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384강 강의자료 요약 (2025.5.15)
2025년 5월 15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唐詩 300首
1) 당시 제목: “검객” 2) 당시 중국어 발음 劍 客 - 賈 島 十 | 年 | 磨 | 一 | 劍 | shí | nián | mó | yī | jiàn | 霜 | 刃 | 未 | 曾 | 試 | shuāng | rèn | wèi | céng | shì | 今 | 日 | 把 | 示 | 君 | jīn | rì | bǎ | shì | jūn | 誰 | 有 | 不 | 平 | 事 | shuí | yǒu | bù | píng | shì |
3) 작자: 가도(賈島) 당나라 중기의 유명한 시인으로, 자는 랑선(浪仙)이며, 현재의 베이징 근처인 범양(范陽) 출신입니다. 그는 779년에 태어나 843년에 사망하였으며, 초기에는 불교에 귀의하여 승려로 생활하다가 후에 환속하여 시인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 생애와 경력 가도는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고, 불교에 출가하여 법호는 무본(無本)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나중에 장안 근처의 청룡사(靑龍寺)로 옮겨 시작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시는 주로 자연과 고독한 정경을 묘사하며, 특히 오언율시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가도는 맹교(孟郊), 장적(張籍), 요합(姚合) 등과 교류하며 시명(詩名)을 떨쳤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과거 시험에 응시했으나 번번이 낙방하였고, 이에 실망하여 당시의 과거 제도를 비판하는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만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장강주부(長江主簿)라는 직책을 맡게 되었고, '가장강(賈長江)'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가난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었고, 결국 쇠고기를 과식한 후 여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 문학적 특징 가도의 시는 주로 고독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며, 현실 생활을 반영하기보다는 자연 풍경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독창적인 예술적 면모를 보여줍니다. 특히, "퇴고(推敲)"라는 표현은 그가 시를 쓸 때 '敲'와 '推' 중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고민하던 일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일화는 한유(韓愈)와의 교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도가 한유에게 조언을 구한 후 '敲'를 선택하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가도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은자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고(尋隱者不遇)"는 그가 은자를 찾으러 간 이야기로, 소나무 아래에서 동자와의 대화를 통해 스승의 행방을 묻는 내용입니다. 이 시는 간결한 언어로 깊은 의미를 전달하며, 그의 시적 재능을 잘 보여줍니다.
- 유산과 영향 가도의 시는 후세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은 당대의 문인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는 '고음(苦吟) 시인'으로 불리며, 그의 시는 후에 많은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또한, 그의 시적 기법과 언어 선택은 후대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가도는 당나라 시인들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의 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유비(劉備) 161~223 • 정치적으로 : o 인덕(仁德)과 명분 중시 : 유 없는 '인(仁)'을 숭상하고 백성을 자비히 여기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한(한)나라 황실의 후손 내세워 한 왕조의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백성을 정치적으로 펼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o 정통성 : 유 아저씨 한나라를 지지한다는 명분을 중요시하여, 조조에 책임있는 국회의 구심점 역할을 합니다.
• 특징 : 좌우측 o 중력함과 겸손함 : 유 키보드 겸손하고 당당한 성품으로 묘사하고, 제갈량, 관우, 장비 등의 반발 폴리머를 끌어모으는 원동력이 됩니다. o 결단력이 없는 : 우유부단하고 결단력이 벗겨지는 부분을 다루며, 중요한 순간에 관여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o 인간적인 매력 : 그는 사람의 마음을 소수잡은 인간적인 매력을 뛰어난 데 도움을 주며, 인간의 믿음을 예외적으로 탁월합니다. 조조는 이러한 유비의 인간적인 매력을 경계한다. o 도원결의 : 유비, 관우, 장비는 정말 소설 속 허구이지만, 도원결의를 통해 의형제를 맺고 영원히 의를 저버리지 않는 모습은 유비의 인물됨을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조조(曹操) 155~220 • 정치적으로 : o 실리주의 : 조조는 명분보다는 오히려 자산을 바라보는 실리주의적인 정치적가이다. o 법가적 통치 : 능력주의를 바탕으로 선수를 등용하고, 법과 규율에 따른 통치 통치를 강조한다. o 절단 : 절단전제를 절단하여 농업 생산력을 제외하고, 사회 경제적 안정을 돕는 데 도움을 줍니다.
• 특징 : 좌우측 o 어색한 능력 : 조조는 반사 지략과 통솔력으로 방해가 되는 시대를 헤쳐나가는 카리스마적인 융이다. o 냉철함과 잔혹함 : 목적을 위한 도구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철하고 잔혹한 면모를 찾습니다. o 간웅 : 『삼국지연의』에서는 '간웅(奸雄)'의 이미지로 해석, 그의 실리적인 유동적 변화와 팽혹한 성격이 강조된 결과이다. o 조 기자는 반성하는 자격 을 갖고 있어, 많은 시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손권(孫權) 182~252 • 정치적으로 : o 강동(江동) 기반 : 손권은 아버지 손견과 형 손책으로부터 물려받은 강동 지역을 상대로 통치하는 데 관여한다. o 유연한 외교 : 유비와 조조 사이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외교를 펼치며, 차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 특징 : 좌우측 o 적벽대전에서 조조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 예시이다. o 용인술 : 주유, 노숙, 여몽 등 반발 대우를 등용하여 국가의 기틀을 다진다. o 소극적인 재킷 모 : 조조나 유비에 비해 천하통일에 대한 야망이 충분하지 않고, 수에 대해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33강(2023,12,07) 강의 교안 * 《史記》〈周本紀〉 注釋 1. 歸 - 《說文解字》「女嫁也。从止婦省,𠂤聲」
1) 여성 出嫁, 2) 원래 자리로 돌아오다, 」 3) 돌려주다, 4) 한 곳에 모이다, 5) 귀속하다, 6) 칭찬(찬동), 7) 자수하다, 8) 근본(宗旨),
9) 結局(歸宿), 최종귀착, 《周易》〈繫辞下〉「天下同歸而殊涂」 천하 사람들의 최종 귀착지는 같아도 가는 길은 다르다.
10) 計算,結算, 《儒林外史》第二一回「到晚,牛浦回家,問着他,總歸不出一个清賬」 저녁이 되어 우포(牛浦)가 집에 돌아왔다. 그에게 물어보았다. 결국 하나의 결산한 장부가 나오지 않았다.
11) 최후에, 《孟子》〈萬章上〉「聖人之行不同也,或遠,或近;或去,或不去;歸潔其身而已矣」 성인의 어떤 행위 방식은 다르다. 속세를 멀리하거나, 혹은 가까이하거나 또는 속세를 떠나거나 혹은 떠나지 않거나 하지만 결국 그 자신을 고결하게 할 뿐이다.
12) 饋와 통한다. 贈送, 《詩經》〈靜女〉「自牧歸荑,洵美且異」 교외 목(牧)으로부터 돌아와 백모초를 주었다. 확실히 예쁘고 또 특이하구나.
宮(궁) 왕이나 제후의 거처이자 정치 중심지인 ‘궁궐’을 뜻함. 도시의 핵심 공간으로, 왕권과 통치의 상징. 城(성) 방어와 행정의 중심이 되는 성곽 도시.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벽과 도시의 경계를 의미. 郭(곽) 성(城) 바깥에 위치한 외곽 지역이나 외성. 도시의 확장된 생활 공간이자 상업·주거지로 활용됨. 都(도) 국가나 지역의 정치·행정 중심지인 수도. 왕조의 중심 도시로, 전국 통치의 본거지. 邑(읍) 성보다 작은 규모의 마을 또는 취락. 행정 단위로서 지방의 중심지 역할도 함. 郊(교) 성이나 읍의 외곽, 즉 교외 지역. 농경지나 제사, 사냥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 州(주, 牧) 광범위한 지역을 관할하는 행정 구역. ‘牧’은 주를 다스리는 관리(주목)를 의미하며, 후대에는 지방 행정의 기본 단위로 발전. 野(야) 도시나 읍의 경계 밖에 있는 들판, 즉 시골이나 농경지. 林(림) 숲이나 산림 지역. 농경지와 구분되는 자연 환경. 鄙(비) 도시나 읍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 또는 변방 지역. 중심지에서 멀수록 ‘鄙’로 인식. 坰(경) 성이나 읍의 경계에 인접한 들판. 도시와 시골의 중간 지대.
13) 愧와 통한다. 慚愧, 《戰國策》〈秦策一〉「形容枯槁,面目犁黑,狀有歸色」 형색은 초치하고 얼굴은 검고 모양은 부끄러운 기색이다.
* 歸寧 ~ 시집간 애가 친정에 부모 뵈려 가는 것 =귀성(歸省)=귀친(省親)= 탐친(探親)
* 주나라 수도 1) 주원(周原) 현재의 중국 섬서성(陕西省)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주나라의 시조인 고공단부(古公亶父)가 이곳에 정착하면서 주나라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주원은 주족이 농업을 발전시키고 세력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지역입니다.
2) 호경 상나라의 정복: 주나라는 기원전 1046년에 무왕(武王)의 지휘 아래 상나라를 정복하고, 호경을 수도로 삼았습니다. 이는 주나라가 상나라의 지배를 종식시키고 중원의 새로운 지배자로 자리 잡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주나라의 수도 호경(鎬京)은 본래 풍(豊)과 호(鎬) 두 지역을 합쳐서 이루어진 도시입니다. 풍(豊) : 주나라 문왕(文王)이 도읍으로 삼았던 곳으로, 현재의 중국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서쪽에 위치했습니다. 호(鎬) : 주나라 무왕(武王)이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수도로 정한 곳으로, 풍의 동쪽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 두 지역은 서로 가까이 위치하여 함께 **풍호(豊鎬)**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서주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시안 서남쪽 풍하(灃河) 부근에 두 성터의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3) 낙읍 유왕의 폭정과 외적의 침입: 기원전 771년, 유왕은 자신의 후궁인 포사(褒姒)의 사랑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였고, 이로 인해 제후국들과의 관계가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견융(犬戎)이라는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되었고, 유왕은 이 공격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주나라 왕실의 권위와 통치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정치적 혼란과 수도 이전: 유왕의 죽음 이후, 제후들은 새로운 왕으로 평왕(平王)을 옹립하였고,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기는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낙읍은 호경보다 동쪽에 위치하여 외적의 공격에 대한 방어가 용이한 지역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주나라의 서주 시대가 끝나고 동주 시대가 시작되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 주나라 왕실의 태간(太姜), 태임(太任), 태사(太姒)는 주나라의 중요한 여성 인물들이다.
1) 태강(太姜) • 남편: 주 태왕(周太王, 고공단보, 古公亶父) • 공적: 태강은 주나라의 초대 왕인 태왕의 아내로, 주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주왕조의 기초를 세운 인물로, 후에 주 문왕과 무왕의 어머니로서 왕실의 덕을 이어가는 데 기여했습니다.
2) 태임(太任) • 남편: 주 문왕(周文王, 희창, 姬昌) • 공적: 태임은 주 문왕의 어머니로, 문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의 정치적 기반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태교를 잘하여 문왕을 훌륭한 왕으로 키웠으며, 후에 주나라의 건국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태임은 또한 시어머니 태강을 잘 섬기고, 며느리 태사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 신사임당의 당호 '사임당(師任堂)'이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太任) 황후를 본받는 다는 의미에서 임(任)을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3) 태사(太姒) • 남편: 주 무왕(周武王, 희신, 姬發) • 공적: 태사는 주 무왕의 아내로, 무왕이 상나라를 정복하고 주나라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는 무왕과 함께 왕실의 내조를 잘하며, 많은 자녀를 낳아 왕실의 후계자를 양육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태사는 또한 왕실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노력한 인물로, 후세에 걸쳐 이상적인 여성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이 세 인물은 주나라 왕실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덕행과 내조는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들은 유교에서 이상적인 여성으로 숭상되며, 태교와 자녀 교육의 모범으로 여겨졌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34강(2023,12,14) 강의 교안
*《論語》〈里仁〉 4-06.子曰:我未見好仁者; 惡不仁者。好仁者,無以尙之;惡不仁者,其爲仁矣,不使不仁者加乎其身。有能一日用其力于仁矣乎? 我未見力不足者。蓋有之矣,我未之見也。
나는 인덕 실행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자와 인덕을 아주 미워하는 자를 보지 못했다. 인덕을 완전히 좋아하는 자는 그 인덕을 실행하는 것을 이긴 사람이 없다. 인덕을 실행하지 않는 것을 완전히 미워하는 자는 그 인덕 실행하는 거다. 인덕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추가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능히 하루라도 그 인덕 실행에 힘쓰는 사람이 있는가? 나는 그 인덕 실행에 힘쓰는 게 부족하다 라는 사람을 못 보았다. 아마도 인덕 실행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해도 나는 아직 그런 사람 보지 못했다.
* 주석 1) 好 - (그냥 좋아하다가 아니고)완전히 좋아하다(愛好) 2) 好仁者 - 仁德 실행하는 것을 완전히 좋아하는 사람 3) 惡(오) - 완전히 미워하다(憎惡) 4) 不仁者 - 인덕 실행을 하지 않는 사람 5) 無以 - 없다, 無, 沒有 6) 尙 - 초과하다, 이기다 7) 之 - 仁德 실행 8) 爲仁 - 인덕을 실행하는 행위를 하다 9) 不使 - 不讓, ~로 하여금 하지 못하게 하다 10) 加 - 영향을 주다, 더하다 11) 其身 - 자신 12) 蓋 - 아마도, 也許 13) 之 - 역량이 부족한 사람
* 어떤 사람, CEO論語00 송년회 현수막 興于詩 시로써 뜻을 일으키고 立于禮 예로써 몸을 일으키고 成于樂 음악이 업을 완성하네 (?)
* 後外 해석 - 배우고(詩爲學者之初),실천하고(禮爲學者之中),조화를 이룸(樂爲學者之終) 1) 출전 -《論語》〈泰伯〉 2) 注釋 - 첫째 학설, 위 문장은 君子가 자신을 수양할 때의 3단계 과정,
(1) 何晏, 《論語集解》引包咸云. 「興,起也,言修身當先學詩。禮者所以立身,樂所以成性」 포함(包咸)을 인용해서 말하기를 흥은 일어키는 것이다. 수신을 할 때는 마땅히 시를 먼저 배워야 한다. 그 다음에 예라는 것은 입신(사람 노릇 하는 것, 배려)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악은 성성 (成性) 즉 본성을 이루는 바를 말하는 것이다. 통설
(2) 《論語注疏(邢昺疏)》「此章論人立身成德之法也。興,起也,言人修身當先學起于詩也。立身必須學禮,成性在于學樂。不學詩,無以言;不學禮,無以立。旣學詩禮,然後樂所以成之也」 이 장은 입신 (사람 노릇 하는 것)과 덕을 이루는 방법을 논한다. 흥은 일어키는 것이다. 수신할 때는 마땅히 먼저 시에서부터 일어남을 배워야 한다. 입신은 반드시 예를 배워야한다. 그 다음에 성성(成性)은 음악을 배우는데 있다. 그래서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할 게 없고, 예를 배우지 않으면 사람 노릇을 할 수가 없다(立). 시와 예를 배운 연후에 그것 악(樂)을 이루는 것이다.
(後外) 立身以立學爲先,立學以讀書爲本이고., 董禮-學禮-守禮를 거쳐 실천하고., 樂學(好學)以與衆同樂 입신(立身)은 입학위선으로서 입학(立學)은 독서가 근본이다. 예를 이해하고 예를 배우고 예를 지키는 이런 과정을 거처 실천하고 음악을 배워서 많은 사람과 더불어 같이 즐기는 데 있다.
* 天賦之性 ~ 仁(惻隱之心), 義(羞惡之心), 禮(辭讓之心), 智(是非之心) * 氣質之性 ~ 敎育 環境 變化, 學 (詩 ->禮 ->樂) -> 原來 性品으로 돌아간다.
(3) 《禮記》〈仲尼燕居〉「不能詩,于禮繆;不能樂,于禮素」 시를 배우지 않으면 예에 혼란이 생기고 음악을 하지 않으면 예가 촌스러워진다.
* 연거(燕居) = 한거(閑居= 퇴조이처(退朝而處)
둘째 학설, 위 문장은 治國의 순서를 말한 것. 王弼, 《論語釋疑》「言有爲政之次序也。夫喜、惧、哀、樂,民之自然,應感而動,則發乎聲歌。所以陳詩采謠,以知民志風。旣見其風,則損益基焉。故因俗立制,以達其禮也。矯俗檢刑,民心未化,故又感以聲樂,以和神也。若不采民詩,則無以觀風。風乖俗異,則禮無所立,禮若不設,則樂無所樂,樂非禮則功無所濟。故三體相扶,而用有先後也」 정치를 하는 순서가 있음을 말했다. 무릇 喜, 惧 哀 樂은 백성의 자연스러움으로 감정에 반응해서 움직이면 노래가 나온다. 시를 정리하고 가요를 모으고, 백성의 심지와 풍속을 알아낸다. 그 풍속을 보고, 그 근본이 되는 곳에 덜거나 더한다. 그런 까닭에 풍속으로 제도를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서 예의 규범을 실현한다. 습속을 교정하고 형벌을 점검한다. 민심이 교화되지 않아서 그런 까닭에 소리와 음악으로 감화시켜서 정신을 조화시킨다. 만약 백성의 시를 채집하지 않으면 시와 노래로 백성의 감정 사상을 이해할 수 없고 풍속이 이상 해져서 예가 확립될 수 없다. 만약 예가 확립되지 않으면 음악은 즐기는 바가 안되고, 음악은 예가 안되어 즉 효용도 실현할 바가 없어요. 그런 까닭에 이 세 가지가 서로 도움을 주고 사용에 선후가 있는 것이다.
* 《史記》〈周本紀〉 注釋 1. 豊 - 甲骨文, 원래는 제사용 그릇에 물건(玉, 식물의 싹)이 가득 담겨있는 모양, 점차 풍족, 크다(대)의 의미, 豐은 고자 ; 封(丰)과도 통용하는데, 封은 원래는 토지 경계에 표시로 심는 초목 ; 첫째, 풍(feng)으로 읽으면, 豐과 동일, 《玉篇》〈豐部〉「豐, 大也。俗作豊」 《說文解字》「豊, 艸盛豊也」 풍은 풀이 무성한 것을 나타낸다.
둘째, 예(li)로 읽으면, 제사 때 사용하는 그릇(古代祭祀用의 禮器) 《說文解字》〈豊部〉「行禮之器也」 예를 행하는 그릇이다.
1) 많다, 《左傳》僖公二十七年》「民易資者不求豊焉,明征其辭」 백성으로 화물을 교역하는 사람은 속여서 많은 것을 구하지 않는다. 그 말을 밝게 증명한다.
* 이자(易資)는 화물을 교역하는 사람 (1) 상(商) ~行(움직인다) ~賺(속일 잠)錢, 爭錢 (2) 고(賈) ~坐(앉아 있다)
2) 멋진 용모, 《詩經》〈豊〉「子之豊兮,俟我乎巷兮」 너의 멋진 용모! 나를 골목에서 기다리게 하는 구나.
李好古(元), 《張生煮海》第一摺「則見他正色端容,道貌仙豊」 즉 그의 바른 용모와 몸 가짐을 보니 도사의 모양이고 신선의 멋진 용모이다.
3) 초목 무성한, 《詩經》〈湛露〉「湛湛露斯,在彼豊草」 진하고 진 밤 이슬이 저 풍성한 풀에 있구나
《樂府詩集》 曹操, 〈觀滄海〉「東臨碣石, 以觀滄海。水何澹澹, 山島竦峙。樹木叢生, 百草豊茂。秋風蕭瑟, 洪波涌起。日月之行, 若出其中。星漢燦爛, 若出其里。幸甚至哉, 歌以咏志」 동쪽으로 갈석(碣石)에 임해 있고 푸른 바다를 보니 물은 얼마나 고요하고, 산과 섬은 우뚝 솟아 있다.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온갖 풀들이 풍성하게 자란다. 가을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큰 파도가 일어난다. 해와 달의 움직임은 마치 그 가운데서 나오는 듯하고, 은하수가 찬란하게 빛나며, 마치 그 안에서 나오는 듯하다. 축하할 만하니, 노래를 지어 마음을 읊조린다.
(2025.5.15 강의 요약자: 주정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