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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서역을 순례하고 지은 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쓴 혜초
당나라로 유학을 가 인도와 서역(이란, 중앙아시아)까지 다녀와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 스님의 생애에 대하여 알아본다.
1. 출생 혜초 스님은 704년 통일 신라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당나라에서 활동하다 입적하였다.
2. 당나라로 배우러 감 719년 16세에 밀교(대승불교의 한 분야로, 붓다가 깨우친 진리를 은밀하게 전하는 비밀 불교의 줄임말)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으로 건너갔다.
※공자의 논어 : 吾十有五而志于學(오십유오이지우학,나는 15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
3. 구법 여행 준비 720년 당나라에서 밀교의 대가인 인도 출신의 금강지(金剛智) 스님을 만나 인도 순례 권유에 결행했다는데, 인도에서 돌아온 이후 혜초 스님이 금강지 스님 밑에서 밀교를 계승한 걸 보면 맞는 것 같다.
※ 제가 만약에 지금 인도에 간다면 어떻게 준비했을까? 다녀온 여행기를 파악하여 누구랑 갈지, 어떻게 갈지, 여행 기간 및 일정, 교통편, 숙박, 식사(맛집), 언어나 통역, 여행경비 추정과 조달, 방문국 정보, 준비물 등 여행 계획을 세울 것이다. 마찬가지로 혜초 스님도 이미 다녀온 고승들의 여행기를 찾아 일정과 경유지, 의식주 해결 방법, 교통, 통역, 위험 대처법, 비용 등을 파악하고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혜초보다 먼저 인도에 다녀온 기록
※ 또한 워낙 위험한 여행이라 혼자서는 가지 않았을 것 같은데 누구와 어떤 그룹과 동행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여행경비는 어떻게 마련했고 인도 말은 좀 배우고 갔는지? 큰 나라라 지역마다 말이 달랐을 텐데 통역은 어떻게 했을까? 등 궁금한 게 많다.
4. 여행 지역과 기간 723년 20살의 혜초는 중국 광저우를 출발해 인도로 구법(求法, 부처의 진리를 구함) 여행을 떠나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727년 당나라에 도착하였다.
▼인도에서 구법 여행 중의 혜초 스님(추정 그림)
※ 여행 중에 고행을 기록한 글
호밀국(파미르 고원 근처)에서 “나는 새도 짐짓 놀라는 가파른 산에, 기우뚱한 다리를 건너야 하네. 평생 눈물 홈쳐 본 적 없는데 오늘은 하염없이 쏟아지네(鳥飛驚峭嶷,人去難偏樑, 平生不捫淚,今日灑千行)”라 적고 있다.
5. 구법 여행 다녀온 후 인도와 서역을 다녀온 후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하였다.
733년 장안 천복사(薦福寺)에서 금강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현종(玄宗)의 칙명으로 740년에 금강지가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大乘瑜伽金剛性海曼殊室利千臂千鉢大敎王經)"을 번역할 때 혜초는 받아 적는 임무를 담당했다.
혜초는 금강지의 제자 불공(不空)의 문하에 있으면서 774년 대흥선사(大興善寺)에서 유가심지비밀법문(瑜伽心地秘密法門)을 배웠다.
774년 2월 혜초는 내도량(內道場, 궁중 원찰)의 사문(沙門,출가하여 도를 구하는 사람)으로 활동하면서 성지인 옥녀담(玉女潭)에서 기우제를 주관하고 「하옥녀담기우표(賀玉女潭祇雨表)」를 지었다.
▼ 중국 장안(시안)에 있는 신라국 고승 혜초 기념비(2001년 세움)
그 뒤 혜초는 수년 동안 장안에 머물다가 780년 오대산으로 옮겨갔다. 오대산은 불공이 오래 머무르던 곳이며 불공의 제자인 함광(含光)도 여기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는 오대산의 건원보리사(乾元菩提寺)에서 지내면서 이전에 필수를 맡았던 『대승유가금강성해만수실리천비천발대교왕경』을 필사하고 이 경을 번역한 유래와 비밀스러운 뜻(秘義)를 간략히 서술한 「서문」을 지었다.
787년 신라로 돌아오지 않고 중국 오대산 건원보리사에 들어가 머물다 입적하였다고 전해진다.
▼ 한국 평택에 있는 혜초 기념비(2009년 세움)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역사 우리넷, 현대 불교, 네이버, 구글, 국가유산청, 동아일보, 중앙일보,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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