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398강 강의자료 요약 (2025.10.02)
2025년 10월 2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唐詩 300首
* 出世 = 出家의 대응 개념은 入世가 아니고 濟世(=救世)이다
1) 당시 제목 : 야망
2) 작자 : 왕적(王績) 왕적(王績)은 수나라 말부터 당나라 초기까지 활동한 시인으로, 혼란했던 시대 상황 속에서 은둔과 음주를 즐기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 인물입니다.
주요 생애와 특징 • 생몰년: 585년 경 ~ 644년 경 (정확한 생몰년은 자료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당 태종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 자(字): 무공(無功) • 호(號): 동고자(東皋子). 벼슬을 버리고 고향 근처의 동고(東皋, 동쪽 둑)에 은거하며 지은 호입니다. • 출신: 산서성(山西省) 용문(龍門) 출신입니다. • 벼슬: 수나라 때 비서성(祕書省)의 직책을 지냈으나, 조정의 번잡함과 억압적인 분위기를 싫어해 자주 술에 취했습니다. 당나라 때도 짧은 기간 벼슬을 했으나, 곧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 생활을 했습니다. • 술과 은둔: 그는 술을 매우 좋아하여 '술의 덕을 칭송하는 글'인 《취향기(醉鄕記)》를 저술했으며, 스스로 '오두선생(五斗先生)'이라 칭할 정도로 술을 즐겼습니다. 관직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은둔하며 전원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문학적 평가와 영향 • 시풍: 당대 유행하던 화려하고 기교적인 궁정 문체를 피하고, '도연명(陶淵明)'의 소박하고 전원적인 시풍을 계승하여 간결하고 자연스러운 시를 썼습니다. • 후대 영향: 그는 복잡하고 꾸밈이 많은 육조 시대의 문학 스타일에서 벗어나 당나라 시의 황금기(盛唐)에 나타날 '자연시(自然詩)'와 은일(隱逸) 시의 경향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시인으로 평가받습니다. • 대표작: o 《동고에서 바라보다 (野望)》: 고향 동고에 은거하며 지은 시로, 당시의 혼란한 시대를 주나라가 은나라를 찬탈한 것에 비유하며 은거 생활의 지향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o 《과주(過酒)》를 비롯한 술과 관련된 시들은 그의 자유분방한 기질을 잘 보여줍니다.
* 왕적은 당나라 초기의 문학적 전환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후대의 자연을 노래한 시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 초당사걸(初唐四杰) 중 하나로 평가받았습니다. 이 그룹에는 왕적 외에도 왕발(王勃), 양형(楊炯), 노조린(盧照) 등이 포함됩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3강(2024,03,21) 강의 교안
*《論語》〈里仁〉 * 4-14. 子曰:不患無位,患所以立;不患莫己知,求爲可知也。 전통적 해석: 어떤 경제적인 생활 안정이나 정신적 가치 추구를 걱정하지 말고 내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지 없는지를 걱정해라.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 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세상이 자기를 알아줄 것인지 그것을 추구하라.
새로운 해석: 어떤 경제적인 생활 안정이나 정신적 가치 추구를 걱정하지 말고 내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있는 지 없는지를 걱정해라. 내가 알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알 수 있도록 배워라.
(주석) (1) 患 - 근심, 걱정 (2) 位 - 직위, 지위, 安身立命(경제적 생활안정, 정신적 가치 추구) (3) 所以 - 그래서 어떻게, 이로 인하여.(因此, 因而, 原因, 用以, 用來, 可以, 所作, 所爲) (4) 立 - 직위, 지위를 담당할 능력, 재능, 위치를 확고히 할 재능. 「朱子曰..所以立, 謂所以立乎其位者」 ; 在爲人、爲學、爲官等方面有所立 즉 所以立은 所以立于其位之才德(그래서 어떻게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재능과 덕망이 있는지 없는지를)의 생략 (5) 莫己知는 莫知己의 도치, 莫은 無와 동일, 즉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즉 〈學而〉「人不知爲不慍, 不亦君子乎?」 * 人不知 ~ 다른 사람이 나를 알아 주지 않는다. 莫不知 ~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6) 求 - 구하다, 추구하다 (7) 可知 - 다른 사람이 자기의 능력이 좋은지를 알 수 있도록 ; 「程子曰..君子求其在己者而已矣」 「朱子曰..可知, 謂可以見知之實」 ; 즉 可以使人知己才好, 君子反求諸己, 小人求諸人의 이치.
* 전통파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주희가 있으며, 그의 주석은 유교 경전 해석의 기준으로 여겨집니다. 전통파는 유교의 도덕적, 윤리적 가르침을 강조하며, 사회적 질서와 개인의 도덕적 수양을 중요시합니다.
* 전목파는 유교가 단순한 도덕 체계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사회의 본질을 탐구하는 철학적 체계라고 주장했습니다. 전목파는 유교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입니다.
* 전목(중국어 정체자: 錢穆, 간체자: 钱穆, 병음: Qián Mù, 한자음: 전목, 1895년 7월 30일~1990년 8월30일)는 중국의 역사학자, 철학자로 자는 빈쓰(중국어 정체자: 賓四, 간체자: 宾四, 병음: Bīnsì, 한자음: 빈사)이다. 20세기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가로 간주되며 뤼쓰몐, 천인커, 천위안과 함께 "중국 근대 4대 역사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청나라 말기에 태어나 신해혁명과 중화민국 대륙 통치기를 겪었으며, 옌칭 대학, 칭화 대학에서 역사학과 사상사를 가르쳤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자 영국령 홍콩으로 이주했으며, 홍콩 중문 대학의 전신인 신아서원 초대 원장 겸 교수로 활동했다. 1968년에 타이완 영주권을 취득하고 타이완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 그는 중국의 역사, 사상, 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활동을 수행했으며, 이에 대한 80여권의 도서와 논문을 집필했다. 대표작으로 중국에 대한 애국적인 의지를 담아낸 중국 통사 서적인 《국사대강》이 있다.
* 이택후의 그의 저서인 『미의 역정』과 『화하미학』에서 이러한 사상을 구체화했습니다. 그는 유교가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철학적 체계임을 주장하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강조합니다. 이택후(중국어 간체자: 李泽厚, 정체자: 李澤厚, 병음: Lǐ Zéhòu, 1930년 6월 13일 ~ 2021년 11월 2일)는 중국의 철학자, 미학자, 중국 사상사가이다. 후난성 닝샹시 출신인 그는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 중국 화동사범대학교, 독일 튀빙겐 대학교, 위스콘신 대학교 인문과학 연구소 교수 및 객원 강좌 교수를 역임했다. 미시간 대학교, 콜로라도 대학교, 스워스모어 칼리지, 중앙연구원 초빙교수를 역임. 그는 한때 제7기 전국인민대표대회 교육과학문화위생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1942년 리쩌허우는 루쉰과 빙신을 좋아했고, 신기질 시를 가장 좋아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공적 보조금을 받아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혼란스러운 현 상황으로 인해 학교 분위기는 점점 암울해졌고, 리쩌허우가 독학을 선택하여 마르크스주의를 접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1948년 여름, 그는 제1부 졸업 후 학교를 중퇴했고, 1949년까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다림진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고, 같은 해 그의 어머니가 병으로 사망했다. 1950년 리저후는 베이징 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고 펑유란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1954년에 졸업한 그는 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부서에서도 그를 받아들여주지 않았고, 이듬해 중국과학원 철학연구소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1955년 미학적 논의에 등장했다. 1950년대에는 실천을 중시하고 '인간성'을 중시하는 '객관성과 사회성의 통일'이라는 미학적 관점으로 유명해졌다. 문화대혁명 이후 그는 철학, 미학, 지적사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당시 중국 공산당의 사건 처리 방식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이 금지되었고, 중국 공산당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1992년 초에 그는 미국 이민이 허가되었고 한때 미국 콜로라도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1999년에 은퇴하고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살았다.
* 소학과 훈고학의 세계 우리가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옛사람의 글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문자와 음성, 의미의 층위를 헤집어 들어가, 언어 속에 숨어 있는 세계관과 사유 체계를 복원하는 작업이다.
이 치밀한 지적 모험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중국 전통 학문에서 말하는 ‘소학(小學)’이며, 그 핵심에는 훈고학(訓詁學)이 자리한다.
1. 문자·음운·의미를 아우른 기초 학문 소학은 본래 어린이가 글자를 배우는 기초 교육을 뜻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문자학(文字學)·음운학(音韻學)·훈고학(訓詁學)을 아우르는 이름이 되었다. 즉, 고전을 읽기 위한 언어학의 토대였던 것이다.
• 문자학은 글자의 모양과 변천을 연구한다. 육서(六書: 象形, 指事, 會意, 形聲, 轉注, 假借)의 원리를 통해 한자의 본래 모습을 밝혀낸다.
• 음운학은 한자의 소리를 연구한다. 고대 중국어의 성모·운모·성조 체계를 복원함으로써, 왜 어떤 글자가 빌려 쓰였는지(假借)를 설명한다.
• 훈고학은 낱말의 의미를 해명한다. 고대 문헌 속에서 ‘그때의 사람들은 무슨 뜻으로 이 말을 썼는가’를 밝혀내는 것이 목표다.
세 학문은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자의 형(形), 음(音), 의(義)가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고전 해석이라는 단일한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
2. 훈(訓)과 고(詁), 시간과 공간을 넘는 해석 훈고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훈(訓)’과 ‘고(詁)’다.
• 고(詁)는 시대를 넘어 의미를 설명한다. 고대어휘를 후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것이다. 《시경》의 “關關雎鳩”에서 “雎鳩”라는 고대의 새를 ‘물수리’로 풀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 훈(訓)은 같은 시대 안에서 지역이나 문맥 차이에 따른 의미를 설명한다. 《논어》의 “習”을 단순히 ‘복습하다’로 한정하지 않고, 본래 새가 자주 날다(鳥數飛)라는 뜻에서 파생해 ‘반복하여 몸에 익히다’로 풀어내는 것이 그 예다.
다시 말해, ‘고’는 시간의 축, ‘훈’은 공간과 문맥의 축을 따라 언어의 의미를 해명하는 도구다. 이 두 축이 맞물리면서 우리는 고전을 정확하게 읽을 수 있다.
3. 훈고학의 거대한 유산들 훈고학은 수많은 저작 속에서 꽃을 피웠다.
1) 《이아(爾雅)》는 중국 최초의 어휘 해석서로, 의미별 분류 체계를 마련했다. 모든 훈고학의 출발점이라 할 만하다.
2) 옥편 ~ 중국 남북조 시대의 양(梁)나라 고야왕(顧野王)이 543년에 편찬한 부수별 한자사전입니다. 이 사전은 설문해자(說文解字)와 자림(字林) 다음으로 오래된 자서로 알려져 있으며, 542/3 부수 체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미 통용되던 글자체(隸書, 楷書)를 기준으로 삼고, 현재 통용되는 의미를 중심으로 풀이하고 반절법을 사용해 발음을 표기하고 당대 통용 글자체를 정리함으로써 일상적 필요에 응답했다. 옥편은 16,917자를 수록하고 있으며, 이후 당나라와 송나라에서 여러 차례 개정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정익로(鄭益魯)가 1908년에 편찬한 '국한문신옥편'이 최초의 근대적 한자사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 《설문해자(說文解字)》는 허신이 편찬한 자전으로, 중국 동한 시대의 학자 허신(許慎)이 서기 100년경에 저술한 책으로, 인류 최초의 한자 어원 사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540부수 체계와 육서 분석을 통해 문자학의 성경이 되었다. 이 책은 총 9,353자의 한자를 수록하고 있으며, 각 한자의 본래 형체와 뜻, 발음을 종합적으로 해설하고 있습니다.
허신은 이 책을 통해 한자의 기원과 변천을 설명하고, 한자의 본래 의미를 복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한자의 형성과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육서(六書)'의 개념을 도입하여,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전주(轉注), 가차(假借)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한자를 분류하고 설명했습니다. 설문해자는 문자학, 성운학, 훈고학 등 여러 분야에서 필독서로 여겨지며, 중국 고전 해석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자의 형성과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후세의 많은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여기에 청대 단옥재(段玉裁)의 《설문해자주》는 음운학과 훈고학을 종합하여 허신의 해석을 보완했고, ‘형·음·의’를 통합한 결정판으로 평가된다.
4)《산해경(山海經)》은 고대 중국의 대표적인 신화집이자 지리서로, 주로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책은 중국의 신화, 전설, 지리적 정보, 동식물, 의약, 민속 등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산해경은 총 18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게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산경은 주로 산과 관련된 내용을, 해경은 바다와 관련된 내용을 다룹니다.
주요 내용 • 지리적 정보: 산해경은 고대 중국의 지리적 특성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으며, 각 지역의 산과 강, 자원에 대한 설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신화와 전설: 이 책은 다양한 신화적 존재와 전설적인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화 속의 인물이나 괴물들이 등장하여 그들의 특성과 역할이 설명됩니다. • 민속과 문화: 산해경은 고대 중국의 민속과 문화적 관습을 반영하고 있으며,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자료입니다.
저자와 역사적 배경 산해경의 저자는 전통적으로 '곽박(郭璞)'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는 후한 시대에 이 책을 편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 책의 기원은 더 오래된 자료들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수정되고 보완되었습니다. 초기 버전은 기원전 4세기경에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의 형태는 한나라 초기까지 발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문화적 의의 산해경은 단순한 지리서나 신화집을 넘어, 중국 고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집니다. 이 책은 고대 중국의 철학, 종교, 의학, 동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기초 자료로 활용되며, 후세의 문학과 예술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론적으로, 산해경은 고대 중국의 신화와 지리를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의 보고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연구와 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史記》〈周本紀〉4-023 1. 度 - 金文, 원래는 두 팔을 벌려 길이를 재다, 점차 측량의 의미
《說文解字》「度(dù), 法制也。从又,庶(shù )省聲」 글자는 우자를 따르고 서의 소리가 생략 된다.
《說文解字注》「度, 法制也。《論語》曰:謹權量,審法度。 도량형(度量衡)을 삼가 정하고, 법과 제도(法度)를 자세히 살펴서 수정하라."
* 權 (권) : 저울추, 무게를 재는 기구 (저울) 量 (량): 부피를 재는 기구 (되).
《中庸》曰:非天子不制度。今天下車同軌。古者五度,分,寸, 尺, 丈, 引,謂之制。 천자가 아니면 제도를 세울 수 없다. 지금 천하의 수레는 궤도가 같다. 옛날에는 5도 즉 분, 촌, 척, 장, 인 이것을 제도라고 불렀다.
* 중의학에서 5도(度) "神、氣、血、形、志"는 각각 신체와 정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의됩니다: • 神 (신) : 정신적 상태와 생명력. ~ 脈度(맥도) • 氣 (기) : 생명 에너지, 신체의 기능을 유지하는 힘. ~ 臟度 • 血 (혈) : 신체의 혈액,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요소. ~ 肉度(육도) • 形 (형) : 신체의 형태와 구조. ~ 筋度(근도) • 志 (지) : 의지와 감정, 개인의 정신적 특성.~ 兪度 ( = 血道)
이 다섯 가지 요소는 중의학에서 진단과 치료의 기초가 됩니다. 특히, "血氣形志"는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는 데 사용되는 중요한 진단 방법입니다.
* ‘度’라는 사유의 확장 • 도량형은 물질 세계를 정량화하는 기술적 척도였다. • 오행은 우주와 사회를 이해하는 철학적 척도였다. • 중의학의 오도는 인체의 생명을 살피는 의학적 척도였다.
이 세 가지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度’라는 하나의 공통된 사고 방식에서 비롯되었다. 곧 인간은 세계를 이해하고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측정하고, 분류하며, 질서를 세우는 도(度)를 확장해 왔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현대 과학의 측정 단위, 의학의 생체 지표, 그리고 철학적 세계관 모두는 고대의 ‘도’에서 뻗어 나온 줄기다. 따라서 ‘度’를 탐구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 공부가 아니라, 문명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한 인간 지성의 보편적 궤적을 살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周禮》:出其淳制。天子巡守禮,制幣丈八尺,純三咫,純謂幅廣」 - 다음 주 해설 예정
(1) 장단의 표준, 《書經》〈舜典〉「同律、度、量、衡」 또
• 同律 (동률) : 법률을 동일하게 적용함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공정함을 보장합니다. • 度 (도) : 기준을 정하여 모든 사물의 크기나 양을 일정하게 측정합니다. • 量 (량) : 양을 측정하여 자원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합니다. • 衡 (형) : 무게를 측정하여 거래와 상거래에서의 공정성을 유지합니다. 이 구절은 통치자가 법과 규범을 통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백성들이 공정하게 대우받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정치 철학에서 법과 도덕이 어떻게 결합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예시입니다. 순 임금이 천하를 통일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을 기록한 부분에 등장합니다.
* 본문 앞의 구절 協時月正日 ~ 달과 해의 주기를 조화롭게 하고, 날짜를 바르게 정하며, (역법(曆法)을 통일함) *본문 뒤의 구절 修五禮 ~ 다섯 가지 예(五禮)를 닦고, (길례, 흉례, 군례, 빈례, 가례 등) 一德 ~ 천하의 덕을 하나로 만드셨다. (백성의 도덕 관념을 통일함)
(2) 한도, 《國語》〈周語下〉「用物過度,妨于財」 사물을 과도하게 사용하면 재물 축적에 방해가 된다.
(3) 법도, 《左傳》昭公三年「公室無度」 제후의 가족이 법도가 없다.
이 구절은 노나라의 계손씨(季孫氏), 숙손씨(叔孫氏), 맹손씨(孟孫氏) 세 유력 가문(삼환, 三桓)이 군주의 권력을 침탈하는 상황에서, 당시 인물인 '자복혜백(子服惠伯)'이 정권을 비판하며 한 말에 들어 있습니다.
원문 (《左傳》 昭公三年) 子服惠伯謂季平子曰: 「公室無度。 자복혜백이 계평자(季平子)에게 말하기를, "공실에 법도(法度)가 없습니다. 國無政, 나라에 정사(政)가 서지 않고, 政在私家。 정치는 사가(私家, 삼환)에 달려 있습니다. 君是從,誰知爲君?」 군주(소공)는 이들(삼환)을 따를 뿐이니, 누가 (주나라의) 군주가 누구인지를 알겠습니까?」
(4) 도량, 《史記》〈高祖本紀〉「常有大度,不事家人生産作業」 항상 큰 도량이 있어 집안의 생산 하는 일에 종사하지 않는다.
(5) 읽다(讀), 《晉書》〈樂志上〉「其辭旣古,莫能曉其句度」 그 문장이 이미 옛 스럽고 능히 그 구절을 읽고 밟게 깨우 칠 수 없다.
(6) 諸侯의 孝, 《禮記》〈祭統〉「孝者,畜也」 효는 축이다 (공경하는 마음을 축적하는 것이다)
孔穎達 疏引. 《孝經援神契》「天子之孝曰就,諸侯曰度」 천자의 효는 취이고 제후의 효는 도이다
* 다섯 계층의 孝 ― 天子에서 百姓까지 『예기(禮記)』와 『효경(孝經)』에는 다섯 등급의 신분 별로 각기 다른 「孝」의 전형이 제시된다. 이는 개인의 효심이 단순히 가정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역할과 직분 속에서 구현된다는 점을 드러낸다. 1) 천자(天子)의 효, ‘就’ 2) 제후(諸侯)의 효, ‘度’ 3) 경대부(卿大夫)의 효, ‘譽’ 4) 사(士)의 효, ‘究’ 5) 백성(民)의 효, ‘畜(휵)’
* 畜(휵) (1) 養 ~ 잘 먹임 (의무) (2) 立身揚名 ~ 부모 이름 드날림 (3) 色難 ~ 즐겁고 온화하게 해 드린다.(부모의 마음을 헤아려 해 주는 것이다)
孝 ~ 事親之道
1. 生 ~ 養 -> 順 2. 死(沒) ~ 喪 -> 哀 3. 喪 ~ 祭 -> 敬
(7) 대나무로 만든 무기, 《周禮》〈司市〉「凡市入,則胥執鞕度守門」 무릇 시장에 들락 날락 하면 관리가 채찍과 대나무로 된 무기를 들고 문을 지키고 있다.
鄭玄 注..「度,謂殳也」 도는 수(대창)을 말한다.
(8) 본받다, 《孝經》〈聖治〉「(君子)容止可觀,進退可度」 용모와 행동거지가 가히 볼만하다, 진퇴도 가히 본받을 만 하다.
(9) 옮기다, 이동하다, 《南史》〈恩幸傳·茹法亮〉「法亮便僻解事,善于承奉,稍見委信。建元初,度東宮主書」 법량은통치자에게 잘 아부하고 일 처리가 능숙하다, 비유를 잘 맞추어라, 점차 신임을 얻었다, 건원 초에 동궁의 주서(문서처리 책임자)로 이동했다
(10) 주다(度與), 《水滸傳》第二十回「那新官取出中書省更替文書來,度與府尹」 그 새로 온 관리가 중서성의 문서를 바꾸어서 꺼내고 시장(부윤)에게 주었다.
(11) 태어나다, 《楚辭》〈離騷〉「皇覽揆余初度兮,肇錫余以嘉名」 아버지가 내 생일날 헤아려 나에게 아름다운 이름을 하사해 주었다.
(12) 비교하다, 《東觀漢記》〈光武帝紀〉「天下悉定,惟獨公孫述隗囂未平。帝曰..取此两子置度外」 천하가 모두 안정이 되고 유독공손술과 외효만 평정이 안되었다. 황제가 말하기를 이 두 사람은 도외시 한다.
*《동관한기》는 동한 왕조가 스스로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공식 역사서입니다. 그 편찬 작업은 동한 명제 연간부터 시작되어 환제(桓帝), 영제(靈帝) 시기까지 약 130여 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동관(東觀) (황궁 내 도서관 겸 연구 기관)에 모여 공동 편찬하는 "관찬(官撰)"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서적은 동한 왕조의 창업 과정부터 중기까지의 정치, 군사, 제도, 문화를 상세히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起居注" (황제의 일상 기록)와 "實錄" (공식 문서 보관) 등 1차 사료를 풍부하게 반용하여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았습니다.
(13) 불교의 출가, 《舊唐書》〈睿宗紀〉「天下濫度僧尼道士女冠,并依舊」 천하의 승려, 비구니, 도사, 여관이 모두 무분별하게 출가를 허용하였으며, 이전과 같이 여전하다."
(14) 작곡하다, 노래하다, 葉夢得(宋), 《石林燕语》卷十「(劉幾)旋度新聲,自爲辭,使女奴共歌之」 유기가 어디 갔다 돌아와서도 새로운 소리로 표현하는 작곡을 했고, 가사도 직접 썼다, 그리고 여자 노비로 하여금 그것을 부르게 했다.
(2025.10.02 강의 요약자: 주정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