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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2025.06.08. 00:42 (2025.06.08. 00:27)

사마천 사기 387강 강의자료 요약 (2025.6.5)

 
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 屈原의 〈楚辭・漁父〉에서 屈原과 漁夫의 대화 原文 설명 ; (2) 唐詩〈瀑布〉 작자 施肩吾에 대해서 상세히 분석(施肩吾, 豁(huō攉)開, 青冥, 瀉(出), 萬丈, 白日 등......)설명 ; (3) 《詩經》〈綿〉「周原膴膴,堇荼如飴」를 통하여 周나라 최초 수도 周原에 대하여 설명 (4) 지난 시간에 이어서 《呂氏春秋》〈孟夏紀〉「勸學」과 「尊師」 原文 강독 ; (5) 往教者, 召師者, 自卑者, 卑師者의 개념과 《莊子》〈大宗師〉「相濡以沫」과 4자성어 「爭魚者濡」 등 설명 ; (6) 중국 古代 10聖人과 6賢者의 스승에 대하여 설명 ; (7) 春秋時代 전기와 후기의 5覇와 戰國時代 7雄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 ; (8) 시각장애인을 의미하는 다양한 글자(盲, 瞽, 盳, 瞎, 眇, 奉事)에 대하여 설명 ; (9) 學-好學-善學(達天性)의 과정 설명 ; (10) 曾參의 事父(曾點)之情과 顏淵의 事師(孔子)之情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사마천 사기 387강 강의자료 요약 (2025.6.5)
 
2025년 6월 5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唐詩 300首
 
 
1) 당시 제목 : “폭포”
2) 당시 중국어 발음
 
瀑 布     - 施 肩 吾
huōkāiqīngmíngdiān
xièchūwànzhàngquán
cáitiáo
báixuánqiūtiān
 
3) 작자 : 시견오(施肩吾) (780년-861년),
자는 동재(东斋), 호는 서진자(栖真子)이다. 당 헌종 원화 15년(820년)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후에 특별히 장원으로 지명되었으며, 항저우 지역의 첫 번째 장원이다. 그는 당 무주 분수현 동현향(현재 항저우시 부양구 동교진)에서 태어났다. 시인, 도학자, 대만 펑후의 첫 번째 민간 개척자로서의 역사적 전설 인물이다.
어릴 적에는 분수 오운산, 용문 등지에서 공부하였다. 원화 15년(820년)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공주 태상 소경 이건이 시험한 《태갱불화부(太羹不和赋)》와 《조춘무설시(早春茂雪诗)》에서 각각 13위와 13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그는 명리(名利)에 관심이 없었고, 관직을 기다리지 않고 동쪽으로 돌아갔다. 떠나기 전, 장적 등 유명 문사들이 그를 위해 시를 지어 송별하였고, 이는 전해지는 운문이 되었다. 귀향 후, 그는 홍주 서산(현재 장시성 신건현)이 고대 12명의 진선(真仙)들이 환생한 곳이라는 마음을 품고, 집을 짓고 은거하며 도를 닦고 연단을 수련하였다.
말년에는 가족과 함께 바다를 건너 난리를 피하고, 펑후 제도에 정착하여 대륙 사람들의 펑후 개발의 선구자가 되었다. 북송 대중상符 시기에는 또 다른 수련자 시견오(施肩吾)가 있었으며, 자는 희성(希圣), 호는 화양자(华阳子)이다. 저서로는 《서산군선회진기(西山群仙会真记)》, 《종려전도집(钟吕传道集)》 등이 있다.
 
* 종려전도집은
내공 내단술의 고전. 3권. 일명 《진선전도집》 또는 《종려전도기》. 책은 종리권과 여암 사제의 문답 형식으로, 내단술의 요의를 논한 총 18권의 논진선, 대도, 천지, 일월, 사시, 오행, 수화, 용호, 단약, 납수은, 추출, 하차, 환단, 연형, 조원, 내관, 시련, 징험을 논하고 있다. 책은 천인합일사상을 기초로 음양오행설을 핵심으로 하여 기와 신을 연마하는 방법으로 기공설의 정점인 내단설을 체계적이고 완전하게 논술하였으며, 종려파 내단 체계를 세워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35강(2023,12,21) 강의 교안
 
*《史記》〈周本紀〉 注釋
1. 周- 갑골문, 원래는 일정 범위 토지에 곡식을 촘촘히 심은 모양
 
1) 엄밀, 긴밀,
2) 조밀, 촘촘, 비밀
3) 친밀,
4) 忠信,
5) 굳건히, 오로지,
6) 완비, 충족,
7) 보편,
8) 완성, 성취,
9) 마치다, 완료,
10) 반복, 순환,
11) 흡족하게 배려하다,
12) 적합하다,
13) 공고하다,
14) 구제하다,
15) 한 바퀴 돌다,
16) 비밀유지,
17) 돌아오다
18) 주위,
19) 1주년, 1주일
 
20) 배, 舟와 通,
21) 지명,
《詩經》〈綿〉「周原膴膴,堇荼如飴」
주나라 수도인 주원의 토지는 비옥하며 풍요롭고, 독초와 씀바귀도 마치 엿기름처럼 달콤하다.
 
* 중국의 엿기름 제작 기술이 최초로 소개된 기록이 이것입니다.
 
《詩經》〈綿〉「周原膴膴,堇荼如飴」를 통하여 周나라 최초 수도 周原
문헌 기록에서 주원의 기초 확립과 정치 상징 의미를 살펴보면, 지리적 농업 우세가 먼저 드러난다. “周原膴膴,堇荼如饴”는 직역하면 “주원 토지가 비옥하여 쓴 나물도 엿처럼 달다”는 뜻으로, 토양의 풍요로움을 부각시켰다. 근채(堇菜)와 다채(荼菜)는 본래 쓴맛의 들나물인데 여기서는 엿처럼 달다고 하여 주원의 경작과 거주에 적합한 자연 조건을 은유했다. 사기(史記) 주본기(周本紀)에 따르면, 고공단부(古公亶父) 즉 태왕(太王)이 융적(戎狄)의 침입을 피해 백성을 이끌고 빈(豳)에서 기산(岐山) 남록인 주원으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성읍(城邑)을 계획하고 농업을 발전시켜 주족(周族) 강성의 기초를 마련했다.
고고학적 실증을 통한 주원의 도성 성질과 규모 확인에서는 최근 고고 발견이 전통적 인식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주원이 서주(西周) 초기 정치 핵심임이 증명되었다.
소성(小城)과 대성(大城)의 규모도 상당하다. 소성은 동서 1480미터, 남북 1065미터이며 성벽(城壁) 기조(基槽) 폭이 25미터에 달한다. 대성은 서주 최대 성지(城址)이며 쌍문도(雙門道) 성문과 정연한 도로 시스템이 발견되어 주원이 계획이 엄정한 초대형 도읍임을 증명했다.
각사(刻辭) 갑골(甲骨) 1만 7천 편이 출토되어 “王在周” 등 점복(占卜) 기록을 포함하여 왕권(王權) 활동과 직접 연관된다. 청동기(靑銅器) 창장(窖藏)으로는 장백창장(庄白窖藏) 즉 위사가족(微史家族)과 동가촌창장(董家村窖藏) 즉 구위사기(裘衛四器) 등 귀족(貴族) 예기(禮器)가 집중 출토되었으며, 명문(銘文)에 주왕(周王)이 “周”지에서 관원을 책명(冊命)하고 전례(典禮)를 거행한 기록이 여러 차례 나타난다.
행정 중심 지위도 명확하다. 주원 도문(陶文)에서 “주”자가 새겨진 기물 36건이 발견되어 현지 도기(陶器) 생산과 유통을 보여준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주”지를 언급한 명문이 있는 동기들이 주원에 집중 출토되어 주원이 귀족 임직과 왕실 행정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면시(綿詩) 중의 주원은 주족의 “堇荼如饴”한 생존 옥토인 동시에 “實始翦商”한 왕조 요람이다. 주원은 선주에서 서주 초기까지의 실제 도성으로서 엄정한 도시 계획과 밀집한 왕권 활동 및 전략적 지위를 통해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했다. 최신 고고 성과인 삼중성원과 갑골금문은 문헌을 인증할 뿐만 아니라 서주 도성 체계 인식을 재구성하여 주원 이야말로 “천하종주(天下宗周)“의 진정한 출발점임을 밝혔다.
 
22) 왕조 명칭 ~周 나라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36강(2023.12.28.) 강의 교안
 
* 굴원의 어부사
屈原旣放,游於江潭,行吟澤畔。 顔色憔悴,形容枯槁。
漁父見而問之曰:“子非三閭大夫與?何故至於斯?”
屈原曰:“擧世皆濁,我獨淸;衆人皆醉,我獨醒,是以見放。”
漁父曰:“聖人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世人皆濁,何不掘其泥而揚其波?衆人皆醉,何不飽其糟而歠其醨?何故深思高擧,自令放為?”
屈原曰:“吾聞之,新沐者必彈冠,新浴者必振衣;安能以身之察察,受物之汶汶者乎?寧赴湘流,葬於江魚之腹中;安能以皓皓之白,而蒙世俗之塵埃乎?”
漁父莞爾而笑,敲枻而去,乃歌曰:“滄浪之水淸兮,可以濯吾纓;滄浪之水濁兮,可以濯吾足。” 遂去,不復與言。
 
굴원이 이미 추방되어, 강과 연못을 떠돌며, 호수의 기슭에서 시를 읊조리고 있었다.
안색은 초췌하고, 모습은 수척했다.
어부가 그를 보고 물었다: “당신은 삼여 대부가 아니십니까?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다 흐렸는데 나 혼자만이 맑고, 많은 사람들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이 때문에 미움을 받아 이곳으로 추방당한 것입니다."
 
어부가 말했다: “성인은 사물에 얽매이지 않고 세상과 함께 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흐리다면 어찌 그 진흙을 휘저어 같은 흐린 물결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다 취해 있다면 어찌 그 찌꺼기를 먹고 그 술을 마시지 않습니까?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고하게 행동하여 스스로 쫓겨남을 당하게 되었습니까?”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털어 쓰고, 새로 목욕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어찌 깨끗한 몸으로 더러운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상강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 장사 지낼 지라도, 어찌 하얀 흰색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습니까?
 
어부는 빙그레 웃고,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내 발을 씻을 수 있다." 그리고는 떠나가서 다시는 그와 말을 섞지 않았다.
 
즉 세상의 변화에 적응할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이는 굴원이 고뇌하는 이상주의와 어부의 현실주의 간의 대립을 드러내며, 독자에게 어떤 삶의 태도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굴원의 고뇌는 개인의 가치와 사회적 현실 간의 갈등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呂氏春秋》〈孟夏紀〉
1.「勸學」
(先王之教,莫榮於孝,莫顯於忠。忠孝,人君人親之所甚欲也;顯榮,人子人臣之所甚願也。
然而人君人親不得其所欲,人子人臣不得其所願,此生於不知理義。不知義理,生於不學。
學者師達而有材,吾未知其不爲聖人。聖人之所在,則天下理焉。在右則右重,在左則左重,是故古之聖王未有不尊師者也。尊師則不論其貴賤貧富矣。若此則名號顯矣,德行彰矣。故師之教也,不爭輕重尊卑貧富,而爭於道。)
 
其人苟可,其事無不可。所求盡得,所欲盡成,此生於得聖人。
그 사람 즉 학생이 진실로 가르칠 만하면 그 일 즉 도의를 추구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 구하는 바는 모두 얻고, 바라는 것을 모두 이루는 것은 성인을 얻는 데서 생긴다.
 
聖人生於疾學。不疾學而能爲魁士名人者,未之嘗有也。疾學在於尊師。師尊則言信矣,道論矣。故往教者不化,召師者不化;自卑者不聽,卑師者不聽。師操不化不聽之術,而以强教之,欲道之行、身之尊也,不亦遠乎?學者處不化不聽之勢,而以自行,欲名之顯、身之安也,是懷腐而欲香也,是入水而惡濡也。
성인은 학문을 힘쓰는 데서 생기고, 학문을 힘쓰지 않고 능히 뛰어난 선비나 유명한 사람이 되는 그런 일은 일찍이 없다. 학문에 힘쓰는 것은 스승을 존중하는 데 있다. 스승을 존중하면 스승의 말에 믿음이 있고, 도의를 추구하는 일을 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선생이 가서 가르치는 자는 학생을 교화 시키지 못한다. 돈이나 권력으로 스승을 부르는 자도 학생을 교화 시키지 못한다. 자존감이 낮은 스승 은 학생이 따르지 않는다(聽), 스승이 무시당하는 자는 학생이 따르지 않는다. 스승이 교화 시키지도 못하고 학생이 따르지도 못하는 방법을 사용해서 강제로 가르쳐, 도의가 행해지고 자신이 존경받기를 원한다면, 또한 오래 가겠는가? 배우는 학생이 교화 시키지도 못하고 따르지도 않는 형세에 처해 있으면서 자기 멋대로 실행해서 명성을 드러나기를 바라는 것과 스스로 안일을 바라는 이것은 썩은 것을 품고 향기를 내려는 것이다. 이것은 물에 들어가면서 젖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같다.
 
* 泉涸,魚相與處於陸,相呴以濕,相濡以沫,不如相忘於江湖。
(샘물이 말라 물고기들이 땅 위에 모여 서로 물기를 끼얹고, 서로 거품으로 적셔주지만, 넓은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고 사는 것만 못하다.)
 
"상유이말(相濡以沫)"은 장자(莊子)의 "대종사(大宗師)" 편에 등장하는 구절로,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우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표현은 물고기들이 물이 말라버린 연못에서 서로의 몸을 물거품으로 적셔주며 생명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의미 요약:
• 어려운 상황에서의 도움: "상유이말"은 서로가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작은 힘이나 자원을 나누어 서로를 돕는 것을 의미합니다.
• 상호 의존의 가치: 이 구절은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서로를 돕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 자유의 중요성: 장자는 이어서 "불여상망어강호(不如相忘於江湖)"라는 구절을 통해, 서로 의지하는 것보다 각자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더 나음을 주장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장자의 철학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상유이말"은 단순히 서로 돕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니며,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계의 중요성을 탐구하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列子·說符》爭魚者濡,逐獸者趨,非樂之也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은 젖고, 짐승을 쫓는 사람은 뛰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떤 것을 얻으려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 문장은 또한 "즐거움이 아니다"라는 부분에서, 이러한 노력과 희생이 항상 즐거운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고통이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凡說者,悅之也,非說之也。今世之說者,多弗能悅,而反說之。夫弗能悅而反說,是拯溺而硾之以石也,是救病而飮之以堇也。使世益亂、不肖主重惑者,從此生矣。故爲師之務,在於勝理,在於行義。理勝義立則位尊矣,王公大人弗敢驕也,上至於天子,朝之而不慙。凡遇合也,合不可必。遺理釋義,以要不可必,而欲人之尊之也,不亦難乎?故師必勝理行義然後尊。
무릇 강의하는 자는 학생을 기쁘게 해야 한다. 학생들에게 강의만 하면 안된다. 현재 강의만 하는 사람은 학생들을 대부분 기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대로 학생들에게 일방적 강의만 한다. 무릇 학생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강의만 하는 것은 마치 물에 빠진 자를 구하려 하면서 돌로 눌러 버리는 것이고, 병든 자를 구하려 하면서 독초를 마시게 하는 것과 같다. 이는 세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능력이 부족한 군주가 더욱 우매하게 하는 것은 이것으로 부터 생겨 난다. 그러므로 스승의 책무는 이치를 따르고(勝), 도의를 행하는 데 있다. 이치를 따르고 도의가 확립되면 스승의 위치가 존중 받게 된다. 왕과 제후나 대인도 감히 스승 앞에서 교만하지 않으며, 위로는 천자에 이르기까지 알현 시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무릇 스승과 제자의 인격적 화합은 반드시 그 화합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물의 이치를 버리고 도의를 저버리고, 반드시 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존중 받기를 원한다면, 또한 어렵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스승은 반드시 사물의 이치를 따르고, 도의를 행한 연후에 비로소 학생들에게 존중 받는 것이다.
 
曾子曰:“君子行於道路,其有父者可知也,其有師者可知也。夫無父而無師者,餘若夫何哉!” 此言事師之猶事父也。曾点使曾参,過期而不至,人皆見曾点曰:“無乃畏邪?” 曾点曰:“彼雖畏,我存,夫安敢畏?” 孔子畏于匡,颜淵後,孔子曰:“吾以汝爲死矣。” 颜淵曰:“子在,回何敢死?” 颜回之於孔子也,猶曾参之事父也。古之賢者與,其尊師若此,故師盡智竭道以教。
증자는 말하였다: "군자는 도로를 걸을 때,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을 알 수 있고,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다. 무릇 어버이에게 효도하는 마음이 없고 스승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어찌할까!" 이 말은 스승을 섬기는 것이 아버지를 섬기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증자가 아들 증삼을 심부름 보냈는데, 기한이 지나도 오지 않자, 사람들은 증자를 보고 말하였다: "설마 걱정 안되요?" 증자는 말하였다: "저가 비록 걱정이 되더라도, 애비가 살아있으니, 무릇 어찌 감히 걱정하겠는가?" (자식 놈이 애비 살아 있는데 어찌 하더라도 돌아오겠지요) 양호를 닮은 공자가 광주에서 잘 못을 했던 양호인 줄 알고 공자를 해하려 하자 걱정하고 있는데, 나중에 안회가 와서 이 분은 양호가 아니고 공자라고 말하니, 공자가 말하였다: "나는 너를 죽은 줄로 알았어." 안회는 말하였다: "선생님이 계신데, 회가 어찌 감히 죽겠습니까?" 안회가 공자에게 대하는 것은 마치 증삼이 아버지에게 대하는 것과 같다. 고대의 현자들은 스승을 이렇게 존중하였으므로, 스승은 지혜를 다 쏟아 붓고 도덕적인 행위 이런 것 다 쏟아 부어서 가르친다.
 
 
* 양호(陽虎)는 공자와 외모가 비슷하여, 공자가 광주(匡) 지역을 지나갈 때 주민들이 그를 양호로 착각하여 봉변을 당할 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양호의 통치와 공자의 유사성
1. 양호의 통치: 양호는 과거에 광주 지역에서 가혹한 통치를 했던 관리로, 그의 폭압적인 통치로 인해 지역 주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양호의 통치 아래에서 주민들은 불만이 쌓였고, 그에 대한 원한이 깊어 졌습니다.
2. 공자와의 외모 유사성: 공자가 광주를 지나가던 중, 그의 외모가 양호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주민들이 그를 양호로 오인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공자를 양호의 복수 대상으로 삼고 그를 공격하려 했습니다.
 
* 曾參의 事父之情과 顏淵의 事師之情
1. 증삼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 근본에 뿌리박은 깊은 존경과 순종
증삼은 유교에서 효(孝)의 상징적 인물로 여겨집니다. 효경(孝經)의 저자로 전해지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효심은 단순한 물질적 봉양을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존경(敬)과 절대적 순종(順)이 핵심을 이루었습니다.
증삼은 부모를 자신의 존재 근원으로 인식했습니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등에 전하는 “증자질채(曾子叱柴)” 일화는 증삼이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 쫓겨난 뒤에도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공경을 잃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증점은 공자의 제자 중 성격이 활달하고 자유분방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증삼은 아버지의 엄격한 가르침을 인생의 소중한 교훈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순종의 과정 자체가 수양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는 논어(論語) 학이(學而)편의 “오일삼성오신(吾日三省吾身)” 즉 매일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는 증삼의 실천 철학과도 연결됩니다.
 
2. 안회의 스승에 대한 경모심: 진리에 대한 갈망과 스승에 대한 무한한 존경
안회는 공자가 “유안회자호학(有顏回者好學)” 즉 학을 좋아함은 나 만한 자가 없다고 극찬했을 정도로 학문과 덕성 수양에 지극한 열정을 가졌습니다. 그의 스승에 대한 정은 진리(道)에 대한 갈망과 완벽한 인격체(仁)에 대한 동경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안회는 공자를 단순한 스승이 아닌 도(道) 그 자체의 구현체로 여겼습니다. 논어 자한(子罕)편의 “앙지미고(仰之彌高), 찬지미견(鑽之彌堅)” 즉 우러러볼수록 더 높고, 파고들수록 더 단단하다는 표현은 공자의 학문과 인격의 깊이와 높이에 대한 안회의 경외감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안회는 공자의 도가 지극히 높고 깊어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조금도 의심하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논어 자한편의 “첨지재전(瞻之在前), 홀언재후(忽焉在後)” 즉 앞서 가도 따라잡을 수 없고, 뒤에 있어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안회의 탄식은 스승을 좇아 도를 배우려는 그의 간절함과 스승의 위대함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동시에 드러냅니다.
 
3. 두 인물의 정성 비교
증삼의 사부지정은 효(孝)라는 근본에 대한 공경과 절대적 의무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부모는 생명과 존재의 근원이며, 이에 대한 존경(敬)과 순종(順)은 근본에 대한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는 혈연적이고 자연적인 절대적 의무 관계로서 수직적 성격을 띠었습니다.
반면 안회의 사사지정은 학(學)과 인(仁) 즉 진리와 이상 인격에 대한 추구를 핵심으로 했습니다. 스승 공자는 도(道)와 인(仁)의 화신이었으며, 이에 대한 존경(敬)과 숭배(崇)는 진리와 인격에 대한 갈망과 동경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4. 공통점과 현대적 의미
두 관계 모두 지극한 공경심(敬)이 핵심을 이루며, 부모를 섬기고 스승을 따르는 과정 자체가 인 격 수양의 핵심적 길이었습니다. 또한 모두 유교의 핵심 가치인 효, 학, 인을 구체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실천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 若夫 1)그와 같은 (여기서는 이 뜻이다) 2)~에 이르러
* 無乃 설마 …아니냐? = 難道 … 不是吗?
* 邪 =乎
 
 
* 莊子의 교육철학과 관련된 往教者, 召師者, 自卑者, 卑師者의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살펴보면,
1. 왕교자(往教者)는 교사가 학생에게 직접 찾아가서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예문래학 불문왕교(禮聞來學 不聞往教)“의 원칙을 깨뜨리는 것으로, 스승의 권위나 위신을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도가 사상(道家思想)에서는 이러한 강요된 교화(教化)가 자연의 도리(道理)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장자(莊子)의 「양생주(養生主)」편에서 강조하는 “의호천리(依乎天理)“처럼, 억지로 가르치려 하면 오히려 본래의 참된 모습인 본진(本眞)을 잃게 됩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각국을 유세했던 학자들이 군주에게 경시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2. 소사자(召師者)는 권력(權力)을 가진 자가 교사를 불러다가 수업을 받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는 스승을 도구(道具)로 취급하여 그들의 정신적 주체성(精神的主體性)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장자가 초위왕(楚威王)의 부름을 거절하며 “차라리 더러운 개천에서 놀며 즐기겠다, 나라를 가진 자에게 속박당하지 않겠다(寧遊戲汙瀆之中自快 無爲有國者所羈)“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화(異化)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3. 자비자(自卑者)는 지나치게 자신을 낮추는 구학자(求學者)를 뜻합니다. 도가 관점에서는 이것이 “도재만물(道在萬物)“의 평등성(平等性)에 위배된다고 봅니다.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서 “천지여아병생(天地與我並生)“이라 하여, 의도적으로 자신을 비하(卑下)하는 것은 실제로 인간과 자연의 합일성(合一性)을 단절시키는 것입니다.
4. 비사자(卑師者)는 교사의 가치(價値)를 폄하(貶下)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는 교육 윤리(敎育倫理)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도가는 경직된 스승의 권위(權威)는 비판하지만, “참된 앎”인 진지(眞知)에 대한 경시는 더욱 경계합니다. 장자의 「지북유(知北遊)」편에서 “도불가언(道不可言)“이라 하듯, 스승은 본래 도(道)의 매개체(媒介體)이기 때문입니다.
 
2.「尊師」
神農師悉諸,黄帝師大撓,帝顓頊師伯夷父,帝嚳師伯招,帝堯師子州支父,帝舜師許由,禹師大成贄,湯師小臣,文王武王師呂望、周公旦,齊桓公師管夷吾,晉文公師咎犯、隨會,秦穆公師百里奚、公孫枝,楚莊王師孫叔敖、沈尹巫,吳王闔閭師伍子胥、文之儀,越王勾踐師范蠡、大夫種
신농은 실제를 스승로 삼고, 황제는 대요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전욱은 백이의 아버지를 스승으로 삼았고, 곡은 백초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요는 자주지부를 스승으로 삼았고, 순은 허유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우는 대성제(大成贄)를 스승으로 삼았고, 탕은 소신을 스승으로 삼았으며, 문왕과 무왕은 여망과 주공 단을 스승으로 삼았고, 제환공은 관이오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진문공은 구범과 수회(隨會)를 스승으로 삼았고, 진무공은 백리해와 공손지(公孫枝)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초장왕은 손숙오와 심윤무를 스승으로 삼았고, 오왕 합려는 오자서와 문지의(文之儀)를 스승으로 삼았으며, 월왕 구천은 범려와 대부종을 스승으로 삼았다.
 
* 대부종이라는 사람은 없고 대부는 벼슬 명칭이다.
* 小臣 =尹伊
 
 
* 주나라 문왕(周文王, 기원전 1152년~1056년)은 여러 아들을 두었으며, 그 중 가장 유명한 아들은 주 무왕(周武王)과 주공 단(周公旦)입니다. 문왕은 총 10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백읍고(伯邑考): 문왕의 장남으로, 상나라의 왕인 주왕(紂王)에게 인질로 잡혀 있었고, 후에 주왕에 의해 처형당했습니다.
• 주 무왕(周武王, 희발/姬发): 문왕의 차남으로, 주나라를 세운 주 왕조의 첫 번째 황제입니다. 그는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 주공 단(周公旦): 문왕의 사남으로, 무왕의 동생입니다. 그는 주나라의 정치와 군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어린 성왕을 보필하며 국가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 관숙선(管叔鲜): 문왕의 삼남으로, 무왕이 상나라를 정복한 후 관 지역에 봉해졌습니다.
• 채숙도(蔡叔度): 문왕의 오남으로, 채 지역에 봉해졌습니다.
• 조숙진탁(曹叔振铎): 문왕의 육남으로, 조 지역에 봉해졌습니다.
• 성숙무(成叔武): 문왕의 칠남으로, 성 지역에 봉해졌습니다.
• 호숙처(霍叔处): 문왕의 팔남으로, 호 지역에 봉해졌습니다.
• 강숙봉(康叔封): 문왕의 구남으로, 강 지역에 봉해졌습니다.
• 염계재(冉季载): 문왕의 막내아들로, 나이가 어려서 제후로 봉해지지 못했습니다.
 
이 외에도 문왕은 여러 첩과의 사이에서 추가적인 아들을 두었으며, 그 수는 총 18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강태공(姜太公)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러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주요 별칭은 다음과 같습니다:
• 태공망(太公望): 이 별칭은 주 문왕이 강태공을 만난 후 붙여진 이름으로, "태공이 바라던 인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왕이 강태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을 반영합니다.
• 강상(姜尙): 강태공의 본명입니다. 그는 강씨(姜氏) 출신으로,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상(尙)입니다.
• 여상(呂尙): 강태공의 조상이 여(呂) 땅에 봉해졌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입니다. 여상은 그의 성씨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 자아(子牙): 강태공의 자(字)로, 이는 그가 지닌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 비웅(飛熊): 강태공의 호로, 이는 그의 성격이나 기질을 나타내는 별칭으로 여겨집니다.
 
이 외에도 강태공은 역사적 문헌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언급되며, 그의 지혜와 전략적 능력은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공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특정 나이에 도달했을 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각 나이에 해당하는 명칭은 다음과 같습니다:
• 15세: 지학(志學) - 학문에 뜻을 두는 나이.
• 30세: 립(立)
입신(立身) : 이는 사회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개인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공자는 이 시기에 자신의 도덕적 기반을 세우고, 사회에서의 역할을 확고히 하려는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입업(立業) : 이는 자신의 업적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직업이나 사업을 통해 성취를 이루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공자는 이 시기에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입가(立家) : 이는 가정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가정의 책임을 다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는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단계로, 가족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고 안정적인 삶을 구축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 40세: 불혹(不惑) -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고 미혹되지 않는 나이.
• 50세: 지천명(知天命) - 하늘의 뜻을 알게 되는 나이.
• 60세: 이순(耳順) - 남의 말을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나이.
• 70세: 종심(從心)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는 표현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더라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는 의미로, 공자가 70세에 이르러 얻은 자유로움과 도덕적 기준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명칭들은 공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학문과 인생의 경험을 정리한 결과로, 각 나이에 도달했을 때의 지혜와 성숙함을 나타냅니다.
 
 
* 愛新覚羅(아이신각라)는 중국 청나라의 왕실 성씨로, 만주어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이 성씨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 만주어 기원: "愛新"은 만주어로 "금"을 의미하며, "覚羅"는 "구족" 또는 "명문"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금의 명문"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 역사적 배경: 이 성씨는 청나라의 창시자인 누르하치가 처음 사용하였으며, 이후 청나라 왕실의 공식 성씨로 자리 잡았습니다. 청나라의 왕족들은 이 성씨를 통해 자신의 혈통과 권위를 강조했습니다.
• 문화적 중요성: 愛新覚羅는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溥儀)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도 이 성씨를 가진 후손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입니다.
 
결론적으로, 愛新覚羅는 청나라 왕실의 성씨로서, 금과 명문을 상징하며, 만주어에서 유래한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 범려(范蠡)의 서씨(西施) 미인계에 대한 설명은 고대 중국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깊습니다. 서시는 춘추시대의 미인으로, 월나라의 왕 구천(勾踐)이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에게 복수하기 위해 범려의 전략에 따라 미인계를 활용한 인물입니다.
- 서시와 범려의 미인계
1. 서시의 배경: 서시는 본명 시이광(施夷光)으로, 월나라의 저라촌 출신입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로 유명하며, 고대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으로 손꼽힙니다.
2. 범려의 전략: 범려는 월왕 구천의 참모로, 오나라에 대한 복수를 계획했습니다. 그는 서시와 정단(鄭旦) 같은 미녀들을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보내어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이를 통해 오나라의 정치적 혼란을 유도하려 했습니다.
3. 미인계의 실행: 범려는 서시와 정단을 훈련시켜 그들이 오나라에 가서 부차를 유혹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가무, 예절, 유혹 기술 등을 배웠습니다. 서시는 부차의 총애를 받게 되었고, 그의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4. 결과: 서시의 미모와 매력은 부차를 사로잡았고, 그는 그녀에게 빠져 정치적 업무를 소홀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오나라는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월나라가 오나라를 정복하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5. 서시의 운명: 그러나 서시는 부차의 후궁 위희(妃妾)에게 질투를 받게 되고, 결국 그녀의 생애는 비극적으로 끝나게 됩니다. 서시는 범려와 사랑을 나누었지만, 오나라의 멸망 이후 그녀의 운명은 불 확실 해졌습니다.
 
이와 같이 범려의 서씨 미인계는 고대 중국의 정치적 음모와 사랑, 그리고 비극적인 운명을 담고 있는 이야기로, 서시는 단순한 미인이 아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인물로 여겨집니다.
 
 
* 전기 춘추오패 (가장 일반적인 설)
1. 제나라 (齊) - 환공 (桓公): 기원전 685년부터 643년까지 재위.
2. 진나라 (晉) - 문공 (文公): 기원전 636년부터 628년까지 재위.
3. 초나라 (楚) - 장왕 (莊王): 기원전 614년부터 591년까지 재위.
4. 진나라 (秦) - 목공 (穆公): 기원전 659년부터 621년까지 재위.
5. 송나라 (宋) - 양공 (襄公): 기원전 651년부터 637년까지 재위.
 
* 후기 춘추오패는 다음과 같은 나라와 제후들로 구성됩니다:
1. 오나라 (吳) - 부차 (夫差): 기원전 496년부터 473년까지 재위.
2. 월나라 (越) - 구천 (勾踐): 기원전 496년부터 465년까지 재위.
3. 진나라 (晉) - 문공 (文公): 기원전 636년부터 628년까지 재위.
4. 초나라 (楚) - 장왕 (莊王): 기원전 614년부터 591년까지 재위.
5. 제나라 (齊) - 환공 (桓公): 기원전 685년부터 643년까지 재위.
 
* 전국시대의 7웅은 다음과 같은 나라와 왕의 이름으로 구성됩니다:
1. 진나라 (秦) - 왕의 이름: 시황제 (始皇帝)
2. 초나라 (楚) - 왕의 이름: 초무왕 (楚武王)
3. 연나라 (燕) - 왕의 이름: 연왕 (燕王)
4. 제나라 (齊) - 왕의 이름: 제왕 (齊王)
5. 조나라 (趙) - 왕의 이름: 조왕 (趙王)
6. 위나라 (魏) - 왕의 이름: 위왕 (魏王)
7. 한나라 (韓) - 왕의 이름: 한왕 (韓王)
 
이들 7개 나라는 전국시대 동안 서로 패권을 다투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此十聖人六賢者,未有不尊師者也。今尊不至于帝,智不至于聖,而欲無尊師,奚由至哉?此五帝之所以絶,三代之所以滅。
이 열 성인과 여섯 현자는 스승을 존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지금 사람의 존경하는 것은 황제에 미치지 않고, 지혜도 성인에게 미치지 않으면서 스승을 존중하는 마음이 없기를 바라니 어찌 성인의 경지에 이르겠는가? 이것이 바로 오제(5명의 현명한 군주)가 끊어진 까닭이요 삼대(하, 상, 주)의 멸망한 까닭이다.
 
且天生人也,而使其耳可以聞,不學,其聞不若聾;使其目可以見,不學,其見不若盲;使其口可以言,不學,其言不若爽;使其心可以知,不學,其知不若狂。故凡學,非能益也,達天性也。能全天之所生而勿敗之,是謂善學。
또한 하늘이 사람을 낳았고, 그의 귀가 들을 수 있게 하였으니, 배우지 않으면 그의 듣는 것이 귀머거리보다 못하고, 그의 눈을 볼 수 있게 하였으니, 배우지 않으면 그의 보는 것이 장님보다 못하다. 그의 입이 말할 수 있게 하였으니, 배우지 않으면 그의 말하는 것이 벙어리와 같다. 그의 마음을 알 수 있게 하였으니, 배우지 않으면 그의 아는 것이 미치광이 보다 못하다. 그런 까닭에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능력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천성을 도달하는 것이다. 하늘이 낸 바를 온전히 유지하고 망치지 않는 것이 바로 선학이다.
 
 
* 시각장애인을 의미하는 다양한 글자(盲, 瞽, 盳, 瞎, 眇, 奉事)
1. 盲(맹)은 시각장애를 나타내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립적인 용어입니다. 이 글자는 亡(망, 없을 망)과 目(목, 눈 목)이 결합된 형태로, 눈의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갑골문에서도 발견되는 古字로서, 시력의 완전한 상실이라는 생리적 상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莊子에서 “盲者無以與乎文章之觀”(맹자는 문채를 관찰할 수가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2. 瞽(고)는 단순한 신체적 상태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직업을 함의하는 특별한 용어입니다. 이 글자는 鼓(고, 북 고)와 目(목, 눈 목)의 결합으로, 원래 제사나 의식에서 북을 치는 맹인 악사를 지칭했습니다. 周禮 春官에서 “瞽矇掌播鼗柷敔塤簫管絃歌”(고몽은 요, 축, 어, 훤, 소, 관, 현, 가를 담당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고대 중국에서 맹인이 예악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史記 五帝本紀에서 순임금의 아버지를 “瞽叟”라고 칭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叟者盲而無目”(수는 맹이면서 눈이 없다)라는 주석이 붙어 있습니다.
3. 盳(망)은 盲의 이체자로서 구성과 의미가 동일하지만 사용 빈도는 현저히 낮습니다. 目과 亡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盲과 완전히 같으나, 주로 고문헌의 이본이나 석각에서 간헐적으로 발견될 뿐입니다.
4. 瞎(활)은 비교적 후대에 형성된 글자로, 目과 害의 결합입니다. 이는 외부적 요인에 의한 시력 손상을 강조하는 용어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실명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됩니다. 宋代 이후 문헌에서 빈번히 나타나며, 현대 중국어에서는 가장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水滸傳에서 “那人雙眼都瞎了”(그 사람의 두 눈이 모두 瞎이 되었다)라는 용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5. 眇(묘)는 가장 섬세한 뉘앙스를 가진 용어로, 目과 少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완전한 실명이 아닌 시력의 부족이나 한쪽 눈의 이상을 나타냅니다. 史記에서 “蕭何薦一眇能吏”(소하가 한 명의 묘한 능리를 천거했다)라고 한 것이나, 漢書에서 “眇一目而心不眇”(한쪽 눈은 묘하지만 마음은 묘하지 않다)라고 한 용례에서 이러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6. 奉事(봉사) 이는 시각장애인을 의미하는 단어가 아니라 “받들어 섬기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다만 周禮에서 瞽矇이 예악을 “奉事”했다는 기록으로 인해 혼동이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瞽矇諷誦詩,世奠系,鼓琴瑟”(고몽은 시를 외워 읊고, 세계를 정하며, 금슬을 탄다)라는 맥락에서 그들의 직무가 “奉事”라고 표현되었을 뿐입니다.
 
이러한 어휘들의 분석을 통해 고대 중국 사회에서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단순히 신체적 결함으로만 여겨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瞽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맹인은 특별한 청각적 재능을 가진 존재로 인식되어 예악이라는 중요한 문화적 영역에서 전문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는 서구의 장애 개념과는 다른 동양적 사고를 반영하는 것으로, 결함보다는 다른 감각의 발달에 주목한 문화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 유교 수양론 學-好學-善學 체계
“學-好學-善學”의 과정은 유교 수양론의 핵심 체계로, 소학·논어·맹자 등 고전에 그 단계적 심화 과정이 기술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지식 축적을 넘어 인성의 본질인 천성에 도달하는 길이며, 중국 고전 원문을 중심으로 그 진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學(배움)은 규범의 기초 구축 단계이다. 외부의 엄격한 훈련을 통해 인위로 천성을 잠재우는 과정으로, 소학에서는 어린 시절 부터 철저한 교육이 강조된다. 논어 학이 편에서 “弟子入則孝, 出則悌,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行有餘力, 則以學文”이라 하여 효와 제의 실천이 학문보다 우선됨을 명시했다. 이는 사회적 규범인 예의 내재화 없이는 진정한 학문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둘째, 好學(학문을 즐김)은 주체적 탐구의 심화 단계이다. 스스로 탐구하는 단계로, 질문과 성찰을 통해 지식을 체화 한다. 공자는 호학을 정의하면서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敏於事而慎於言, 就有道而正焉, 可謂好學也已”라 하여 안락보다 도 추구에 집중하는 것이라 했다. 또한 “發憤忘食, 樂以忘憂”라 하여 학문 열정이 일상의 고통을 초월하는 경지임을 보였다.
 
맹자는 자득론을 통해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君子深造之以道, 欲其自得之也。自得之, 則居之安”이라 하여 스스로 체득한 지식은 안정된 인격의 근간임을 강조했다. 이 단계에서는 경전 이론인 인과 현실 문제 해결인 의가 결합된다.
 
셋째, 善學(천성에 통달한 배움)은 일체화의 경지이다. 학문이 본성과 하나 되어 자연스러운 실천으로 이어지는 단계로, 중용에서 말하는 성의 개념과 연결된다. “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 하여 천성의 진실함을 실현하는 것이 인간의 도라 했고, “自誠明, 謂之性”이라 하여 성실함에서 밝음이 나오는 것이 천성임을 밝혔다.
 
맹자는 천성 회귀론을 통해 이를 완성했다. “盡其心者, 知其性也。知其性, 則知天矣”라 하여 마음을 다해 성품을 알고, 성품을 알면 천명을 안다고 했다. 최종 목표는 인위적 노력인 학이 본성인 천성과 일치하는 “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學→好學→善學”의 과정은 유교 수양론의 핵심 원리를 보여준다. 첫째는 규범의 내면화인 학, 둘째는 주체적 성찰인 호학, 셋째는 천인합일인 선학이다. 소학의 교육적 훈련은 필수성을, 맹자의 자득론은 주체적 깨달음을, 중용의 성 사상은 천성과의 합일을 각각 상징한다. 궁극적 목표는 인의 실현으로, 공자가 “殺身成仁”이라 명한 인성 본연의 가치 완성에 있다.
 
 
(2025.6.5 강의 요약자: 주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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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