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399강 강의자료 요약 (2025.10.16)
2025년 10월 16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唐詩 300首
1) 당시 제목: 정월 15야
2) 작자: 소미도(蘇味道) 648년~705년
생애 및 경력 소미도는 젊은 시절부터 문명으로 유명했으며, 동향인 리교(李峤)와 함께 "소리(苏李)"로 불리며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고종(高宗) 시기에 진사로서 관직에 나아가, 이후 여러 차례 장관직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무후(武后) 시대에는 정치적 음모와 갈등으로 인해 여러 번 좌천되었고, 결국 그의 생애 마지막에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문학적 기여 소미도는 초기 당나라의 "문장사우(文章四友)" 중 한 명으로, 두심언(杜审言), 최융(崔融), 리교와 함께 문학적 교류를 하였습니다. 그의 시는 주로 오언율시로 구성되어 있으며, 특히 "정월 십오야(正月十五夜)"라는 작품이 유명합니다. 이 시는 원소절의 화려한 풍경을 묘사하며, "화수은화합, 성교철쇄개(火树银花合,星桥铁锁开)"라는 구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시는 그의 대표작으로, 당대의 시가 중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문학적 스타일 소미도의 시는 "청정하고 우아하며, 화려하지만 지나치지 않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주로 자연을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썼으며, 그의 작품은 당시 시가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시는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그가 남긴 작품들은 당나라 시가의 중요한 유산으로 여겨집니다.
후손 및 유산 소미도의 후손들은 소씨 가문의 유명한 인물들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아들 중 한 명은 현재의 쓰촨성에 정착하여 소씨 가문의 기초를 다졌고, 소동파(苏东坡)와 소철(苏辙) 같은 유명한 문인들이 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소미도의 문학적 유산은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3강(2024,03,21) 강의 교안
《禮記》 〈月令〉 「春者万物之始也。 天子春朝日, 秋夕月」 봄은 만물의 시작이다. 천자는 춘분에 태양에게 제사 지내고 추분에 저녁에 달에게 제사 지낸다.
* 추석이 최초로 등장한다 =中秋= 仲秋 * 春分 -> 東門 外 / 靑色 / 蒼龍之車 * 秋分 -> 西門 外 / 白色 / 白駱之馬
*《史記》〈周本紀〉4-023 1. 度 - 金文, 원래는 두 팔을 벌려 길이를 재다, 점차 측량의 의미
《周禮》:出其淳(純)制。天子巡守禮,制幣丈八尺,純三咫,純謂幅廣」 고대 길이와 무게를 재는 표준 원칙을 시행했다. 천자가 순수할 때 禮로 사용하는 화폐를 만들었는데 그 길이가 8척, 폭이 3자(8촌)로 제작했다. '순(純)'은 폭 또는 넓이를 의미한다.
(1) 장단의 표준 (2) 한도, (3) 법도, (4) 도량, (5) 읽다(讀), (6) 諸侯의 孝, (7) 대나무로 만든 무기, (8) 본받다, (9) 옮기다, 이동하다, (10) 주다(度與), (11) 태어나다, (12) 비교하다, (13) 불교의 출가, 女冠 ~도교 사원의 수도하는 여자 도사 ( =黃冠, 女黃冠, 坤道, 女道士) (14) 작곡하다, 노래하다,
(15) 건너다(渡), 《漢書》〈賈誼傳〉「若夫經制不定,是猶度江河亡維楫」 "제도나 규범이 확정되지 않으면, 이는 마치 江이나 河를 건널 때 선박을 고정하는 줄이나 노가 없어진 것과 같다.
* 若夫 ~ 만약이 아니고 “어기사”로 뜻이 없다. 至於.
(16) 지나다(시간, 공간), 《史記》〈田儋列傳〉「漢將韓信已平趙燕,用蒯通計,度平原,襲破齊歷下軍,因入臨淄」 한나라 장수 한신이 이미 조 나라와 연 나라를 평정하고, 신하 괴통(=철: 한무제 유철을 피휘)의 계책을 사용하여 평원을 지나, 제 나라의 역하 군을 기습하여 격파 후, 임치(현재 치박)로 진입했다.
(17) 닫다, 신중하다 《書經》〈盤庚〉「自今至于後日,各恭爾事,齊乃位,度乃口」 지금부터 후일에 이르기 까지 각자의 일을 공경하게 하고, 직책을 단정하게 하고, 말을 신중하게 하라.
* 당신 ~ 爾 = 你( :존칭), 女, 汝, 而 * 너희들 ~ 爾等 , 你们
(18) 재다, 《孟子》〈梁惠王上〉「度,然後知長短」 측정한 후에야 길고 짧음을 알 수 있다.
(19) 추측하다, 《史記》〈項羽本紀〉「漢騎追者數千人。項王自度不得脱。謂其騎曰.吾起兵至今八歲矣,身七十餘 戰,所當者破,所擊者服,未嘗敗北,遂霸有天下。然今卒困于此,此天之亡我,非戰之罪也。今日固決死,願爲諸君快戰,必三勝之,爲諸君潰圍,斬將,刈旗,令諸君知天亡我,非戰之罪也」 한나라의 기병 수천 명이 추격하고 있었다. 항왕은 스스로 탈출할 수 없음을 추측하고, 자기를 따르는 그의 기병들에게 말했다. '내가 군을 일으킨 지 이제 8년이 되었고, 몸소 70여 회를 전투하고, 내가 대항하는 자들을 모두 격파했고, 내가 공격한 적은 모두 굴복했다. 일찍이 패배한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천하를 제패하였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곤경에 빠진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작전을 실패한 죄가 아니다. 오늘 나는 꼭 죽을 것이니, 여러분을 위해 통쾌하게 싸워, 반드시 세 번 승리 할거야, 여러분을 위해 포위망을 무너뜨리고, 적의 장군을 죽이고, 적의 깃발을 베고, 여러분들로 하여금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전쟁을 잘못한 죄가 아님을 알게 하겠다.'"
* 베다 ~刈, 乂, 苅, 割 ( 乂草機)
(20) 도모하다, 《國語》〈晉語四〉「及其即位也,詢于八虞,而諮于二虢,度於閎夭而謀於南宮,諏於蔡、原而訪於辛、尹,重之以周、邵、畢、榮,億寧百神,而柔和萬民」 그가 즉위했을 때 이르러, 팔우에게 물어보고, 이괵에게 자문하였으며, 굉요에게 도모하고 남궁에게 계획하였고, 채원에게 꾀하였고 신윤에게 방문하였다. 주, 소, 비, 영으로 적극 협조를 받고, 백신을 평안하게 하며, 만민을 온화하게 다스렸다."
(주석) (1) 八虞 - a. 周의 賢人 b. 八士(周의 賢人으로 나중에 무왕을 도와 상나라 정벌에 앞장 선 장사) c.虞官(山澤,草木,鳥獸를 담당하는 관리) 여기서는 b.가 비교적 적합해 보임. (2) 二虢-주나라 宗室이고 문왕의 동생 虢仲 、虢叔 형제를 가리킴. (3) 蔡-蔡國의 蔡公 (4) 原-原國의 原伯 (5) 辛-a,辛國(莘國)의 辛公 b.辛甲, 주나라 太史 (6) 尹-a.尹國의 尹公 b.尹佚, 주나라 太史 (7) 周-周公 旦 (8) 邵-邵國의 邵公 奭, 달리 邵康公이라 부름. (9) 畢-畢國의 畢公 高, 文王의 15子 (10) 榮-榮國의 榮公 姬霞
* 億寧 = 安寧 韋昭 注..「度,亦謀也」 .. '度는 도모(謀)하다
* 유리(羑里) ~상(商) 나라 감옥 * 백읍고(伯邑考)는 주(周) 문왕(文王) 희창(姬昌)의 장남이자, 주나라를 건국한 무왕(武王) 희발(姬發)의 형입니다. 그의 이름에서 '백(伯)'은 백중숙계(伯仲叔季)에서 첫째 아들을 뜻하거나, 혹은 아버지 문왕의 직위였던 **서백(西伯)**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읍(邑)'**은 장자나 후계자임을 나타내거나 관직명에서 유래했다고 보며, '고(考)'가 본명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요 내용 • 비극적인 죽음: 백읍고는 아버지 문왕이 은(殷)나라의 폭군 **주왕(紂王)**에게 잡혀 유리(羑里)에 감금되었을 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인질로 잡히거나 보물을 바치러 갔다가 주왕에게 살해당했습니다. • 인육(人肉) 사건: 특히 비극적인 이야기는 주왕이 문왕을 모욕하기 위해 백읍고를 죽여 그 고기로 만든 음식을 문왕에게 먹도록 했고, 문왕은 이를 알고도 왕명을 거역할 수 없어 먹었다는 일화입니다. 문왕은 나중에 풀려나 귀국할 때 이 고기를 토해냈는데, 이것이 흰 토끼로 변했다는 전설도 있습니다. • 왕위 계승: 백읍고가 아버지보다 먼저 주왕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문왕의 지위는 동생인 **희발(姬發)**이 이어받아 훗날 주 무왕이 되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하게 됩니다. *주 문왕의 10번째 아들은 冉季载(冉季載)이며, 이 이름은 聃叔季(聃季載)와 동일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중국 주나라의 왕족으로, 주 문왕의 10번째 아들이자 주 무왕의 동생입니다. • 冉季载는 원래 聃国의 개국 군주로, 그의 후손들은 주나라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주 무왕이 그를 봉하지 않았고, 후에 주 성왕 시대에 聃国에 봉해졌습니다. • 따라서, 두 이름 모두 같은 인물을 지칭하며, 주 문왕의 10번째 아들은 冉季载 또는 聃叔季로 불립니다.
(21) 던지다, 《詩經》〈綿〉「度之薨薨,筑之登登」 던질 때(度)의 흙 메꾸는 소리와 흙을 다지는 것(筑)의 소리.
鄭玄 箋..「度,猶投也」 도(度)는 마치 던지는 것과 같다.’
*판축(版築)식 성쌓기는 고대 토목 건축에서 사용된 가장 대표적이고 견고한 축성 기법 중 하나입니다. 주로 토성(흙으로 쌓은 성)이나 건물 기단, 담장 등을 축조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1. 판축의 원리와 방법 '판축(版築)'이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 版 (판): 성벽이나 담장을 쌓을 때 흙의 양쪽에 대는 **판자 틀(거푸집)**을 의미합니다. • 築 (축): 흙을 다지는 데 사용하는 **다짐 방망이(공이, 달구)**를 의미합니다.
축조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틀 설치 (협판): 성벽이 될 부분의 양쪽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판자(협판)를 고정시켜 일정한 폭의 틀을 만듭니다. 2. 흙 채우기: 틀 안에 점성이 강한 흙이나 모래, 자갈 등을 **일정한 두께(보통 5촌, 약 15cm 정도)**로 얇게 깔아 넣습니다. 3. 다지기 (축): 흙을 넣을 때마다 다짐 방망이(달구)로 층층이 강하게 찧어 다집니다. 이렇게 다져진 흙의 두께는 원래 두께보다 훨씬 단단하게 줄어듭니다. 4. 반복: 이 과정을 반복하여 한 층씩 흙을 다져 쌓아 올립니다. 5. 틀 해체 및 이동: 한 단의 높이가 완성되면 틀을 해체하고, 그 위에 다시 틀을 설치하여 위로 계속 쌓아 올립니다.
(22) 나무를 자르다, 《詩經》〈閟宮〉「徂徠之松,新甫之柏,是斷是度,是尋是尺」 조래산(태산 옆의 산 이름)의 소나무, 신보산(태산 옆의 산)의 측백나무, 이런 나무들을 자르고 길이를 측량하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3-2강(2024,03,28) 보충자료 ★ 보충자료
6) 三愆의 보충 * 言 《論語》〈憲問〉「夫子時然後言, 人不厭其言」 공자는 말 할 때가 되어서야 말씀하셨고, 사람들은 그 말씀을 싫어하지 않았다 (時聖)
* 공자 사당의 2번째 문이 성시문(聖時門)이다.
《論語》〈衛靈公〉「子曰.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히 더불어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으면 인재를 잃게 되고, 같이 말할 수 없는 사람에게 말하면 말을 잘 못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재를 잃지 않고, 또한 말을 잘 못 하지도 않는다.
a. 失人 - 인재를 잃다 b. 失言 -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다
9) 三省의 보충 * 忠信(충실과 신의), 主忠信, 忠恕 충신은 忠實信義의 생략이다. 忠信의 동일한 의미의 최초 출전은 《易經》〈乾卦〉「君子進德修業, 忠信所以進德也」에 보이는데, 忠信은 덕행을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반대로 《道德經》第38章「夫禮者, 忠信之泊也, 而亂之首也」에도 보이는데, 忠信之泊은 일체 혼란의 근원이고 시작으로 보고 있다. 그 외에 朱熹(南宋), 《四書集註》에서 曾子의 말을 인용하여 「盡己之謂忠, 以實之謂信」이라고 하였다. 즉 자신이 할 바를 다하는 것을 忠이라 하고(盡己之謂忠) 마음에서 일어난 바를 실증함을 信이라 하였다(以實之謂信). 曾子는 忠과 信을 학습과 사람 노릇 하는 것의 근본이며 가장 중요한 덕성으로 여겼다. 【後外】「忠, 仁禮無一毫不盡」 또 「盡力爲人謀, 中人之心」이다. 충은 인과 예를 조금도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고,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하여 다른 사람을 도모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뜻에 적합 한 것이다.
* 夫 = 무릇 泊 =머무르는 것 首 = 시작
* 忠信 ~ 立身의 基本, 處世의 基本 - 進德 ~ 增進品德 - 修業 ~ 修習學業
《효경(孝經)》의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 身體髮膚,受之父母,신체발부, 수지부모, 不敢毀傷,孝之始也。불감훼상, 효지시야.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입신행도 양명어후세 (立身=스스로 수신) 以顯父母, 孝之終也 이현부모 효지종야
* 五常 ~仁 義 禮 智 信 (진말, 한초)
主忠信은 이러한 忠과 信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主忠信의 동일한 의미의 최초 출전은 《論語》에서 〈學而〉「君子不重則不威, 學則不固。 主忠信, 無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顏淵〉「主忠信, 徙義, 崇德也」 〈子罕〉「主忠信, 毋友不如己者, 過則勿憚改」 등 3차례 출현하는데, 儒家에서 忠과 信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첫째, 忠은 忠實, 忠恕를 가리키고, 信은 信義, 信實을 가리킨다. 둘째, 忠과 信은 한 가지 이치이고 단지 內(忠)와 外(信)의 구별이 있을 뿐이다. 즉 마음에서 일어나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은 忠이고, 일어난 것을 실증하고 생활 속에서 위배하지 않는 것을 信이라고 하였다. 셋째, 忠은 信의 근본이고 信은 忠의 나타남인 것이다.
固 ~ 1) 공고하다 2)고루하다. 過 ~잘 못하다 徏 = 따라서 옮겨가다, 義之與比 = 與義比 = 以義比 ~ 道義로서 준칙을 삼는다. = 唯義是從
(2025.10.16 강의 요약자 : 주정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