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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 아카데미 407강 강의자료 요약(2025.12.11.)
2025년 12월 4일 서울시 50+센터 중부캠퍼스(마포구 공덕동)
1. 당시제목 : 하일남정회신대 2. 작자 : 맹호연(孟浩然)( 689~740)
중국 당나라(唐) 전성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은둔의 미학을 노래했던 대표적인 시인 맹호연(孟浩然, 689~740)은 왕유(王維)와 함께 '왕맹(王孟)'이라 불리며, 산수전원시(山水田園詩)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1. 맹호연은 누구인가? • 출생과 생애: 현재의 후베이성(湖北省) 샹양(양양) 사람으로, 평생 벼슬에 큰 뜻을 두지 않고 고향인 녹문산(鹿門山) 등에 은거하며 지냈습니다. • 시적 지위: 이백(李白), 두보(杜甫)가 활동하던 성당(盛唐) 시기보다 약간 앞서 활동하며 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시선(詩仙)' 이백이 존경했던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2. 시의 특징: 담백함과 고요함 맹호연의 시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맑고 그윽한 정취가 특징입니다. • 산수전원시(山水田園詩): 자연 풍경과 시골의 한가로운 삶을 주 소재로 삼았습니다. • 고독과 은둔: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혹은 하지 않은) 선비의 고독함, 세속을 떠난 자유로움을 담백한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 왕유와의 차이: 왕유의 시가 불교적(선취)이고 그림 같은 회화성이 강하다면, 맹호연의 시는 조금 더 인간적인 고독과 서정성이 짙게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3. 주요 일화: 황제 앞에서의 실수? 그는 40세가 넘어서 과거(진사)에 응시하기 위해 장안에 갔으나 낙방했습니다. 유명한 일화가 전해지는데, 친구였던 왕유의 초청으로 궁중 관청에 몰래 들어갔다가 당 현종(玄宗)과 마주치게 됩니다. 황제가 시를 읊어보라 하자 그는 자신의 시 <세모귀남산(歲暮歸南山)>의 한 구절을 읊었습니다. "재주 없는 나를 밝은 군주께서 버리시고 (不才明主棄), 병이 많아 친구들과도 멀어졌네 (多病故人疎)" 원래는 겸손과 자신의 처지를 한탄한 내용이었지만, 황제는 "나는 그대를 버린 적이 없는데 왜 나를 탓하는가?"라고 불쾌해하며 그를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이 일로 그는 관직을 단념하고 평생 재야의 시인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4. 대표작: 봄의 아침을 노래하다 한국인에게도 가장 친숙한 한시 중 하나인 <춘효(春曉)>가 바로 맹호연의 작품입니다.
춘효 (春曉 - 봄 새벽) 春眠不覺曉 (춘면불각효) 봄잠에 취해 날 밝는 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 (처처문제조)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 울음소리 夜來風雨聲 (야래풍우성) 지난밤 비바람 소리 들렸거늘 花落知多少 (화락지다소) 꽃잎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 해설: 봄날 아침의 나른함, 생명의 소생(새소리), 그리고 지난밤 비바람에 떨어진 꽃을 걱정하는 마음을 통해 계절의 아름다움과 덧없음을 짧은 20글자 안에 완벽하게 담아냈습니다.
5. 이백(李白)과의 우정 천하의 이백조차 맹호연을 흠모하여 <황학루에서 맹호연을 광릉으로 떠나보내며(黃鶴樓送孟浩然之廣陵)>라는 명시를 남겼습니다. 이백은 다른 시에서 "나는 맹부자(맹호연)를 사랑한다. 풍류가 천하에 들리네"라고 직접적인 존경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 친구 = 辛大, 知音, 故人 辛諤
* 伯牙와 鍾子期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는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진정한 우정과 깊은 이해를 상징하는 가장 유명한 고사 중 하나입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소리(마음)를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라는 뜻의 지음(知音)이라는 단어가 유래했습니다.
1. 만남: 소리로 통하다 백아는 당시 최고의 거문고(실제로는 '고금'이라는 악기) 연주가였고, 종자기는 나무를 베는 평범한 나무꾼이었습니다. 신분 차이가 컸지만, 음악을 통해 둘은 영혼의 친구가 됩니다. 어느 날 백아가 거문고를 연주하는데, 종자기가 그 소리를 듣고 백아의 마음속 풍경을 정확하게 읽어냅니다. • 높은 산(高山): 백아가 높은 산을 생각하며 연주하자, 종자기가 말했습니다. "훌륭하도다! 우뚝 솟은 것이 마치 태산(泰山) 같구나." • 흐르는 물(流水): 백아가 흐르는 물을 생각하며 연주하자, 종자기가 감탄했습니다. "훌륭하도다! 넘실거리는 것이 마치 강물(江河) 같구나." 백아가 생각하는 모든 것을 종자기는 음악만 듣고도 정확히 이해했습니다. 이에 백아는 "세상에 나의 소리를 알아주는 자는 오직 자네뿐일세"라고 말하며 그와 깊은 우정을 맺었습니다.
2. 이별: 백아절현(伯牙絶絃) 얼마 후, 종자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백아는 친구의 무덤을 찾아가 마지막으로 연주를 한 뒤, 통곡하며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리고(絶絃)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내 소리를 들어줄 사람(종자기)이 없는데, 연주를 해서 무엇하겠는가?" 이 슬픈 결말에서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는 사자성어가 탄생했습니다. 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참다운 벗의 죽음을 슬퍼함' 또는 '친한 친구를 잃은 슬픔'을 비유할 때 쓰입니다.
3. 고사가 남긴 유산 이 이야기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 예술적 교감과 인간관계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 지음(知音):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신의 가치와 속마음을 잘 알아주는 진정한 친구를 이르는 말입니다. • • 고산유수(高山流水): '높은 산과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훌륭한 음악을 비유하거나 지음(知音)의 관계를 상징하는 말로 쓰입니다.
요약 백아와 종자기의 고사는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 줍니다. 평생에 이런 친구를 한 명이라도 만나는 것은 큰 행운 이라고 하지요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8강(2024,04,25) 강의 교안 *《論語》〈里仁〉 4-18. 事父母幾諫,見志不從,又敬不違,勞而不怨
*《史記》〈周本紀〉4-023 1. 民 - 甲骨文, (▣)
《說文解字》「民, 衆氓(맹)也; méng, 古代稱百姓, 特指外地遷來的百姓,
(1) (일반적인)사람,
(2) 백성, 《孟子》〈盡心下
《史記》〈項羽本紀〉「(鴻門宴) 《淮南子》〈主術訓〉 《易經》〈繫辭下〉
(3) 상고시대의 신하(관직 있는 관리), 《易經》〈繫辭下〉
(4) 민심(민속), 《商君書》〈更法〉 《管子》〈小匡〉
(5) 호적의 종류, 《清史稿》〈食貨志一〉「其户之别, 曰軍, 曰民, 曰匠, 曰灶」 그 호의 구별은 왈군(군적) 왈민(민적,농부) 왈장(장적, 수공업) 왈조(조적, 소금 굽는 염호) 이다. 명나라 말기와 청나라 때 장적은 상적으로 바뀐다.
* 관청에 있는 사람이 귀(貴)이고 일반 백성은 천(賎)이다. 또는 양민이라 한다. 양민보다 천한 사람이 상인이고 그 다음이 노비이다. * 청나라 중기 이후 외국과 돈을 벌면 천민도 신분을 사서 귀하게 되었다.
* 찰리 송 (쑹자수)의 돈벌이 스토리 찰리 송은 광둥성 원창(海南省 원창시) 출신으로, 본래는 한(韓)씨였으나 12세 때 외가에 입양되어 쑹(宋)씨가 되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크게 다음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1. 미국 유학 및 기독교 목사 경력 • 배경 : 10대 후반, 미국 보스턴에서 선원 생활을 하다가 미국인 후원자의 도움을 받아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 학업 : 뛰어난 영어 실력과 학업 성적으로 트리니티 칼리지 등을 졸업했습니다. • 귀국 및 선교 : 1886년, 감리교 목사 자격으로 중국에 귀국하여 상하이 지구에서 선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 성경 및 종교 서적 인쇄·판매 사업 (재산 축적의 핵심) • 사업 전환: 1890년경, 순회 포교를 그만두고 실업가로 변신했습니다. • 핵심 사업: 미국성서협회의 상하이 대리인 자격으로 미국 종교 서적을 싼값에 인쇄하고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성공 요인: o 신기술 도입: 미국에서 배운 신식 인쇄술(자동 인쇄기)을 중국에 도입하여 저렴하고 대량으로 성경 및 종교 서적을 인쇄할 수 있었습니다. o 수요 증가: 당시 서양 문물과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관련 서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시기였습니다. o 성경 인쇄 독점: 사실상 중국 내 성경 및 기독교 서적 인쇄 시장을 독점하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되었습니다.
3. 혁명가 지원 및 정치적 투자 • 쑨원(孫文)과의 관계: 청년 시절부터 여우례(尤列), 쑨원 등 혁명가들과 친분을 맺었습니다. • 재정 후원: 쑨원이 주도한 혁명 사업에 막대한 사재를 지원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정적 지원을 넘어, 청 왕조 몰락 이후 새로운 시대의 지배층과 연결되는 정치적 투자로 작용했습니다.
* 신분 상승의 과정과 그 결과 찰리 송은 전통적인 유교적 배경의 관료나 지주 계층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 상공업 부와 서양식 교육 및 기독교 배경을 바탕으로 중국 사회 최상층으로 신분을 상승시켰습니다.
1. 경제적 지위 확립 • 신흥 부호: 성경 인쇄 사업으로 일궈낸 일대 거부(一代巨富)로서 상하이의 부유층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습니다.
2. 사회적 지위와 영향력 확대 • 기독교계 및 서구와의 연결: 미국 유학파이자 감리교 목사 경력은 서구 열강과의 교류가 잦았던 상하이에서 큰 사회적 자산이었습니다. • 자녀 교육: 그는 세 딸(아이링, 칭링, 메이링)과 세 아들을 모두 미국 유학시켜 신식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이는 당시 중국에서 최고의 엘리트 교육이었습니다.
3. 중국 역사상 최고 명문가로의 도약 찰리 송의 진정한 신분 상승은 그의 세 딸의 결혼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이 세 명의 '송 자매'는 20세기 초 중국 역사를 움직인 핵심 인물들과 결혼하며 송 가문을 중국 현대사 최고 명문가로 만들었습니다.
장녀 송애령(宋靄齡) - 결혼 : 쿵샹시(孔祥熙) / 사업가, 국민정부 재정부 장관 (막대한 부 축적) 차녀 송경령(宋慶齡) - 결혼 : 쑨원(孫文) / 중화민국 임시 대총통, '국부' 삼녀 송미령(宋美齡) - 결혼 : 장제스(蔣介石) / 국민정부 주석, 중화민국 총통
이를 통해 송 가문은 재계(아이링), 혁명/정치계(칭링), 군부/권력계(미령)의 정점에 서게 되었으며, 찰리 송은 한 개인의 성공을 넘어 중국 현대사를 좌우하는 가문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찰리 송은 청나라 말기, 격변하는 시대에 서양 문물과 자본주의적 사업 수완을 결합하여 재산을 모았고, 그 부를 자녀 교육과 혁명 세력 후원에 투자하여 중국 최고 엘리트 계층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찰리 송이다. 세딸 경영(손문의 처) 혜령(공상시의 처) 미령(장중정의 처)을 세도가에게 시집을 보냈다.
* 25史 명칭의 차이 중국 정사 25사의 명칭은 편찬 기관, 주도자, 시대적 배경에 따라 서술 방식과 문체가 달랐으며, 특히 책 제목 끝에 붙는 글자(記·書·志·史·稿)는 해당 역사서의 성격과 편찬 전통을 반영합니다.
1. 記(기) - 1종 《史記》로 대표되는 이 유형은 한대 사서의 통칭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太史公에서 시작해 太史公書, 太史公記를 거쳐 太史記, 최종적으로 史記로 명칭이 변화했습니다. 記는 특정 시대나 인물을 사실 중심으로 기록한다는 의미가 강하며, 비교적 간결하고 기록 중심의 정사에 사용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개인이 역사를 기록했고, 비단을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다만 記와 書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2. 書(서) - 13종 《漢書》, 《後漢書》, 《晉書》, 《宋書》, 《南齊書》, 《梁書》, 《陳書》, 《魏書》, 《北齊書》, 《周書》, 《隋書》, 《舊唐書》, 《新唐書》 등 13종이 이에 해당하며, 해당 왕조의 역사 전반을 다루는 단대사의 형식을 취합니다. 書 역시 한대 사서의 통칭이었으나, 해당 왕조의 역사 전체를 서술한다는 의미가 강했습니다. 紀傳體를 따른 일반적인 정사 명칭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으며, 종이를 기록 재료로 사용했습니다.
3. 志(지) - 1종 《三國志》가 유일한 사례입니다. 원래 志는 예·악·율령·경제 등 제도사를 기술하는 장르 명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독립된 정사의 제목으로는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三國志의 경우 정통 왕조가 확정되기 전 세 나라의 기록을 다룬다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특별한 경우입니다.
4. 史(사) - 9종 《南史》, 《北史》, 《舊五代史》, 《新五代史》, 《宋史》, 《遼史》, 《金史》, 《元史》, 《明史》 등 9종이 이에 속합니다. 書와 史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으나, 史는 국가가 공인한 정통 역사서의 일반 명칭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비교적 완정하고 체계적인 사서를 가리키며, 唐宋 이후 정사의 표준 명칭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인쇄술의 발달로 역사 기록이 활발해졌고, 관방 역사 서술의 전통이 확립되었습니다.
5. 稿(고) - 1종 《清史稿》가 유일합니다. 稿는 사관의 최종 수정을 거치지 않은, 즉 퇴고가 끝나지 않은 미완성 작품임을 나타냅니다. 청나라 역사를 다루면서도 완성되지 못한 초고 상태임을 명칭에 반영한 것입니다.
*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를 완성한 후 동방삭(東方朔)을 만났다는 설화, 문학 작품, 혹은 역사적 인물을 엮어낸 전설에 등장하는 일화입니다.
⊙ 역사적 사실과 전설의 배경 이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시대적 차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 • 동방삭 (東方朔): 한 무제(漢武帝) 시기의 인물로, 재치와 익살로 유명한 문인이자 책사였습니다. 활동 시기는 기원전 2세기 중반에서 말입니다. • 사마천 (司馬遷): 역시 한 무제 시기의 인물이나, 그의 주요 활동 및 《사기》의 완성 시기는 무제 말년에서 소제(昭帝) 초기인 기원전 1세기 초반입니다. 두 사람은 동시대 인물이지만, 동방삭은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하기 전에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설화에서처럼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하고" 동방삭을 만났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2. 정사(正史) 기록의 부재 《사기》와 후대의 역사서인 《한서(漢書)》의 기록을 포함하여, 사마천이나 동방삭의 전기에 두 사람이 만나서 《사기》에 대해 논하거나 동방삭이 사마천을 격려했다는 내용은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 민간 설화 및 문학 속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위인을 엮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동방삭이 가진 신비하고 기인(奇人)적인 이미지와,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당대인들의 존경심이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1. 이야기의 일반적인 내용 민간에 전해지는 주요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 사마천은 오랜 고난 끝에 《사기》를 완성하고, 이 위대한 저술을 세상에 내놓기 전에 혹시 잘못된 부분이 있을까 걱정합니다. • 이때 동방삭이 홀연히 나타나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나 신선과 같은 지혜로 《사기》의 내용을 검토해 줍니다. • 동방삭은 "이 책은 틀림없는 불멸의 대작이다"라고 칭찬하며, 특히 자신에 대한 기록이 잘 되어 있음을 보고 기뻐합니다.
2. 설화의 의미 이러한 설화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 《사기》의 공정성 입증: 동방삭과 같은 지혜로운 이가 책의 내용을 미리 검토했다는 것은 《사기》의 내용이 정확하고 완벽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 신선 사상과의 결합: 동방삭은 후대에 신선(神仙)의 이미지와 결합되어, 그가 사마천을 만났다는 것은 《사기》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한 후 동방삭을 만났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두 위대한 인물을 엮어 《사기》의 가치를 드높인 후대의 문학적 창작 또는 민간 설화입니다.
* 사기의 특징 1. 글자수 ~ 526,500자.후대 훼손 첨삭을 막기위해 이 숫자를 밟힘 2. 저자 ~ 아버지 사마담 1/3, 아들 사마천이2/3, 공동 저작이다. 3. 서술형식 ~ 기전체의 효시로 역사를 본기, 표, 세가, 열전의 형식으로 서술했다. 4. 서술 범위 ~ 통사이다. 황제시대부터 전한 무제까지 약3천년의 중국 고대 역사를 포괄적으로 서술했다. 5. 역사관 ~ 인간 중심의 통찰이다.제왕, 자객 상인 익살꾼등 다양한 신분의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다루었다.
(6) 사회적 弱者(老, 幼, 女, 鰥(矜), 寡, 孤, 獨, 廢疾......)
(7) 民과 유사한 표현으로는, 黎, 黎民, 黔首, 黎烝, 衆, 衆民, 衆庶, 百姓, 人民, 庶民, 國人(國民), 平民, 黑髮之人......
民(백성 민) 국가의 일반 사람 - 가장 일반적, 포괄적인 백성/국가 구성원 - 국민(國民), 인민(人民) 衆(무리 중) 많은 사람들의 무리 - 집단성, 규모를 강조하는 대중 - 대중(大衆), 민중(民衆) 黎(검을 려/여) 평범한 백성, 농민 - 고대 용어, 소박하고 평범한 일반 백성 - 여민(黎民) 隸(종 례/예) 종, 노예, 예속된 자 - 신분적 예속 (다른 셋과 구별됨) - 노예(奴隸), 예속(隸屬)
김영환교수의 동양고전아카데미 제349강(2024,05,02) 강의 교안
*《論語》〈里仁〉 4-19. 父母在,不遠游,游必有方。
(주석) (1) 在 - 在世, 살아계시면 (2) 遠 - 먼 곳(distant 먼 곳에 가면 奉養과 孝敬을 못하므로) (3) 游(遊) - 出游, 출타(여행, 업무, 학업, 상업......) (4) 方 - 목적지, 장소 고지, 거처, 방향, (최근 주장은 방법, 즉 자식이 부재 시 부모를 봉양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것)
《논어》 〈리인(里仁)〉 편에 등장하는 “부모재, 불원유, 유필유방(父母在,不遠游,游必有方)“은 전통적으로 “부모가 살아 계실 때는 멀리 떠나지 말되, 부득이 떠나야 할 경우 반드시 일정한 방향(곳)을 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이 구절에서 핵심이 되는 ’방(方)’자의 해석은 시대적 배경과 유가 사상의 본질에 따라 다층적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특히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의 양 측면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부모의 입장에서 본 ’방(方)’의 의미: 안심을 위한 소통
가. 정현(鄭玄)의 전통적 주해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해석 중 하나는 후한 시대의 정현의 주석입니다. 그는 ’방(方)’을 ‘상(常)’, 즉 ‘변하지 않는 일정한 곳’으로 해석했으며, 이는 《논어 집해(論語集解)》에 수록되어 전통 주석의 정설로 자리잡았습니다.
송대의 주희(朱熹) 역시 《논어 집주》 에서 “방(方)은 일정한 곳이니, 부모에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정현의 해석을 계승했습니다. 이러한 전통적 해석은 ‘방’을 구체적인 ‘방향’ 또는 ‘장소’로 이해하며, 자식의 효(孝) 실천에서 부모의 걱정을 최소화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봅니다.
2. 자식의 입장에서 본 ’방(方)’의 의미: 책임 있는 대비 - 실천적 해석: 방법과 계획으로서 ‘방’ 전통적 해석이 ‘방’을 장소로 본 반면, 보다 실천적이고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방’을 ‘방법’ 또는 ‘계획’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유필유방’은 단순히 부모에게 행선지를 알리는 것을 넘어, 원유(遠游) 이전에 부모의 생계와 봉양이 끊기지 않도록 경제적·생활적 대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이는 자식이 먼 곳으로 떠날 때 부모를 실질적으로 부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강조합니다. 즉, 부모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지원, 건강 관리를 위한 조치, 비상시 연락 체계 등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 라는 것입니다.
*《예기》 곡례상(曲禮上) 편 《예기(禮記)》의 《곡례편(曲禮篇)》에는 이 구절을 포함하여 자식 된 자의 구체적인 예절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爲人子之禮, 冬溫而夏凊, 昏定而晨省. 出必告, 反必面, 所遊必有常, 所習必有業. (위인자지례, 동온이하청, 혼정이신성. 출필고, 반필면, 소유필유상, 소습필유업.)
💡 전체 내용 해석 자식 된 자의 예절은, 겨울에는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해드리고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이다. 저녁에는 (잠자리를) 정해드리고 새벽에는 (안부를) 살피는 것이다. (나가고자 하면) 반드시 아뢰고, (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을 뵙는다. 노는 곳은 반드시 일정한 곳이 있어야 하고, 익히는 것은 반드시 (일정한) 일이 있어야 한다.
- 그 다음 구절 所遊必有常 (소유필유상) 노는 곳은 반드시 일정한 곳이 있어야 하며 자식이 외출하여 지내는 장소나 교우 관계가 일정하고 건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함부로 이상한 곳에 다니지 않아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所習必有業 (소습필유업) 익히는 것은 반드시 일정한 일(학업/생업)이 있어야 한다. 자식이 배우는 일이나 하는 일이 헛되지 않고 정해진 목표가 있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즉, 자식은 본분에 맞는 학문이나 생업에 정진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3. 전체 구절 연결 이 구절들은 앞에서 언급된 '출필고 반필면'과 함께 자식의 신중한 몸가짐과 성실한 자세를 강조합니다. 出必告 (출필고): 나갈 때는 반드시 고하고 (안전을 보고하고) 反必面 (반필면): 돌아와서는 반드시 얼굴을 뵙고 (안부를 전하며) 所遊必有常 (소유필유상): 노는 곳은 반드시 일정한 곳이 있어야 하며, 所習必有業 (소습필유업): 익히는 것은 반드시 정해진 일이 있어야 한다. 이 구절들은 부모님께 '신뢰'와 '안정감'을 드리기 위한 자식의 윤리적 의무를 나타냅니다.
* '大學之道 在明明德 (대학지도 재명명덕)'은 유교 경전 《대학(大學)》의 첫 구절로, 이 책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목표와 학문의 본질을 제시하는 핵심 문장입니다.
1. 大學之道 (대학지도) o 大學(대학): 주 나라 때 15세이상 양반집 자녀가 대학에 들어가 대학의 교재 o 道(도): 여기서는 단순한 '길'이 아니라, 대학(大)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 원리, 방법론을 뜻합니다.
2. 在明明德 (재명명덕) o 在 (재): "~에 있다"는 뜻으로, 목표와 근본이 되는 것을 지목합니다. o 明德 (명덕): 이 '명덕'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선천적이고 순수한 본성인 仁義禮智를 의미합니다. o 明 (명) (첫 번째): '밝히다'라는 동사입니다. 가려진 때를 걷어내고 본래의 밝은 덕을 드러내도록 수양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 朱子의 讀書順序 童蒙書→小學→大學→論語→孟子→中庸→(4經 詩經, 禮經, 易經, 書經)→歷史書(春秋, 國語, 史記......)
*栗谷 李珥의 독서순서 1.《小學》―於事親、敬兄、忠君、悌長、隆師、親友之道 2.《大學》 及 《大學或問》―於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 3.《論語》―於求仁爲己、涵養本原之功 4.《孟子》―於明辨義利、遏人欲存天理之說 5.《中庸》―於性情之德、推致之功、位育之妙 6.《詩經》―於性情之邪正、善惡之褒戒 7.《禮經》―於天理之節文、儀則之度數 8.《書經》―於二帝三王治天下之大經大法 9.《易經》―於吉凶存亡、進退消長之幾 10.《春秋》―於聖人賞善罰惡、抑揚操縱之微辭奥義
* 錢穆(臺灣 ; 史學,經學家)의 중국 고전 필독서 論語→孟子→大學→中庸→老子→莊子→六祖壇經→近思錄→傳習錄→歷史書(史記)
* 근사록(近思錄) 설명 근사록은 남송(南宋) 시대의 성리학을 집대성한 책으로,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필독서였습니다. • 편저자: 성리학의 완성자인 주희(朱熹, 주자)가 친구인 여조겸(呂祖謙, 여동래)과 함께 편찬했습니다. (주희가 주도적으로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성격: 북송(北宋) 시대의 대표적인 도학자 네 명, 즉 주돈이, 정호, 정이, 장재 등의 저술과 어록 중에서 학문의 중심 문제와 일상생활에 요긴한 부분을 뽑아 편집한 일종의 성리학 입문서이자 정요서(精要書)입니다. • 별칭: 흔히 '송(宋)대의 논어'라고 불리는데, 이는 원시 유학에서 논어(論語)가 으뜸이듯 신유학(성리학)에서 근사록이 으뜸가는 필독서임을 의미합니다.
- 주요 내용 및 의의 1. 성리학의 기초 확립: 근사록은 북송 시대의 사상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성리학(주자학)이 확립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2. 수양과 실천 강조: 제목인 근사(近思)는 '가까운 것(일상의 사물과 일)을 생각한다'는 뜻으로, 《논어》의 "박학어문(博學於文), 약지이례(約之以禮), 근사(近思)"에서 따왔습니다. 이는 지식 습득과 더불어 구체적인 일상생활 속에서 도덕적 실천과 자기 수양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실천적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3. 조선시대 영향: 고려 후기에 국내에 들어와 조선시대 전반에 걸쳐 유학자들의 대표적인 성리학 교과서로 사용되었으며, 조선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史記》〈周本紀〉4-023 1. 和 - 和와 龢는 通用 ; 和-金文,소리 어울림, 조화, 平和、温和、柔和 ; 龢-甲骨文, 음악의 조화, 사람 이름에 쓰인 龢는 和로 쓰면 안됨.
《說文解字》「和,相譍也。从口禾聲」 화는 조화롭다. 상응은 소리 뜻 관계 등이 조화롭다 입구 부수에 벼 화를 결합한 형성문자이다.
또 「龢,調也。从龠禾聲。讀與和同」 龢 (화)는 조화(調)롭다는 뜻이다 从龠 (종약): 龠(약) 부수를 따른다. ('龠'은 피리나 악기를 뜻하는 부수입니다.)
• 禾聲 (화성): 禾(화)가 소리를 나타낸다. (형성자의 구조 설명) • 즉, '龠 (약) 부수로 이루어져 있고, 禾 (화)가 소리를 나타낸다.' • 讀與和同 (독여화동): • 讀 (독): 읽다. • 與和同 (여화동): 和(화)와 같다. 즉, '읽기는 和 (화)와 같다.' (발음이 '화'임을 설명)
(1) 温和柔順,
韓愈, 〈與祠部陸員外書〉「其爲人賢而有材,志剛而氣和」 그 사람됨이 어질고, 재주가 있어요. 의지가 굳세고 태도가 온화하다.
(2) 협조,융합,
《孟子》〈公孫丑下〉「天時不如地利,地利不如人和。三里之城,七里之郭,環而攻之而不勝。夫環而攻之,必有得天時者矣,然而不勝者,是天時不如地利也。城非不高也,池非不深也,兵革非不堅利也,米粟非不多也,委而去之,是地利不如人和也」 작전에 유리한 기후 조건은 지형의 지리 형세만 못하고, 지리 형세는 인화만 못하다. 삼 리(三里) 내성과 칠리의 외성(郭)을 포위하여 공격해도 이기지 못한다. 무릇 포위하여 공격할 때에는, 반드시 작전에 유리한 기후 조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공격하고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곧 작전에 필요한 기후 조건이 지리 형세만 못함이다. 성이 높지 않은 것도 아니며, 해자(池)가 깊지 않은 것도 아니며, 무기 장비가 굳세고 날카롭지 않은 것도 아니며, 쌀과 곡식이 많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수비하는 사람들이) 성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지리적 이점이 인화 만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적당한,온건한, 《周禮》〈天官·大司徒〉「一曰六德:知、仁、聖、義、忠、和」 주나라 교육 과정이 첫째 6덕을 배우고, 2번째 6행을 배우고, 세번째 6예를 배운다.
6행 ~ 孝 友 睦 姻 任 恤 6예 ~ 禮 樂 射 御 書 數
(4) 온화,온난, 陶潜, 〈桃花源〉「草榮識節和,木衰知風厲」 초목이 피면 계절이 온난홤(節令和順)을 알고, 나무가 시들면 날씨가 추워져 겨울이 온 것을 안다.
(5) 화목하다, 《尙書》〈周官〉「宗伯掌邦禮,治神人,和上下」 종백이(제사와 예악(禮樂)을 관장하던 주나라의 대신)나라의 예법을 관장하고, 또 신들을 다스리고, 윗 사람 아랫 사람을 화목하게 한다.
(2025.12.11. 주정봉 강의 요약) |