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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정보 수집가담항설의지식창고 2025.11.03. 15:03 (2025.11.03. 14:34)

매죽헌 성삼문 가족관계

 
매죽헌(梅竹軒)의 아들은 남효온(南孝溫)의 육신전(六臣傳)에는 아들이 5명으로 되어있고, 회곡공파보(檜谷公派譜) 구보(舊譜)에는 원(元) 맹첨(孟瞻) 맹평(孟平) 맹종(孟終) 금년생(今年生)으로 되어있었으나 동학(東鶴) 숙모전(肅慕殿) 병자원적(丙子寃籍)에는 성맹첨(成孟瞻) 성맹평(成孟平) 성맹종(成孟終) 성헌(成憲) 성택(成澤) 성무명(成無名) 성금년생(成今年生) 7명이 올라있다. 장남(長男) 성원(成元)은 일찍 요사(夭死)하였으므로 병자원적(丙子寃籍)에 오르지 않았다.
梅竹軒 成三問 家族關係
 
 
매죽헌(梅竹軒)의 아들은 남효온(南孝溫)의 육신전(六臣傳)에는 아들이 5명으로 되어있고, 회곡공파보(檜谷公派譜) 구보(舊譜)에는 원(元) 맹첨(孟瞻) 맹평(孟平) 맹종(孟終) 금년생(今年生)으로 되어있었으나 동학(東鶴) 숙모전(肅慕殿) 병자원적(丙子寃籍)에는 성맹첨(成孟瞻) 성맹평(成孟平) 성맹종(成孟終) 성헌(成憲) 성택(成澤) 성무명(成無名) 성금년생(成今年生) 7명이 올라있다. 장남(長男) 성원(成元)은 일찍 요사(夭死)하였으므로 병자원적(丙子寃籍)에 오르지 않았다.
 
현재(現在) 회곡공파보(檜谷公派譜)는 성무명(成無名)과 성금년생(成今年生)은 동일인(同一人)으로 보고 성원(成元), 성맹첨(成孟瞻), 성맹평(成孟平), 성맹종(成孟終). 성헌(成憲), 성택(成澤), 성금년생(成今年生) 칠자(七子)로 수정하였다.
 
 
매죽헌(梅竹軒)의 딸은 회곡공파보(檜谷公派譜)에는 무안박씨(務安朴氏) 박임경(朴臨卿)에게 출가(出嫁)한 한 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병자화(丙子禍) 당시 박임경에게 시집간 딸은 연좌되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배위(配位) 차산과 딸 효옥은 운성부원군 박종우(태종의 사위)의 노비가 되었다가 성종 6년(1475년) 5월 7일 왕명에 의하여 노속에서 석방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무안박씨(務安朴氏) 박임경(朴臨卿)에게 출가한 장녀와 운성부원군 박종우의 노비가 된 차녀 효옥(孝玉) 이녀(二女)로 추정된다.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 4번째기사에서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 딸 효옥(孝玉)은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성삼고(成三顧)의 아내 사금(四今) 및 한살 된 딸은 우찬성(右贊成) 정창손(鄭昌孫)에게 주고”
 
“성삼성(成三省)의 아내 명수(命守)는 병조참판(兵曹參判) 홍달손(洪達孫)에게 주고”, “성맹첨(成孟瞻)의 아내 현비(現非)는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전균(田畇)에게 주고, “성승(成勝)의 아내 미치(未致)는 계림군(雞林君) 이흥상(李興商)에게 주고”, “ 성삼빙(成三聘)의 아내 의정(義貞)은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권개(權愷)에게 주고”라고 하였고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1457년 8월 21일 2번째기사에서
 
“성승(成勝)의 첩의 딸 성금(性今)을 좌찬성(左贊成) 신숙주(申叔舟)에게 내려 주고”, “성승(成勝)의 첩(妾)의 딸 옥동(玉童)을 판서(判書) 박원형(朴元亨)에게 내려 주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기(上記) 왕조실록 기록을 보면 도총관(諱 勝)의 배위(配位)는 죽산박씨 外 未致가 있고, 도총관(諱 勝)의 서녀(庶女) 성금(性今)과 옥동(玉童)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으나 우리 회곡공파보(檜谷公派譜)에는 그런 기록이 없다.
 
 
梅竹軒(諱 三問) 家族을 정리해본다.
 
• 고조부 성여완(成汝完) - 정당문학(政堂文學)
• 증조부 성석용(成石瑢) -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 조부(祖父) 성달생(成達生) - 공조판서(工曹判書)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 조모(祖母) 풍양조씨(趙氏) - 조운개(趙云价)의 딸
• 부(父) 성승(成勝) - 도총관(都摠管), 증 좌찬성(贈 左贊成)
• 모(母) 죽산박씨(竹山朴氏) - 현감(縣監) 박첨(朴瞻)의 딸
• 배위(配位) 김차산(金次山 - 연안(延安) 김잉(金仍)의 딸, 박종우의 노속에서 매죽헌 제사를 지냄.
 
• 장남(長男) 성원(成元) 夭死
• 차남(次男) 성맹첨(成孟瞻) 慘禍
• 성맹첨(成孟瞻)의 아내 현비(現非) -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전균(田畇)의 노비가 되었다.
• 삼남(三男) 성맹평(成孟平) 慘禍
• 사남(四男) 성맹종(成孟終) 慘禍
• 오남(五男) 성헌(成憲) 慘禍
• 육남(六男) 성택(成澤) 慘禍
• 칠남(七男) 금년생(今年生) 慘禍
 
• 딸(女) 1439 ~ 1489
- 사위(婿) 무안박씨(務安朴氏) 박림경(朴臨卿 1436 ~ 1485)
- 외손자 암천(巖川) 박증(朴增, 1461-1517
- 외손자 박호(朴壕) 1466 - 1536
- 외손자 박한(朴垾)
- 외손녀 이경상(李慶相)
 
• 딸(女) 성효옥(成孝玉) 사육신 처형 당시 박종우의 노비가 됨,
 
• 동생 : 성삼빙(成三聘, ? - 1456년)
• 제수: 의정(義貞),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권개(權愷)의 노비가 되었다.
• 동생 : 성삼고(成三顧, ? - 1456년)
• 제수 : 김사금(金四今 우찬성(右贊成) 정창손(鄭昌孫)의 노비가 되었다.
• 동생 : 성삼성(成三省, ? - 1456년)
• 제수 : 명수(命守), 홍달손(洪達孫)의 노비가 되었다.
 
 
• 사돈 박이(朴頤) - 평강현감 증 병조참판, 사위 박림경(朴臨卿)의 아버지
• 사돈 유자미(柳自湄) - 감찰(監察), 성맹첨(成孟瞻)의 사위 유집(柳輯)의 아버지
 
※ 유자미(柳自湄)는 사육신의 한사람인 유성원의 친족이고, 유집(柳輯)은 유자미(柳自湄) 의 7째 아들이다. 정랑(正郞)
 
 
참고
• 시조(始祖) 성인보(成仁輔) 중윤(中允) 호장(戶長)
• 2세(世) 성송국(成松國) 문하시중(門下侍中)
• 3세(世) 성공필(成公弼) 판도판서(版圖判書)
• 4세(世) 성군미(成君美) 판도총랑(版圖摠郞)
• 5세(世) 성여완(成汝完) 정당문학(政堂文學)
• 6세(世) 성석용(成石瑢)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 7세(世) 성달생(成達生) 공조판서(工曹判書)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 8세(世) 성승(成勝) - 도총관(都摠管), 증 좌찬성(贈 左贊成)
 

 
조선왕조실록 세조2년(1456년) 9월7일의 기사에서 발췌
“난신에 연좌된 부녀 中 성삼문의 노비가 된 아내 차산(次山)과 딸 효옥(孝玉)은 운성부원군 박종우에게 노비로 주라”
 
 
성종6년(1475년) 5월 7일의 기사에서 발췌
“박종우에게 주었던 성삼문의 아내 차산(次山)과 딸 효옥(孝玉)을 석방해 주라”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 1456년 9월 7일 갑술 4번째기사
의금부에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
 
국역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난신(亂臣)에 연좌(緣坐)된 부녀(婦女) 내에 이소동(李小童)의 아내 천비(千非), 이공회(李公澮)의 아내 동이(同伊), 심상좌(沈上佐)의 아내 미비을개(彌飛乙介)·딸 계금(繼今)은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에게 주고, 이담(李湛)의 아내 소사(召史), 박기년(朴耆年)의 아내 무작지(無作只), 이오(李午)의 딸 평동(平同), 이유기(李裕基)의 누이 효전(孝全)은 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에게 주고, 박팽년(朴彭年)의 아내 옥금(玉今),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조청로(趙淸老)의 어미 덕경(德敬)·아내 노비(老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막덕(莫德), 이현로(李賢老)의 첩의 딸 이생(李生)은 좌의정(左議政) 한확(韓確)에게 주고, 이현로(李賢老)의 아내 소사(召史), 민보창(閔甫昌)의 아내 두다비(豆多非), 김유덕(金有德)의 아내 금음이(今音伊)·딸 옥시(玉時)는 우의정(右議政) 이사철(李思哲)에게 주고,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딸 효옥(孝玉), 이승로(李承老)의 누이 자근아지(者斤阿只)는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황보흠(皇甫欽)의 아내 석을금(石乙今), 박쟁(朴崝)의 아내 오덕(吳德)·딸 효비(孝非)는 좌찬성(左贊成) 윤사로(尹師路)에게 주고, 이유기(李裕基)의 아내 설비(雪非)·딸 가구지(加仇之)·말비(末非)·막금(莫今), 성삼고(成三顧)의 아내 사금(四今) 및 한살 된 딸은 우찬성(右贊成) 정창손(鄭昌孫)에게 주고, 이승윤(李承胤)의 아내 가은비(加隱非), 지화(池和)의 아내 막금(莫今)은 파평군(坡平君) 윤암(尹巖)에게 주고, 이휘(李徽)의 아내 열비(列非), 허조(許慥)의 아내 안비(安非)·딸 의덕(義德)은 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에게 주고, 이자원(李滋源)의 아내 유나매(維那妹), 이개(李塏)의 아내 가지(加知)는 우참찬(右參贊) 강맹경(姜孟卿)에게 주고, 이윤원(李潤源)의 첩 분비(粉非), 이경유(李耕㽥)의 아내 효생(孝生)은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징석(李澄石)에게 주고, 박인년(朴引年)의 아내 내은비(內隱非), 정효강(鄭孝康)의 아내 보배(寶背)는 화천군(花川君) 권공(權恭)에게 주고, 원구(元矩)의 아내 소사(召史), 고덕칭(高德稱)의 아내 보금(甫今)·딸 신금(信今)은 우참찬(右參贊) 황수신(黃守身)에게 주고, 이해(李諧)의 아내 종금(終今)·딸 불덕(佛德)·불비(佛非), 김유덕(金有德)의 누이 막장(莫莊)은 예조 판서(禮曹判書) 박중손(朴仲孫)에게 주고, 최면(崔沔)의 누이 선비(善非), 조완규(趙完圭)의 아내 소사(召史)·딸 요문(要文)은 병조 판서(兵曹判書) 신숙주(申叔舟)에게 주고, 이석정(李石貞)의 아내 소사(召史), 권자신(權自愼)의 아내 어둔(於屯)·딸 구덕(仇德)은 중추원 사(中樞院使) 권준(權蹲)에게 주고, 우직(友直)의 아내 오대(五臺), 김현석(金玄錫)의 아내 영금(英今)은 이조 판서(吏曹判書) 권남(權擥)에게 주고, 윤영손(尹令孫)의 아내 탑이(塔伊)·딸 효도(孝道), 이반경(李反敬)의 첩 막생(莫生)은 중추원 사(中樞院使) 박강(朴薑)에게 주고, 김문기(金文起)의 딸 종산(終山), 최득지(崔得池)의 첩 지장비(地莊非)는 대사헌(大司憲) 최항(崔恒)에게 주고, 성삼성(成三省)의 아내 명수(命守), 정효강(鄭孝康)의 아내 효도(孝道)·딸 산비(山非)는 병조 참판(兵曹參判) 홍달손(洪達孫)에게 주고, 성맹첨(成孟瞻)의 아내 현비(現非), 최사우(崔斯友)의 첩 옥금(玉今)은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전균(田畇)에게 주고, 심신(沈愼)의 아내 석정(石貞)·딸 금정(金正)·은정(銀正), 성승(成勝)의 아내 미치(未致)는 계림군(雞林君) 이흥상(李興商)에게 주고, 이의영(李義英)의 아내 효생(孝生), 조극관(趙克寬)의 아내 현이(現伊)는 도절제사(都節制使) 양정(楊汀)에게 주고, 박순(朴詢)의 아내 옥덕(玉德), 박헌(朴憲)의 아내 경비(敬非)는 이조 참판(吏曹參判) 구치관(具致寬)에게 주고, 송창(宋昌)의 아내 소앙지(召央知), 황보석(皇甫錫)의 아내 소사(召史)는 전 예문 제학(藝文提學) 윤사윤(尹士昀)에게 주고, 이말생(李末生)의 아내 관저(關雎)·딸 경비(敬非), 김문기(金文起)의 아내 봉비(奉非)는 도절제사(都節制使) 유수(柳洙)에게 주고, 박대년(朴大年)의 아내 정수(貞守), 송석동(宋石同)의 아내 소사(召史)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봉석주(奉石柱)에게 주고,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 권저(權著)의 어미 보음미(甫音未)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박계우(朴季愚)의 아내 소비(小非),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유성원(柳誠源)의 아내 미치(未致)·딸 백대(百代), 이명민(李命敏)의 아내 맹비(孟非)는 좌승지(左承旨) 한명회(韓明澮)에게 주고, 황선보(黃善寶)의 아내 복중(福中)·딸 덕비(德非)는 우승지(右承旨) 조석문(曹錫文)에게 주고, 이호(李昊)의 아내 개질지(介叱知)·딸 목금(木今)은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유하(柳河)에게 주고, 윤처공(尹處恭)의 딸 숙비(叔非), 정원석(鄭元碩)의 아내 만금(萬今)은 이조 참의(吏曹參議) 원효연(元孝然)에게 주고, 최치지(崔致池)의 아내 미치(未致), 최윤석(崔閏石)의 아내 봉비(奉非)는 단천 군수(端川郡守) 최유(崔濡)에게 주고, 황선보(黃善寶)의 누이 소사(召史), 이유기(李裕基)의 딸 소근소사(小斤召史)는 형조 참의(刑曹參議) 황효원(黃孝源)에게 주고, 조번(趙蕃)의 아내 소사(召史)·딸 의정(義貞), 황의헌(黃義軒)의 아내 복비(卜非)는 병조 참의(兵曹參議) 한종손(韓終孫)에게 주고, 원구(元矩)의 누이 심이(心伊), 조완규(趙完圭)의 딸 가이(加伊)는 좌부승지(左副承旨) 윤자운(尹子雲)에게 주고, 윤위(尹渭)의 아내 소사(召史), 정관(鄭冠)의 아내 신경(信敬)은 우부승지(右副承旨) 한계미(韓繼美)에게 주고, 이의산(李義山)의 딸 소사(召史)·막금(莫今)은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조효문(曺孝門)에게 주고, 이정상(李禎祥)의 아내 삼비(三非)·딸 현비(現非)·정비(貞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마배(磨杯)는 겸 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 이극배(李克培)에게 주고, 윤경(尹涇)의 아내 소사(召史), 성삼빙(成三聘)의 아내 의정(義貞)은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권개(權愷)에게 주고, 봉여해(奉汝諧)의 어미 소비(小非)·아내 정순(丁順)은 상호군(上護軍) 유서(柳溆)에게 주고, 민보흥(閔甫興)의 아내 석비(石非), 이윤원(李潤源)의 아내 대비(大非)는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김질(金礩)에게 주고, 대정(大丁)의 아내 자근(者斤), 하위지(河緯地)의 아내 귀금(貴今)·딸 목금(木今)은 지병조사(知兵曹事) 권언(權躽)에게 주고, 이보인(李保仁)의 아내 물재(勿才)·딸 옥석(玉石)은 성균 사성(成均司成) 정수충(鄭守忠)에게 주고, 조완규(趙完圭)의 누이 정정(精正), 최사우(崔斯友)의 어미 소사(召史)는 상호군(上護軍) 유사(柳泗)에게 주고, 식배(植培)의 딸 귀비(貴非)·귀장(貴莊)·귀금(貴今)·소근비(小斤非), 유응부(兪應孚)의 아내 약비(若非)는 예빈시 윤(禮賓寺尹) 권반(權攀)에게 주고, 민신(閔伸)의 아내 우비(禹非)·딸 산비(山非)는 대호군(大護軍) 안경손(安慶孫)에게 주고, 이지영(李智英)의 어미 석을금(石乙今)·아내 종비(終非)·딸 은비(銀非)는 대호군(大護軍) 홍순로(洪純老)에게 주고, 송녕(宋寧)의 아내 소사(召史), 권저(權著)의 첩 복가이(卜加伊)는 대호군(大護軍) 조득림(趙得琳)에게 주고, 김감(金堪)의 첩 귀덕(貴德)·딸 소비(小非), 이양(李穰)의 아내 월비(月非)는 대호군(大護軍) 이극감(李克堪)에게 주고, 중은(仲銀)의 누이 귀덕(貴德)·딸 귀비(貴非), 장귀남(張貴男)의 누이 말비(末非)는 직예문관(直藝文館) 유자황(柳子滉)에게 주고, 정분(鄭笨)의 아내 순비(順非), 이석정(李石貞)의 첩 말생(末生)·딸 감물(甘勿)은 대호군(大護軍) 임자번(林自蕃)에게 주고, 대정(大丁)의 어미 내은이(內隱伊), 김감(金堪)의 아내 소사(召史)·딸 복금(卜今)·말금(末今)·아지(阿只)는 전 호군(護軍) 김처의(金處義)에게 주고, 최면(崔沔)의 어미 소사(召史)·아내 점물아지(占勿阿只)·딸 부허비(夫虛非)는 사복 소윤(司僕少尹) 한서귀(韓瑞龜)에게 주고, 최치지(崔致池)의 아내 덕비(德非)·딸 백이(白伊)는 전농 소윤(典農少尹) 송익손(宋益孫)에게 주고, 이승로(李承老)의 아내 효정(孝貞)·딸 숙화(叔和), 이오(李午)의 아내 소질지(少叱知)는 군기 부정(軍器副正) 설계조(薛繼祖)에게 주고, 이의산(李義山)의 아내 참군(參軍)·딸 아을금(阿乙今)은 사재 부정(司宰副正) 권경(權擎)에게 주고, 정관(鄭冠)의 어미 소사(召史), 장귀남(張貴男)의 누이 학비(鶴非)는 군기 부정(軍器副正) 홍순손(洪順孫)에게 주고, 허조(許慥)의 어미 화산(花山)·누이 소근소사(小斤召史)는 겸 군기부정(兼軍器副正) 곽연성(郭連城)에게 주고, 권저(權著)의 아내 계비(季非)·딸 순비(順非)는 호군(護軍) 최윤(崔閏)에게 주고, 조순생(趙順生)의 아내 가질비(加叱非), 김선지(金善之)의 아내 내은이(內隱伊)·딸 가야지(加也之)는 전 부사직(副司直) 이몽가(李蒙哥)에게 주고, 이석정(李石貞)의 딸 감상(甘尙), 최면(崔沔)의 누이 막비(莫非)는 도승지(都承旨) 박원형(朴元亨)에게 주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8장 A면【국편영인본】 7책 150면
【분류】왕실-사급(賜給) / 사법-재판(裁判)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 1457년 8월 21일 임자 2번째기사
형조에 명하여 조석문·강맹경·박종우 등에게 계집종을 내려 주다
 
형조에 전지하기를,
 
"영광(靈光)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중비(仲非)를 도승지(都承旨) 조석문(曹錫文)에게 내려 주고, 연안(延安)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덕비(德非)와 고부(古阜)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조이[召史]를 우의정(右議政) 강맹경(姜孟卿)에게 내려 주고, 곤양(昆陽)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막금(莫今)을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내려 주고, 임실(任實)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심수(心水)를 영중추원사(領中樞院事) 윤사로(尹師路)에게 내려주고, 평양(平壤)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성덕(性德)과 양옥(梁玉)의 누이 후존(厚存)을 파평군(坡平君) 윤암(尹巖)에게 내려 주고, 안변(安邊)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어응이(於應伊)와 제주(濟州)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백주(栢州)를 화천군(花川君) 권공(權恭)에게 내려 주고, 영광(靈光)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송이(松伊)를 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에게 내려 주고, 직산(稷山)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매화(梅花)와 이석정(李石貞)의 첩의 딸 소비(小非)를 판중추원사 이징석(李澄石)에게 내려 주고, 옥과(玉果)에 영속한 계집종 춘월(春月)과 성승(成勝)의 첩의 딸 성금(性今)을 좌찬성(左贊成) 신숙주(申叔舟)에게 내려 주고, 함흥(咸興)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은비(銀非)를 우찬성(右贊成) 황수신(黃守身)에게 내려 주고, 문화(文化)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옥금(玉今)과 이우직(李友直)767) 의 딸 무심(無心)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권남(權擥)에게 내려 주고, 이징옥(李澄玉)768) 의 첩(妾)의 딸 철금(哲今)을 판서(判書) 한명회(韓明澮)에게 내려 주고, 영광(靈光)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옥경(玉京)을 판서(判書) 권준(權蹲)에게 내려 주고, 충주(忠州)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미치(未致)를 판서(判書) 홍달손(洪達孫)에게 내려 주고, 민신(閔伸)의 첩(妾)의 딸 옥진(玉眞)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박강(朴薑)에게 내려 주고, 고산(高山)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흔가이(欣加伊)와 이노(李老)의 딸 간비(諫非)를 도절제사(都節制使) 양정(楊汀)에게 내려 주고, 영흥(迎興)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시미타(矢靡他)와 양옥(梁玉)의 누이 한존(閑存)을 도절제사(都節制使) 홍윤성(洪允成)에게 내려 주고, 함안(咸安)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소비(小非)와 성승(成勝)의 첩(妾)의 딸 옥동(玉童)을 판서(判書) 박원형(朴元亨)에게 내려 주고, 길주(吉州)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보금(寶今)과 김상충(金尙忠)의 딸 상비(尙非)를 참판(參判) 구치관(具致寬)에게 내려 주고, 대흥(大興)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어둔(於屯)과 이노(李老)의 딸 이비(李非)를 전 대사헌(大司憲) 최항(崔恒)에게 내려주고, 진도(珍島)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조이[召史]와 조완규(趙完珪)의 첩(妾)의 딸 옥금(玉今)을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전균(田畇)에게 내려 주고, 금산에 영속한 계집종 조이[召史]를 전 제학(提學) 윤사윤(尹士昀)에게 내려 주고, 권자신(權自愼)의 첩(妾)의 딸 미치(未致)를 부윤(府尹) 유수(柳洙)에게 내려 주고, 길주(吉州)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정비(定非)와 유응부(兪應孚)의 첩(妾)의 딸 환생(還生)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봉석주(奉石柱)에게 내려 주고, 운봉(雲峯)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기덕(奇德)과 이말생(李末生)의 딸 석비(石非)를 부윤(府尹) 강곤(康袞)에게 내려 주고, 아산(牙山)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보덕(寶德)을 도절제사(道節制使) 유하(柳河)에게 내려 주고, 강진(康津)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약비(若非)를 관찰사(觀察使) 원효연(元孝然)에게 내려 주고, 울산(蔚山)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흔덕(欣德)을 중추(中樞) 최유(崔濡)에게 내려주고, 전주(全州)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한비(漢非)를 참판(參判) 황효원(黃孝源)에게 내려 주고, 김해(金海)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녹지(祿只)를 좌승지 윤자운(尹子雲)에게 내려 주고, 결성(結城)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어둔(於屯)을 우승지(右承旨) 한계미(韓繼美)에게 내려 주고, 권책(權策)의 누이 조이[召史]를 참의(參議) 조효문(曹孝門)에게 내려 주고, 장련(長連)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연향(延香)을 우부승지(右副承旨) 김질(金礩)에게 내려 주고, 박천(博川)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자근이(者斤伊)를 참의(參議) 권개(權愷)에게 내려 주고, 강계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전이(全伊)를 제학(提學) 정수충(鄭守忠)에게 내려 주고, 계집종 순비(順非)를 상호군(上護軍) 유서(柳溆)에게 내려 주고, 남원(南原)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오비(吳非)를 판사(判事) 유사(柳泗)에게 내려주고 김제(金堤)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내은비(內隱非)를 대호군 안경손(安慶孫)에게 내려 주고, 사천에 영속한 계집종 영로(永老)를 상호군(上護軍) 조득림(趙得霖)에게 내려 주고, 금산(錦山)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소근이(小斤伊)를 부정(副正) 홍순손(洪順孫)에게 내려주고, 진보(眞寶)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춘이(春伊)를 절제사(節制使) 곽연성(郭連城)에게 내려 주고, 강진(康津)에 영속(永屬)한 계집종 내은이(內隱伊)를 전 호군(護軍) 최윤(崔潤)에게 내려 주어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7책 216면
【분류】왕실-사급(賜給) / 신분-천인(賤人)
[註 767]이우직(李友直) : 안평 대군(安平大君)의 아들. 세조(世祖)의 조카.
[註 768]이징옥(李澄玉) : 이징석(李澄石)의 동생.
 
 
성종실록 55권, 성종 6년 1475년 5월 7일 을묘 2번째기사
박종우에게 내려 주었던 난신 성삼문의 아내와 딸을 석방해 주고, 조경명을 양이하게 하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傳旨)하기를,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내려 주었던 난신(亂臣)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과 딸 효옥(孝玉)을 석방해 주고, 난신 조윤신(曺允臣)에게 연좌(緣坐)되어 부안(扶安)의 고을에 안치(安置)되어 있는 조경명(曹景明)을 양이(量移)415) 하도록 하라." 하였다.
 
[註 415] 양이(量移) : 섬이나 변지로 멀리 귀양보냈던 사람의 죄를 감등하여 내지나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일.
 
○ 傳旨義禁府: "放雲城府院君 朴從愚賜給 亂臣成三問妻次山、女子孝玉, 量移亂臣曺允臣緣坐扶安官安置曺景明。
 
 
贈資憲大夫吏曹判書 行肅川府使 務安朴公臨卿 墓碑文
 
전략(前略)
 
1456년 사육신(死六臣)의 단종복위사건(端宗復位事件)으로 인하여 공(公)의 장인(丈人)인 충문공(忠文公) 성삼문(成三問) 등 육명(六名)의 충신이 역모(逆謀)로 몰려서 비참(悲慘)하게 처형(處刑)된바 당시의 법이 역모로 처형당하면 시체(屍體) 인도(引渡)를 안 해주었기 때문에 그 육신(六臣)의 시체는 가마귀 밥이 될 것이 분명하니 사육신의 가족측(家族側)에서는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아무도 감히 엄두를 못 내던 중 공(公)께서는 그때 나이 불과(不過) 20세(歲)의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육구(六具)의 충신(忠臣)시체(屍體)가 가마귀 밥이 되는 것을 도저히 좌시(坐視)할 수가 없고 타오르는 의분심(義憤心)에서 이를 구출(救出)해 내기로 결심을 하시고 처형(處刑) 당일 야심(夜深)을 이용하여 인부 수십명을 대동(帶同)하고 그 무시무시한 형장(刑場)속으로 잠입(潛入)하여 원한(怨恨)에 사무친 육구(六具)의 충신(忠臣) 시체(屍體)를 모두 거두어 서호(西湖) 노량진(鷺梁津) 언덕에 매장(埋葬)을 감행(敢行)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나라 충혼(忠魂)의 상징(象徵)인 노량진 사육신묘이다. 전술(前述)한 바와 같이 공(公)의 그 의기(義氣)가 하늘을 찔르니 그 당시의 세인(世人)들이 박공(朴公)이야말로 참으로 장하고 또 장한 희유(稀有)의 의기남아(義氣男兒)라고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公)께서는 당신의 장인(丈人) 시체(屍體) 일구(一具) 만을 구출(救出)해 내시는 것도 지극히 난사(難事) 이거늘 육구(六具)의 시체(屍體)를 모두 거두어 내셨다는 그 사실(事實)이 당시 20세(歲)인 공(公)의 넓은 도량(度量)과 높은 덕성(德性)과 그리고 강한 의기(義氣)를 여실하게 증언(證言)해 준것이라고 사료(思料)된다,
 
중략(中略)
 
배위(配位) 정부인(貞夫人) 연안김씨(延安金氏)는 군수(郡守) 기선(基善)의 따님이며 서기 1434년 세종 16년 갑인생(甲寅生)으로 장자(長子) 평(坪)을 낳으시고 20세의 꽃다운 나이로 서기 1453년 단종원년 계유(癸酉)에 몰(歿)하셨고 계배(繼配) 정부인(貞夫人) 창녕성씨(昌寧成氏)는 충문공(忠文公) 삼문(三問)의 따님이며 서기 1439년 세종21년 기미생(己未生)으로 삼남일녀(三男一女)를 낳으시고 서기 1489년 성종 20년 기유(己酉)에 몰(歿)하시니 향년(享年)이 51세(歲)이시다. 공(公)께서는 슬하(膝下)에 사남일녀(四男一女)를 두신바 장자(長子) 평(坪)은 고창현감(高敞縣監)이며 함양개부양파(咸陽開府兩派)의 파조(派祖)이고 차자(次子) 증(增)은 암천처사(岩川處士)이니 노성파(魯城派)의 파조(派祖)이며 삼자(三子) 호(壕)는 좌참찬(左參贊)에 시(諡) 정간공(貞簡公)이요 사자(四子) 한(垾)은 함열현감(咸悅縣監)이다.
 
후략(後略)
 
 
【출처】 네이버 블로그 昌寧成氏 - 梅竹軒 成三問 家族關係 / 작성자 아산 (2020.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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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최종 수정일: 2017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