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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사기 강의 자료 요약김영환교수의 지식창고 2025.09.28. 17:17 (2025.09.28. 17:11)

사마천 사기 397강 강의자료 요약 (2025.9.25)

 
司馬遷《史記》 原文 강독, 부수적으로 (1)唐詩〈秋日湖上〉와 작자 薛瑩 및 주요 단어(薛瑩, 落日, 五湖, 太湖, 煙波, 處處, 沈浮, 千古......)에 대해서 설명 ; (2)樂의 여러 가지 의미와 발음 및 품사에 대해서 설명 ; (3)知備와 有備無患 설명 ; (4)《論語》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君子, 仁, 智, 禮, 學, 善, 信, 義, 敬, 勇, 小人.......)와 仁義(昭公)와 禮樂(周公) 및 孔子의 家系와 野合의 기준(나이와 신분)에 대하여 설명 ; (5)《孟子》〈梁惠王上〉에 등장하는 恒産(경제기초)과 恒心(도덕수양), 制民之産(기본산업정책)의 용어에 대하여 상세 설명 ; (6)3經, 5經, 6經, 9經, 12經, 13經의 구분과 《孟子》가 가장 나중에 들어간 이유와 시대를 설명 ; (7)古文獻에 나오는 兼詞(諸, 焉, 盍, 曷, 叵,旃......)와 인용 문장에 대하여 설명 ; (8)取雅號記의 작성 사례에 대하여 설명 ; (9)司馬遷 祠堂을 참배한 느낌을 묘사한 自作 漢詩(5言律詩, 7言律詩)를 소개하였습니다.
사마천 사기 397강 강의자료 요약 (2025.9.25)
 
2025년 9월 25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唐詩 300首
 
 
 
1) 당시 제목: 추일호상
 
2) 작자: 설영(薛瑩)
설영은 중국 만당(晩唐) 시대의 시인으로, 당나라 문종(文宗)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그의 생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는 주로 고독하고 은둔적인 삶을 주제로 한 시를 썼습니다. 설영의 시는 감정이 풍부하고, 역사적 맥락을 반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주요 작품 및 스타일
설영의 대표작 중 하나는 "秋日湖上(가을날 호수에서)"라는 시로, 이 시는 태호(太湖)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역사적 흥망성쇠에 대한 깊은 사유를 담고 있습니다.
 
문헌 기록
설영의 시는 《全唐詩(전당시)》에 10수 정도가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시집인 《洞庭詩集(동정시집)》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오언절구 형식으로, 감정의 깊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론
설영은 당나라 시인들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그의 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역사적 맥락과 개인적 감정을 결합하여, 독자에게 깊은 사유를 유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 毛澤東이 바위에 쓴 글
中國古時候有個文學家叫司馬遷的話說(중국고시후유개문학가사마천적설화):
 
중국 고대에 문학가 사마천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 人固有一死 (인고유일사):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한 번 죽는다.
• 或重於泰山 (혹중어태산): 어떤 죽음은 태산(泰山)보다 무겁고,
• 或輕於鴻毛 (혹경어홍모): 어떤 죽음은 기러기의 깃털보다 가볍다
- 毛澤東(모택동)
 
이 구절은 원래 사마천이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인 **《보임안서(報任安書)》**에 나오는 내용이며, 마오쩌둥은 “用之所趨異也(용지소추이야): 이는 (죽음이) 쓰이는 바(목적)가 나아가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을 추가 인용하여, 항일전쟁 시기에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며, 정의로운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2강(2024,03,14) 강의 교안
* 《論語》〈里仁〉4-13
 
* 《史記》〈周本紀〉4-023
 
1. 樂
 
(1) 음악 악yuè - 명사, 동사
A. 명사 - 음악,
《周易》〈豫卦〉「先王以作樂崇德,殷薦之上帝,以配祖考」
지난시간 요약을 참조하세요.
昭公 ~ 仁(內在的) 義(外在的)
周公 ~ 禮(內在的) 樂(外在的)
 
* 논어에 많이 등장하는 단어
1) 君子 2) 仁 3) 智 4) 禮 5) 學 6) 善 7) 信 8) 義 9) 敬 10) 勇 11) 小人
 
* 공자의 가족사
공자의 성은 '자(子)'이며, 씨는 '공(孔)'입니다. 고대 중국에서 성(姓)과 씨(氏)는 서로 다른 개념으로, 성은 조상의 혈통을 나타내고, 씨는 그 혈통에서 파생된 분파를 의미합니다. 공자의 조상은 상나라의 왕족으로, 그 성이 '자'였습니다. 그러나 공자의 6대 조부인 '공부가(孔父嘉)'가 '공'이라는 씨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후손들은 '공씨(孔氏)'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름과 자
공자의 이름은 '구(丘)'이며, 자는 '중니(仲尼)'입니다. '중니'는 공자가 형제 중 둘째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에서는 형제의 순위를 나타내기 위해 자를 사용했으며, 첫째는 '백(伯)', 둘째는 '중(仲)', 셋째는 '숙(叔)'으로 구분되었습니다.
 
호와 시호
공자는 생전에 '니부(尼父)'라는 호칭으로도 불렸으며, 이는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시호는 '문선왕(文宣王)'으로, 이는 그가 사망한 후 그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이름입니다. 시호는 일반적으로 고위 인물이나 성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부여되는 특별한 이름입니다.
 
공자는 기원전 551년에 노나라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숙량흘(叔梁紇)입니다. 숙량흘은 노나라의 대부로, 공자가 태어날 당시 70세가 넘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본처와의 사이에서 아홉 명의 딸을 두었으나 아들을 원하여 첩을 두었다. 첩과의 사이에서 아들 맹피(孟皮)를 두었으나, 맹피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으로 일찍 사망했습니다. 또 다른 첩 나이 14세인 안징재와 사이에서 공자를 낳았습니다.
 
부친 숙량흘의 배경
숙량흘은 노나라의 군인으로, 그의 조상은 은나라의 왕족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는 군공을 세워 추읍대부(鄹邑大夫)로 임명되었고, 공자의 출생은 그의 늦은 나이에 이루어진 특별한 사건으로 여겨집니다. 공자는 숙량흘의 아들로서 귀족 혈통을 가졌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공자가 태어난 후, 숙량흘은 그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공자는 어머니 안징재(顔徵在)와 함께 힘든 생활을 하며 성장해야 했습니다.
 
모친 안징재의 역할
안징재는 공자의 어머니로, 그녀는 공자가 태어난 후에도 그의 부친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사생아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의 출생은 가족 내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공자는 어린 시절에 자신의 출생 배경을 알지 못하다가, 이웃의 차부를 통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그는 부모의 유골을 합장하여 자신의 귀족 혈통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공자의 자녀
공자는 19세에 결혼하여 아들 공리(孔鯉)와 딸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어린 시절에 죽었고, 공자는 자녀 교육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공자의 손자 자사(子思)는 그의 학문을 계승하였으나, 공자의 가족사는 여러 차례의 이혼과 불행한 사건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공자의 태생이 '야합'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의 출생 과정이 정식 결혼의 절차를 따르지 않았고, 신분도 대부와 천민사이기 때문입니다.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에서 공자의 출생을 '야합(野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자의 아버지인 숙량흘(叔梁紇)은 나이가 많고, 그의 어머니인 안징재(顔徵在)는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숙량흘은 정실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지 못하고, 결국 나이가 많은 상황에서 젊은 여성을 첩으로 맞이하여 공자를 낳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정식 결혼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마천은 이를 '야합'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결론
공자의 가족사는 그의 사상과 윤리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려운 출생 배경을 통해 효(孝)와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경험은 그의 유교 사상에 반영되었습니다. 공자는 가족의 도리와 효를 중시하며, 이를 통해 사회의 도덕적 기초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악기,
《韓非子》〈解老〉「竽也者,五聲之長者也。故竽先則鍾瑟皆隨,竽唱則諸樂皆和」
피리인 우(竽)는 오음(五聲) 중에서 가장 뛰어난 악기이다. 그러므로 우가 먼저 연주하면 종(鍾)과 슬(瑟) 모두가 따르고, 우가 노래하면 모든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악기 기술자, 연주자(樂工),
《論語》〈微子〉「齊人婦女樂,季桓子受之,三日不朝,孔子行」 ;
제나라 사람들이 여자 악사를 보낸다. 계환자(季桓子)가 그들을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삼일 동안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공자가 떠났다."
 
樂經(6經), 《莊子》〈天運〉「丘治詩、書、禮、樂、易、春秋六經」 ;
공자가 시 서 예 악 역 춘추 6경을 공부했다.
 
 
* 儒家經典의 확대와 《孟子》의 入經 과정
 
중국 經學史에서 三經·五經·六經·九經·十二經·十三經으로 이어지는 체계는 儒家經典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확장되고 정비되어 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중에서도 《孟子》가 가장 늦게 ‘經’의 반열에 오른 것은 儒家思想의 전개와 시대적 필요가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1. 經典 체계의 발전과정
 
儒家經典의 수는 처음부터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漢代의 尊儒 정책과 唐宋의 經典 정리운동을 거치면서 점차 확대·정비되었다.
 
• 三經과 六經
春秋戰國 시기 孔子가 중시하여 가르친 핵심 고전은 《詩經》·《書經》(《尚書》)·《易經》으로, 이를 三經이라 했다. 그러나 儒家理想에서는 《禮經》(뒤에 《儀禮》·《周禮》로 분화), 《春秋》 《樂經》, 을 더해 六經이라 칭했다. 다만 《樂經》은 일찍이 실전되었기에 六經은 하나의 이념적 틀로 남았다.
 
• 五經의 확립
西漢 武帝가 董仲舒의 ‘罷黜百家, 獨尊儒術’을 채택하며 五經博士를 설치했다. 이때의 五經은 《詩》《書》《易》《禮》(주로 《儀禮》)《春秋》로 구성되었으며, 儒家經典이 국가 관학의 정통 교재로 확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 九經·十二經으로의 확대
唐代에 들어 經典 해설서인 “傳”의 위상이 높아지고 禮學이 세분되면서 經典 범위가 넓어졌다. 科擧에서 五經 외에 《周禮》·《儀禮》·《公羊傳》·《穀梁傳》이 더해져 九經이 성립한다. 唐文宗 開成二年(837)에 새긴 《開成石經》에는 《論語》·《孝經》·《爾雅》가 추가되어 十二經이라는 방대한 체계가 만들어졌다.
 
2. 《孟子》가 ‘經’이 되기까지
 
《孟子》는 오랫동안 “子部”에 속하는 諸子百家의 저술로 분류되었고, 《論語》와 달리 經典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 이유와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초기의 저평가
漢代에도 《孟子》는 중요 저작이었지만 孔子의 언행을 직접 기록한 《論語》만큼의 권위는 없었다. 《孟子》는 孟子와 제자들의 언설을 모은 책으로, “民貴君輕”과 같은 강한 정치·사회 비판 정신 때문에 당대 권력자들에게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 唐代 이후의 전환점
佛敎와 道敎의 도전에 맞서 儒家學者들은 心性哲學을 체계화하기 시작했고, 《孟子》의 “性善論” “養浩然之氣”는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사상으로 재발견되었다. 文學家 韓愈가 孟子를 “道統”의 적통으로 높이며, 堯舜禹文武周公孔孟으로 이어지는 계보 속에 자리매김한 것도 큰 계기였다.
 
• 宋代의 결정적 승격
理學者 朱熹는 《大學》《論語》《孟子》《中庸》을 묶어 四書라 하고 《四書章句集注》를 지어 학습의 기초로 삼았다. 그는 四書가 五經보다 儒家學習의 단계로서 더 적합하다고 보았고, 元代 科擧에서 四書가 필수과목이 되면서 《孟子》는 사실상 ‘經’의 위상을 얻게 되었다. 南宋 이후 《孟子》는 공식적으로 經典總集에 편입되어 우리가 아는 十三經 체계가 완성된다.
 
3. 정리와 의의
 
三經에서 十三經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儒家學說이 시대적 요구에 맞춰 스스로를 확장·심화한 궤적을 보여준다. 《孟子》의 入經은 단순한 목록의 증가가 아니라, 唐宋期 儒家가 佛·道兩敎에 대응하기 위해 心性哲學을 재정립하고, 朱熹가 四書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고전의 위상을 새롭게 구축한 결과였다.
 
결국 《孟子》는 儒家經典 중에서도 인간 본성과 도덕적 수양을 논한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고, 오늘날까지 그 영향력을 이어오고 있다.
 
 
 
B. 동사-연주하다(동사),
《禮記》〈曲禮下〉「歲凶,年穀不登……士飮酒不樂」 ;
흉년이 들면 곡식이 여물지 않았다. 사대부가 술을 마셔도 연주를 하지 않았다.
 
 
(2) 즐거울 락lè 동사, 명사, 형용사 ;
A. 동사 - 즐겁게 하다,
《禮記》〈祭統〉「君爲東上,冕而摠干,率其群臣以樂皇尸」 ;
군주는 동쪽 계단 위에 서고 면류관을 쓰고, 방패를 잡고, 자신의 신하들을 이끌고 황제의 시신을 대신해서 산 사람을 제사 받게 음악을 연주한다.
 
기쁘다,
《周易》〈繫辞上〉「是故君子所居而安者,易之序也;所樂而玩者,爻之辭也」
그러므로 군자(君子)가 거하는 바가 편안한 것은 역(易)의 차례(질서)이며, 구자가 기뻐하고 즐기는 것은 효(爻)의 말씀이다.
 
기꺼이~하다,
《戰國策》〈楚策一〉「法令旣明,士卒安難樂死」
법령이 이미 명확 하니, 병사들은 국가가 어려울 때 태연 자약하게 죽음을 기꺼이 한다.
 
웃다(笑) ;
 
 
B. 명사 - 음색,
 
《國語》〈越語下〉「今吳王淫于樂而忘其百姓」
지금 오왕(吳王)은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져 있어 백성을 잊고 있다.
 
C. 형용사 - 기쁨,
《詩經》〈常棣〉「兄弟旣具,和樂且孺」
형제가 이미 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즐겁고 기쁨도 친애한다.
* 旣 ~ 且 = 不但 ~ 而且 = 旣 ~ 又 - ~뿐만 아니라 ~ 도
* 具 = 俱 = 살아 있다
* 孺 = 친애하다
 
안락한,
《大戴禮記》〈小辨〉「事戒不虞曰知備,毋患曰樂」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에 대하여 경계하는 것을 '지비'라 하고, 걱정이 없음을 '락'이라 한다"
* 有備無患 =知備無患
 
풍성한,
《孟子》〈梁惠王上〉「齊宣王問曰:“齊桓、晉文之事,可得聞乎?......曰:無恒産而有恒心者,惟士爲能。若民,則無恒産,因無恒心。苟無恒心,放辟邪侈,無不爲已。及陷于罪,然後從而刑之,是罔民也。焉有仁人在位,罔民而可爲也!是故明君制民之産,必使仰足以事父母,俯足以畜妻子,樂歲終身飽,凶年免于死亡;然後驅而之善,故民之從之也輕。今也制民之産,仰不足以事父母,俯不足以畜妻子,樂歲終身苦,凶年不免于死亡;此惟救死而恐不贍,奚暇治禮儀哉!王欲行之,則蓋反其本矣!五畝之宅,樹之以桑,五十者可以衣帛矣;鷄豚狗彘之畜,無失其时,七十者可以食肉矣;百畝之田,勿奪其時,八口之家,可以無飢矣;謹庠序之教,申之以孝悌之義,頒白者不負戴于道路矣。老者衣帛食肉,黎民不飢不寒,然而不王者,未之有也」
"제선왕이 물었다: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에 대해 들을 수 있을까요?'
孟子가 대답했다: '경제적 기초가 없으면서 도덕적 수양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선비만이 가능하다. 만약 백성들이, 경제적 기초가 없으면서 인하여 도덕적 수양도 할 수 없게 된다. 만약 도덕적 수양할 수 없다면,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죄에 빠진 후에 비로소 처벌하는 것은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어찌 인자가 군주가 되어서 백성을 함정에 빠지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백성을 위해서 기본 산업 정책을 제정하라. 그래서 반드시 위로는 부모를 섬길 수 있게 하고 아래로 아내와 자식을 기르게 할 수 있고, 풍년에도 1년 내내 배부르게 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게 해야 한다. 그 런 후에 선으로 이끌 수 있으니, 백성이 따르는 것이 쉬워진다. 지금도 백성을 위해서 기본 산업 정책을 제정해 주어도, 위로 부모를 섬기는데 부족하고, 아래로 아내와 자식을 기를 만큼 부족하며, 풍년에는 1년내내 고통스럽고, 흉년에는 죽음을 면하지 못한다. 이는 오직 죽음을 구제하기도 부족할까 두려우니, 어찌 예의와 의리를 다스릴 여유가 있겠는가! 왕이 이를 시행하고자 한다면, 본래의 취지를 돌이키지 않습니까!
五畝의 집주위에, 뽕나무를 심으면, 오십 살이면 비단 옷을 입을 수 있다. 닭, 돼지, 개, 그리고 다른 가축을 기르되,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 칠십 살이면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백 묘의 밭을 두고, 농사 시기를 놓치지 않으면, 여덟 식구가 굶주리지 않을 수 있다. 학교의 교육을 힘쓰고 하고, 효와 우애의 의리를 거듭하면, 백발의 노인이 도로에서 짐을 이고 지고 하지 않을 것이다. 노인은 비단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일반 백성은 굶주리지도 춥지도 않게 하면 왕 노릇 못하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 頒白 = 斑白 이며 半白이 아니다.
 
 
(3) 좋아할 요 yào, 동사 ;
A. 동사 - 좋아하다,
 
《論語》〈雍也〉「知者樂水,仁者樂山」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자는 산을 좋아한다"
 
(4) 地名, 요 lào, 료 liáo, 락 luò
 
(5) 療와 통할 때는 료 liáo
 
(6) 落과 통할 때는 락 luò
 
 
 
 
 
(2025.9.25 강의 요약자: 주정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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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