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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01 강 강의자료 요약 (2025.10.30)
2025년 10월 30일 강의 장면 -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1. 唐詩 300 首
1) 당시 제목: 화진릉육승(조춘유망)
2) 작자 : 두심언(杜審言) 645 년경 - 708 년
두심언은 중국 당나라 초기의 시인으로, 그의 자는 필간(必簡)이며,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두보(杜甫)의 친할아버지입니다. 그는 후베이성 샹양(襄陽)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부 기록에서는 산시성 시안(西安) 출생으로도 언급됩니다.
- 생애 및 경력 두심언은 670 년에 진사 시험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습니다. 그는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부름을 받아 저작좌랑(著作佐郞) 등을 지냈습니다. 정변으로 인해 북베트남의 봉주(峰州)로 유배당하기도 했습니다. 유배 후에는 국자감 주부와 수문관 직학사 등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의 성격은 다소 교만하여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있었으나, 시재가 풍부하여 5 언율시(五言律詩)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습니다.
- - 문학적 업적 두심언은 '문장사우(文章四友)'라 불리며, 이교(李嶠), 최융(崔融), 소미도(蘇味道)와 함께 당대의 문학적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는 궁정 시인으로서 심전기(沈佺期), 송지문(宋之問)과 함께 활동하였고, 그의 작품 중 일부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알려진 그의 시는 약 43 수에 불과합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상강(渡湘江)"은 유배길에 상강을 건너며 느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는 고향을 떠나는 슬픔과 유배의 고통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의 문학적 깊이를 잘 보여줍니다.
- 유산 두심언은 후에 그의 손자 두보가 당나라 시문학의 중요한 인물로 성장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시는 당대의 정치적 상황과 개인적 고뇌를 반영하며, 후대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 중국계 조직 흑사회 (黑社會) 흑사회(黑社會)는 한자 그대로 '검은 사회'를 뜻하며, 중국 본토를 비롯한 중화권 내에 존재하는 암흑가 또는 범죄 조직 전체를 총칭하는 일반적인 용어입니다. 특정 단일 조직의 명칭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조직폭력을 의미하는 보통명사로 사용됩니다.
- 흑사회의 주요 특징 · 광범위한 개념: 흑사회는 폭력 조직(黑幫, 흑방)뿐만 아니라 도둑, 매춘, 강도 등 모든 종류의 불법 행위와 범죄자들을 아우르는 광의적 개념입니다. 중국 대륙에서는 '조폭'이라는 의미로 흔히 쓰입니다. · 삼합회(三合會)와의 관계: 홍콩, 마카오, 대만 등지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특정 조직인 삼합회(Triads)는 흑사회의 범주에 포함되는 하나의 부류입니다. 즉, 흑사회가 상위 개념이며, 중국 본토의 모든 폭력 조직을 삼합회라고 부르는 것은 엄밀히 말해 잘못된 것입니다. · 점조직 형태: 한국의 일반적인 조직폭력배와 달리, 흑사회는 점조직 형태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실체 파악이 어렵습니다. 평상시에는 일반인처럼 위장하여 활동하다가 범죄가 필요할 때 모여 범행을 저지르고 해산하는 행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 주요 활동 영역: 전통적으로 마약, 도박장 운영, 매춘, 청부 폭력, 공사 현장 이권 개입, 금품 갈취, 불법 밀입국 및 환치기 등 다양한 범죄에 관여합니다. 최근에는 공산당 고위 간부들과의 유착(관시)을 통해 기업 경영 등의 고급 단계 범죄로 확장되는 양상도 보이고 있습니다. · 해외 활동: 화교 커뮤니티가 형성된 한국의 차이나타운(예: 대림동, 가리봉동 등)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활동하며, 특히 조선족 폭력조직의 형태로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 중국 당국의 단속 중국 공산당은 사회 안정을 위해 흑사회 척결을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해왔습니다. 특히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소흑제악(掃黑除惡, 흑을 쓸어버리고 악을 제거한다)" 캠페인 등을 통해 흑사회 조직과 그들의 비호 세력(공직자 등)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 '흑사회' 두목, 한국 잠입·2 년째 서울 활보: 이 영상은 중국 흑사회 고위 간부의 국내 활동과 검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 흑사회의 현실적인 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4강(2024,03,28) 강의 교안
*《論語》〈里仁〉 4-15. 參乎!吾道一以貫之。曾子曰..唯。子出,門人問曰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忠恕而已矣
*《史記》〈周本紀〉4-023 1. 制 - 甲骨文, 원래는 규정, 점차 법규, 제도 《說文解字》「制,裁也」
1) 다스리다, 2) 문자로 규정(제정),
3) 제어하다, 《荀子》〈天論〉「大天而思之, 孰與物畜而制之! 從天而頌之, 孰與制天命而用之? 望時而待之, 孰與應時而使之! 因物而多之, 孰與騁能而化之! 思物而物之, 孰與理物而勿失之也! 愿于物之所以生, 孰與有物之所以成! 故錯人而思天, 則失萬物之情」
* 時令 ~ 時令 (시령)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1. 계절의 절후 및 기후의 표준점 (천문/기상)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계절의 때' 또는 '계절의 변화와 절기(節氣)'를 뜻합니다. 정의: 24 절기(二十四節氣)를 비롯하여, 한 해 동안 시기에 따라 되풀이되는 자연의 순환적인 기후 변화 및 그에 따른 때를 말합니다.
관련 용어: 절기(節氣), 절후(節侯)와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주요 역할: 농경 사회에서 농사를 짓거나 생활하는 데 있어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준칙)을 제공했습니다.
2. 세시풍속 (歲時風俗) 민속학적 관점에서, '해마다 일정한 시기에 되풀이하는 풍속이나 의례' 자체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 정의: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는 주기전승의례(週期傳承儀禮)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 관련 용어: 세시(歲時), 월령(月令), 세사(歲事)와 같은 이칭으로 사용됩니다. · 예시: 설날, 추석 등 명절이나 24 절후에 맞춰 행해지던 전통적인 의례와 놀이 등을 포함합니다.
결론적으로, 時令은 시간(時)에 따른 명령/규칙(令)이라는 한자 뜻처럼, 자연의 절기에 따른 때나 그 때에 해야 할 규범을 의미합니다.
* 열반경(涅槃經) 諸行無常 是生滅法 (제행무상 시생멸법) 이 구절은 불교의 근본 교리 중 하나인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의 핵심 내용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諸行(제행) - 모든 지어진 것들 (인연 따라 형성된 모든 현상, 사물, 행위) 無常(무상) - 항상 머물러 있지 않음 (끊임없이 변함) 是(시) - 이다 (is) 生滅(생멸) - 생겨나고 사라짐 (발생과 소멸) 法(법) - 진리, 이치, 법칙 (변화의 원리)
전체적인 해석 이 구절은 "모든 지어진 것(諸行)은 고정된 실체가 없이 끊임없이 변하며(無常), 이는 곧 생겨나고 사라지는(生滅) 법칙(法)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우주의 모든 현상이 영원하지 않고 (무상), 잠시 생겨났다가 반드시 사라지는 (생멸) 순환의 과정 속에 있음을 깨달으라는 가르침입니다.
구절의 출처와 중요성 이 구절은 불교의 가장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나오는 핵심적인 게송(偈頌, 불교의 가르침을 노래한 글)입니다. 이 게송은 다음과 같이 마무리됩니다. 諸行無常 (제행무상) : 모든 지어진 것은 무상하니, 是生滅法 (시생멸법) : 이것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법이다. 生滅滅已 (생멸멸이) : 생멸하는 것이 사라지고 나면, 寂滅爲樂 (적멸위락) : 고요한 경지(열반)가 바로 즐거움이다. 이 네 구절은 일체의 존재가 무상함을 깨달아 생멸의 고통에서 벗어나 영원한 고요함(涅槃, 열반)을 구해야 한다는 불교의 근본 목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4) 억제, 제한하다, 《商君書》〈畵策〉「衣服有制, 飮食有節, 則出寡矣。女事盡于内, 男事盡于外, 則入多矣。所謂明者, 無所不見, 則群臣不敢爲奸, 百姓不敢爲非。是以人主處匡床之上, 聽絲竹之聲, 而無下治」 의복은 어떤 제한하는 바가 있어야 하고 음식도 절제가 있어야 지출이 적고, 여성은 집안에서 섬기 기를 다하고, 남자는 외부에서 할 일 다하면 수입이 많아 진다. 소위 현명한 사람은 보지 못하는 바 가 없다. 그런 즉 여러 신하들은 간사한 일을 감히 하지 못하고, 백성들도 나쁜 짓을 안 하게 된다. 이런 까닭에 임금은 편안하고 안락한 침상에 거처하며, 음악을 듣고 천하는 다스리지 않아도 된다.
* 악기분류의팔음 (八音) 팔음(八音)은 중국 고대(주나라 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악기 분류 기준으로, 악기를 만드는 재료(여덟 가지 재료)에 따라 소리를 분류한 것입니다.
- 전통적인 팔음 한자 표기 및 설명 전통적인 八音의 여덟 가지 재료와 그에 해당하는 대표 악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금 : 金 (쇠 금) - 쇠붙이로 만든 악기 대표 악기 : 편종(編鐘), 특종(特鍾), 징, 나발 석 : 石 (돌 석) - 돌로 만든 악기 대표 악기 : 편경(編磬), 특경(特磬) 사 : 絲 (실 사) - 명주실로 만든 악기 대표 악기 : 금(琴), 슬(瑟), 거문고, 가야금, 해금 죽 : 竹 (대 죽) -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 대표 악기 : 대금, 피리, 소(簫), 관(管) 포 : 匏 (박 포) - 속이 빈 박으로 만든 악기 대표 악기 : 생(笙), 우(竽) (관을 꽂아 부는 악기) 토 : 土 (흙 토) - 흙으로 구워 만든 악기 대표 악기 : 훈(塤) (흙피리), 부(缶) (질그릇 타악기) 혁 : 革 (가죽 혁) - 짐승 가죽을 사용한 악기 대표 악기 : 북(鼓), 장고, 도(鼗) 목 : 木 (나무 목) - 나무로 만든 악기 대표 악기 : 축(柷), 어(敔) (음악 시작과 끝을 알리는 타악기)
(5) 결단하다, 《史記》〈晉世家〉「當是時, 晉國政皆决知伯, 晉哀公不得有所制。知伯遂有范、中行地, 最强。哀公四年, 趙襄子、韓康子、魏桓子共殺知伯, 盡并其地」 그 대 진나라 정치는 모두 지백이 결정했다. 진나라 애공은 결단한 바가 없었다. 지백은 범과 중행의 땅을 차지 하여 가장 강력해 졌다. 애공 4년 조강자 한강자 위환자가 함께 지백을 죽이고, 그 땅을 모두 합병하였다.
* 진(晉)나라의삼가분진 (三家分晉) 삼가분진(三家分晉)은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일어난 결정적인 사건으로, 강력했던 진(晉)나라가 국력이 약화되면서 신하인 세 가문(三家)에 의해 분할되어 결국 멸망하게 된 역사를 말합니다. 이 사건은 춘추시대가 끝나고 전국시대가 시작되는 분기점으로 여겨집니다.
- 삼가분진의 개요 시기 : 춘추시대 말기 (기원전 403 년) 주체 : 진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세 가문: 한(韓)씨, 위(魏)씨, 조(趙)씨 결과 : 진나라가 세 가문의 영토로 분할되어, 한(韓), 위(魏), 조(趙) 세 나라가 탄생함. 의의 : 이 세 나라가 주(周)나라 왕실로부터 제후로 인정받은 기원전 403 년을 전국시대의 시작으로 봅니다.
(6) 인질, 《國語》〈吳語〉「昔不谷先委制于越君」 옛날에 오 나라 부차가(불곡) 월 나라 구천을 먼저 인질로 삼았다.
"吴王惧,使人行成,曰:“昔不谷先委制于越君,君告孤请成,男女服从。" "孤无奈越之先君何,畏天之不祥,不敢绝祀,许君成,以至于今。" "오 왕이 두려워하여 사람을 보내며 말하였다: '예전에 저가 먼저 월 왕 구차를 인질로 잡았다. 당신이 나에게 성을 요청하니 남녀가 복종하겠습니다. 나는 월 왕의 선왕에게 어찌할 수 없었고, 하늘의 불길함을 두려워하여 제사를 끊을 수 없어, 당신의 요청을 허락하여 지금까지 이르렀습니다.'"
* 왕이나 제후의 겸칭 (自謙詞)
과인(寡人) - 덕이 부족한 사람. - 덕이 적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낮추어 부르던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제후의 겸칭입니다. 불곡(不穀) - 착하지 않은 사람. - 착함(선함)이 없다는 뜻으로, 자신을 겸손하게 낮추어 부르던 말입니다. 〈오어〉에서오왕부차가사용한것처럼주로제후가 썼습니다. 고(孤) - 덕이 얇아 고립된 사람. - 고아(孤兒)와 같은 '외로운' 뜻을 내포하며, 덕이 얇아 백성들에게 의지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자신을 낮추어 부르던 겸칭입니다. 부(不) - 덕이 없거나 못난 사람. - 덕이 없다는 뜻으로, 부곡(不谷)과 마찬가지로 자신을 낮추던 겸칭이며, 주로 제후가 사용했습니다.
- 황제의 겸칭: 짐 (朕) 위 단어들이 주로 제후들이 겸손을 나타낼 때 사용된 것에 비해, 황제(皇帝)가 자신을 부를 때 쓰는 일반적인 1 인칭 대명사는 짐(朕)입니다. · 짐 (朕): 진시황이 통일 후부터 황제의 전용 칭호로 지정하여 사용한 1 인칭 대명사입니다. 짐 자체가 겸칭의 의미를 포함하지는 않지만, 황제의 압도적인 권위를 나타내는 칭호입니다.
(7) 지명, 左丘明, 〈鄭伯克段于鄢〉「及莊公即位, 爲之請制。公曰.制, 岩邑也, 虢叔死焉」 장공이 즉위하자 “제”라는 지역을 요구했다. 공이 말하기를 제는 돌로 쌓인 마을이다(암읍)”. 괵숙이 그 곳에서 죽었다.
"初,鄭武公娶於申,曰武姜。生莊公及共叔段。莊公寤生,驚姜氏,故名曰“寤生”,遂惡之。愛共叔段,欲立之,亟請於武公,公弗許。" 及莊公即位, 爲之請制。公曰.制, 岩邑也, 虢叔死焉 "既而悔之。潁考叔為潁谷封人,聞之,有獻於公,公賜之食。食舍肉,公問之,對曰:“小人有母,皆嘗小人之食矣,未嘗君之羹,請以遺之。
해석: "처음에, 정무공은 신나라에서 아내를 맞아들였고, 그녀의 이름은 무강이었다. 그녀는 장공과 공숙단을 낳았다. 장공이 태어날 때 발이 먼저 나와 무강이 놀라서 '寤生'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녀는 공숙단을 사랑하고 그를 세자로 세우고 싶어 무공에게 여러 번 요청했지만, 무공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 후 장공은 후회했다. 영고수는 영곡의 관리로, 이 사실을 듣고 공에게 진상품을 바쳤다. 공은 그에게 음식을 주었고, 영고수가 대답했다: '소인은 어머니가 있으니, 모두 소인의 음식을 맛보았지만, 군왕의 고기는 한 번도 맛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에게 주게 해 주십시오.'"
이 문장은 장공과 그의 어머니 무강, 그리고 그의 동생 공숙단 간의 복잡한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장공은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동생을 처치하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어머니와의 갈등이 발생하며, 결국 후회하게 되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 左丘明, 〈鄭伯克段于鄢〉에 나오는 虢叔은 공숙단(共叔段)이다. 공숙단(共叔段)은 "左丘明"의 작품인 "鄭伯克段于鄢"에서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정나라의 왕인 정장공(郑庄公)의 동생으로, 그의 이름은 단(段)입니다. 공숙단은 형인 정장공과의 권력 다툼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며, 이로 인해 형제 간의 갈등이 심화됩니다.
주요 특징 및 배경: · 형제 간의 갈등 : 공숙단은 어머니 무강(武姜)의 편애를 받으며 성장하였고, 이는 그가 왕위를 차지하려는 야망을 키우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형인 정장공의 권력을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됩니다. · 정치적 음모: 공숙단은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여러 음모를 꾸미고, 결국 정장공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였으나, 결국 형에게 패하고 도망치게 됩니다. · 결말: 공숙단은 정장공의 군대에 의해 패배하고, 결국 공국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이 사건은 "郑伯克段于鄢"의 핵심 이야기로, 형제 간의 갈등과 권력 투쟁을 통해 당시 사회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8) 제도, 《史記》〈禮書〉「禮之貌誠深矣, 堅白同異之察, 入焉而弱。其貌誠大矣, 擅作典制」 예의 모양은 아주 심오하다. 견백 동이의 고찰로 예의 범위 안에 들어 가면 박약 해진다. 그 예의 모양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커서 멋대로 제도를 만든다.
* 구류십가(九流十家)의 분류 '구류(九流)'는 한나라 때 유흠(劉歆)이 편찬한 《칠략(七略)》과 반고(班固)의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 기록된 주요 아홉 개 학파입니다.
1. 유가 (儒家) - 공자, 맹자, 순자 등. 인(仁), 의(義), 예(禮)를 중심으로 윤리 도덕과 통치 질서 강조. 2. 도가 (道家) - 노자, 장자 등. 무위자연(無爲自然), 도(道)의 사상, 인위적인 것을 배격. 3. 음양가 (陰陽家) - 추연 등.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세상의 변화와 원리를 설명. 4. 법가 (法家) - 한비자, 상앙 등. 엄격한 법치(法治)와 강력한 군주권을 통한 통치 강조. 5. 명가 (名家) - 공손룡 등. 명(개념)과 실(대상)의 관계를 따지는 변론(辨論)에 능함. 6. 묵가 (墨家) - 묵자 등. 겸애(兼愛), 비공(非攻) 등 실천적인 평화와 공동체 윤리 강조. 7. 종횡가 (縱橫家) - 소진, 장의 등. 외교와 웅변술을 통해 국가 간의 합종(合從)과 연형(連衡)을 주장. 8. 잡가 (雜家) - 여불위 등. 여러 학파의 장점을 절충하고 통합하여 통치에 활용. 9. 농가 (農家) - 허행 등. 농업 생산을 근본으로 삼고 농민의 입장을 대변.
- '십가(十家)'에 추가되는 학파 '구류(九流)'에 하나를 더하여 '십가(十家)'라고 부를 때, 추가되는 한 학파는 바로 소설가(小說家)입니다.
10. 소설가 (小說家) - 민간의 야사나 풍문, 소문 등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역할을 한 사람들을 일컬음.
따라서, 중국 고전에서의 10 가 9 류는 유가, 도가, 음양가, 법가, 명가, 묵가, 종횡가, 잡가, 농가 (이상 9 류)와 소설가 (추가하여 10 가)를 가리킵니다.
이 구류 십가 중에서 특히 유가, 도가, 묵가, 법가는 중국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학파로 평가받습니다.
* 중국 명가철학 1. 명가철학의 탄생과 시대적 배경 중국 고대 철학사에서 명가(名家)는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춘추전국시대라는 격동의 시기, 제자 백가가 백가쟁명(百家爭鳴)하며 각자의 사상을 펼치던 그 시절에 명가는 언어와 논리, 개념과 실재의 관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학파로 등장했다. 이들은 실천적 정치철학이나 도덕론에 집중했던 유가나 법가와는 달리, 순수하게 논리적이고 인식론적인 문제들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중국 철학사에서 예외적인 존재였다. 명가라는 명칭은 한나라의 사마담이 『사기』의 「논육가요지(論六家要旨)」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 이전에 『장자』의 「천하편」에서는 이들을 “변자(辯者)”, 즉 논변을 일삼는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호칭들은 명가 철학자들이 일상적 상식을 뛰어넘는 역설적 명제들을 제시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논증하려 했던 그들의 독특한 철학적 방법론을 잘 보여준다. 전국시대는 봉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사회 질서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언어와 명칭, 그리고 그것이 지칭하는 실재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 즉 “정명(正名)“의 문제는 단순한 철학적 유희가 아니라 사회 질서를 재건하기 위한 근본적 과제였다. 공자도 “명불정즉언불순(名不正則言不順)”, 즉 명칭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다고 강조했지만, 명가는 이 문제를 훨씬 더 정교하고 논리적인 수준에서 다루었다.
2. 혜시의 합동이설: 상대주의적 세계관 혜시(惠施, 기원전 약 370-310)는 명가의 선구자로서 송나라에서 태어나 위나라에서 재상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장자와 깊은 교유 관계를 맺었으며, 두 사람의 철학적 대화는 『장자』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혜시의 사상은 주로 『장자』 「천하편」에 전해지는 “혜시십사(惠施十事)”, 즉 열 가지 명제를 통해 알 수 있다.
- 혜시 십사의 철학적 의미 혜시의 열 가지 명제는 언뜻 보면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역설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철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첫 번째 명제인 “지극히 커서 밖이 없는 것을 대일(大一)이라 하고, 지극히 작아서 안이 없는 것을 소일(小一)이라 한다”는 명제는 공간의 무한성과 물질의 무한 분할 가능성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이는 고대 그리스의 제논(Zeno)이 제시했던 역설들과 유사한 형이상학적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두 번째 명제인 “두께가 없는 것은 쌓을 수 없으나 그 크기는 천리다”는 기하학적 점이나 면의 개념을 다루고 있다. 두께가 없는 평면은 아무리 쌓아도 입체가 될 수 없지만, 평면 자체는 무한히 넓게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차원의 문제를 다루는 매우 정교한 수학적·철학적 사유다. 세 번째 명제인 “하늘이 땅과 마찬가지로 낮으며, 산은 연못처럼 평평하다”는 상대성의 개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관찰자의 위치와 관점에 따라 높고 낮음, 평평함과 험준함은 상대적일 뿐이다. 만약 우주 공간에서 본다면 하늘과 땅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충분히 멀리서 본다면 산도 평평하게 보일 것이다. 네 번째 명제인 “태양은 중천에 이르자마자 기울고, 사물은 생기자마자 죽어간다”는 시간의 흐름과 변화의 끊임없음을 표현한다. 태양이 정오에 이른 순간, 그것은 이미 기울기 시작하고 있다.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여정이 시작된다. 이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는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다섯 번째 명제는 “크게 같으면서도 작게 다른 것을 소동이(小同異)라 하고, 만물이 완전히 같으며 완전히 다른 것을 대동이(大同異)라 한다”는 것으로, 혜시 철학의 핵심인 합동이설(合同異說)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만물은 미시적으로 보면각각 다르지만(異), 거시적으로 보면모두 같다(同). 모든 사물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모두 시공간 속에 존재하며, 모두 변화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동일하다. 여섯 번째부터 아홉 번째 명제들은 공간과 시간의 상대성을 더욱 심화 시킨다. “남방은 끝이 없으면서 끝이 있다”는 것은 공간의 무한성과 유한성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한다. “오늘 월나라에 갔으나 어제 온 것이다”는 시간의 상대성을, “연환은 풀수 있다”는 논리적 모순의 해결 가능성을, “나는천하의 중앙을 아노니, 연나라의 북쪽과 월나라의 남쪽이 이것이다”는 중심의 상대성을 표현한다.
2. 공손룡의 이견백설: 개념과 실재의 분리 공손룡(公孫龍, 기원전 약 325-250)은 혜시보다 한 세대 뒤의 인물로, 조나라 출신이다. 그는 명가 철학을 더욱 체계화하고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한서』 예문지에 따르면 그의 저작은 17 편이었다고 하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지물론」, 「견백론」, 「백마론」, 「통변론」, 「명실론」, 「적부」 등 여섯 편이다.
- 명실론: 정명의 철학적 기초 공손룡 철학의 출발점은 「명실론(名實論)」에 있다. 여기서 그는 물(物), 실(實), 위(位), 정(正)이라는 네 가지 핵심 개념을 제시한다. 물(物)은 천지의 모든 사물을 의미한다. 이는 존재하는 모든 것, 경험 가능한 모든 대상을 포괄한다. 실(實)은 어떤 사물이 그 자신의 본질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사물의 내재적 속성과 본질을 가리킨다. 실은 반드시 시공간 속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며, 자기 자신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속성을 가진다. 위(位)는 어떤 사물이 그것이 본래 있어야 할 위치에 있는 것을 말한다. 정(正)은 명칭과 실재가 올바르게 대응하는 상태다. 공손룡이 제시한 정명의 기본 원칙은 “유호기피차(有呼其彼此)“다. 이는 호칭에는 반드시 그것이 가리키는 피지칭자(彼)와 가리키지 않는 것(此)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형식논리학의 모순율(law of contradiction)과 배중률(law of excluded middle)에 해당하는 원리다. 어떤 대상 A 는 동시에 A 이면서 비(非)A 일 수 없고(모순율), A 이거나 비 A 중 하나여야 한다(배중률).
- 견백론: 속성의 분리 가능성 「견백론(堅白論)」은 공손룡의 리견백(離堅白) 이론을 다룬다. 그는 ‘견(堅)’, 즉 ‘단단함’과 ‘백(白)’, 즉 ‘흰색’이 서로 분리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논변은 구체적으로 “견백석(堅白石)”, 즉 단단하고 흰 돌을 예로 들어 진행된다. 공손룡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돌을 볼 때, 우리는 그것의 흰 색깔을 시각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 순간 우리는 돌의 단단함을 인식하지 못한다. 시각은 색깔만을 포착할 뿐, 견고함이라는 촉각적 속성은 포착하지 못한다. 반대로 우리가 돌을 만져서 그것의 단단함을 촉각으로 인식할 때, 우리는 색깔을 인식하지 못한다. 촉각은 견고함 만을 포착할 뿐, 흰색이라는 시각적 속성은 포착하지 못한다. 따라서 견과 백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결코 동시에 포착되지 않는다. 이 둘은 각각 다른 감각 양태를 통해 별도로 인식되므로, 논리적으로 분리 가능한 독립적 속성이다. 공손룡은 여기서 더 나아가, 견과 백은 개별적인 돌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인 보편자(共殊)로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변의 철학적 함의는 심오하다. 첫째, 공손룡은 감각의 양태에 따라 대상의 속성이 분리되어 인식됨을 지적한다. 이는 감각과 사물의 내적 연관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다. 둘째, 그는 속성이 대상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형이상학적 주장을 펼친다. 이는 플라톤(Plato)의 이데아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형상(form) 개념과 비교될 수 있는 보편자 이론이다. 셋째, 견백론은 인식론적 문제를 제기한다. 우리가 “단단하고 흰 돌”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정말로 그것의 모든 속성을 동시에 인식하고 있는가? 공손룡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점에, 서로 다른 감각을 통해 각각의 속성을 인식한 후, 사유를 통해 그것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대상으로 구성할 뿐이다.
이러한 논변은 현대 분석철학의 속성 이론이나 감각 자료(sense-data) 이론과 연결될 수 있다. 러셀(Bertrand Russell)이나 무어(G.E. Moore) 같은 철학자들도 우리가 직접 인식하는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감각 자료라고 주장했는데, 공손룡의 견백론은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2 천여 년 전에 제기했던 것이다.
(9) 형식(디자인), 《史記》〈叔孫通傳〉「漢二年, 漢王從五諸侯入彭城, 叔孫通降漢王; 漢王敗而西, 因竟從漢。叔孫通儒服, 漢王憎之., 乃變其服, 服短衣, 楚制, 漢王喜。叔孫通之降漢, 從儒生弟子百餘人, 然通無所言進」 한나라 2년(BC205) 한 왕이 5명의 제후와 연합해서 평성에 들어 갔다. 숙손통이 한왕에게 항복했다. 한 왕이 패배해서 서쪽으로 갔다. 끝내 한 왕을 따르기로 했다. 속선통이 유복을 입었는데 한 왕이 싫어했다. 이에 숙손통이 옷을 바꾸어 입었다. 복 단이 짧은 옷을 입었는데 그것은 초 나라 형식이었다. 한 왕이 기뻐했고 숙손통이 한 나라에 항복하고 유생 제자들 100여명이 따랐다. 그러나 숙손통은 추천하여 말하는 바가 없었다.
* 유방의네명의책사 (한초사걸)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자신의 공신들을 평가하며 언급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통네 명의핵심참모를꼽을때는장량, 소하, 한신, 진평을일컫습니다.
1. 장량 (張良) - 전략및 계책 장막안에서계책을짜내어천리밖의승부를결정짓는재주는내가 장량을따르지못한다. 2. 소하 (蕭何) - 행정및 보급 나라를안정시키고백성들을다독이며양식을공급하고운송로가 끊어지지않게하는일은내가소하를따르지못한다. 3. 한신 (韓信) - 군사및 전투 백만대군을이끌고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기어코 빼앗아 취하는 일에서는 내가 한신을 따를 수 없다. 4. 진평 (陳平) - 기책및 모략 항우와의초한전쟁당시유방의계책을담당한책략가. 특히이간책등 모략에능함.
* 진평(陳平, ? ~ 기원전 178 년)은 중국 초한쟁패기(楚漢爭覇期)와 전한(前漢) 초기의 정치가이자 탁월한 전략가입니다.
출신 : 위나라(魏) 양무현(陽武縣) 호유향(戶牖鄕) (현재의 하남성 일대) 작위 : 곡역후(曲逆侯) 시호 : 헌후(獻侯) 역할 : 한 고조(유방)의 책사(策士) 및 전한 초기의 승상(丞相)
1. 생애 및 업적 · 초기 경력: 젊어서는 가세가 빈한했으나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처음에 위왕 위구(魏咎)를 섬기다가 참언을 듣고 달아났고, 이후에는 항우(項羽)에게 귀순하여 신무군(信武君)에 봉해지기도 했으나, 항우의 성격 때문에 위험을 느껴 한왕(漢王) 유방에게로 투신했습니다. · 유방의 책사 활약: 유방의 밑으로 들어간 후, 뛰어난 지혜와 계책으로 유방이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o 육기(六奇)의 계책: 항우를 상대할 때 여러 차례 기발한 계책(육기)을 내어 유방을 위기에서 구하고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흉노의 묵돌 선우를 속이는 계책 등이 유명합니다. o 이간책(離間策): 항우 진영의 중요한 인물인 범증(范增) 등을 이간질하여 항우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o 한신 포획에 기여: 한나라 건국 후, 반역의 기미를 보이던 초왕 한신(韓信)을 사로잡을 계책을 제시하여 숙청하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o 제후왕 숙청에 관여: 한신 외에도 양왕 팽월, 회남왕 영포 등을 숙청하는 데 꾀를 써서 한나라의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 여씨(呂氏) 세력 견제 및 타도: 한 고조 사후, 여태후(呂太后)가 정권을 장악했을 때, 여씨 일족의 전횡 속에서도 지혜롭게 처신하여 사직을 지켰습니다. 여태후 사후에는 주발(周勃)과 협력하여 여씨 일족을 토벌하고, 문제(文帝)를 옹립하여 한나라의 안정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승상 재임: 문제 즉위 후, 주발과 함께 좌승상(左丞相), 우승상(右丞相)을 맡았으며, 주발이 물러난 뒤에는 단독으로 승상을 맡아 '문경의 치(文景之治)'의 토대를 닦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 평가 진평은 책략과 임기응변에 매우 능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때로는 도덕적인 비판을 받을 만한 계책도 서슴지 않았으나, 그 모든 것이 한나라의 건국과 안정에 크게 기여한 뛰어난 공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마천은 그의 열전인 '진승상평세가(陳丞相平世家)'에서 그의 지략과 공적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10) 규모, 范仲淹, 〈岳陽樓記〉「乃重修岳陽樓, 增其舊制」 악양루를 다시 수리하고 옛날 규모를 보강했다.
(11) 군주의 명령(법령), 《漢書》〈高帝紀》「太后臨朝稱制。 태후가 조정에 임해서 군주의 명령을 했다 (수렴청정)
《注》師古曰:天子之言曰制書, 謂爲制度之命也」 천자의 말은 제서 이고. 제도의 명령이다.
《史記》〈汲黯列傳〉「臣請歸節, 伏矯制之罪」 신하가 임명장(節)청구했어요 군주의 명령을 거짓으로 한 죄를 엎드려 받겠습니다.
《禮記》〈曲禮》「士死制。 선비가 ‘죽어라”는 군주의 명령을 받는다.
《注》制謂君命, 士受命致死也」 제는 군주의 명령이다. 선비가 명령을 받아 죽음에 이른다.
(12) 작품(문장), 《宋書》「至于先士茂制, 諷高歷常」 전시대 어진 선의 예악제도에 관한 문장(무제)는 풍자가 고상하고 역사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항상 새롭다.
( 2025.10.30. 주정봉 강의 요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