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391강 강의자료 요약 (2025.7.10)
2025년 7월 3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唐詩 300首
1) 당시 제목: “천애” 2) 당시 중국어 발음
天 涯 - 李 商 隱 春 | 日 | 在 | 天 | 涯 | chūn | rì | zài | tiān | yá | 天 | 涯 | 日 | 又 | 斜 | tiān | yá | rì | yòu | xié | 鶯 | 啼 | 如 | 有 | 淚 | yīng | tí | rú | yǒu | lèi | 爲 | 濕 | 最 | 高 | 花 | wèi | shī | zuì | gāo | huā |
3) 작자: 이상은(李商隱, 812년 또는 813년 ~ 858년) 이상은은 당나라 말기의 저명한 시인으로, 자는 의산(義山), 호는 옥계생(玉谿生)입니다. 그는 현재의 하남성 심양시(沁陽) 출신으로, 아버지 이사는 당나라의 종실 출신이었으나, 그의 어린 시절에는 가난한 지방 관료로 생활했습니다. 이상은은 10세에 아버지를 잃고,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문학적 업적 이상은은 당나라의 대표적인 시인 중 한 명으로, 특히 애정 시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시는 화려하고 상징적이며,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무제(無題)'라는 제목의 시를 많이 남겼으며, 이는 그의 애정 시에서 특히 두드러집니다. 이러한 시들은 대개 불륜이나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회상으로, 애수와 우아함이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상은은 또한 정치적 야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당나라의 정치적 파벌 싸움인 '우이당쟁(牛李黨爭)'에 휘말리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여러 차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정치적 불운으로 인해 생애의 대부분을 고달프게 보냈습니다. 그의 시는 이러한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비판을 담고 있어, 그가 겪은 감정의 깊이를 잘 드러냅니다.
문학적 영향 이상은은 후세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시는 '작은 이백과 두목'으로 불리며, 당나라 시인들 중에서도 특히 젊은 세대에게 사랑받았습니다. 그의 독특한 시풍은 후대 시인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고, 그의 작품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이상은은 47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며,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38강(2024,01,11) 강의 교안
*《論語》〈里仁〉
4-09. 子曰:士志于道,而耻惡衣惡食者,未足與議也。 공자가 말하기를 “선비가 도 진리 탐구에 뜻을 두는데,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더불어 도 진리 탐구를 논의할 수 없다.
(注釋) (1) 士 - 공부하는 사람, 독서인, 선비, 有志之士(반대는 乞丐之士) 丏 가릴 면. 眄 곁눈질할 면, 麪=麵 =面 밀가루 면
《論語》〈學而〉「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군자는 먹는 데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하는 데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다.
〈述而〉「飯疏食,飮水,曲肱而枕之,樂亦在其中矣」 밥은 거친 현미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으면, 즐거움은 또한 그 안에 있다.
* 조미반(糙米飯)은 도정 안 한 것이다. 소채(蔬菜) ~ 밭에서 가꾸어서 부식물로 먹는 나물
《孟子》〈盡心章上〉 「居仁由義, 大人之事備矣」 인(仁)에 거하고 의(义)로 말미암아 행동하면 대인의 일이 갖추어 지는 것이다."
또 「士先志」, 「士尙志」 선비는 뜻을 세우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 뜻을 숭상한다.
(2) 志 - 뜻, 생각, 연구하는 마음 (3) 道 - 진리, 仁義 탐구 (4) 未足 - 부족, 불능, 불가 (5) 議 - 의논, 토론
*申欽, 〈野言〉에 아래의 詩는 없음 ? 조선4대 문장가. 〈野言〉 권1은 明代 吳從先의 淸言集인 《小窓淸記)》〈淸言〉을 選取한 뒤 본인의 의사에 맞게 개작한 책이다. 권2는 明代 閻鶴洲가 1591년(萬曆 19년)에 道家 관련 서적을 모아 엮은 책 《道書全集》에서 選取하였음.
桐千年老恒藏曲,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柳經百别又新枝。
오동나무는 천 년을 살아도 변함없이 악곡을 간직하고, (오동나무로 가야금을 만들기 때문임) 매화는 평생 추위를 견디며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이 천 번 찌그러졌다 해도 본래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보름달이 기울고 차고 하는 것) 버들은 백 번의 변화를 겪어도 새 가지를 낸다."
1,2 ; 1,2,4 ; 2,4(0) 성조는 같지만, 香은 下平, 枝는 上平, 押韻은 가능 그러나 좀.....
* 벽산 스님 벽산(碧山)스님은 강화도 보문사의 주지로 재직하며 승단의 화합을 강조한 인물입니다.
"3년 있으면 간다"라는 일화 벽산스님은 1987년 봄에 원적했다. 입적에 들기 3년 전부터 스님은 “3년 밖에 못산다.”라고 대중들에게 알렸다. 그리고 입적 3개월 전에도 “이제 3년이 다 되었다.”고 말했고, 3일전에는 “내가 3일 뒤에 간다.”고 했지만 대중들은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스님은 기도 정진뿐만 아니라 도량을 포행하고 화초를 가꾸는 등 평소와 다름없이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긴 후에 의식을 되찾은 벽산스님은 제자들을 야단 쳤다. 도량이 아닌 병원에 있는 당신의 모습을 발견한 까닭이다. “너희가 나를 시중의 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하는구나. 어서 절로 돌아가자.” 우암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수도원으로 되돌아온 벽산스님은 목욕 후 장삼을 수하고는 고요히 열반에 들었다. 이때가 1987년 2월3일(음력)이다. 청주불교연합회장(葬)으로 치러진 스님의 영결식에는 이두스님(현 조계종 원로의원), 월탄스님(당시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보안스님(당시 태고종 충북교구 종무원장), 장세형 회장(전국신도회 부회장) 등이 참석해 스님을 배웅했다. 다비식은 청주 보살사.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 《史記》〈周本紀〉 注釋
1. 興 - 갑골문, 원래는 손으로 물건을 들어 올리는 모양, [▣] 《說文解字》「起也。从舁从同。同力也」 *舁 ~ 마주들 여
1) 일어나다, 《詩經》〈氓〉「夙興夜寐,靡有朝矣」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잠들기 때문에, 아침이 있은 적이 없다.
鄭玄 箋..「早起夜卧」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잔다.
氓 氓之蚩蚩,抱布貿絲。 匪來貿絲,來即我謀。 送子涉淇,至於頓丘。 匪我愆期,子無良媒。 將子無怒,秋以為期。 乘彼垝垣,以望復關。 不見復關,泣涕涟涟。 既見復關,載笑載言。 爾卜爾筮,體無咎言。 以爾車來,以我贿遷。 桑之未落,其葉沃若。 于嗟鳩兮!無食桑葚。 于嗟女兮!無與士耽。 士之耽兮,猶可說也。 女之耽兮,不可說也。 桑之落矣,其黃而陨。 自我徂爾,三歲食貧。 淇水湯湯,漸車帷裳。 女也不爽,士贰其行。 士也罔極,二三其德。 三歲為婦,靡室勞矣。 夙興夜寐,靡有朝矣。 言既遂矣,至于暴矣。 兄弟不知,咥其笑矣。 靜言思之,躬自悼矣。 及爾偕老,老使我怨。 淇則有岸,隰則有泮。 總角之宴,言笑晏晏, 信誓旦旦,不思其反。 反是不思,亦已焉哉!
또 《左傳》襄公二十五年「門啓而入,枕尸股而哭。興,三踊而出」 문이 열리자 들어가, 시체가 흩어져 있는 참혹한 상태(枕尸)인데 어떤 사람의 시체 하나를 자기의 다리에 올려 놓고 그리고 울었다. 일어나서 한 쪽 다리를 세 번 오르내리고 난 후 밖으로 나왔다.
2) 성행, 韓愈, 〈送竇從事序〉「雪霜時降,癘疫不興」 눈과 서리가 때때로 내리고 전염병(癘疫)은 일어나지 않았다.
* 送竇 ~ “두”라는 성씨 가진 사람을 보내다. * 종사(從事) ~ 벼슬 이름
3) 흥성시키다, 《逸周書》〈武稱〉「百姓咸服,偃兵興德」 백성이 모두 복종하고, 전쟁을 정지하고 덕을 흥성 시켜라.
* 諸葛亮〈出師表〉
「先帝知臣勤慎,故臨崩寄臣以大事也。受命以來,夙夜憂嘆,恐托付不效,以傷先帝之明,故五月渡瀘,深入不毛。今南方已定,兵甲已足,當將率三軍,北定中原,庶竭駑鈍,攘除奸凶,興復漢室,還于舊都。此臣所以報先帝而忠陛下之職分也。至于斟酌損益,進盡忠言,則攸之、褘、允之任也。願陛下托臣以討賊興復之效,不效,則治臣之罪,以告先帝之靈。若無興德之言,則責攸之、褘、允等之慢,以彰其咎;陛下亦宜自謀,以咨諏善道,察納雅言,深追先帝遺詔,臣不勝受恩感激。今當遠離,臨表涕零,不知所言」
또 韓愈, 〈潮州請置鄕校牒〉「以督生徒,興愷悌之風」 학생들을 관리 지도하여, 우애와 친목의 풍속을 일으킨다."
4) 시작하다, 《易經》〈同人卦〉「伏戎于莽,升其高陵,三歲不興」 숲에 군대가 잠복해 있다가 높은 구릉 지대로 올라 3년간 지켜보지만 전쟁을 시작하지 못한다.
孔穎達 疏..「縱令更經三歲,亦不能興起也」 설사 3년간 지켜보지만 전쟁을 시작하지 못한다.
또 《周禮》〈舞師〉「凡小祭祀則不興舞」 황제가 검은 색 제복을 입고 소 한 마리를 통째로 드리며, 사방 만물에 지내는 제사에는 춤을 추지 안는다 .
• 小祭祀的定义: 小祭祀是指王玄冕所祭的天地及宗庙等小型祭祀活动。这些祭祀活动通常伴随有锺鼓,但不包括舞蹈。因此,舞师的规定是“小祭祀不兴舞”,即在小祭祀中不进行舞蹈表演。 • 乐器与祭祀: 在小祭祀中,虽然会使用锺鼓等乐器,但由于其规模较小,因此不需要舞蹈。大祭祀则会有更为复杂的乐器和舞蹈安排。 • 祭祀的礼仪: 小祭祀的礼仪相对简单,主要是通过乐器来进行,而舞蹈则被认为是大规模祭祀的特权。小祭祀的目的在于表达对神灵的敬意,但不需要通过舞蹈来增强气氛
5) 선발, 추천하다, 《周禮》〈大司徒〉「以鄕三物教萬民,而賓興之」 향교의 세 가지(6덕, 6행, 6예)를 백성에게 빈객의 예로서 현명한 자를 추천한다.
* 향삼물(鄕三物)은 서주(西周) 시대 향촌 교육의 핵심 강령으로 십이교(十二教)와 더불어 《주례》 교육 체계의 이중 기초를 구성한다. 정현(鄭玄)의 주석 “물유사야(物猶事也)“에 따르면 이는 구체적 실천 항목을 지칭하며, 육덕(六德)·육행(六行)·육예(六藝) 삼층 구조로 체계화된다. • 六德: 지혜(知), 인애(仁), 성스러움(聖), 정의(義), 충성(忠), 화합(和). • 六行: 효도(孝), 우정(友), 화목(睦), 혼인(姻), 임무(任), 배려(恤). • 六艺: 예절(礼), 음악(乐), 사격(射), 마차 운전(御), 서예(书), 수학(数)
또《禮記》〈中庸〉 「故曰:苟不至德,至道不凝焉。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致廣大而盡精微。極高明而道中庸。 温故而知新,敦厚以崇禮。是故居上不驕,爲下不倍;國有道,其言足以興;國無道,其默足以容。《詩(經)》曰:旣明且哲,以保其身。其此之謂與!子曰:愚而好自用,賤而好自專,生乎今之世,反古之道:如此者,災及其身者也。非天子,不議禮,不制度,不考文。今天下車同軌,書同文,行同倫。雖有其位,苟無其德,不敢作禮樂焉;雖有其德。苟無其位,亦不敢作禮樂焉」
* 철도의 궤도 1. 광궤 (Broad Gauge) * 주요 광궤 사이즈: A. 1,676mm (5 ft 6 in): 인도 궤간 (인도, 파키스탄, 아르헨티나, 칠레 등) B. 1,668 mm (5 ft 5+21⁄32 in): 이베리아 궤간 (포르투갈, 스페인) C. 1,600mm (5 ft 3 in): 아일랜드 궤간 (아일랜드, 호주 일부) D. 1,520mm (4 ft 11+27⁄32 in): 러시아 궤간 (러시아, 구 소련 국가)
2. 표준궤 (Standard Gauge) 정의: 1,435mm (4 ft 8½ in) 궤간으로,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궤도입니다.
서양은 로마 전차 폭 유래설로서 로마 시대 전차의 바퀴 간격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로마의 주력 부대인 전차가 다닐 수 있는 폭을 기준으로 도로를 건설했으며, 이 폭이 1435mm였다는 주장입니다. 동양은 진나라 마차 폭이 기준이 되었습니다. (1.4미터)
3. 협궤 (Narrow Gauge) 주요 협궤 사이즈: • 1,067mm (3 ft 6 in): 케이프 궤간 (일본 재래선,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대만 등) • 1,000mm (3 ft 3+3⁄8 in): 미터 궤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일부 국가)
* 제례작악(制禮作樂)과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비교 분석
제례작악(制禮作樂)은 주공(周公)이 서주 초기에 체계적으로 예제(禮制)와 아악(雅樂)을 창제한 역사적 사건을 가리킨다. 《주례(周禮)》·《의례(儀禮)》등 문헌에 구현된 이 체계는 종법제(宗法制)를 토대로 사회 계층 질서를 공고히 하였으며 《중용(中庸)》에서 언급된 "수유기덕, 구무기위, 역불감작례악언(雖有其德,苟無其位,亦不敢作禮樂焉)"이라는 원칙에 따라 덕(德)과 위(位)를 겸비한 성왕(聖王)만이 예악 창제의 정당성을 지닌다는 사상을 반영한다. 이는 정치 권력과 문화 창조의 통일성을 상징한다.
반면 공자가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서 선언한 "술이부작, 신이호고(述而不作,信而好古)"는 선왕(先王)의 도통(道統)을 계승하는 독특한 학술 방식을 표방한다. 표면상 창작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시경(詩經)》 산삭(刪削)과 《춘추(春秋)》 편수 과정에서 구현된 비평 정신은 주자(朱熹)가 평가한 "집군성지대성이절충지(集群聖之大成而折衷之)"라는 창조적 계승의 본질을 드러낸다. 공자의 포의(布衣) 신분은 《논어》 계씨편(季氏篇)의 "예악정벌자천자출(禮樂征伐自天子出)" 원칙에 따라 창제 행위를 수행할 수 없었기에 술(述)은 무위(無位) 지식인의 문화 수호 전략이었다.
《예기(禮記)》 악기편(樂記)의 "작자지위성, 술자지위명(作者之謂聖,述者之謂明)"이라는 기준에 따르면 주공은 성(聖)의 경지에, 공자는 명(明)의 경지에 위치한다. 이는 창제가 계승보다 상위에 놓이는 가치 서열을 반영하나 주자가 지적한 "공배어작(功倍於作)"과 같이 공자의 계승 작업은 실질적으로 창조적 전환을 이루었다. 제례작악이 상명하달(上命下達)식 제도 구축이라면 술이부작은 유가(儒家)의 "유교무류(有教無類)" 교육을 통한 자하이상(自下而上)적 문화 확산 경로를 개척하여 한대(漢代) 이후 중화 문화의 초안정적(超安定的) 유전자를 형성하였다.
이 두 패러다임은 후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왕조 교체시마다 《정관례(貞觀禮)》·《황조예기도식(皇朝禮器圖式)》 제정으로 구현된 제례작악의 전통은 신정권 합법성 확보의 문화의식이 되었으며, 정현(鄭玄)의 경전 주석부터 고증학(考據學)에 이르는 술이부작의 전통은 경학(經學) 연구의 정통 방법론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현대 사회에서 술이부작을 단순히 창의성 결여로 오해하는 경향은 "신이호고(信而好古)"에 담긴 가치 수호 본질을 간과한 것이다. 신유가(新儒家)가 주장한 "반본개신(返本開新)"의 실천적 방향이 시사하듯, 진정한 문화 부흥은 창제(作)와 계승(述)의 변증법적 통합 속에서 실현된다.
6) 성공하다, 《國語》〈楚語上〉「教備而不從者,非人也。其可興乎!」 "가르침이 구비 되었는 데도 따르지 않는 자는 사람이 안다. 그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는가!"
韋昭 注..「興,猶成也」 흥은 이루는 것과 같다.
7) 모으다, 《周禮》〈旅師〉「平頒其興積」 그 모아 놓은 것들을 공평하게 나누어 준다.
鄭玄 注.「縣官徵聚物 曰興」 "현관(지방 관청)은 물자를 걷어서 모아 놓은 것을 흥이라 한다."
또 《三國志》〈陳擊傳〉「多作傳舍,興費人役」 역참에 많은 관사를 만들고, 토목 공사를 일으키어(興費) 사람들의 힘을 소모했다.
8) 창성한(형용사), 《尙書》〈太甲下〉「伊尹申誥于王曰:「嗚呼!惟天無親,克敬惟親。民罔常懷,懷于有仁。鬼神 無常享,享于克誠。天位艱哉!德惟治,否德亂。與治同道罔不興,與亂同事罔不亡」 "이윤이 왕에게 거듭 고하기를: '아! 오직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으니, 매우 공경함으로써 친근해야 한다. 백성은 항상 마음을 두지 않지만, 인자한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지지한다. 귀신도 고정 불변으로 흠향 하지 안는다. 지극히 정성스러운 제사는 흠향 한다. 천자의 위치는 어렵구나! 덕이 있으면 다스려지고, 덕이 없으면 혼란해진다. 다스림과 같은 길을 함께하면 흥하지 않음이 없고, 혼란과 같은 일을 함께하면 멸망하지 않음이 없다.'"
또 《詩經》〈天保〉「天保定爾,以莫不興」 "하늘이 주나라 왕을 보호하고 안정시켜 주니, 그렇게 함으로 창성하지 않음이 없다."
*「天保定爾」의 개략적인 분석 1. 출전 《詩經》〈小雅·天保〉
2. 배경 대략 주나라 宣王 시기의 작품. 〈天保〉는 周代 貴族들이 제사 지낼 때 함께 부르던 노래. 핵심내용은 국운이 창성하고 복택이 영원하기를 기원함. 「天保定爾」는 후반부에 나오며 하늘이 국가와 군주에 대하여 보우함을 강조하고 있음.
3. 분석 1) 본래 의미-天保는 하늘이 보우, 定은 군주를 안정, 爾는 주나라 왕, 또는 제사를 받는 돌아가신 군주. 즉 定爾는 군주를 안정시켜주고 정권을 공고히 해준다. 참고로 保定은 保衛安定(국가를 보호하여 지키고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킴)의 생략형. 2) 상징 의미-첫째, 주나라 국력의 강성과 만물의 번성을 기대하고, 주나라 백성들의 「敬天崇德」(하늘을 공경하고 군주의 덕치를 숭상)의 信仰体系를 반영하고 있음. 둘째, 주나라 정권의 합법성을 강조하고, 신하들은 이 노래를 빌려 「敬天保民」(주나라 왕이 천명을 받아서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보호한다)의 治国 이념 및 정권의 안정성은 天命(하늘의 뜻, 以德配天,君權神受)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고 있음.
4. 변화 이 시는 처음에는 정치적으로 신하들이 군주를 칭송하는 노래로 사용되었지만 점차 일상생활 放免에서 축복(가족 평안과 사업 창성)을 나타내는 吉祥語로 변화되었음.
5. 영향 중국 고대 天命觀은 「天人合一」 사상의 초보적인 형태에 영향을 주고 秦漢代에 呂不韋와 董仲舒의 「天人感應」 사상과 연결되는 작용을 하였음.
天保定尔,俾尔戬谷。 罄无不宜,受天百禄。 降尔遐福,维日不足。 天保定尔,以莫不兴。 如山如阜,如冈如陵, 如川之方至,以莫不增。 吉蠲为饎,是用孝享。 禴祠烝尝,于公先王。 君曰:卜尔,万寿无疆! 神之吊矣,诒尔多福。 民之质矣,日用饮食。 群黎百姓,遍为尔德。 如月之恒,如日之升。 如南山之寿,不骞不崩。 如松柏之茂,无不尔或承。
(2025.7.10 강의 요약자: 주정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