인도네시아 숨바 섬은 제주도보다 4배나 크며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고인돌을 만들며 독특한 전통 가옥과 문화유적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
▲ 인도네시아 동숨바 고인돌(사진:Erna Sudina)
아일랜드 클레어 카운티 부렌(Burren)에는 강화 고려산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 형태의 대형 거석 기념물이 있다. 이 고인돌은 기원전 4200년~ 2900년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유산으로 아일랜드에서 발견된 172개 고인돌 중 가장 규모가 거대하다. 학자들은 원래 무덤을 건립할 때는 종교의식을 행하고 무덤에 거대한 봉분을 만들어 흙으로 모두 덮었지만, 세월이 지나 몸체만 남았다고 보았다. 1986년에 문화재 발굴을 하였는데 그 안에서 후기 청동기시대 유해 33구가 묻혀 있는 것을 확인했다.
▲ 아일랜드 플라브론 규석 고인돌(사진:PIXABAY)
지건길(池健吉, 1943~ ) 교수는 광주시에서 태어나 어릴 때 집 근처 무덤가에서 놀았다, 그는 어릴 때 보고 놀았던 무덤이 좋아 서울대 문리대 고고인류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와 김원룡 박사의 소개로 1968년 6월 말 문화재관리국에서 근무를 시작해 전국에 산재한 문화재 발굴 현장에서 보조원으로 일하며 8년을 지냈다. 이후 국립부여박물관장을 역임하고 1974년~1975년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프랑스 기메박물관과 루브르연구소에서 고고학을 연수하였다.
프랑스로 두 번째 유학을 떠난 것은 유럽 거석문화의 동서양 비교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서유럽에서는 신석기시대 중엽부터 청동기까지 기원전 5000년~ 기원전 2000년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거석문화가 만들어졌지만, 동북아에서는 기원전 1000년경에 고인돌이 조성되었다. 그는 1979년으로 프랑스 렌(Rennes) 대학교에 가서 유럽 거석문화 고인돌을 전공해 38세 되던 해 1981년 6월 29일에 학위 논문 〈서유럽의 거석문화를 통해 본 동북아시아 거석문화의 형식, 편년, 기원 문제〉이 통과되어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고학이란 현지 실사(Field Archaeology)와 이론 고고학이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집에서 가까운 거석 유적들을 돌아보았다. 귀국하기 전에 두 달간 8년 된 중고 자동차를 사서 가족과 함께 미슐랭 지도를 들고 프랑스 남부에 있는 유적지 탐방에 나섰다. 그는 공주 무령왕릉 발굴과 천마총 발굴에도 참여했고, 공채 1호로 2000년에 제7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했다.
▲ 이영문 소장(사진;동북아지석묘연구소)
요르단 13개 지역(Head, Megat, Paha, Swima, Dami, Khrasan, Mountain Montauk, Hotness and Sagoon, Leisa)에는 2,400개의 고인돌이 남아있다. 영국 장교 쿤다르의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요르단에 있는 고인돌의 매장지와 무덤의 수는 12,000여 개가 있지만, 농민들의 농경지 개척, 금광 개발로 그 수가 크게 줄었다고 기록했다. 요르단의 마다바(Madaba) 지역에 있는 선사 시대 고고학 유적지 무라이갓(Murayghat)은 후기 구석기시대와 초기 및 중기 청동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고고학적 발견은 신석기시대(기원전 8000년)와 이슬람시대(서기 1500년)로 올라간다.
무라이갓 유적지는 고인돌, 동굴, 선돌, 돌고둥 등 다양한 고고학적 특징을 지닌 여러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회암 채석장이 있어 네덜란드 코펜하겐 대학의 수잔 케르너(Susanne kerner) 박사가 운영하는 무라이갓 의례 경관 프로젝트로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 요르단, 시리아, 팔레스타인, 레바논 지역은 과거 레반트(Levant: 해가 떠오르는 곳)란 지리적 지명으로 불리며 그동안 ‘잃어버린 문명’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이스라엘 고고학자가 조사한 결과 고인돌 암면(巖面)에서 얼굴과 암각화가 발견되고 학계에 보고하였다. 레반토 지역의 고인돌 유적은 중동 지방의 대표적인 거석 유적이다.
▲ Johfiyeh Jordan Ahmed Telfah(사진:요르단관광청)
한국청동기학회는 2007년 4월에 청동기시대를 연구하는 소장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했다. 목포대 이영문 교수는 2009년에 한국청동기학회장을 하였는데, 그는 프랑스의 고인돌을 방문하여 무덤방과 유럽의 다장제 장례 풍습을 확인했다. 프랑스의 고인돌은 영국의 거석문화인 스톤헨지보다 2,000년이나 앞선 정착민의 무덤 형태이다. 그는 2003년에 재단법인 동북아지석묘연구소를 설립해 화순 고인돌 유적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 프랑스 드 바그뇌 고인돌(Dolmen de Bagneux)(사진:위키피디아)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사우르 인근 드 바그뇌 마을 고인돌은 길이 18.5m, 높이 4m로 기원전 3000년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상부에 거대한 석판이 있다. 1926년에 발견된 스페인 과달페랄 고인돌은 기원전 5000년으로 추정되며, 2022년 8월 스페인 남부에서 발견된 우엘바 선돌은 기원전 6000년 전에 축조된 높이 2~10m의 돌기둥 526개로 이루어진 거석단지로 2026년까지 발굴을 계속하며 관광객을 위한 탐방로를 계획하고 있다.
▲ 스페인 남부 우엘바 선돌(사진:우엘바 대학)
경남 김해 구산동 고인돌은 2006년 구산동 택지개발지구 공사 당시 땅속에서 길이가 10m, 너비 4.5m, 높이 3.5m, 상석 무게 350톤 지석묘와 길이 100m, 폭 19m의 깬돌이 묘역에 깔려있었다. 김해시는 2019년 12월 5일 국가사적 지정을 신청하기 위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2020년 12월부터 예산 16억을 들여 복원 정비공사를 하였다. 김해시는 2022년 8월에 유적 주변 박석을 걷어내면서 문화재청 협의 없이 현상을 변경하고 법을 위반해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켜 국가사적 신청을 자진 철회하였다.
▲ 김해 구산동 고인돌(사진;김해시)
고인돌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우주관과 제천의식을 반영하는 중요한 유물이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
생활문화아카데미 대표 궁인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