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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수집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5.06.16. 14:07 (2025.06.16. 14:03)

구소련 언어학과 김수경

 
同志社大学学術リポジトリ (2014) - 社会科学 第 44 巻 第 1 号 北に渡った言語学者・金壽卿の再照明 / 본고의 목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공화국’)의 한국어학에서 구소련 언어학의 어떠한 영향이 있었는지, 특히 정치-사상적 측면과 문법론적 측면에 관해 고찰하는 것이다.
社会科学 第 44 巻 第 1 号 北に渡った言語学者・金壽卿の再照明
 
구소련 언어학과 김수경
조의성(趙義成)
 
旧ソ連の言語学と金壽卿
 
 
日本語要旨
 
本稿の目的は,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国(以下「共和国」)の朝鮮語学において,旧ソ連言語学のいかなる影響があったのかについて,とりわけ政治・思想的な側面と文法論的な側面に関して考察することである。
第 2 次世界大戦以前のソ連言語学界では N. Ja. マールの理論すなわちマール主義が「マルクス主義言語学」として,絶対的な地位にあった。共和国の言語学界がソ連の言語学を受容することは衛星国としての公的な方針であり,金寿卿が紹介した論文はほとんどがマール主義に関連づけられたものであった。しかし,共和国の朝鮮語研究それ自体はいたって常識的な言語学に基づいた研究活動であり,マール主義は共和国に根ざすことがなかったと推測される。
1949 年刊行の『朝鮮語文法』(以下『49 年文法』)は,音声学と音韻論を区分せずに音論として扱う点,造語論を形態論の中で扱う点,統辞論で単語結合を扱う点などは,当時のソ連言語学と軌を一にしている。『49 年文法』は,従来の文法論で同義の用語だった「助詞」と「ト(토)」を別個のものとして扱っていた。朝鮮語の格を表示する要素を「助詞」という単語と見ずに「ト」という形態形成の形態素と見たのは,ロシア語文法における名詞の格の捉え方を参考にしたものと考えられる。一方,「助詞」は,ロシア語文法における「小詞」の概念と関連づけ得る。また,『49 年文法』では,旧ソ連言語学における単語結合が「語詞結合」という用語で扱われているが,この時点では文法理論をまだ十分に吸収することが困難だったと考えられる。
スターリンによるマール批判(1950 年)とマール主義を否定したソ連言語学は,朝鮮戦争休戦までには共和国にもたらされていたと見られる。1958 年,共和国言語学界の主導的立場にあった金䈁奉批判する論文が掲載され,6 字母などの金䈁奉の業績はことごとく否定され,金寿卿も公式に批判を受けた。金䈁奉の失脚が政治的な動機によるものであった一方で,金寿卿は「追従者」と受動的な立場に位置付けられていることから,金寿卿に対する批判はあらかじめ「逃げ道」の用意されていたもののようにも思われる。
金寿卿が執筆に関わった 1960 年刊行の『朝鮮語文法 1』(以下『60 年文法』第 1 巻)と,1963 年刊行の『朝鮮語文法 2』(以下『60 年文法』第 2 巻)には,1952 年と 1954年に刊行されたアカデミー版『ロシア語文法』(以下『ソ連 60 年文法』)が大きな影響を与えたと推測される。セクションを区切る書式,「序論」と称して形態論の諸問題を広く検討する手法,音論において国際音声記号を用いず固有文字で発音を表記する手法などは,『ソ連 60 年文法』の手法をそのまま踏襲している。
『49 年文法』から『60 年文法』第 1 巻への大きな変更点は,すべての「助詞」を認めなくなった点である。文法形態素として語根に膠着する要素をことごとく「ト」とするこのような見解は,その後の共和国のあらゆる文法論に原則的に引き継がれていく。『60 年文法』第 1 巻では,ソ連言語学と同様の単語結合の概念を認めているが,3年後に刊行された『60 年文法』第 2 巻では,「諸単語の文法的連結」というより広い概念を設定し,その下位範疇として「結合」,「接続」の 2 つを設定した。ソ連言語学の「単語結合」だけでは処理しきれない問題があったためであると見られる。
1960 年代までの共和国の言語学界が学問的に健全に活動を行なってくることができたのは,金寿卿をはじめとする研究者の真摯な学問的姿勢に拠るところが大きいといえよう。
 
 
들 어 가 기
 
본고의 목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하 ‘공화국’)의 한국어학에서 구소련 언어학의 어떠한 영향이 있었는지, 특히 정치-사상적 측면과 문법론적 측면에 관해 고찰하는 것이다.
해방 후 38선 이북 지역(이하 ‘이북’)에서는 남북 분단이 진행되는 속에서 38선 이남 지역과 별도로 한국어 연구가 진행되었다. 소련군 진주 후 이북에서는 소련 언어학이 들어와 한국어 연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본고의 큰 흐름으로 마르주의로 불리는 소련 언어학의 풍조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북 언어학계의 양상을 관찰하고 김수경이 그것에 어떻게 관여했는지를 보기로 한다.
그 다음에 문법론에서 김수경의 역할에 관해 1949년 간행 “조선어 문법”(이하 ‘49년 문법’)과 1960년 간행 “조선어 문법 1”1) (이하 ‘60년 문법’)을 중심으로 고찰한다. 문법론에 관해 구체적으로는 2대 부분인 형태론과 통사론에서 각각 한 가지 문제에 초점을 맞춰 고찰한다. 형태론은 조사의 처리에 관해 보기로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러시아어는 굴절어여서 교착어인 한국어에서 볼 수 있는 조사 따위가 없다. 소련 언어학에서 직접 다뤄지지 않았던 조사를 이북에서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흥미로운 문제이다. 통사론은 단어결합에 관해 고찰한다. 단어결합이라는 단위는 러시아 언어학에서 독자적으로 설정된 단위로, 서구 언어학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이러한 문법 단위를 이북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한국어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본고에서 개관한다.
 
1 해방 직후의 한국어 연구와 김수경
 
1.1 소련 언어학과 마르주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소련 언어학계에서는 N. Ja. 마르(Н. Я. Марр, 1864-1934)의 이론, 즉 마르주의가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으로서 절대적인 지위에 있었다. 그는 야페트 이론이라는 언어의 일원 발생설을 제창했으며 또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고부터는 언어는 상부구조이며 계급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페트 이론은 모든 언어의 모든 단어는 ‘sal, ber, jon, rosh’라는 네 가지 요소로부터 발생했다는 가설이며 비교 역사 언어학을 ‘부르주아 언어학’이라며 공격했다.
마르주의는 그가 죽은 후에도 소련 언어학계에 강한 영향을 주었지만 1950년에 스탈린이 “프라우다” 지상에서 발표한 논문(훗날에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제문제”로 정리되었음)에서 공식적으로 비판, 부정되어, 소련 언어학은 비로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갔다. 해방 직후에 이북에 들어간 소련 언어학은 그러한 마르주의에 물든 것이었다.
 
1.2 해방 직후의 이북 언어학계
 
일제시대의 조선에서는 주시경 학파의 학자가 중심이 되어 1931년에 결성한 조선어학회가 조선인에 의한 민간 한국어 연구 단체로서 큰 역할을 했다.2) 조선어학회는 해방 후에도 38선 이남 지역에서 계속해서 한국어 연구 단체, 한글 보급 단체로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 이북에서는 1947년 2월 5일에 북조선 인민 위원회 175호 결정에 의해 조선 어문연구회가 조직되었다. 이 조직이 이북에서 언어 정책과 한국어 연구의 중심적 역할을 했다. 조선 어문 연구회는 언어 정책 면에서 1948년에 조선어 신철자법의 제정, 1949년에 조선어 연구 잡지 “조선어 연구”의 발행,3) 그리고 같은 해에 규범 문법인 ‘49년 문법’을 발표한 것이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1.3 조선 어문 연구회에서 김수경의 활동과 구소련 언어학
 
해방 직후 시기에 김수경의 활동은 조선 어문 연구회에서 발행된 서적을 통해 알 수 있다. 조선 어문 연구회가 1949년에서 1950년에 걸쳐 발행한 잡지 “조선어 연구”에서 김수경은 소련 언어학 논문을 수 차례 번역했다.4) 공화국 언어학계가 소련 언어학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성국으로서 공적인 방침이며,5) 김수경의 활동도 그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시기의 소련 언어학계는 마르주의의 영향하에 있었기 때문에 소개된 논문도 거의 마르주의와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6)
마르주의가 공화국에 소개되는 한편, 한국어 연구 자체는 지극히 상식적인 언어학에 의거한 연구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조선어 연구”지 1949년 5월호에 게재된 김수경의 논문 ‘“龍飛御天歌”에 보이는 揷入 字母의 本質’7)을 보면 소련 문헌뿐만 아니라 일본어 문헌(小倉進平), 서구 문법(람스테드, 소쉬르), 한국어 문헌(최현배, 양주동) 등을 광범위하게 참조해, 마르의 야페트 이론과 같은 황당한 논리 전개는 볼 수 없다. 마르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부르주아 언어학적 수법’이라 할 수도 있는 논문을 연구 잡지에 게재하는 것이 허용되던 당시의 공화국의 상황을 보면 마르주의에 물든 구소련 언어학이 공화국 국내에 스며들어 있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해방 직후의 시기는 우선 대인민(對人民) 정책에서 민족 문자의 보급이 시급한 과제였을 것이며 한국어 학계에서는 규범 문법의 작성, 사전 편찬이라는 기초적 사업이 급무였다(편집부 1949:135,신구현 1949:36). 이렇게 보면 이 시기 공화국 언어학계는 마르주의에 물든 소련의 이론이 자주 소개는 되었지만 그것들은 소개 단계에 그쳤으며 마르주의는 공화국에 뿌리를 박지 않았다고 추정된다. 마르주의는 1950년대 소련 본국에서 부정되었다. 공화국도 같은 시기에 6∙25가 일어났기 때문에 마르주의는 절로 버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수경은 소련 언어학의 소개자임과 동시에 전통적인 언어학의 연구자라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연구 활동을 했었다고 할 수 있다.
 
1.4 ‘49년 문법’의 편찬과 김수경의 역할
 
‘49년 문법’은 한국 전쟁 이전의 공화국에서 이루어진 종합적인 문법 연구의 하나의 집대성이다. 이 문법서는 1948년 10월에 조직된 조선 어문 연구회의 문법 편수 분과 위원회8)가 중심이 되었고 초고는 김일성 종합대학 조선어학 강좌를 중심으로 해서 작성되었으며(조선 어문 연구회 1949), 당시에 이 강좌의 강좌장을 맡았던 김수경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김영황, 권승모 편 1996:403).
‘49년 문법’은 어음론, 형태론, 문장론(=통사론) 세 가지 분야로 이뤄져 있다. 문법서에 형태론, 통사론과 함께 음론(音論)까지 포함시키는 구성은 구소련 문법서에서 볼 수 있는 형식과 동일하다. ‘49년 문법’도 구소련의 그러한 편찬 수법을 답습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 보아도 음성학, 음운론을 구별하지 않고 ‘어음론’으로서 다룬 점, 조어론(단어조성론)을 형태론 안에서 다룬 점, 통사론에서 단어결합을 다룬 점 등은 당시의 소련 언어학과 궤를 같이한다.9)
김수경이 구체적으로 ‘49년 문법’의 어느 부분을 담당 집필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는 뒤에서 보는 ‘60년 문법’에서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49년 문법’의 전체적인 특징을 구소련 문법서와 비교하기로 한다.
 
1.4.1 ‘49년 문법’에서 조사의 취급
 
형태론에서 소련 언어학의 이론을 도입할 때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어의 이른바 ‘조사’의 처리 방법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러시아어는 굴절어에 속하며 명사 어형은 어간과 어미로 이뤄져 있다고 분석된다. 어간, 어미는 둘 다 자립적이 아니며 각각 단독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에 반해 한국어는 교착어이며 명사는 어휘적 의미를 가진 자립적인 부분(명사 본체)에 문법적 의미를 가진 비자립적인 요소(소위 조사)가 붙음으로써 형성된다.
해방 전 연구에서 한국어 조사는 ‘토’나 ‘토씨’라고도 불려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비자립적인 품사로 다뤄졌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사를 품사로 인정한 점이다. 조사를 하나의 품사로 인정한다는 것은 바로 조사를 단어로 인정한다는 것을 뜻한다.
‘49년 문법’에서도 조사라는 개념은 인정하긴 하지만 종전의 문법론과는 달리 같은 뜻의 용어였던 ‘조사’와 ‘토’를 각각 다른 개념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49년 문법’에서 ‘조사’는 종래대로 하나의 품사, 즉 단어로 인정했지만 ‘토’는 단어가 아니라 단어를 형성하는 형태소로 삼았다. 그리고 ‘조사’에 소속시킨 것은 종전의 ‘보조사’10)
라 불린 것뿐이며 격조사라 불린 것은 ‘조사’가 아니라 ‘토’라고 했다.
‘조사’와 ‘토’를 이렇게 구분한 근거로는 소련 언어학의 문법론의 영향을 고려할 수 있다. 러시아어 명사는 어형 변화를 한다. 명사의 어형 변화는 어간 뒤에 붙는 어미가 그 역할을 맡고 격은 이 어미에 의해 표현된다. 러시아어에서 어미는 어디까지나 명사의 형태를 형성하는 형태소이며 그 자체는 단어가 아니다. 한국어의 격을 표시하는 요소를 ‘조사’라는 단어로 보지 않고 ‘토’라는 형태 형성의 형태소로 본 것은 러시아어 문법에서의 명사의 격을 참고로 한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으로, ‘조사’는 러시아어 문법에서의 ‘소사(小詞)’의 개념과 결부시킬 수 있다. 구소련 언어학에서는 한때 단어를 분류하는 데 ‘품사’(части речи,parts of speech)와 ‘소품사’(частицы речи,particles of speech)를 구분하고,11) 소품사의 하나로서 ‘소사’(частица, particle)라는 단어의 일군이 설정되었다. 소사란 “완전히 자립적인 현실적 의미나 물질적 의미를 보통 가지지 않지만 다른 단어, 단어 그룹, 문장의 의미에서 주로 보조적 뉘앙스를 더하거나 갖가지 문법적(즉 논리적, 표현적) 관계를 나타내는 데 봉사하는 단어 클라스”라고 한다(비노그라도프 1972:520). ‘49년 문법’에서는 ‘조사’를 “自立的이 되지 못하고, 앞에 있는 語의 뜻을 여러 가지로 도와, 그 意味에 各種의 뉴앙스를 賦與하는 品詞다”(맞춤법은 현대식으로 고쳤음)라고 하여 이 정의가 구소련 언어학에서의 ‘소사’의 정의와 상통한다.
 
1.4.2 ‘49년 문법’에서 단어결합의 취급
 
단어결합이란 러시아 언어학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져 온 문법적 단위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연구에서 단어결합은 예를 들어 ‘하나의 단어가 다른 단어에 종속함으로써 표현되는 문법적 통일체를 형성하는 단어의 연결’(샤흐마토프 1941:274)과 같이 정의되었다. 서구 통사론에서는 문장 구조, 문장 성분 등을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구소련 언어학에서 통사론은 문장에 관한 이론과 단어결합에 관한 이론이라는 두 가지 기둥을 세우는 만큼 단어결합이라는 단위는 구소련 언어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49년 문법’에서는 ‘語詞 結合’이라는 용어로 단어결합이 다뤄졌으며 “文法的으로 形態를 갖춘 語의 有意味的 結合”(306쪽)이라 정의되어 있다. ‘어사 결합’은 ‘종속’과 ‘병렬’ 두 가지 하위 부류를 가지는데 이는 소련 언어학에서 자립적 단어결합과 비자립적 단어 결합의 구분과 일치된다.
‘어사 결합’은 ‘문장론’ 제1장 ‘文의 一般的 知識’에서 ‘文의 構成’과 함께 한 절을 할애해서 설명한 것을 보아도 ‘49년 문법’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총 101쪽 ‘문장론’ 중 ‘어사 결합’에 관한 기술은 불과 7쪽으로, 단어결합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없다. 그때까지의 문법 연구가 주로 형태론 위주로 이루어져 왔던 것, 단어결합이라는 개념을 그때까지 접할 기회가 적었던 것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해방 직후의 짧은 기간에 단어결합론을 충분히 흡수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2 한국 전쟁 후의 한국어 연구와 김수경
 
2.1 구소련에서의 마르주의 비판
 
오늘날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제문제”로 알려진 스탈린에 의한 마르 비판은 소련 공산당 기관지 ‘프라우다’에서 진행된 언어학자의 지상 토론12) 후 1950년 6월 20일자로 게재된 ‘언어학에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와 그에 관련한 동지들에 대한 회답으로 이뤄진 일련의 글이다. 그중에서 마르주의는 결함 이론이며 마르크스주의적 언어학이 아닌 점이 지적되고, 지상 토론에 의해 소비에트 언어학계의 아락체예프적 지배13)가 분쇄되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마르와 가까운 연구자였던 메시차니노프도 실각되었지만 “그 후 마르를 평가는 했지만 옳은 비판도 잊지 않았다며 부활되었다”(亀井孝, 河野六郎, 千野栄一 1996:1512)고 하며 “소비에트에서의 언어학 비판도 (중략) 마르에서 끝내고 아직 살아 있는 메시차니노프까지 미치지 않게, 게다가 그 업적을 부인하지 않게 한 배려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田中克彦 2000:159)고 한다.
 
2.2 김두봉의 실각과 김수경에의 영향
소련에서의 마르 비판 시작과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한국전쟁에 의해 연구 활동은 한때 정체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휴전 후에 연구 활동은 다시 시작되어 조선어 철자법 제정(1954년), 언어 문학 연구 잡지 “조선 어문” 창간(1956년) 등 학계는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때는 이미 마르주의를 부정한 소련 언어학이 공화국에 도입되었다고 간주된다. 菅野裕臣(1997)에 의하면 한국 전쟁 중인 1952년에 비노그라도프 등에 의한 논문집 “언어학에 관한 이. 웨. 쓰딸린의 로작 발표 2 주년 기념 론문집”이 김수경에 의해 번역, 소개되었고 김일성 종합 대학 언어학 강좌에서는 1954년에 “이. 웨. 쓰딸린의 로작에 비추어 본 언어학의 제문제”가 발간되었다고 한다.
김수경 자신도 스탈린의 “마르크스주의와 언어학의 제문제”를 인용하면서 한국어 어휘론을 논하고 있다(김수경 1953). 그러나 여기서는 언어가 상부 구조냐 아니냐, 언어가 계급적이냐 아니냐 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문제는 직접 언급하지 않고 스탈린이 정상화시킨 전통 언어학에 입각해 어휘를 논하고 있다.
한국전쟁 후의 시기에 공화국 언어학계에서는 지극히 중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공화국 언어학계의 주도적 입장에 있었던 김두봉의 실각이다. “조선 어문” 지상에서는 김두봉을 비판하는 논문이 게재되고(저자 불명 1958), 그것에 이어 6자모 등 김두봉의 업적이 모조리 부정되었다.
김두봉 비판의 어조는 스탈린에 의한 마르 비판과 유사하다. 즉 김두봉이 조선 언어학계에서 아락체예프적 지배를 실시했다는 것이며 더군다나 한국어학의 고유한 문제로서 김두봉이 주시경을 왜곡했다는 것이 언급되었다. 또 이 시기는 스탈린 비판도 진행된 후였기 때문에 김두봉에 대한 개인 숭배도 비판 대상이 되었다.
이때 김수경은 김두봉의 추종자라는 명목으로 “조선 어문” 지상에서 공식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김수경의 업적 중에서 특히 표적이 된 것이 김수경이 잡지 “조선어 연구” 1949년 5월호에 발표한 논문 ‘조선어 학자로서의 김 두봉 선생’이었다.
경성제대 출신이며 해방 후에 조선 공산당에 입당, 조선어학회에 입회한 김수경과, 주시경 밑에서 공부하고 연안파 공산주의자로서 해방 전부터 활동을 했던 김두봉은 그 경력이 전혀 다르며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아니다. 과연 김수경이 어느 정도 김두봉을 ‘추종’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김두봉의 실각이 정치적인 동기에 의거한 것이며 언어학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일종의 희생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비판 논문에서 도마 위에 올라간 김수경에 대해 ‘동무’라는 부름말이 붙었고 김두봉이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임에 반해 김수경이 ‘추종자’라는 수동적 입장으로 표현된 것을 보면 김수경에 대한 비판은 미리 ‘달아나는 길’이 있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마르 비판의 과정에서 협조자인 메시차니노프가 한번 실각은 했지만 그 능력이 인정되어 나중에 복권된 것을 생각하면 김수경 역시 언어학자로서 유능하다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충분히 인정했기 때문에 정치적인 숙청극과는 달리 완전한 실각을 모면했을지도 모른다.14)
 
2.3 ‘60년 문법’과 김수경
 
1960년과 1963년에 간행된 ‘60년 문법’은 공화국이 해방, 한국 전쟁의 혼란기를 지나 국가적으로 안정기에 들어간 60년대 초에 과학원에서 출판된 최초의 대규모 규범 문법이라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서적이다. 1960년에 간행된 제1권(어음론, 형태론)은 김수경, 리근영이 담당하고(김영황, 권승모 편 1996:369), 1963년에 간행된 제2권(문장론)은 정렬모, 송서룡이 집필했다(김영황, 권승모 편 1996:407).
구소련에서는 마르주의가 공적으로 부정된 후에 반마르파였던 V. V. 비노그라도프(В.В. Виноградов,1895-1969)가 중심이 되어 1952년과 1954년에 아카데미판 “러시아어 문법”(이하 ‘소련 60년 문법’)이 간행되었다. 소련 언어학이 마르주의의 질곡에서 벗어나서 처음으로 편찬된 규범 문법으로서 이 ‘소련 60년 문법’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법서가 공화국 ‘60년 문법’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추정된다.
특히 김수경이 담당했다고 전해지는 제1권은 ‘소련 60년 문법’의 영향력이 강하다. ‘서론’에서 형태론의 제반 문제를 널리 검토하는 수법, 어음론에서 국제 음성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고유 문자(보조 부호가 달린 한글)로 발음을 표시하는 수법15) 등은 ‘소련 60년 문법’의 수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2.3.1 ‘60년 문법’에서 조사의 취급
 
‘49년 문법’에서 ‘60년 문법’으로 이행하는 데 큰 변경점은 모든 ‘조사’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49년 문법’에서는 보조사만을 조사로 인정했지만 ‘60년 문법’에서는 보조사를 포함해 모든 조사류를 단어 형성의 문법 형태소인 ‘토’로 삼았다. 그와 함께 비자립적 품사로서의 ‘조사’는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16)
그 결과 명사의 문법적 형태는 격, 용언형(‘-이다’가 붙은 형태), 보조사가 붙은 형태, 세 가지를 인정하게 되었는데 격이 문법 범주임에 반해 용언형과 보조사가 붙은 형태가 문법 범주가 아니라 무엇인지 모호한 채로 처리가 되었다.17) 그러나 문법 형태소로서 어근에 교착되는 요소를 모조리 ‘토’로 보는 이러한 견해는 ‘60년 문법’ 이후의 공화국의 모든 문법론에 원칙적으로 승계되는 만큼 중요한 견해가 된다.
 
2.3.2 ‘60년 문법’에서 단어결합의 취급
 
‘60년 문법’ 제2권은 김수경이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하게 보기로 한다. ‘60년 문법’ 제2권에서는 소련 언어학에서 볼 수 있는 ‘단어결합’이라는 문법적 통일체를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단어들의 문법적 련결’이라는 더 넓은 개념을 설정하고 그 하위 범주로서 ‘결합’, ‘접속’ 두 가지를 설정했다. 이들 중 ‘결합’이 소련 언어학의 ‘단어결합’에 해당하는 것이다. ‘60년 문법’ 제2권에서 이러한 넓은 개념을 도입한 이유는 소련 언어학의 ‘단어결합’만으로는 처리를 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18)
그러나 김수경이 관여한 ‘60년 문법’ 제1권에서는 소련 언어학과 동일한 단어결합의 개념을 인정하고 있다.19) ‘60년 문법’ 제1권 발행부터 제2권 발행까지 3년이 지났으며 또 집필자도 다르다. 단어결합의 취급에 관해 내부에서 활발한 논의가 있었다고 추정되는데 김수경은 소련 언어학에 더 충실한 단어결합을 머릿속에 그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3 주체사상 대두와 소련 언어학으로부터의 괴리
 
주체사상 대두 이후에 관해 아주 간단하게 기술한다. 1960년대부터 대두한 주체사상은 공화국의 언어학계에 영향을 주게 된다.20) 특히 한국어사에서는 고대 한반도 언어의 단일성을 주장할 때에 김일성의 교시가 이용되었다.21) 구소련에서는 마르가 역사 언어학계에서 황당무계하다고 여길 만한 이론을 전개한 것이 스탈린에 의해 부정되었는데, 공화국에서는 마르의 망령이 주체사상과 함께 되살아나 한국어사를 잡은 듯하다. 김수경이 이러한 한국어사 논고에 관여한 흔적은 없다. 그것은 그가 문법론 중 형태론을 주로 연구해 왔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문법론에서는 소련 언어학으로부터의 이탈이 더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형태론에서 그때까지 품사별로 관찰해 온 ‘토’를 품사와 상관없이 같은 차원에서 논하거나 통사론에서 단어결합을 다루지 않고 문장 성분으로만 처리를 하는 것은 그때까지의 문법 연구와 상당히 양상이 다르다.
 
 
마 무 리
이상과 같은 고찰에서 김수경이 해방 직후에 구소련 언어학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한국 전쟁 후의 공화국의 언어학계에서 구소련 언어학의 성과를 받아들인 연구를 했던 것을 밝혔다. 구소련 언어학의 마르주의는 실질적으로 공화국에 뿌리를 내리지는 않았고 김수경 자신도 마르주의에 물들지 않았다고 추측된다. 결국 김수경은 구소련 언어학의 ‘건전한’ 부분을 한국어학에 적용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60년대까지의 공화국 언어학계가 학문적으로 건전하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김수경을 비롯해 연구자들의 진지한 학문적 자세에 의거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1) “조선어 문법 1”은 어음론, 형태론이 수록되어 있고 그 3년 후인 1963년에 통사론을 다룬 “조선어 문법 2”가 간행되었다. 다만 김수경은 “조선어 문법 1”에만 관여하고 “조선어 문법 2”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추정되기 때문에(김영황, 권승모 편1996:368, 407) 본고에서는 “조선어 문법 2”를 직접 분석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2) 조선어학회는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 1936년에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작성했다. 이 맞춤법, 표준어 모음은 그 후 남북 분단 후에도 남북에 각각 인계되었다.
3) 菅野裕臣(1997)에 의하면 1949년부터 1952년까지 간행되었다고 한다.
4) 1949년 4월호부터 1950년 6월호까지의 열한 권에서 구소련의 논문 14편이 번역, 소개되었는데 그중 6편을 김수경이 담당했다.
5) 신구현(1949:35)에서는 공화국 언어학자의 당면 과제로서 “선진적 쏘베트 언어학의 경험과 리론을 우리들의 사업에 살리는 일을 해야 하겠다”고 주장했다.
6) 유독 1950년 6월호에 소개된 체모다노프의 ‘이. 브. 쓰딸린과 쏘베트 언어학’만이 마르에 관한 언급이 없는데 이는 이 논문이 스탈린 찬양을 위한 논문이기 때문일 것이다.
7) 이 논문은 1947년에 진단학보(서울)에 게재된 논문 ‘龍飛御天歌의 揷入音考’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8) 이극로(李克魯), 전몽수(田蒙秀; 위원장), 허익(許翼), 명월봉(明月峰), 김용성(金龍成), 신규현(申龜鉉), 홍기문(洪起文), 김병제(金炳濟), 박종식(朴宗軾), 박준영(朴俊泳), 박상준(朴相埈), 김수경(金壽卿)의 12명으로 구성된다.
9) 그 후, 구소련에서는 음성학과 음운론을 따로따로 기술하거나 형태론에서 조어론을 분리시켰다. 훗날의 공화국 문법서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볼 수 있다.
10) ‘도움토’라고도 한다. 일본어 문법의 ‘副助詞’에 해당하는 조사의 일군이다.
11) 비노그라도프(1972)에서는 자립적 단어인 명사, 형용사, 수사, 대명사, 부사, 상태범주(서술어), 동사를 ‘품사’로 분류하고, 비자립적 단어인 소사, 전치사, 접속사를 ‘소품사’로 분류했다.
12) 스탈린 논문에 앞서 1950년 5월 9일부터 6월 13일에 걸쳐 ‘프라우다’ 지상에 1주일에 한 번씩, 총합 11편 언어학 논문이 발표되었다(田中克彦 2000:124-127).
13) 아락체예프는 제정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의 총신(寵臣)으로 전제적인 보스 지배를 실시했다.
14) 菅野裕臣에 의한 웹페이지 “菅野裕臣のAŭtobiografio”(http://www.han-lab.gr.jp/~kanno/cgi-bin/hr.cgi?autobio/autobia-2.html)는 ‘원래는 김두봉과 함께 처형당했어야 하는데 많은 제자들이 탄원해 그것은 모면되었다’고 전했다.
15) ‘소련 60년 문법’에서는 보조 기호가 달린 키릴 문자에 의해 러시아어 발음이 표시되었다.
16) 이 문제에 관해서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은 ‘형태론’편 서론에서 간단한 기술이 있다(129쪽).
17) 그 후 김용구(1989)에서는 보조사에 의해 형성되는 것을 ‘관련범주’로 부르고 격, 수와 함께 체언의 문법범주로 삼았다.
18) 이에 관해서 자세한 것은 趙義成(2001) 참조.
19) ‘소련 60년 문법’ 제2권(통사론 편)에서 단어결합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자립어의 연결에 의해 구성되고 단일하지만 분절된 개념이나 표상을 나타내는 데 봉사하는 문법적 통일체’(‘소련 60년 문법’ 제2권 제1분책 6쪽)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에 대해 공화국 ‘60년 문법’ 제1권에서는 단어결합을 ‘문장 안에서 두 개 이상의 실질적 단어들로 이루어진 문법적 통일체’(‘60년 문법’ 제1권 4쪽)라고 정의되어 있다.
20) 한국어 순화운동 등에도 주체사상의 영향이 있지만 본고는 구소련 언어학과의 관련을 보기 때문에 여기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다.
21) ‘원래 우리 민족은 수천년의 오랜 력사를 통하여 하나의 문화와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살아온 단일민족입니다.’(김일성 “외국 기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 박정문(1984) “조선어사연구론문집”에서 재인용) 등.
 

 
참고문헌
(1) 한국어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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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근 편(2000) “북한 및 재외교민의 철자법 집성”, 북한 및 재외교민의 어문자료총서(1), 서울: 역락출판사
고영근 편(2001a) “조선어 연구 1”, 북한 및 재외교민의 어문자료총서(2), 서울: 역락출판사
고영근 편(2001b) “조선어 연구 2”, 북한 및 재외교민의 어문자료총서(3), 서울: 역락출판사
고영근 편(2001c) “조선어 연구 3”, 북한 및 재외교민의 어문자료총서(4), 서울: 역락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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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枓奉(1934) “깁더 조선말본”, 京城: 滙東書館
김수경(1953) ‘언어학의 문제들에 관한 이. 웨. 쓰딸린의 로작에 비추어 본 조선 어의 기본 어휘와 어휘 구성에 관하여’,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 학보” 1953-2,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
김영황, 권승모 편(1996) “주체의 조선어 연구 50년사”,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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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현(1949) ‘조선 어문의 통일과 발전 사업에 있어서 우리들 조선 어문 학자들의 당면과업’, “조선어 연구” 8, 평양: 조선 어문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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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語文 研究會 (1949) “朝鮮語 文法”, 平壌: 文化出版社 조선 어문 연구회(1950) “조선어 신철자법”, 고영근 편(2000)所収
趙義成(2001) ‘북한 단어결합론과 옛 소련 단어결합론 –60년 문법을 중심으로–’, “國語學” 38, 서울: 國語學會
周時經(1911) “朝鮮語文法”, 京城: 新舊書林
崔鉉培(1930) ‘朝鮮語의 品詞分類論’, “朝鮮語文研究”, 延禧專門學校文科研究集第1輯, 京城: 延禧專門學校出版部
崔鉉培(1934) “중등 조선 말본”, 京城: 東光堂書店
편집부(1949) ‘조선 어문 연구회의 사업전망’, “조선어 연구” 1, 평양: 조선 어문 연구회
Koncevich(1971) ‘蘇聯의 韓國語學’, “亞細亞硏究” XIV, No.2, 서울: 高麗大學校 亞細亞問題研究所(菅野裕臣에 의한 Концевич, Л. Р.(1967) Корейский язык, «Советское языкознание за 50 лет», Москва의 한국어 번역과 역주)
(저자 불명)(1958) ‘우리 당의 과학 정책에 보다 충실한 조선 언어학을 위하여’, “조선 어문” 1958-3,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과학원 출판사
 
(2) 러시아어 문헌
Академия наук СССР(1952) «Грамматика русского языка», Том I, Издательство академия наук СССР, Москва (소련 과학 아카데미 “러시아어 문법” 제1권, 소련 과학 아카데미 출판사, 모스크바)
Академия наук СССР(1954) «Грамматика русского языка», Том II, Издательство академия наук СССР, Москва (소련 과학 아카데미 “러시아어 문법” 제2권, 소련 과학 아카데미 출판사, 모스크바)
Виногралов, В. В.(1972) «Русский язык (грамматическое учение о слове)», Издательство «Высшая школа», Москва (비노그라도프 “러시아어(단어에 관한 문법 학설)”, ‘고등학교’ 출판사, 모스크바)(초판은 1947년)
Холодович, А. А.(1954) «Очерк грамматики корейского языка», Издательство литературы на иностранных языках, Москва (홀로도비치 “한국어 문법 개설”, 외국어 문헌 출판사, 모스크바)
Шахматов, А. А.(1941) «Синтаксис русского языка»,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е учевно-педагогическое издательство наркомпроца РСФСР, Ленинград (샤흐마토프 “러시아어 통사론”,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교육 인민 위원부 국립 학습-교육 출판사, 레닌그라드)
 
(3) 일본어 문헌
亀井孝,河野六郎,千野栄一(1996)『言語学大辞典』第 6 巻術語編,東京:三省堂
桑野 隆(1979)『ソ連言語理論小史』,東京:三一書房
高峻石(1988)『北朝鮮現代史入門』,東京:批評社
田中克彦(2000)『「スターリン言語学」精読』,岩波現代文庫,東京:岩波書店
村山七郎(1951)「マルのヤフェット理論とスターリン批判後のソ連言語學界」,『民族學研究』 16-2,東京:日本民族学協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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